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4.

까칠읽기 29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문학동네

 2018.11.23.



《걷는 사람, 하정우》(하정우, 문학동네, 2018)는 틀림없이 ‘뚜벅이’ 이야기일 텐데, 어쩐지 뚜벅뚜벅 발소리는 안 나는 듯하다. 꽤 걷는다고 밝히기는 하는데, “걸어다니면서 무엇을 보고 느꼈다”는 줄거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쓴이가 “걷는 사람”이라고 안 밝히는 자리에서 으레 풀어내거나 흘러나올 만한 줄거리만 가득하다.


책을 다 읽고서 돌아본다. 이 책은 “하정우, 나(내 연기생활)를 말한다”쯤으로 붙여야 어울린다. 그냥 ‘하정우’라는 분이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고 밝히는 얼거리요 줄거리이다. 사람들 앞에서 꽃돌이(남자 배우)로 지내온 길을 ‘한 발짝씩 뗐다’는 뜻으로 본다면, 이 책이름이 아주 틀리지는 않으나, 군데군데 “많이 걸어다녔다”고 드러내는 글자락은 오히려 ‘자랑’ 같다.


글쓴이 스스로 밝히기로는, 머리말부터 ‘자랑할 생각 없’이 썼다고 하지만, “이렇게 돈 잘 벌고 이름값 있는 사람”이 잘 걸어다닌다면서 오히려 자랑하는 얼개로 흘렀다고 느낀다. 이미 여러 곳에 얼굴을 내밀거나 팔면서 “하고픈 말을 많이 할” 텐데, 따로 책을 쓴다고 할 적에는 “내가 나로서 천천히 걸으면서 둘레를 다시 바라보고 마음속을 새롭게 들여다본 삶”을 그저 발바닥으로 옮길 일이었으리라 본다. ‘국토대장정’을 어떻게 했을까? “국토대장정을 했다”라고만 하고, 막상 하루하루 어떻게 걸었다든지 걸으며 어떠했다든지 같은 이야기는 아예 없다. 집하고 일터 사이가 꽤 멀지만 자주 걷는다는데, 자주 걷는다면서 하루하루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지 같은 이야기는 없다. 뭔가?


“자랑할 마음이 없다”고 밝히는 말이 ‘자랑’인 줄 눈치채지 못 했다면, 부디 알아채기를 빈다. 그저 걸으면 된다. 걷는 사람은 떠들지 않는다. 그냥 걸어다니면 된다. 걸어다니는 하루를 누가 자랑하는가? 두바퀴를 느긋이 타는 사람도 그저 두바퀴를 달릴 뿐이다. 자랑하려고 걷거나 두바퀴를 탄다면, 이 삶이란 얼마나 안쓰럽고 딱한가? “난 이만큼이나 걷는다구!” 하고 밝히려고 걷는다면, 그야말로 왜 걸어다니는 셈일까? 마치 “난 국산품을 사랑하기에 제네시스를 탄다구!” 하고 밝히는 분들하고 매한가지이다.


저잣마실을 걸어서 다니려나? 책집마실을 걸어서 하려나? 이웃마실을 걸어서 다니려나? 글쎄, 하정우 님이 “걷는 사람”이기는 하다고 느끼지만, ‘왜’ 걷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걷는다는 이미지”를 내세우려고 걸어왔다면, 이제는 “그냥 걸어다니는 수수한 이웃 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빌 뿐이다.


ㅅㄴㄹ


내가 이동거리를 말할 때 쓰는 단위는 ‘편도 몇 보’가 되었다

→ 나는 길을 ‘가는데 몇 걸음’처럼 말한다

→ 나는 다닐 때 ‘가는길 몇 발’처럼 말한다

7쪽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내 삶의 방식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나는 이 책으로 누구를 가르치거나 내 삶길을 자랑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 나는 이 책을 쓰며 누구를 가르치거나 내 삶결을 자랑할 뜻이 아예 없다

10쪽


무대에서 슈트를 입고 멋쩍은 웃음을 짓던 나는 얼마 후 등산화를 꿰어신고 길을 나섰다

→ 마루에서 차려입고 멋쩍게 웃던 나는 얼마 뒤 멧신을 꿰고 길을 나섰다

→ 위에서 빼입고 멋쩍게 웃던 나는 얼마 있다가 멧길신을 꿰고 길을 나섰다

21쪽


수많은 소동과 사건 끝에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 숱한 너울과 골치 끝에 나라걷기를 마치고

