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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길손빛 (2022.8.26.)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여름이 무르익는 새벽에 마을 앞에서 택시를 타고서 녹동나루로 갑니다. 오늘은 작은아이하고 제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제주 〈노란우산〉에서 8월 동안 ‘노래그림잔치(시화전)’를 열면서 이틀(27∼28) 동안 우리말·노래꽃·시골빛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를 꾸립니다.


  환한 아침나절에 배를 네 시간 달리는데, 손님칸(객실)에 불을 켜 놓는군요. 밝을 적에는 햇빛을 맞아들이면 즐거울 텐데요. 손님칸이 너무 밝고 시끄럽다는 작은아이하고 자주 바깥으로 나가서 바닷바람을 쐽니다. 이제 제주나루에 닿아 시내버스로 갈아탔고, 물결이 철썩이는 바닷가를 걸어서 〈바라나시 책골목〉에 들릅니다. 무더운 날씨라지만, 이 더위에는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이 몸을 북돋울 만합니다.


  집에서건 바깥에서건, 아이라는 마음빛을 품고서 살아가는 어른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시골길이건 서울길(번화가)이건 언제나 즐겁게 맞이하면서 다독이고 삭이자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아이하고 어깨동무할 살림터요, 우리가 쓸 글은 아이하고 노래하듯 여미고 나눌 생각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작은아이는 배에서 내려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걸어오는 길에 본 제주 모습을 글붓으로 슥슥 그립니다. 저는 배를 타고 오면서 떠올린 이야기를 쪽종이에 열여섯 줄 노래꽃으로 옮겨적습니다.


  우리말 ‘온’은 셈으로 ‘100’입니다. ‘온통·온갖·온마음·온누리’에 깃들어 살아온 이 말씨는 ‘오르다·오롯하다·옹글다·올차다·옳다’에다가 ‘옷’이라는 낱말을 이루는 뿌리인 ‘오’를 함께 씁니다.


  우리말 ‘잘’은 셈으로 ‘10000’입니다. ‘잘하다·잘나다’에 스며 이어온 이 말씨는 ‘자’를 뿌리로 삼으며, ‘자다·자라다’하고 맞물립니다. 셈으로 ‘억’을 가리키는 ‘골’은 ‘골백번’에 남아 잇기도 하지만, ‘골골샅샅·골짜기·멧골’이라든지 ‘골·고을’로도 잇고 ‘골(뇌·두뇌)’하고도 이어요.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텃말(토박이말)을 캐내어 외워야 우리말을 사랑하는 길이지는 않습니다. 늘 쓰는 수수한 말씨에 깃든 뿌리를 가만히 짚으면서 우리 마음을 이루는 바탕에 어떤 숨결과 살림결이 스몄는가를 읽을 줄 알면 즐거울 ‘우리말 살려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 말을 말답게 살리고, 말하기를 하면서 말을 말스럽게 돌보는 실마리를 누구나 헤아리기를 바라요. 투박한 말씨 하나로 말밑뿐 아니라 밑넋을 북돋웁니다. 스스로 삶을 한결 깊고 넓게 사랑하는 길은 ‘쉬운말’에 있습니다.


ㅅㄴㄹ


《나는 누구인가》(라마나 마하리쉬/이호준 옮김, 청하, 1987.4.25.첫/20111.10.13./고침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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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피는 꽃 (2022.8.23.)

― 인천 〈책방 모도〉



  어제 서울·부천에서 이야기꽃을 폈고, 오늘은 인천 배다리에서 이야기꽃을 폅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에 여미는 이야기꽃은 ‘마을꽃 + 숲꽃 + 살림꽃을 여미는 말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드문드문 펴는 수수한 수다꽃입니다.


