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amara7님의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에 대한 의문점들 "

도시 문명이 시골살이를 누르면서 이루어지는 오늘날 모습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국말'은 '한자말(중국 한자말 + 일본 한자말)'과 '서양말(영어를 비롯한 유럽말)'에 짓눌려서 '죽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짓눌려 앓는 말을 '살리려'고 이러한 글을 썼어요. '숲에서 살려낸'이란 시골(자연)에서 삶을 살리듯이 말을 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지적한다면 저로서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고맙게 여깁니다. 그런데, 책을 쓴 듯을 살피지 않고 왜곡한다면 굳이 사과를 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평범한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가장 밑바탕(기본)이 될 낱말을 제대로 살펴서 쓰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밑바탕이 될 말부터 제대로 깨닫고 살피면서, 이러한 말에서 삶과 넋과 이야기를 살리는 한국말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껴요. 이를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말이 살아날 길이 없겠지요.

"무더위에 갑작스레 찾아드는 소나기는 목이 마른 나무 한 그루를 싱그럽게 적신다"에서 '한 그루'가 어찌 숫자로 '하나'만 가리키겠습니까? 그러면 백만 그루나 천만 그루처럼 적어야 할까요? 나무를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자는 뜻에서 이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글을 굳이 꼬집으려고 들면, 독자가 내놓는 비판이 얼마나 비판다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이 마른 나무 두 그루"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문장은 일부러 이렇게 쓰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요즘 사람들은 "한 그루의 나무"처럼 번역투를 함부로 쓰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쓴 글(문장)은, 요즘 사람들이 잘못 쓰는 문장을 '애써 비판할 까닭 없이' 예부터 바르게 쓰던 말투를 살려서 넣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늘빛은 언제나 '파랗다'가 기본입니다. 바다빛도 언제나 '파랗다'가 기본입니다. 바다에서 바닷말이 많이 불어날 적에는 '푸른 빛깔' 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바다에서는 '녹조'와 '적조'가 있어요. 이때에는 바다빛이 다르지요.

그러면, 여느 때와 다른 바다빛은 그때마다 그 모습에 걸맞게 가리켜야 올바릅니다. 기본이 되는 빛을 무시하면서 아무렇게나 써도 되지 않습니다. 하늘빛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 되는 빛을 제대로 말하면서, 다른 때에는 다른 빛이 나기도 한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녹색'과 '초록'이란 '푸르다'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녹색'은 일본 한자말이고, '초록'은 중국 한자말입니다. '푸른하늘'은 하늘빛을 '녹색이나 초록'으로 가리키는 꼴이기에, 이런 말투가 알맞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보리가 파랗게 올라온다'라는 말을 시골에서 쓰기도 합니다. '푸른' 싹인데 '파랗다'라고 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싱그럽다'는 뜻에서 '푸르다'를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말투에서 '파랗다'와 '푸르다'를 잘못 섞어서 쓰는 일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푸르다'는 "풀 빛깔"을 가리키는 밑말이니, 하늘빛에서는 '파란하늘'을 기본으로 올바르게 쓰면서, '푸르게 물드는 하늘'이라든지 '푸르게 눈부신 하늘'처럼 쓰면 '푸르다'도 어느 모로 쓸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바지저고리'가 '시골뜨기'나 '얼뜨기'를 담는다는 말은 참으로 잘못된 편견입니다. 이런 편견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국주의자가 한겨레를 짓밟으면서 함부로 쓰던 말입니다. 이 말뿌리가 번져서, 도시공업사회에서 시골사람은 얕보는 말투로 더 퍼졌는데, 이런 잘못 퍼진 말과 문화를 바로잡는 일이 '한국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로 '한복'을 가리켰어요. '한복'은 문화학자가 지은 한자말입니다. 한겨레가 쓰던 말이 아닙니다. '한식'와 '한옥' 또한 한자가 지은 말입니다.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가르쳐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이런 말을 가르치면서,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을 안 가르치거나 못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한국말을 배울 수 없어요. 게다가, 잘못 쓰는 말은 바로잡아야지요. 더욱이 '시골사람'을 얕잡듯이 쓰는 말투는 오늘날에서는 거의 뜻이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차별부터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오늘과 오늘이 얼크러져 모레와 글피가 된다"란 '하루(오늘)와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틀(모레)이 되고 사흘(글피)이 된다는 말입니다. 조금만 헤아리면 잘 알 수 있습니다.

+

'푸성귀'와 '남새'와 '나물'을 여러모로 섞어서 쓰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섞어서 쓴다고 하더라도, 헷갈리거나 뒤죽박죽으로 썼다면 죄송합니다. 알맞게 가다듬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지적해 주시는 말씀은 언제나 고맙습니다.

궁금하거나 더 지적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제 알라딘서재에 물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분이 쓴 글에 댓글을 달면 제가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 책에 어느 분이 서평을 쓰셨기에 인사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데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느니 하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근차근 읽으면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니, 굳이 붙임말을 적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을 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비의딸님의 "이상하지 않은 나라를 꿈꾸는 헌책방"

알라딘 중고샵은 '중고샵'이나 '중고서점'이지 '헌책방'이 아닙니다.

이분이 하는 곳도 '복합문화공간'이나 다른 차원 책방이지 '헌책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헌책방은 '헌책을 파는 곳'이 헌책방이니까요.

 

예스24나 다른 인터넷책방에서 '중고 서적'을 판대서

이곳이 '헌책방'이 되지 않아요.

여러 문화활동을 하면서 '중고 책'을 판대서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헌책을 파는 가게로 있어야 헌책방이고,

헌책방으로 있으면서 문화활동을 할 수도 있을 뿐입니다.

 

'전통적인 헌책방'이란 따로 없습니다.