→ 온갖 물결과 벼락 끝에 가로질렀고

→ 갖은 사달과 불굿 끝에 나라마실을 마치고

22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 나는 길에서 늘 즐거웠고, 자주 웃었다

→ 나는 걸으며 언제나 즐거웠고, 자주 웃었다

25


과체중인 사람에겐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치는 활동인 것이다

→ 무거운 사람은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친다

→ 큰사람은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친다

46


시간상으로는 루트1과 비교했을 때

→ 짬으로 길1과 견줄 때

→ 길1보다 얼마나 걸리는지 잴 때

→ 길1하고 얼마나 다른지 따질 때

63


바게트 같은 빵도 사오면 한 번에 다 먹어치우기 어려우므로 바로 썰어서 냉동보관한다

→ 막대빵도 사오면 하루에 다 먹어치우기 어려우므로 바로 썰어서 얼린다

134


침대에 누워서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 본다

157


바빠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지 못하고 각자 책을 읽었다

→ 바빠서 따로 못 만나고 저마다 책을 읽었다

→ 바빠서 만나지 못하고 다들 책을 읽었다

209


한글의 장음과 단음까지도 가려듣는다

→ 한글을 긴소리 짧소리까지 가려듣는다

28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화로운 삶 - 헬렌과 스콧 니어링이 버몬트 숲속에서 산 스무 해의 기록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29.

까칠읽기 14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

 류시화 옮김

 보리

 2000.4.15.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류시화 옮김, 보리, 2000)은 “Living The Good Life”를 옮겼다고 한다. “즐겁게 살기”나 “잘 살기”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이 처음 한글판으로 나오던 무렵에 ‘보리출판사 영업부 막내’로 지냈고, 갓 찍어서 펴냄터에 처음 닿은 책을 밤새워 읽으면서 몇 가지를 느꼈다. 첫째, 처음 받은 옮김글을 그렇게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엮은이가 영어를 맞대면서 바로잡은 옮김말씨라지만, 얄궂거나 아리송한 대목이 잔뜩 있다. 둘째, 2000년에 ‘수습(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달삯으로 62만 원을 받는 나로서는 뜬구름 잡거나 텅빈 소리 같았다. 셋째, 나는 두다리(보행자)나 두바퀴(자전거)로만 살아갈 마음인데, 글쓴이는 이미 쇳덩이(자동차)를 아주 즐길 뿐 아니라, 니어링 님은 쇳덩이를 버릴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다. 넷째, 이 책으로는 뭔가 줄거리를 제대로 들려주지는 못 한다고 느껴서, 《The Maple Sugar Book》을 따로 사서 읽었는데, ‘어떻게 일했는가’를 다룬 책이 훨씬 낫더라. 《Living The Good Life》가 아니라 《The Maple Sugar Book》을 읽는 길이 우리나라에도 이바지하리라 느꼈다. 다섯째, ‘강연·여행’을 바탕으로 ‘하루 한나절(4시간) 일하기’는 너무 허울스럽더라.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라면 ‘온하루(24시간) 일하기’이다. 아이를 안 낳고서 둘이서 ‘강연 수입’만으로도 넉넉하다면, 두 사람처럼 땅도 널찍하게 장만하고, 쇳덩이를 굴리면서 여기저기 누빌 테지. 그러나 ‘강연 수입’이 없으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볼 사람한테는 아주 머나먼 소리일 수밖에 없다.


《조화로운 삶》은 나쁜책일 수 없다. 날마다 알맞게 일하면서 둘이 즐겁게 어우러지는 길을 부드럽게 들려준다. 아이를 안 낳겠다면, 또 앞으로 이 푸른별에서 아이가 더는 안 태어나도 된다고 여긴다면,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여러모로 돌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짝을 맺어서 아이를 낳는 길을 가지 않더라도 이웃집 아이를 사랑하려는 삶이라면, ‘우리 집 아이’를 넘어서 ‘온누리 모든 아이’를 헤아리고 품고 돌아보면서 사랑하는 길을 새롭게 짓고 싶은 살림이라면, 《조화로운 삶》은 퍽 심심할 뿐 아니라, 살갗으로 안 와닿는 줄거리라고 느낄 만하다.


