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9.4.3.


《사이보그 009 완결편 3》

 이시노모리 쇼타로·오노데라 조 글, 하야세 마사토 그림/강동욱 옮김, 미우, 2018.10.31.



가만히 숨을 고르듯이 하루를 쉴 만할까. 아니면 더 바쁘게 일손을 잡아야 할까. 요즈음 ‘손질말 꾸러미’를 한창 모은다. 그동안 굳이 안 하던 꾸러미인데, 문득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모았으면 벌써 멧더미처럼 모았으리라 느끼는데, 이제부터 모으기에 한결 새롭게 바라보면서 모을 수 있기도 하다고 여긴다. 손질하면서 살림을 가꾸고, 손질하기에 보금자리가 피어나고, 손질하는 사이 말이 살아나고, 손질하니 겉모습을 비롯해 속알까지 든든하다. 《사이보그 009 완결편》이 세걸음이며 네걸음이며 나온 줄 뒤늦게 알아본다. 세걸음을 장만해서 읽어 보는데 영 ‘마무리(완결편)’ 같지 않다. 도리어 더 수수께끼로 빠지는 느낌이다. 그린이는 죽음을 앞두고 꼭 마무리를 짓겠노라 다짐하지만, 이래서야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스스로 풀지 못하는 실타래이니 만지면 만질수록 더 엉킨다. 이렇게 하기보다는 ‘뒷이야기’쯤으로 수수하게 이름을 붙여서 사이보그 아홉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싸움 아닌 사랑으로 살림을 지으려 했는가를 다루면 좋았으리라 느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9.4.2.


《상해백사정기담 3》

 키미즈카 쇼 글·그림/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8.8.15.



사월로 접어든 한봄에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운다. 해마다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이 거드는 일손이 참 대단하다. 호미를 쥐면 호미질을, 낫을 쥐면 낫질을, 부엌칼을 쥐면 밥짓기를, 비나 걸레를 쥐면 쓸고닦기를, 연필을 쥐면 글이나 그림을, 참말로 척척 해낸다. 작은아이가 문득 “옷 적시고 놀아도 돼요?” 하고 묻는다. “네 마음이 가는 대로.” 물이끼를 다 걷어낸 뒤에 물을 실컷 뒤집어쓰며 노는 아이들을 지켜본다. 한참 놀다가 “아, 이제 춥다.” 하면서 볕바른 곳에 앉는다. 그래, 아직은 시원히 물놀이하기에는 이르지. 《상해백사정기담》 세걸음을 읽는다. 몸에서 떠난 어머니를 만나는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몸은 없더라도 넋이 있고, 넋이 있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같이 만나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 때때로 어마어마한 힘이 누구한테나 샘솟기 마련인데, 이 힘은 몸에서가 아닌 우리 넋에서 마음으로 끌어내지 않을까? 몸을 다루는 넋을 헤아리고, 몸을 다스리는 넋을 가꾸고, 몸을 이끄는 넋을 돌볼 줄 알기에 더없이 씩씩하면서 튼튼한 사람으로 서지 않을까? 마을 할아버지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가셨단다. 어쩐지 마을이 조용하더라. 경운기 오가지 않는 시골마을은 아늑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9.4.1.


《13층 나무집》

 앤디 그리피스 글·테리 덴튼 그림/신수진 옮김, 시공주니어, 2015.3.25.



아이들이 소리를 내어 읽는다. 큰아이가 먼저 또박또박 읽고, 작은아이는 누나가 읽는 결을 헤아리면서 신나게 읽는다. 나는 《13층 나무집》을 읽을 생각이 없었으나, 아이들이 집에서 여러 벌 소리내어 읽으니 저절로 옆에서 귀로 읽는다. 아이들이 읽는 책을 곁에 다가가서 흘깃흘깃 보고, 아이들이 잠든 뒤에 가만히 넘긴다. 그림을 아기자기하게 넣었고, 이야기도 감칠맛이 나게 엮었구나 싶다. 터무니없는 줄거리가 흐르기도 하고, 그냥그냥 쭉쭉 뻗는 줄거리로 흐르기도 한다. 딱히 아귀를 맞추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그때 어떤 일이 확 터지듯이 짜맞추면서 눈길을 떼지 못하도록 끌어당기려는 얼거리라고 느낀다. 재미없는 책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렇다고 뒤엣걸음을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건네고 싶지는 않다. 이 하나만 있어도 되겠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라 한다면, 처음에 갑자기 나타난 열세겹 나무집보다는, 아이들이 저마다 뚝딱뚝딱하면서 노는 몸짓을 그리면 어떠했으랴 싶다. 어쩌면 뒤엣걸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 굳이 처음부터 아이들이 신나는 놀이터이자 삶터를 짓는 이야기를 안 다뤄도 될 테니까. 모름지기 스스로 지어서 놀거나 일할 적에 가장 신나고 재미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9.3.31.