  저녁까지 말미가 넉넉합니다. 아침에 부천 〈빛나는 친구들〉에 들르고서 천천히 전철을 탑니다. 낮에 인천으로 가는 전철은 햇빛이 가득 들어오면서 호젓합니다. 동인천나루에서 내려 걷습니다. 송현2동은 안골이 꽃골목이고, 화평동에는 ‘박정희 할머니 평안수채화의 집’ 터가 있으며, 안쪽에 ‘함세덕 옛집’이 있습니다. 우리 언니는 송현1동 작은집에서 조용히 살고, 곁에 붙은 송림 1·2동은 오르막에 어깨동무하는 골목집이 호젓하지만 어느새 잿터(아파트 단지)로 바뀝니다.


  푸름이로 살던 1991∼1993년에 화수동·만석동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어요. 오랜 너나들이가 이곳에서 살았거든요. 이제 다 잿빛더미로 바뀌었지만 옛골목을 디딜 적마다 우리가 어떤 놀이를 하고 무슨 수다를 폈는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송현초등학교하고 화도진중학교 사이에 깃든 〈책방 모도〉 앞에 섭니다. 이 포근한 자리를 마을책집으로 알뜰하게 가꾸어 내는 손길을 느끼면서 한참 해바라기를 합니다. 골목집은 서로 햇볕을 나누어요. 해가 흐르는 결에 따라 이 집에도 저 집에도 찬찬히 볕살이 스미면서 도란도란 따사롭습니다.


  마을꽃은 마을사람이 손수 씨앗을 심기에 핍니다. 이러다 작은새가 찾아들면서 꽃씨를 퍼뜨리고, 개미도 살살 오가면서 돌틈에 씨앗을 옮깁니다. 숲꽃은 들숲바다에서 사람하고 이웃으로 지내는 뭇숨결이 이 푸른별에 저마다 씨앗을 심으며 핍니다. 숲이 있기에 밥옷집을 누리고 삶을 가꿔요. 살림꽃은 어른으로서 사랑을 속삭이면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 거듭나면서 마음이랑 온몸으로 피웁니다.


  우리가 저마다 “아, 이 말은 어떤 뿌리일까?” 하고 궁금하게 바라보는 생각이 씨앗처럼 싹트면, 어느 날 문득 “아, 이 말은 아마 그런 뿌리일는지 몰라.” 하는 이야기가 빛줄기처럼 찾아들 날이 있어요. 이곳에 들꽃이 피고 우람나무가 자라면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을 심으면, 어느 날 새랑 개미가 바지런히 씨앗을 물어 날라서 골목빛을 북돋웁니다.


  들꽃 같은 부드러운 말로 만나요. 아이어른은 한마음으로 상냥하게 사귈 만합니다. 숲바람처럼 싱그러운 말로 마주하기를 바라요. 바닷방울처럼 맑은 말로 어울리면서 빗물처럼 시원한 말로 이야기하면, 누구나 별빛처럼 환한 말로 생각을 펴서 글을 여밀 수 있습니다. 햇볕을 품은 말씨로 노래를 부릅니다.


ㅅㄴㄹ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5.10.)

《사랑하는 미움들》(김사월, 놀, 2019.11.13.)

《Little People Big Dream 로자 파크스》(리즈베스 카이저 글·마르타 안텔로 그림/공경희 옮김, 달리, 2019.10.14.첫/2020.5.13.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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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2022.10.18.)

― 서울 〈신고서점〉



  서울 인왕산 곁 마을배움터에서 하루를 가꾸는 푸름이를 만나고서 한두 시간쯤 책을 살필 짬이 납니다. 〈신고서점〉을 찾아갑니다. 느긋이 책빛을 머금고서 광화문으로 옮기려 했는데, 책집에 깃든 지 얼마 안 되어 따르릉 울립니다. 늦은낮에 뵙기로 한 분이 벌써 그쪽에 닿았답니다.