2000년에 처음 읽은 이 책을 2024년에 모처럼 되읽었다. 스물네 해 만에 되읽었어도 두 사람이 걸은 길은 우리나라하고 안 맞아도 한참 안 맞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난하거나 수수한 사람’으로서도 넘볼 수 없는 ‘잘난(부자)’ 길이로구나. 잘난 길이 나쁠 일이란 없지만, 잘난 길이 ‘아름답다’거나 ‘어울림(조화)’이라고 덮어씌우려 한다면, 하나도 안 맞으리라 본다.


맨손과 맨몸으로, 쇳덩이(자동차) 없이, 땅을 장만할 밑돈이 없는 누구한테나, 이 삶을 어떻게 짓고 이 살림을 어떻게 일구고 이 사랑을 어떻게 펼 적에 스스로 빛나는 사람으로 설 만한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는 마음일 때라야, 비로소 ‘아름다움’에 ‘어울림’일 테지.


ㅅㄴㄹ


#LivingTheGoodLife #HelenNearing #ScottNearing


미국은 정해진 대로 파국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면 그만이었다

→ 미국은 그대로 무너지라고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 미국은 그저 사라지라고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5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 골칫거리를 풀려면

→ 근심을 씻으려면

5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를 품고 있었다

→ 서울을 떠날 때 세 가지를 내다보았다

→ 큰고장을 떠날 때 세 가지를 뜻하였다

6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도 농사일을 만족스럽게 해냈다

→ 죽음거름을 안 쓰고도 논밭을 잘 지었다

→ 죽음재 없이도 땅을 건하게 일구었다

7쪽


우리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 우리는 삶을 다독이지 못했다

→ 우리는 삶을 바꾸지 못했다

→ 우리는 삶을 풀어내지 못했다

8


용기를 내서 우리처럼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면 좋겠다

→ 기운을 내서 우리처럼 새길을 나서기를 빈다

→ 우리처럼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 우리처럼 꿋꿋이 해보기를 바란다

9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은 게 아닐까

→ 새롭게 나서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지 않았나

→ 새롭게 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13


시골 일은 내 허리를 휘게 만드는 또 다른 중노동이 되지 않을까

→ 시골일로 허리가 휘지 않을까

→ 시골일을 하다가 허리가 휘지 않을까

13


우리의 바람은 필요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생산하는 것이고

→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지어서 쓰기를 바랐고

→ 우리는 되도록 손수짓기를 바랐고

35


두 번째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 둘째는 아마 이렇게 물어본다

→ 둘째로 이렇게들 묻는다

54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웃 사람들 몇몇과 별 소득도 없는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 우리는 이 때문에 여러 이웃하고 덧없이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 우리는 이 일을 놓고서 여러 이웃하고 애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55


흐르는 물을 발견하고 나자 넘치는 물을 지하실 하수구로 내보내는 문제에 부딪쳤다

→ 흐르는 물을 찾고 나서는, 넘치는 물을 수챗구멍으로 내보내야 했다

76


돌에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다

→ 이렇게 돌을 아끼는 사람이 또 있다

→ 이렇게 돌을 살피는 사람이 또 있다

84


숲 속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 더 많은 양식이 필요해지자

→ 숲밭을 찾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 먹을거리도 늘려야 하기에

→ 숲밭을 찾아오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 밥살림이 모자라자

98


땅이 웬만큼 기울어져 있으면 우리는 계단식 밭을 만들었다

→ 좀 기운 땅이면 디딤밭을 일구었다

→ 퍽 기운 땅이면 다락밭을 지었다

99


화학 물질을 써서 밀가루를 표백했으며

→ 죽음재를 써서 밀가루가 하얗고

128


우리가 제분에 대해 꽤 자세하게 설명한 데는 까닭이 있다

→ 가루내기를 꽤 낱낱이 들려주는 까닭이 있다

→ 빻음질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까닭이 있다

128


수입이 적은 집의 생활비에서 먹을 거리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주거비인데

→ 벌이가 적은 살림돈에서 먹을거리 다음으로 집값이 차지하는데

157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풀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 이야기를 하며 풀 수 있다고 여겼다

→ 이야기로 풀 수 있다고 보았다

162


서로 돕는 전통을 세우려는 우리 노력이 성공했다면, 주민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 마을에 중요한 구실을 했을 것이다

