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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꽃과

 

 

  논둑에 피어난 봄꽃 봄들꽃 봄첫꽃 봄첫들꽃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예쁜 꽃이네, 하면서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네 송이, 잇달아 꺾고는 손아귀에 쥔다. 작은 손아귀에 작은 꽃송이 안긴다. 이 꽃송이들은 한창 흐드러지려고 하는 때에 꺾인다. 꽃들한테 더없이 미안하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우리 아이가 아니라면, 이 시골자락에서 이 봄꽃 들꽃 봄들꽃 봄첫꽃 봄첫들꽃을 꺾어 손에 살며시 쥐고는 달음박질을 할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아마 이 꽃들은 가만히 바라보는 사람 없는 채 홀로 조용히 피었다가 조용히 지겠지. 시골마을에 아이들 목소리 가득 넘치던 때에는 들꽃 꺾는 손길이 참 많았을 텐데,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들꽃을 꺾어 들꽃목걸이를 만들거나 들꽃다발을 만들었어도 오늘까지 이 꽃들은 곱게 하얀 선물을 베푼다. (4345.3.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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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3-19 20:00   좋아요 0 | URL
소담하네요

숲노래 2012-03-20 06:13   좋아요 0 | URL
이제 날마다 이러구 놉니다~
 


 책으로 보는 눈 178 : 삶을 읽는 길

 


  일본사람 오바나 미호 님이 그린 만화책 《아이들의 장난감》(학산문화사,2004) 둘째 권을 읽으면, 184∼185쪽에 “애초에 너희 엄마가 널 싫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부모한테서 미움이나 받는 아이가 너처럼 제대로 자랄 수 있겠냐?”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기 앞서, 내 어버이한테 아이로 살아오는 동안에도 생각했습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싫어할 수 없을 뿐더러, 내 어버이가 나를 싫어할 수 없어요. 곧, 내 모습은 내 어버이가 나를 사랑하던 모습이요, 내 아이들 모습은 내가 어버이로서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인 만큼, 나 스스로 나를 살가이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나부터 좋은 삶을 꽃피우며 아이요 어버이인 나날을 즐거이 누릴 수 있어요.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둘째 권으로 나온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면, 69쪽에 “원래 돈을 벌려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번 돈은 우리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잘 쓰면 되겠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네 식구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기 앞서, 내 꿈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늘 헤아립니다. 돈이란, 많이 벌거나 적게 벌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나와 내 식구들이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이끄는 일을 즐기고, 서로서로 예쁘게 어우러지는 놀이를 누리며, 언제나 웃고 떠드는 이야기를 꽃피우는 나날일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적게 벌자며 하는 일이란 없어요. 스스로 기쁘려고 하는 일이에요. 스스로 삶을 누리기에 알맞을 만큼 돈을 벌어요.


  먼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한테 돈을 더 많이 벌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담는 말이나 책은 아주 덧없습니다. 〈허생전〉이라는 옛문학도 있고, 러시아사람 톨스토이 님이 적바림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돈벌이는 부질없습니다. 삶을 누리는 하루가 대수롭습니다. 돈더미는 덧없습니다. 삶을 나누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처세·경영·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을 내건 ‘돈벌이 하자는 책’이 쏟아집니다. 돈벌이 또한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하자는 책이 넘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에는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는 길이나 아이를 보살피는 길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길을 몸과 마음에 담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좋은 삶길을 깨닫지 못하고는 ‘육아책·교육책·학습책’을 굳이 읽으려 합니다.


  종이로 된 책은 누구나 굳이 안 읽어도 됩니다. 종이로 된 책에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없어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모두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요, 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내 손으로 일구는 삶이요, 내 다리로 빛내는 슬기예요.