'전통적인 옷가게'나 '전통적인 극장'이 따로 없고,

'전통적인 논'이나 '전통적인 시골'이 따로 있지도 않아요.

 

헌책방은 헌책방일 뿐이고, '복합문화공간'은 그저 '복합문화공간'일 뿐이에요.

'헌책방'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기에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쓰는 일은 자유이지만,

이 자유를 내세워서,

'헌책방'을 하는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ransient-guest 2014-02-12 03:55   좋아요 0 | URL
제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전통시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숲노래 2014-02-12 19:3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통'시장이란 없어요.
그냥 '시장'일 뿐이지요.
더군다나 '재래시장'이라는 말까지 쓰는데,
'재래'라는 말을 함부로 붙이는...
이런 이름을 어떻게 쓸 생각을 하는지 참 알쏭달쏭하기도 합니다...

transient-guest 2014-02-14 04:03   좋아요 0 | URL
어릴 때 도화동 중앙극장 근처에 살아서 제일시장으로 심부름을 참 많이도 다녔지요. 지금도 저는 시장이 대형마트보다 더 좋아요.

숲노래 2014-02-14 06:09   좋아요 0 | URL
중앙극장은 사라지고 이제 없지만
제일시장은 그대로 있어요.

저도 아주 어릴 적에 도화1동에서 태어나 살았으니
아마 제일시장에 어머니 품에 안기거나
어머니 손을 붙잡고 시장마실을 다니지 않았으랴 싶어요 ^^
 
 전출처 : 양철나무꾼님의 "비 내리는 봄밤에"

번역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또 저처럼 한국말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헌책방에서 박형규 님 '여러 가지 번역책'을
일부러 하나하나 사서
견주어 읽기도 해요.

 

박형규 님이 번역한 톨스토이는
'시대에 따라' 말투가 조금씩 다르답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책이 나온 때에 따라서
말투가 조금씩 바뀌곤 해요.

스스로 꾸준하게 가다듬고 손질하시거든요.

 

늘 스스로 번역을 새로 하고
당신 스스로 한국말을 날마다 새롭게 배우시거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하루살이님의 "4월 8일-게으른 농부는 꿈이련가"

 

아무쪼록 무엇이든 즐겁게 배우시기를 빌어요.
즐겁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답니다.

 

저는 귀농학교나 귀촌자료 같은 것 하나도 본 적 없지만,
네 식구 즐겁게 시골(전남 고흥)에서 씩씩하게 살아가요.

 

'게으른'이라 말씀하시지만,
시골에서는 '게으름'이 아니라,
'내 삶에 맞게'일 뿐이에요.

 

마을 다른 어르신들 시간 흐름에 맞출 수 없는
'내 삶'이 있거든요.

 

시골에서 '게으르게' 살겠다는 뜻이 아니라,
시골에서 귀여운 딸아이랑 '즐겁게' 살겠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그러니까,
천천히 즐겁게 아름답게,
이렇게 세 가지라고 느껴요,

덧붙이자면,
사랑스럽게 해맑게 씩씩하게,
이런 게 있겠지요.

 

다른 귀농일기에 '야생화' 사진 하나 있던데,
그 풀꽃은 야생화 아닌 그냥 풀꽃이고,
'봄나물'이랍니다.

꽃송이까지 다 먹어도 돼요.
나중에 한 번 냠냠 먹어 보셔요.
꽃송이와 줄기와 잎사귀가
내 몸으로 스며들며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시골에 땅만 있으면,
또 땅이 없어도,
봄부터 가을까지 안 굶어요 ^^;;;
들풀(들나물)만 먹어도
반찬 걱정 할 일이 없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감은빛님의 "채식의 틀을 넘어 지구를 보자!"

 

'현재 농업 방식으로 전 세계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는가 있는가'는 딱히 할 말이 없는 대목이곤 해요. 왜냐하면, '현재 농업 방식'보다 큰 문제라 할 '현재 도시 물질문명 방식' 사회에서는 사람들 누구나 '과식'을 너무 끔찍하게 하면서 '음식물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내놓거든요.

 

저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느끼지만, 시골사람 가운데 손수 논밭 일구는 사람치고 '밥쓰레기' 나오는 집은 아무 데도 없어요. 밥 먹고 남은 찌끄레기 조금 있으면, 소를 주거나 밭에 뿌려 거름으로 삼아요. 그나마, 할머니 할아버지 사는 집에는 음식물쓰레기가 나올 일조차 없어요. 저희 집도 음식물쓰레기 나올 일이 참 없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현대 사회처럼, 도시 중심으로 흐를 뿐 아니라, 도시사람 스스로 과식과 음식물쓰레기 철철 넘치는 얼거리를 그대로 두면, 이러한 도시사람 먹여살릴 농업은 이루어지지 못해서, 유전자조작 곡식과 비료 많이 쓰는 농업이 될밖에 없어요.

 

그러나, 도시 문명 얼거리를 깨고, 사람들 스스로 텃밭을 일구면, '참말 누구라도 소식(적게 먹기)'이 되어요. 사람들이 고기집에 가서 삼겹살 먹으며 풀(상추) 많이 먹는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 밭에 씨앗 뿌려 풀을 얻으면, 또는 그냥 저절로 자라는 풀을 뜯어서 먹으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더 못 먹지요.

 

"채식 신화"를 쓴 분은, 무엇보다 당신 몸 구조와 생체리듬을 똑똑히 밝혀서, 글쓴이 당신한테는 어떤 밥문화와 밥흐름이 알맞는가를 제대로 이야기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대로 알맞고 아름다운 길 걷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올바르고, 이 책이 한국에서도 올바르며 슬기롭게 읽히리라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