  서둘러 자리를 옮겨야 하지만 5분만 스스로 누리기로 하면서 골마루를 살살 거닙니다. 예전에 이미 읽은 책이지만 “이런 겉그림이었나?” 싶어 집어드니 글님이 조정권(1949∼2017) 님한테 드린 손글씨가 있습니다. 노래책 한 자락에 남은 손글씨를 보고서 다른 노래책도 뒤적이니 여럿에 글님 손글씨가 있군요.


  여러 해 앞서 흙으로 돌아간 조정권 님이 지내던 살림집이라든지 일터 한켠에 쌓였다가 내놓았구나 싶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니 서로 다르게 하루를 살아내고서 이 하루를 다 다른 눈길로 가다듬은 다음 다 다른 손길을 살려서 글을 씁니다. 모든 책은 다르고, 모든 손글씨는 다릅니다. 우리말 ‘손글씨’란 낱말을 쓰는 분이 있지만 영어 ‘캘리그래피’를 쓰는 분이 있는데, ‘이쁜글씨’나 ‘바른글씨’보다 ‘그저 손글씨’를 사랑하는 이웃님이 늘기를 바랍니다.


  잘 쓴 글씨를 따라해야 하지 않아요. 훌륭하다고 여길 만한 글을 베껴쓰기(필사)해야 하지 않아요. 잘 쓴 글씨이건 훌륭한 글이건, 그저 ‘읽고서 새긴 다음 우리 나름대로 삭인 새글씨에 새글로 풀어낼’ 적에 서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말 ‘베끼다·배우다’는 비슷하되 다릅니다. 둘 모두 지켜보고서 따라가는 몸짓을 그리지만, ‘베낄’ 적에는 그냥 머물거나 맴도는 결이요, ‘배울’ 적에는 삭이고 가다듬어 우리 손길이나 몸짓을 살리는 결입니다.


  풀을 죽이려고 뿌리기에 죽임물입니다. 죽임물을 뿌려서 살아날 풀은 없습니다. 이 풀죽임물은 풀뿐 아니라 땅을 죽이고, 땅밑으로 스며들면 냇물이며 샘물까지 죽이고, 나중에는 갯벌하고 바다까지 죽입니다. 이와 달리, 바다에서 피어난 구름이 빗물로 바뀌어 내릴 적에는 들숲을 모두 살리고 먼지를 말끔히 씻어 줍니다. 빗물 바닷물은 살림물입니다.


  풀(잡초)이 보기 싫다면서 죽임물(농약)을 뿌리면 얼핏 반듯하거나 가지런해 보일 테지만, 숨결이 사라집니다. 베껴쓰기(필사)나 예쁜글씨(캘리그래피)는 ‘다 다른 숨결을 죽이려는 농약’이지 싶어요. 어깨동무나 살림짓기로 가기를 바랍니다. 자랑글이 아닌 살림글로 수수하면서 투박하게 오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ㅅㄴㄹ


《샘그림문고 1 김영숙 만화작법》(김영숙, 샘, 1988.5.15.)

《햄버거에 대한 명상》(장정일, 민음사, 1987.3.30.)

《진흙소를 타고》(최승호, 민음사, 1987.4.15.)

《이 강산 녹음 방초》(박종해, 민음사, 1992.3.30.)

《내 무거운 책가방》(교육출판 기획실 엮음, 실천문학사, 1987.4.20.첫/1988.8.30.재판)

《풀빛판화시선 5 노동의 새벽》(박노해, 풀빛, 1984.9.25.)

《먼 바다》(박용래, 창작과비평사, 1984.11.5.첫/1988.7.5.재판)

《白衣從軍》(김성영, 횃불사, 1979.4.15.)

《三中堂文庫 356 뻐꾸기 둥지위를 날아간 사나이 (下)》(켄키지/김진욱 옮김, 삼중당, 1977.9.10.첫/1977.12.20.중판)

《한권의책 21 백범 일지》(김구, 학원사, 1986.7.1.첫/1990.10.31.8벌)

《성남지역실태와 노동운동》(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엮음, 민중사, 1986.7.10.)

