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녀고양이님의 "내가 한겨레 신문과 시사인을 계속 구독해야 하는 이유"

저는 방송뉴스를 안 본 지... 올해(2012)로 딱 20년 되었네요 @.@

 

한겨레나 시사인은 '뉴스 매체'로서는 남다른 대목이 틀림없이 있기는 한데,
이들 매체도 '한계와 단점'이 있어요.

 

보실 때에는 즐거이 보시되,
보시면서도 '이 한계와 단점'을 잘 헤아리시기를 빌어요.
그래야, 온누리를 넓고 깊으며 '따스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어요.

 

저는 한겨레신문마저 끊고는
이제 아무 신문도 읽지 않은 지 어느덧 올해(2012년)로 아홉 해가 되었군요... @.@

 

2003년 가을부터 시골에서 살며 일을 했는데,
그무렵부터 '아, 시골에서 살고 보니 한겨레신문조차 시골삶하고 동떨어졌네' 하고
느꼈어요.

 

아무쪼록, 며칠 남은 2012년 어여쁜 마음으로 누리시기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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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양철나무꾼님의 "어떤날은 oneday일까, someday일까?"

 

'어떤' 농사꾼은 당신이 모든 일을 다했다고 우쭐해 할는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가는 시골마을 이웃 어르신들한테서는 그런 모습을
조금도 느끼지 않아요.

 

황대권 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요.
어차피 이 책은 도시사람이 읽을 테니,
도시사람들한테 무언가 일깨우려고 그렇게 '빗대어 보는 이야기'로 썼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농사꾼은 '모든 사랑'을 들여서 흙을 만집니다.
스스로 모든 사랑을 들여 흙을 만져 얻은 곡식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활짝 웃는 일이란,
참 아름답다고 느껴요.

 

아름다운 웃음은 사랑이요,
이 사랑이 있어 곡식도 열매도 한껏 무르익을 수 있구나 싶어요.
사랑받는 곡식은 더 잘 자라고,
사랑 못 받는 곡식은 알곡이 작기 마련이에요.

 

농사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보조자'가 아니라,
농사꾼은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아닌 '사랑을 온통 바치는'
아름다운 '길동무'라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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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양철나무꾼님의 "내 사랑의 주체는 '나'"

 

저는 신문을 끊은 지 열 해가 넘었고,

방송을 끊은 지 스무 해가 넘었어요.

 

그저 들여다볼 적에는 저 스스로 길들여지지만,

숲을 바라보며 살아가니

늘 숲내음을 사랑할 말이 샘솟더라구요.

 

양철나무꾼 마음을 빛낼 좋은 모습을 들여다보시기를 빌어요.

'책'에서도,

이런저런 자잘한 책보다는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만한' 알맹이들을

기쁘게 찾아서 마음을 빛내는 말을 누려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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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2-02 20:14   좋아요 0 | URL
ㅎㅎ 전 신문을 안봐도 되지만 TV없인 못살겠더라구요^^;;;

숲노래 2012-12-02 21:39   좋아요 0 | URL
저런... 그렇군요 ㅠ.ㅜ
 
 전출처 : 마태우스님의 "진보의 안티공지영, 어떻게 봐야 할까?"

 

이제 댓글 달 일은 없을 듯합니다.

 

취향이 본질보다 앞선다고

마태우스 님 스스로 밝히시니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스스로 취향을 존중한다고 말하려면,

'사람들 삶에서 본질이 되는 대목'도 존중해야 할 텐데,

이웃(본질)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을까 저로서는 조금도 모르겠습니다.

 

쌍용 노동자한테 4억을 기부한 유명작가가

쌍용 노동자와 함께 여러 해를 싸우고 40만 원을 기부한 '무명(?)작가'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이야기하고

마태우스 님 이야기는 한줄기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비유입니다)

 

무명작가가 '쌍용 현장을 스스로 떠나는' 게 아니라,

'유명작가가 쌍용에 큰돈을 기부하고 나서는

유명작가와 무명작가가 한 곳에 함께 있는 일을

유명작가 측근과 돈을 받은 단체에서 거북하게 여겨'서

무명작가는 이제 그 '현장에 더는 머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본질입니다.

 

마태우스 님 취향을 아무리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본질하고 어긋난 말을 자꾸 이러한 글에 퍼뜨린다면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무너뜨리는 셈이 될 뿐입니다.

 

해고노동자한테는 '돈'만 주면 도와주는 일이 될까요.

 

그럼, 부디 평화롭게 살아가며 글을 쓰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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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님의 "진보의 안티공지영, 어떻게 봐야 할까?"

 

 

공지영 작가가 '진보 편'인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공지영 작가 스스로 '나는 진보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 쪽'이 될 수는 없어요. 스스로 삶이 진보이면 누가 금을 긋지 않아도 진보일 테니까요.

 

하종강 님은 언제나 '노동운동'만 하고, 노동운동을 글로 쓸 때에도 '인터뷰 받는 사람'과 하나하나 주고받고 살피면서 책이나 기사로 내놓습니다. '원문 왜곡이나 훼손'을 하지 않아요.

 

마태우스 님도 본질하고는 다른 쪽을 바라보시는 듯한데, 어느 쪽을 바라보든 저마다 자유예요. 그런데 이번에 <의자놀이>라는 책에서 하종강 님을 비롯해 노동 쪽 사람들이 공지영 작가를 비판하는 까닭은 바로 '원문 왜곡과 훼손'이에요.

 

책을 많이 팔아서 몇 억에 이르는 돈을 기부해 준다 해서 '노동운동'이 이루어질까요? 그러면 다른 사업장과 파업현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어떤 사람을 얼마나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노동운동을 돕는다든지, 이를테면 농민운동을 돕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시골 농사꾼하고 직거래로 유기농 곡식을 사 주면, '도시사람으로서 농민운동을 함께 하는' 셈이 될까요? 유기농 곡식이기에 못생기거나 자그맣거나 벌레먹은 것도 '제값을 치르며 기꺼이 맛나게' 먹을 뿐 아니라, 틈틈이 '농활'을 가서 농사짓기와 거름내기를 비롯한 모든 시골살이를 하나하나 몸으로 겪으면서 '농민운동'이나 '농민돕기'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쌍용 문제는 공지영 작가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 기록했어요. '공지영 작가가 선정'된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작가가 이것을 쓰자'고 했을 뿐이에요.

 

출판사와 작가가 서로 '이것을 글로 쓰자'고 한 대목을 높이 사는 일이란 개인 자유이지만, '쌍용 노동자'나 '노동운동 기록하던 사람'들은 공지영 작가더러 이 이야기를 써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마태우스 님이 궁금해 하는 것은 마태우스 님 스스로 찾아서 풀면 돼요. 그러나, 본질과 얽힌 대목은 옳고 바르게 바라볼 줄 안다면, 스스로 궁금함을 풀어야 한다고 느껴요. 본질을 옳고 바르게 바라보지 않고서 어떤 궁금함을 풀 수 있을까요?

 

개인 취향으로 공지영 작가를 좋아하든 말든, 본질과 사실과 거짓을 옳고 바르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어떠한 문제도 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진보 쪽에 있다는 사람들이 공지영 작가를 달가이 여기지 않는 수수께끼' 또한 풀 길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102160558
(이 글을 읽어 보시면 '참과 거짓'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짚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17171522
(덧붙여 이러한 글도 있으니 함께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본질'을 읽지 않으시는 분하고는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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