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17.


《사랑과 교육》

 송승언 글, 민음사, 2019.9.23.



오늘은 제주 애월읍 수산마을 어린씨하고 노래돌을 누리며 걷기로 한다. 나는 ‘노래돌’이란 이름을 쓴다. 우리 집 어린이뿐 아니라, 나라 곳곳 배움터나 책숲(도서관)으로 찾아가면서 어린이·푸름이하고 말을 섞으면서 넌지시 물으면 ‘시비’가 도무지 뭔지 알아듣지 못하기 일쑤이다. 왜 낡아빠진 ‘시비’란 일본스런 한자말을 붙잡아야 할까? 제주문화재단에서는 ‘시비 트레킹’이란 말을 쓰지만 나는 아이들하고 ‘노래돌 걷기’를 한다. 그나저나 제주 애월 어린씨하고 첫발을 떼며 만난 노래돌부터 틀린글씨가 있다. 그다음 노래돌에도 틀린글씨가 나온다. 어린씨하고 서른이 못 되는 노래돌을 보았는데, 이 가운데 열네 곳에 틀린글씨가 있네. 헛웃음이 나왔다. 《사랑과 교육》을 읽으며 노래님(시인)이 조금 더 목에 힘을 빼면 어떠했을까 싶다만, 우리나라에서 글을 써서 이름이나 돈이나 책을 파는 분들치고 ‘힘빼기’를 하는 분이 참 드물다. ‘멋부리기’ 아닌 ‘살림짓기’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하고 글을 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리고서점〉 지기님이 태워 주셔서 〈노란우산〉을 들렀다. 자전거로 가기에 꽤 힘들었겠구나. 제주 시내까지 태워 주셔서 〈책대로〉도 들렀다. 열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멋진 제주책집이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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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16.


《요괴 대도감》

 미즈키 시게루 글·그림, AK 커뮤니케이션즈, 2021.9.15.



새벽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탄다. 새벽 네 시쯤부터 살짝 망설였다. 택시를 불러 녹동나루까지 갈까 싶었으나, 새벽 여섯 시에 전화하기는 어렵지. 등짐을 더 줄이고 “비를 맞은 뒤에 갈아입어도 될 차림새”로 자전거를 탄다. 등짐을 줄였어도 매우 묵직하지만, 구비구비 멧자락을 넘고 바닷길을 휘돌아 한 시간 십오 분 걸린다. 배를 타고서 제주로 건너가도 옷은 안 마른다. 제주에 닿아도 비가 오니 젖은 차림으로 그냥 자전거를 탄다. 마을책집 두 곳을 들르고서 곧장 길손집으로 깃들고, 빨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설문대어린이도서관〉으로 이야기꽃을 펴러 간다. 《요괴 대도감》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설레며 기다렸다. 무지갯빛으로 여민 책은 반가운데, 너무 무겁고, 뭔가 아쉽다. 일본판을 사려다가 한글판을 샀는데, 그냥 일본판을 사는 쪽이 나았으려나 싶다. 둘레에서 흔히 말하는 “2% 모자란”이 아닌 “5% 아쉬운” 책이다. 예전 같으면 우리말로 옮겨내 준 대목만으로도 고맙다고 할 터이나, 이제는 ‘아쉬운 쪽(읽는이)에서 그냥 일본판을 사면 되’는 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더구나 《토리빵》은 요즈음 다시 내놓고 뒷자락을 옮기면 무척 사랑받을 만한데, 펴낸곳에서 그림꽃책을 너무 외곬로만 보는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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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15.


《꼬마 다람쥐 얼》

 돈 프리먼 글·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0.11.18.