《왜 그리스도인인가》(한스 큉/정한교 옮김, 분도출판사, 1982.2.22.첫/1983.4.20.재판)

《한국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장주근 글·이인실 그림, 대한기독교서회, 1974.11.30.

《통일교실》(민성일, 돌베개, 1991.8.1.)

《丸 MARU 8月特大號 421호》(高野 弘 엮음, 潮書房, 1981.8.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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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2022.7.26.)

― 인천 〈나비날다〉



  나부터 날마다 즐겁게 배울 수 있기에, 날마다 새롭게 글 몇 줄 적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나부터 날마다 즐겁게 배울 수 없다면, 날마다 새롭게 글쓰기를 못 할 뿐 아니라, 밥짓기에 옷짓기에 집짓기도 못 하고, 그저 다른 사람 글을 베끼거나 훔칠 뿐이요, 밥옷집도 사다가 쓰는 길이지 싶습니다.


  한자말 ‘필사’는 우리말로 ‘베껴쓰기’입니다. 베끼기는 나쁘지 않되, 베끼다 보면 ‘배움’이 아닌 ‘그대로 따라하기’에 젖어듭니다. 훔침쟁이(표절작가)는 어려서부터 베껴쓰기를 익히 하던 이들입니다. 훌륭하다고 여길 만한 글이 있더라도 ‘베껴쓰기(필사)’가 아닌 ‘배워쓰기(자기 것으로 소화)’를 할 노릇이에요. 훌륭하다고 여기는 글을 읽으면서 느낀 ‘내 삶’을 내 말씨에 마음씨에 글씨에 솜씨로 적어야 비로소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글을 쓰면 됩니다. 글쓰기 길잡이책(이론서·지도서)은 안 읽어야지요. 읽겠다면 글을 읽고, 읽으려면 삶을 읽을 일입니다. 마음을 읽고 해바람비를 읽고, 아이 눈망울을 읽고, 풀꽃나무를 읽고, 풀벌레하고 새를 읽으면 누구나 글빛이 영글어 알뜰살뜰 글님으로 설 만합니다.


  글을 왜 못 쓰느냐 하면, 자꾸 베끼기 때문입니다. 남 눈치를 보니까 글을 못 씁니다. 잘 쓰려 하니까 글이 망가집니다. 널리 팔리기를 바라니 글뿐 아니라 마음이 무너집니다. 글이나 책이 좀 팔리니 콧대가 높아 어느새 마음이 시들어요.


  가랑비를 온몸으로 맞아 보아야 가랑비를 느끼고 배우고 알아서 가랑비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함박비를 온몸으로 누리고 비놀이를 해보아야 함박비를 느끼고 배우고 알아서 함박비 이야기를 씁니다. 사랑이 아닌 사랑타령이 넘치는 글밭입니다. 사랑을 해본 적이 없고,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니, 짝짓기놀음을 하면서 ‘짝짓기’가 마치 ‘사랑’인 줄 잘못 알면서 글만들기(창작)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작’은 안 해야 글쓰기를 이룹니다. ‘비평’도 안 해야 글쓰기를 누려요. 삶짓기를 하면 글은 저절로 태어납니다. 살림짓기를 하면 눈을 저절로 뜹니다. 사랑짓기를 나부터 하기에 ‘창작과 비평’이 아닌 ‘삶·살림·사랑짓기’를 바탕으로 글살림을 스스로 북돋웁니다.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에 느즈막히 깃듭니다. 배다리 마을책집에서 오늘 저녁에 ‘우리말 참뜻풀이 이야기꽃’을 신나게 폈습니다. 말 한 마디에 서린 살림길을 헤아리면서 누구나 말꽃지기로 서는 새빛을 한바탕 펴느라 기운을 다 썼습니다.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책 한 자락을 쥡니다. 오늘밤 읽을 책입니다.