→ 서로돕기가 자리를 잡으면 마을이웃은 두레를 짠다

→ 서로돕는 살림이 자리잡으면 마을사람은 품앗이를 한다

→ 서로도울 줄 알면 마을에서는 울력을 한다

178


우리가 시골을 선택했듯이, 우리는 지금도 도시보다 시골에서 사는 것이 사람 하나하나에게나 집단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시골로 갔듯이, 우리는 오늘도 서울보다 시골에서 살아야, 한 사람이며 모두한테 더 낫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시골에서 살듯이, 큰고장보다 시골에서 살아야, 한 사람한테나 모두한테나 더 낫다고 생각한다

20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악산 일기 - 산의 시간을 그리다
김근희.이담 지음 / 궁리 / 2022년 5월
평점 :
절판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24.

까칠읽기 27


《설악산 일기》

 김근희·이담

 궁리

 2022.5.10.



부산으로 일하러 온 길에 들른 두 군데 마을책집에 《설악산 일기》(김근희·이담, 궁리, 2022)가 있다. 두툼하고 무겁고 38000원 값이 붙은 이 책을 살까 하고 집어서 편다. 고개를 한참 갸우뚱한다. 두 곳에서 읽다가 내려놓았고, 왜 이렇게 아쉬운지 돌아본다.


풀과 꽃과 나무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그릴 수 있다. 요새는 찰칵찰칵 찍고 나서 그림칸(화실)에서 꼼꼼하게 빛깔을 덧입혀 그리는 분이 많은 줄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려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풀을 본 그곳에 앉아서 풀을 그리면 될 텐데. 꽃을 만난 이곳에 서서 꽃을 그리면 되는데.


나무 곁에 선 자리에서 나무를 쓰다듬고 안다가 살그머니 타고 놀면 된다. 그림을 그리기 앞서 나무하고 사귈 노릇이다. 나무는 저랑 볼을 맞대고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이웃을 기다린다. 나무는 꾼(전문가)을 바라지 않는다. 나무는 꾼(화가·예술가·작가)이 싫다. 나무는 어린이가 반갑다. 나무는 어린이 곁에서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그립다.


풀꽃나무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푸른뜰(식물원)에 가서도 그릴 수 있다. 풀꽃나무는 누구나 “우리 집 꽃밭”에서도 그릴 수 있다. 이 책은 《설악산 일기》라고 하는데, 풀도 꽃도 나무도 “설악산 어느 켠에 깃들어서 여러 동무풀과 동무꽃과 동무나무 사이에서 활짝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숨결”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그릴 바라면 굳이 설악산을 오르내리면서 땀을 뺄 까닭이 있을까?


더구나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들다”고 할 만큼 고단하게 멧길을 오르내려야 할 까닭이 없다. 힘들면 쉬고, 힘들면 그만 오르고, 힘들면 그만두어야 한다. 억지를 쓰려니 엉망이 된다. 어거지를 부리니 엉뚱하게 샛길로 빠진다. 예술이나 창작이나 문화나 운동을 해야 하지 않는다.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펼 일이다.


어린이가 어떻게 그림을 누리거나 즐기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린이는 늘 풀이랑 동무하면서 풀 곁에서 그림을 슥슥 빚는다. 어린이는 먼발치에서 사진을 보고서 그림으로 옮기지 않는다. 어린이는 온마음으로 사랑을 담은 손길을 놀려서 꽃과 나무를 그림으로 담는다. 어린이는 도감도 예술품도 작품도 “안 만든”다.


적잖은 도감과 예술품과 작품은 ‘죽은그림’이라고 느낀다. 사랑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면 숨빛이 죽는다. 사랑을 담으려 할 적에는 투박하건 수수하건 언제나 반짝이면서 아름다워서 ‘그림’이다. 꿈을 그리듯 마음으로 다가서야 비로소 ‘그림’이다.


ㅅㄴㄹ


돌 틈에 서 있는 풀들이 낄낄대는 것 같다.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드니?’

→ 돌틈에서 풀이 낄낄대는 듯하다.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드니?’

→ 돌틈에서 자라는 풀이 낄낄대네.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드니?’