작은아이가 노래한다. “아버지, 우리 대나무 베러 가요.” “대나무? 베어 어디에 쓰게?” “고구마 구워먹게요.” “아직 고구마는 없는데.” “그러면 감자를 구울게요.” 둘은 톱을 하나씩 챙겨 대밭으로 간다. 서로 한 그루씩 잡고서 석석 벤다. 열한 살 작은아이는 어느덧 혼자 어깨에 대나무를 짊어진다. 얼마 앞서까지 혼자서는 못 날랐는데. 작은아이 곁에서 대나무를 손질한다. 오늘은 꽤 굵은 대나무를 베었기에 길다란 마디 하나를 붓집(필통)으로 쓸 생각이다. “자, 이 마디를 쪼개 주겠니?” 대나무를 손질할 적에 도끼잡이인 작은아이가 척척 쪼갠다. 어스름할 무렵 드디어 손질을 마치고 후박가랑잎을 모아 불을 피운다. 저녁볕이 돋을 무렵 다 굽는다. 그야말로 멋진 살림돌이라고 느낀다. 《꼬마 다람쥐 얼》을 이레 앞서 부산마실을 하며 새로 장만했다. 몇 해 앞서 장만해서 즐겁게 읽은 그림책인데, 한 자락 더 갖추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다람쥐가 어머니한테서도 배우지만, 동무랑 이웃한테서도 배우면서 스스로 삶길을 닦는 하루를 그린다. 상냥하면서 정갈하다. 숲도 사람도 마을도 고르게 바라보면서 아기자기하게 엮는다. 스스로 설 줄 아는 아이를, 새롭게 노래하는 아이를, 즐겁게 사랑으로 가는 아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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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14.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이와모토 나오 글·그림/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0.12.15.



하루는 늘 새롭게 흐른다. 똑같은 하루는 아예 없다. 문득 아이들한테 묻는다. “어때, 아기이던 때가 생각나니?” “아니.” “인천에 살던 때는 생각나?” “아니. 하나도.” “음, 생각이 안 나는구나.” “모르겠어.”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너희 몸하고 마음에, 또 너희랑 함께 살아온 숲노래 몸하고 마음에 고스란히 새겼으니까, 앞으로 언제라도 생각하고 싶을 적에 가만히 떠오를 수 있어.” 작은아이하고 일산을 다녀오면서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을 새로 장만했다. 거의 안 읽히고 안 팔린 채 판이 끊어진 그림꽃책이다. ‘사라지는 시골’하고 ‘시골에서 삶길을 찾으려는 젊은이’ 모습을 무척 잘 그렸으나, 글책이 아닌 그림꽃책이라 등돌리는 사람이 참 많다. 이러한 줄거리를 글로 써야만 읽을 만할까? 그림꽃으로 담으면 낮아 보이나? 어둑살이 낄 무렵 작은아이하고 마을 한 바퀴를 돈다. 집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별이 돋는다. “산들보라 씨, 하늘 좀 보렴.” “오, 별이다. 별이 잔뜩 있다. 아까는 없었는데.” “그래, 하루가 흐르니까.” 어둠은 별빛을 베푼다. 밝는 아침은 구름을 베푼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베풀까? 나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선보이면서 아로새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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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13.


《아이, 낳지 않아도 될까요?》

 코바야시 유미코 글·그림/노인향 옮김, 레진코믹스, 2016.11.4.



“아버지?” “응.” “‘그림자’ 이야기를 써 보시지요?” “그림자 이야기?” “네.” “왜? 그림자 이야기는 사름벼리 씨가 그리지 않았나요?” “음, 나도 그렸지만, 아버지는 어떤 이야기를 쓸는지 궁금해서.” “그렇다면 써 볼게요.” 처음에는 글꾸러미(수첩)에 적는다. 곧 제주로 바깥일을 하러 다녀와야 하기에 우체국에 부칠 글월을 챙기다가 셈틀을 켜고서 ‘꽃글(동화) 그림자’를 옮겨 본다. 손으로 쓴 꽃글을 다 옮긴 다음에 뒷이야기가 주루루 떠올라서 쉬잖고 마저 쓴다. 종이로 뽑아서 큰아이한테 건넨다. “어떠니?” “좋아요.” “이모하고 이모부한테 보내 줄까?” “그러면 좋겠네요.” 《아이, 낳지 않아도 될까요?》를 읽으며 순이돌이 사이에 스스로 어떻게 사랑을 지피려는 마음인가를 돌아본다. 그림꽃책에만 나오는 삶이 아닌, 코앞에서도 숱한 돌이는 아이랑 잘 안 놀고 집안일도 잘 안 하고 무엇보다 사랑을 사랑다이 배우려는 마음이 대단히 얕다고 느낀다. 돌이는 모두 바보라고 할 만하다. 돌이는 스스로 바보인 줄 알아차리고서 순이한테서 삶·살림·사랑을 배워야지 싶다. 이러면서 아이들한테서 삶·살림·사랑을 새삼스레 배울 노릇이다. 돌이 스스로 깨어나지 않으면 앞으로 이 별에서 아이는 다 사라지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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