  곧, 어떤 책을 읽는가는 아무것 아닙니다. 이 책을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읽어도 됩니다. 이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안 읽어도 됩니다. 내 삶을 읽고, 내 옆지기와 아이들 삶을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아무 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오직 좋은 사랑과 빛나는 꿈을 건사하며 어깨동무하는 나날이면 넉넉합니다. (4345.3.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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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흙

 


  일본에서 이름난 어느 소설쟁이를 기리는 대단한 전시관을 서울 노량진에 있는 헌책방 사장님이 읽던 일본 잡지에서 본 적 있다. 헌책방 일꾼 한삶을 마흔 해 넘게 일구는 사장님은 소설쟁이도 소설쟁이라 할 테지만, 이만 한 전시관을 마련한 일본도 일본이라 할 만하다고 들려준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을까, 또는 더 예전에도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소설쓰는 이문열 님이 연 서당이라 할까 서원이라 할까 글터라 할까 싶은 자리를 차린 이야기를 어느 잡지에선가 읽은 적 있다. 소설쓰는 이문열 님을 어떻게 바라보건 말건, 책 하나로 얻은 돈으로 책과 글이 어우러지는 터전을 일군 일이 참 놀랍다고 느꼈다.


  내가 책을 쓸 수 있고, 내가 쓴 책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이 돈으로 무슨 일을 할 때에 나 스스로 즐거우며 책으로 태어난 나무한테 고마우며 내 책을 읽은 사람한테 빛이 될 만한가를 헤아려 본다. 나는 시골마을 땅을 사면 좋을까. 시골마을 논과 밭, 여기에 문닫은 시골마을 작은학교를 사들여 이곳에 내 책들을 건사하고, 우리 식구들과 앞으로 태어날 먼 뒷사람들 삶을 보듬을 흙땅을 건사하면 좋을까.


  돈을 앞세우고 정치권력 거머쥔 이들은 흙일꾼한테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잔뜩 뿌렸다. 온누리 흙일꾼은 돈쟁이와 권력쟁이 서슬에 밀려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쓰는 흙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흙하고 동떨어진 곳에서 돈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도시사람은 흙으로 빚은 목숨인 내 몸뚱이를 잊은 채, 더 값싸거나 더 몸에 좋다는 먹을거리를 찾을 뿐이다. 삶을 잊거나 잃으며, 사랑 또한 잊거나 잃는 톱니바퀴나 쳇바퀴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내가 살아가는 밑힘이라면 무엇이든 흙에서 비롯하리라 생각한다. 좋은 밥도 좋은 물도 좋은 햇살과 바람도 흙과 함께 살가이 빛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글 한 줄은 흙에서 비롯한다.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 한 장은 흙에서 꽃을 피운다. 내가 건넬 수 있는 말 한 마디와 우리 집 살붙이들하고 얼크러질 하루 또한 노상 흙에서 샘솟는다.


  책은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든 다음 빚는다지.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려 기나긴 해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지. 곧, 나무란 흙이요, 책이란 나무이자 흙인 셈이다. 내가 내 이름을 박은 책을 내놓아 널리널리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아주 마땅히 시골마을 흙땅을 장만해야 알맞으리라. 시골마을 흙땅이 포근한 햇살과 따사로운 흰눈과 너그러운 구름과 해맑은 무지개와 시원한 달빛과 보드라운 풀잎으로 곱게 빛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마음을 쏟을 수 있으면 즐거이 누릴 삶이 되리라. (4345.3.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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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책들을

 


 좋아하는 책들을 가까이 두고 자주 바라볼 수 있고, 언제나 꺼내어 펼칠 수 있는 일은 즐겁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집에서 날마다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지낼 수 있는 삶은 즐겁습니다. 좋아하는 밥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날마다 먹은 다음, 좋아하는 숲 곁에 마련한 좋은 보금자리에 모로 누워서 좋아하는 책을 펼치며 한숨 쉬고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봄햇살 맞아들일 수 있는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습니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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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만 질러대는 노래는 듣기 싫어

 