21쪽


산속에 들어와 보니, 인간은 풀보다 약한 존재 같다

→ 멧골에 들어와 보니, 사람은 풀보다 여린 듯하다

→ 멧숲에 깃드니, 사람은 풀보다 여리구나

21쪽


잎의 넓이가 좁아서 알아보기 쉽다

→ 잎이 좁아서 알아보기 쉽다

29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잠자리 떼들이 있었다

→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에 잠자리떼가 끝없다

→ 빽빽한 숲에 잠자리떼가 엄청나다

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의 언어
김겨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20.

까칠읽기 25


《겨울의 언어》

 김겨울

 웅진지식하우스

 2023.11.10.



《겨울의 언어》(김겨울, 웅진지식하우스, 2023)를 어느 〈알라딘 중고샵〉에 갔다가 만났다. 한켠에 수북히 쌓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이 어떻게 새책집 아닌 헌책집(중고샵) 한켠에 무더기로 쌓일 수 있는지 아리송한데, 이 책 곁에는 또다른 날개책(베스트셀러)이 나란히 수북하다. 얼핏 보아도,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읽어 보아도, 틀림없이 새책 맞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이렇게 무더기로 쌓아서 누가 읽거나 사들이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 어느 길을 거쳐서 날개책이 새것으로 〈알라딘 중고샵〉 한켠에 잔뜩 들어와서 쌓일 수 있을까?


쇳덩이(자가용) 없이 걸어서 여러 고장을 마실하는 뚜벅이한테는 큰고장에 곧잘 연 〈알라딘 중고샵〉이 쉼터이다. 이곳에 들러서 손전화에 밥을 먹이고, 무릎셈틀을 켜서 마감글을 띄우기도 하고, 갓 나온 책이건 여러 해 묵은 책이건 둘러보다가 장만하기도 하고, 그냥 서서읽기를 하다가 얌전히 제자리에 꽂기도 한다.


이미 손을 거친 책이기에 헌책이요 손길책일 텐데, 아직 손을 안 거친 말끔한 책이라면 알림책(보도자료)일까? 그러나 알림책도 아니다. 다만, 궁금하게 여기지는 말자. 그저 고맙게 ‘따끈책’을 느긋이 앉아서 읽자.


한참 읽고서 덮는다. 앉아서 다 읽었으니 굳이 안 사기로 한다. 글쓴이는 허우적길을 걸었다고 밝히는 듯싶지만, 사람마다 허우적질이 다 다르기는 할 테지만, 애써 허우적날이라고 이름을 붙이는구나 싶은, 그냥그냥 보낸 하루에 여러모로 꾸밈말을 보태었다고 느낀다. 예쁘게 보이려고 꾸미는 글이 아닌, 말 그대로 허우적허우적 덤범덤벙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지고 울고, 이러다가 다시 일어선 하루를 수수하게 털어놓는 글을 썼다면, 기꺼이 온돈을 치르고 샀으리라.


요새는 시골에서조차 마늘밭이나 취밭에서 일하는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얼굴을 곱게 물들이더라. 마늘밭이나 취밭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일순이(여성노동자)를 보기는 매우 어렵다. 아니, 난 아직 못 봤다. 2011년부터 전남 고흥에서 사는 동안, 젊은 시골순이를 여태 못 봤다. 거의 베트남이나 필리핀 젊은순이인데, 하나같이 곱게 꽃가루를 바르고서, 챙이 긴 갓에 수건을 잔뜩 두르고서 일한다.


나는 쇳덩이를 안 몰기에, 늘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리거나, 시골버스를 탄다. 시골버스를 타는 젊은돌이도 젊은순이도 아예 없다. 서울이나 큰고장이라면 좀 다르겠지. 큰고장에서는 쇳덩이를 안 몰더라도 2∼5분마다 버스나 전철이 다니잖은가. 시골에서는 으레 2∼3시간을 기다리고서 버스를 겨우 탄다. 그러니까 2∼3시간을 기다리느니 그냥 걸어가는 쪽이 한결 빠르다고 여길 수 있다.


허우적대는 삶이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적 허둥지둥 헤매는 삶을 거치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하루일 뿐이다. 멋스러이 글을 꾸미려고 할수록 오히려 글멋이 없다. 맛깔나게 글을 만들려고 할수록 외려 글맛이 없다. 겨울빛이 없어 보이는 겨울글은 밍밍했다.


