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2.21.


《클레오파트라의 꿈》

온다 리쿠 글/박정임 옮김, 너머, 2017.12.20.



  겉절이를 할 배추를 사러, 우체국에 들러 책숲집 지음이 이웃님한테 책을 부치러, 읍내마실을 간다. 작은아이는 기꺼이 따라나선다. 읍내 놀이터에서 땀을 빼고 짐돌이가 되어 준다. 배고 고프다는 작은아이를 이끌고 읍내 국수집에 들르는데, 이곳에서 내주는 모든 밥이며 국물이 맵다. 너무한다. 매운양념은 스스로 따로 넣도록 하면 되지 않나. 그러나 ‘배고프다는 핑계’로 오늘도 꾸역꾸역 먹었다. 엉터리로 나오는 밥은 밥값을 밥상에 올려놓고 그냥 나오기로 했으나, 막상 이렇게 못하네. 마음만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오늘은 소설책 《클레오파트라의 꿈》을 챙겨서 나왔다. 소설책을 읽을 적에는 몹시 망설인다. 나하고는 매우 안 맞는 얼거리라고 느낀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의 꿈》을 읽다가, 가시내랑 사내마다 결이 다르다는 일본말 이야기에 자꾸 눈이 간다. 그렇구나. 일본말은 성별에 따라 쓰는 말씨가 다르구나. 가만히 보면 한국도 이와 같지 싶다. 얼핏 들으면 한국에서는 가시내랑 사내가 똑같은 결로 말하는 듯 여길 수 있으나, 곰곰이 따지면 서로 다르다. 외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을 들으면 이 대목이 또렷하다. 하긴. 어린이하고 어른도 말결이 다르고, 서울하고 시골도 말결이 다른데, 모든 사람이 다 다를 테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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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0.


《드론》

조성준 사진, 눈빛, 2015.7.20.



  고흥군은 경비행기 시험장을 끌어들이려고 백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한다. 경비행기 시험장을 짓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이런 이야기는 언론을 타지 않는다. 어째서 그러한지는 알 길이 없다. 조용하고 깨끗한 시골자락에 비행장 아닌 비행시험장을 들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꼬막이며 김이며 미역이며 바닷물고기이며 날마다 나라 곳곳으로 숱하게 실어나르는 남녘 바닷가를 더럽히는 막개발이 자꾸 들어서면, 이곳 작은 시골뿐 아니라 서울이며 부산 같은 큰도시한테도 좋을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고흥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드론 고등학교’로 바꾸기까지 했다. 오늘날 드론이란 적은 돈과 품으로도 멋진 모습을 찍어 주는 사진벗이라 할 만하니 무척 고맙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경비행기뿐 아니라 드론 시험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가도 헤아려 보아야지 싶다. 이러다 보니 사진책 《드론》을 펴는 마음이 무겁다. 작은아이는 이 사진책에 나오는 모습이 멋지다며 좋아하는데, 하늘에서 찍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홀가분하게 반길 만할까?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터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이 어떻게 고단한가를 서울사람은 얼마나 알까? 설 언저리에 경비행기가 고흥 어느 하늘을 한동안 나는데, 마당에서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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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9.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글, 문학과지성사, 2004.8.27.



  스텐 우묵판을 사려고 순천으로 마실을 간다. 두 아이도 가방을 꾸려 함께 길을 나선다. ‘우묵판’은 큰아이랑 이야기를 하며 얻은 이름이다. ‘웍’을 큰아이하고 살펴보며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면 좋을까?” 하고 물으니, “음, 깊은 프라이팬?” 한다. ‘프라이팬’은 ‘부침판’이나 ‘지짐판’으로 고쳐쓰니 ‘웍’이라면 ‘우묵부침판·우묵지짐판’이라 해 볼 만하려나. 아무튼 셋이서 시외버스를 타며 노래를 함께 듣는다. 두 아이가 좋아하는 ‘R.I.O. serenade’를 자꾸자꾸 듣는데 세 차례쯤 들을 무렵 노랫말에 살짝 귀에 스민다. 그동안 숱하게 들으며 노랫말을 좀처럼 못 알아챘는데 이제 조금 트이지 싶다. 귀가 즐거우니 눈도 즐거워서, 《채소의 신》을 오늘 끝내고 시집 《사라진 손바닥》을 읽는다. 《채소의 신》은 매우 엉성한 번역 말씨가 아니라면 참으로 훌륭한 밥책이지 싶다. 우리 몸을 “하느님이 깃든 거룩한 곳”이라고 말하며 멋지게 맺는다. 맛책이자 멋책을 마치고 나서 읽는 《사라진 손바닥》은 심심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심심한 시집이 외려 수수한 맛으로 즐거울 만하지 싶다. 거룩한 척 떠벌이거나 떠받들린 En시인을 떠올려 보자. 시마을에는 거룩한 이가 아닌 수수한 이가 있을 노릇이라고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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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8.