  나는 소리만 질러대는 노래를 참 싫어한다. 어릴 적부터 나이든 뒤까지, 소리만 질러대면 왱왱질이지 노래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목청은 때때로 시원할 수 있지만, 그저 내지르기만 할 때에는 귀가 따가우며 가슴이 답답하다. 곧, 더 높은 소리를 불러제낄 수 있다 해서 노래를 더 잘 부른다 할 수 없다. 이를테면, 2011∼2012년 텔레비전에 흐르는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같은 풀그림에 나오는 노래꾼들이 그저 목이 터져라 외쳐댈 때에는 참으로 뻘쭘하면서 갑갑하다. 노래는 그렇게 질러대어서는 노래가 아니거든. 노래방에서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기만 하지는 않거든. 내 마음을 담아야 노래가 되거든. 내 사랑을 담고 내 이야기를 풀어내야 노래가 되거든.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노래가 있고, 나즈막히 읊는 듯한 노래가 있다. 울먹이는 노래가 있고, 춤을 추며 웃는 노래가 있다. 왜냐하면, 노래란 삶이기 때문이다. 삶을 노래하니까, 어느 때에는 속삭이고 어느 때에는 외치며 어느 때에는 춤을 춘다.


  더 높은 소리를 내지른다 해서 점수를 잘 받을 수 없다. ‘오, 그래, 높이 지를 줄 아는구나.’ 하고 여길 뿐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에 아주 잘 느낀다. 글재주가 빼어나대서 더 읽을 만한 글을 쓰지 않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빈틈없이 맞추기에 좋다 할 만한 글이 태어날까. 초점이나 빛살을 잘 맞추어 찍는 사진일 때에 잘 찍은 사진이라 하는가.


  대학교를 나와야 그림쟁이나 만화쟁이가 되지 않는다. 그림결은 좀 서툴거나 어리숙해도 이야기가 묻어나면서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울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림이나 만화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진도 글도 이와 매한가지이다. 글솜씨가 무슨 대수랴. 목청이 노래에서 무슨 대수랴.


  목소리가 남다르지 않아도 된다. 높은 소리를 내지르지 못해도 된다. 나즈막히 속삭일 줄 몰라도 된다. 이야기를 담는 웃음과 눈물이 있을 때에 노래라고 한다.

 


  ‘블론디(blondie)라고 하는 서양사람이 부른 〈마리아〉라는 노래를 듣는다. 이 노래를 몇 해 앞서 옆지기가 수없이 틀었다고 하는데, 어인 일인지 나는 예전에 들은 노래를 잘 떠올리지 못한다. 왜 그러지?


  새롭게 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옆지기는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블론디라는 할머니는 소리를 질러야 하는 대목에서 속청(가성)으로 부른다고 말한다. 곰곰이 들어 보니 그렇다. 이 할머니는 속청 아닌 목청을 내지 못한단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이 속청이 되게 좋다. 시원시원 내지른다 할 때에도 좋겠지만, 속청으로 이 대목을 끝내고 앞뒤를 가만가만 목청으로 부르는 결이 좋다. 내가 영어를 잘 모르기는 하나, 가락이며 노랫말이며 느낌이며 결이며 골고루 어우러지겠지.

 


  사랑스러운 짝꿍한테 아파트를 선물해야 짝꿍이 좋아하지 않는다. 더 돈을 들인 선물보다는 더 마음을 들인 사랑스러운 선물일 때에 좋아한다. 더 높이 내지른대서 노래가 되지 않는다. 더 사랑스레 부르며 더 따사로이 즐길 때에 노래가 된다. 더 기쁘게 쓸 때에 글이 되고, 더 아름다이 여밀 때에 사진이 된다. 더 신나게 일굴 때에 만화가 되고, 더 빛나게 붓끝을 놀릴 때에 그림이 된다. 내 아이들은 더 값비싼 밥집에서 더 놀라운 밥을 사다 주어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을 담은 밥 한 그릇이면 배불리 먹으며 싱긋 웃는다. (4345.3.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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