《별별사이 1》

 별별문학, 2019.3.25.



청주에 작고 이쁜 책집이 있다. 몇 해 앞서 수원으로 볼일이 있어 가던 길에 이곳에 살며시 들렀다. 그 뒤로 한걸음 더 찾아갔으나 청주나 둘레에 아직 다른 볼일이 없으니 이 책집을 찾아가지는 못한다. 머잖아 청주로도, 가까운 고장으로도 마실길이 열려 또 나긋나긋 찾아갈 수 있겠지. 청주 복대동에 〈앨리스의 별별책방〉이 있고, 이곳에서 《별별사이》 첫걸음을 펴냈다. 누리집 사진으로 볼 적에는 자그마한 판짜임인 줄 알았으나, 막상 책을 받고 보니 시원스레 큰 판짜임이네. 작은 판도 좋고, 큰 판도 좋다. 책을 받은 날 바로 읽지는 못하고 이틀 뒤에 비로소 바쁜 일거리를 마치고서 찬찬히 펼친다. 아이들이 저녁 마무리를 하는 곁에서 한달음에 끝 쪽까지 읽는다. 마을에서 살림하는 마을책집에 마을이웃이 사뿐사뿐 찾아오고, 저마다 새롭게 이야기꽃을 길어올린다. 수수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고, 수수한 손길로 손에 쥐는 삶이 싱그러우면서 곱구나 싶다. 나라 곳곳 모든 마을책집에서 이렇게 ‘마을이랑 마을이웃이랑 마을책집이 어우러지는 하루’를 책으로 여미어 내면 참으로 멋스러우리라 느낀다. 서울에서 척척 찍어 보내는 책이 아닌, 마을에서 신나게 일구어 마을에서 사랑하는 책이 태어날 수 있다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읽기 2019.3.30.


《사계절 스스로 꾸준히》

 석초, 스토리닷, 2019.3.15.



곡성이라는 고장을 오랜만에 다녀온다. 곡성은 찻길을 넓히지 않고서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로 오가거나 물가에서 놀 수 있도록 살림을 펴네. 이런 고장이 다 있구나 싶어 놀란다. 퍽 오랜 나날에 걸쳐서 섬진강을 둘러싼 자리를 가꾸었구나 싶고, 이동안 나무가 우거지면서 마을이며 길이며 숲이며 참 푸르네. 이런 살림길을 여러 고장에서도 눈여겨보고 배울 만하지 않을까? 고흥으로 돌아와서 《사계절 스스로 꾸준히》를 읽는다. 철이 없는 사람이란 철흐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철흐름을 읽을 줄 모르기에 살림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모른다. 봄은 왜 봄일까. 가을은 왜 가을일까. 달력에 찍힌 123이 아닌 바람결을 햇볕을 빗물을 흙내음을 읽고 헤아리면서 몸으로 느끼기에 비로소 철이 든 사람으로 자라리라. 나무는 철 따라 가지를 새로 뻗고 잎을 새로 낸다. 풀은 철 따라 줄기를 새로 올리고 잎을 꽃으로 씨앗으로 차츰 바꾼다. 사람은 어떤 흐름일까? 나이가 들면서 어떤 넋이나 슬기가 될까? 나이를 먹는 동안 어떤 꿈이나 사랑을 키울까? 나이에 걸맞게 어떤 어른으로 이 땅에 설까? 철마다 스스로 꾸준히, 철마나 나답게 씩씩히, 철마다 사뿐히 피어나는, 네가 되고 내가 되면서 저 하늘이 파랗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