ㅅㄴㄹ


《버티고 있습니다》(신현훈 글, 책과이음, 2022.3.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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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리는 (2022.7.20.)

― 안양 〈뜻밖의 여행〉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버스길을 살핍니다. 서울서 고흥 가는 버스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놀이철인 듯싶습니다. 고흥·안산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하루 하나 있는데, 빈자리가 많군요. 안양을 들러 〈뜻밖의 여행〉에 책마실을 갈 수 있겠습니다.


  여름날 길바닥은 후끈하고 버스나 전철은 서늘합니다. 나무 곁에 서면 시원하지만, 집안에 바람이(에어컨)를 들이는 집이 늘어날 뿐, 마당을 놓고 나무를 심으려는 이웃을 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잿집(아파트)하고 부릉이(자가용)를 치우면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나무 심고 마당 거느리는 집’을 장만할 만해요. 고작 서른·마흔 해조차 버티기 힘든 잿집이 아닌, 두고두고 뿌리내릴 살림집을 헤아리는 마음이 하나둘 늘어야 비로소 이 나라를 뒤엎으리라 생각합니다.


  범계나루에서 내려 걸으려는데, 나오는곳에 따라 나왔으나 아리송합니다. 이 나라 어디나 매한가지인데, 길알림판은 뚜벅이 아닌 부릉이한테 맞추더군요. 어린이는 어쩌라고 이 따위일까요? 이웃손님(외국여행자)도 이 나라 길알림판에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라지기·벼슬꾼·글바치는 으레 안 걷습니다. 걷지 않는 이들은 길알림판을 엉터리로 세우고, 거님길을 허술하게 깔아요.


  책집 〈뜻밖의 여행〉을 드디어 찾아내어 골목으로 들어서려는데 늙수그레 아저씨가 “남자가 치마를 입네? 남자가 왜 치마를 입어?” 하면서 떠듭니다. “여보셔요, 늙은씨, 남을 구경하지 말고 이녁 넋을 보셔요. 이녁 스스로 넋을 바라보지 않으면 이녁은 늙어죽음이라는 길을 누구보다 빠르게 치달립니다. 딱한 분아.”


  책집 둘레는 쉼터이고, 크고작은 새가 내려앉아 노래합니다. 책집 앞은 큰길이고 허벌나게 시끄럽습니다. 책집은 쉼터하고 큰길 사이에서 우리가 스스로 아로새길 ‘새소리’를 들려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어떤 새를 보려나요? 북새판을 보려나요, 멧새노래를 보려나요?


  새를 새로 바라보지 못 하는 까닭이라면 ‘교육’과 ‘학습’ 탓이 크고, 무엇보다 글바치(작가·편집자·출판사)가 99.9퍼센트 서울에 사는 탓입니다만, 글을 읽든 안 읽든 우리부터 스스로 시골사람으로 안 사는 탓이 훨씬 크지 싶습니다. 서울사람으로만 있기에 ‘도시 중심 + 인간 중심 사고방식’으로 줄거리가 기울어요.


  널찍한 자리맡에 앉아서 노래꽃 ‘삶길’을 적습니다. 삶이라는 길이 무엇일까 하고 헤아리니 글줄이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다시 범계나루로 걸어가고 안산버스나루로 갑니다. 걸으면서 풀밭을 바라봅니다. 달걀꽃에 은행싹에 소리쟁이·씀바귀를 마주할 적마다 멈춥니다. 살살 쓰다듬고서 다시 걷습니다.


ㅅㄴㄹ


《꼬마 안데르센의 사전》(공살루 M.타바리스 글·마달레나 마토주 그림/도동준 옮김, 로그프레스, 2019.6.20.)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가야 여행》(황윤, 책읽는고양이, 2021.4.20.)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한스 에르하르트 레싱/장혜경 옮김, 아날로그, 2019.7.5.)

《책숲마실》(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9.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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