《신통방통 도깨비》

서정오 글, 보리, 1999.2.10.



  일요일이 저문다. 설날이 지나간다. 면소재지나 읍내쯤 나갈 적에는 긴바지를 입지만, 집에서는 늘 반바지를 입을 뿐 아니라, 오늘부터는 웃옷마저 한 벌만 반소매로 걸친다. 참으로 따뜻하구나. 겨울에만 쓰던 ‘포근하다’라는 말도 이제는 떠나보낼 때로구나 싶다. 큰아이가 옛이야기를 좋아하기에 《신통방통 도깨비》를 들춘다. 이 책을 오랜만에 집는다. 1998년 8월에 보리출판사에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갔고, 이 옛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읽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에는 몰랐는데 큰아이하고 이 책을 읽으려고 펼치니 ‘구수하다는 입말’ 사이사이 얄궂은 말씨나 좀 어려운 한자말이 보인다. 스무 해 앞서는 이 대목을 몰랐네. 스무 해 지난 오늘에는 이 대목이 환히 보이네. 옛이야기를 입으로 들려주는 말씨로 잘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옛이야기를 들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출 수 있어야 하고, 되도록 더 쉽고 맑은 말씨가 되도록 손볼 수 있어야지 싶다.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이야기이다. 더 사랑을 쏟아 더 손보고 추스를 이야기이다. 책이란, 말이란, 글이란, 삶이란, 사랑이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따사로운 봄볕이란 달력에 적힌 숫자가 아닌, 시나브로 젖어들며 피어나는 고운 숨결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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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7.


《바람의 지문》

조문환 글, 펄북스, 2016.12.22.



  어느 책이든 ‘바람’이라는 말을 쓰면 으레 눈이 간다. 시집도 만화책도 사진책도 수필책도, 참말 ‘바람’ 한 마디에 눈길이 쏠린다. 왜 이렇게 바람에 눈이 갈까? 왜 이다지 바람이 마음에 들까? 나는 바람에서 왔을까? 저 먼먼 별누리에서 바람 같은 빛줄기를 타고서 이 별에 닿았을까? 수십억 해에 이르는 나날을 바람을 타는 작은 먼짓조각으로 살다가 어느새 사람이라는 몸을 입었기 때문일까? 경상도 작은 시골인 악양면에서 면지기 일을 한다는 조문환 님이 쓴 시집 《바람의 지문》을 읽으며 사뭇 놀란다. 사진책을 두 권 내놓기도 한 조문환 님인데 ‘면지기’ 일을 하셨네! 시골 면지기로서 사진을 찍고 시를 쓰셨네! 어쩜 이리 멋스러울까. 시골자락을 사랑하는 손길이 바람이 되어 사진으로 태어나고 시로 흐르리라 느낀다. 시집을 읽으니 슬쩍 멋을 부리려는 대목이 엿보이는데, 멋부림을 좀 누그러뜨리신다면, 시골스럽게, 그저 시골스럽게 참말로 시골 티를 물씬 내면서 시를 써 보신다면 악양뿐 아니라 하동을 넘고 경상도를 지나 이 땅뿐 아니라 온누리 골골샅샅에 봄바람을 일으키는 상냥한 노래가 될 만하지 싶다. 바람을 바라보며 바람을 그릴 수 있을 적에 시가 태어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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