ㅅㄴㄹ


겨울의 언어는 겨울을 부르는 언어일까

→ 겨울말은 겨울을 찾는 말일까

→ 겨울말은 겨울을 끌어당길까

6


이전까지의 책에서 나는 매번 나의 삶과 글을 도구로 삼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 이제까지 낸 책으로 늘 내 삶과 글을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7


그것이 책을 쓰는 저자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

→ 책을 쓸 적에는 이만큼 해야 한다고 보았다

7


명시적이지는 않아도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메시지가 있기를 바랐고

→ 뚜렷하지는 않아도 한 가지 이야기가 책에 흐르기를 바랐고

→ 환하지는 않아도 한 가지 줄거리를 책에 담기를 바랐고

7


눈 위로 흐른 얼음물이

→ 눈에 흐른 얼음물이

13


그럼에도 겨울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모순된 성정이다

→ 그런데도 겨울을 반기면 엇갈린 듯하다

→ 그런데도 겨울을 즐기면 어긋난 듯하다

15


겨울과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 겨울과 함께살기란 이렇다

→ 겨울하고는 이렇게 함께산다

16


과년한 김겨울은 취업도 결혼도 거부한 채 혼자서 뭘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 무르익은 김겨울은 일도 짝짓기도 등진 채 혼자서 뭘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린다

→ 나이가 찬 김겨울은 일도 짝맺기도 안 하고 혼자 뭘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린다

19


허우적의 역사는 창피할 정도로 누적되었다

→ 허우적댄 나날은 창피할 만큼 쌓였다

→ 허우적거린 날은 창피하도록 늘었다

20


이따금씩 시집을 선물 받아 읽고

→ 이따금 노래책을 받아 읽고

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침몰 7
코마츠 사쿄 지음, 잇시키 토키히코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까칠읽기 21


《일본침몰 7》

 코마츠 사쿄 글

 잇시키 토키히코 그림

 오경화 옮김

 학산문화사

 2007.10.25.



《일본침몰》을 읽은 지 한참 지났다. 불벼락을 맞은 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웅성거리면서 미치거나 날뛰거나 넋나가는지를 밝히면서, 제자리를 다독이고 다스리면서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터뜨리는가를 나란히 들려주는 얼거리라고 느낀다.


불벼락을 맞을 적에 나라(정부)가 어떤 민낯인지를 여러모로 보여주는데, 불벼락을 안 맞은 때에도 나라는 이와 비슷하게 굴러간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 민낯을 모르기도 하고, 보기도 쉽잖고, 보더라도 시큰둥하거나, 보거나 알았어도 하루하루 바빠서 지나치곤 한다.


일본사람이 그린 일본살이를 담은 《일본침몰》일 텐데, 벼락판이건 ‘안 벼락판’이건 다를 일은 없다. 여느 때에 지내는 하루가 벼락판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여느 때에 무엇을 그리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 벼락을 일으키거나 사랑을 펴게 마련이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여느 때부터 늘 불수렁이다. 스스로 꿈을 사랑으로 그리는 길로 보금자리를 일군다면, 언제나 꽃길이고 하늘길이고 숲길이고 사랑길이다. 이 그림꽃은 무슨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까? 불벼락이 칠 적에 이렇게 앞뒤가 바뀐다고 말하고 싶을는지 모르지만, 불벼락이 아직 없더라도 “무너질 나라”는 이미 무너져 가고, “피어날 보금자리”는 천천히 피어난다.


ㅅㄴㄹ


“분하지만 다른 남자의 얘기로라도, 네 웃는 낯을 보고 싶었어. 온 일본 천지가 경직된 얼굴로 가득 찼으니.” (20쪽)


“당의 중요회합을, 꼭 이런 지방도시의 비좁은 호텔 방에서 해야 됐나?” (21쪽)


‘어쩌자고 혼자 살아남은 거야, 난.’ (105쪽)


“즉, 그것은 핵폭탄의 소유와 그것의 실제 사용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137쪽)


#日本沈? (1973) (2006∼2008)

#小松左京 #一色登希彦


+


《일본침몰 7》(코마츠 사쿄·잇시키 토키히코/오경화 옮김, 학산문화사, 2007)


공복(公僕)으로선 해선 안 되는

→ 나라일꾼으로선 해선 안 되는

→ 벼슬꾼으로선 해선 안 되는

1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