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9.2.7.


《북한 여행 회화》

김준연 글·채유담 그림, 온다프레스, 2019.1.3.



우체국을 들르고 저자마실을 하려고 읍내를 다녀오니 ㅇ이라는 곳에서 전화가 온다. 이들은 내 사진을 나 몰래 썼고, 저작권표시조차 안 했다. 그러나 좋은 뜻에서 그 사진을 썼다는 말만 편다. 거꾸로 생각하자. 아무나 좋은 뜻에서 ㅇ매체 사진이나 글을 몰래 가져다써도 될까? 좋은 뜻이라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값을 하나도 안 치를 뿐 아니라 저작권이란 없어도 되는 셈일까? 지난달에 수원 ‘마그앤그래’에서 장만한 《북한 여행 회화》를 읽는다. 책이름은 “여행 회화”이지만, 북녘말을 북녘이란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북녘 살림을 고스란히 담아서 쓰는 말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웃 고장 살림말 배우기’라 할 만하다. 꼭 나들이를 갈 적만이 아니라, 여느 때에도 이웃살림을 헤아리는 눈길이라면 전라말도 경상말도 강원말도 경기말도 다 사랑스럽다. 뭉뚱그리는 한국말이 아닌 ‘고장 숨결에 묻어나는 말’이다. 그나저나, 훔친 쪽이 훔친 줄 못 느끼거나 안 느낀다면, 그들하고는 ‘같은 한국말’을 쓰는 삶이 아니란 뜻일 테지. 마음을 안 읽고 삶과 살림을 못 읽는다면, 무늬로는 한글이어도 먼먼 별나라 사람인 셈이다. ‘소시지’를 ‘고기떡’으로 옮긴 눈썰미가 참 알뜰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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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2.6.


《내가 걸으면 꼬리에 닿는다》

 우노 타마고

 오경화 올김

 대원씨아이

 2018.6.30.



2월은 겨울인가, 아니면 봄을 앞둔 포근한 철인가? 포근하디포근한 고흥에서는 1월이 저물 무렵부터 곧 봄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며칠 앞서부터 깡동바지나 깡동치마를 입는다. 찬물로 몸을 씻어도 그냥 시원하구나 싶어, 웃통을 벗은 채 마당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기도 한다. 시골살이에서 좋은 대목 하나라면, 마당에서 웃통을 벗고 평상에 누워 해바라기를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더구나 2월 첫머리에. 두 달쯤 걸쳐 천천히 읽는 《내가 걸으면 꼬리에 닿는다》를 드디어 덮는다. 나한테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무척 야금야금 읽었다. 뭇짐승하고 마음으로 사귄 그린이가 어릴 적부터 뭇짐승하고 사귄 이야기란 참으로 상냥하다. 그래. 이렇게 하면 누구나 새나 고양이나 개나 나무하고도 말을 섞을 수 있다. 말을 섞는다고 할 적에는 ‘마음’을 섞는다는 뜻이다. 의사소통 아닌 마음을 나누기에 말을 나눈다. 얼마나 재미날까? 바람하고 말을 섞고, 이슬하고 말을 섞으며, 별하고 말을 섞으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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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2.5.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재연 글·그림, 소동, 2019.1.26.



그림이란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 마음을 포근하게 달래고 눈부시게 빛내는 이음돌이 되곤 한다. 연필로 그리든 크레파스로 그리든 매한가지이다. 손가락으로 하늘에 대고 그리든,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긁든 똑같다. 그림이란 마음꽃일는지 모른다. 글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 생각을 활짝 틔우면서 반짝반짝 별빛이 되곤 한다. 글판을 두들기든 종이에 끄적이든 마찬가지이다. 두 눈으로 가슴에 그리든,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살살 적든 언제나 같다.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이부자리에 모로 누워서 읽는다. 아침 일을 하고서, 빨래를 마치고서, 밥을 지어 아이들한테 차려 주고서, 등허리를 홀로 토닥토닥하면서 천천히 넘긴다. 할머니가 빚은 그림은 예술가란 분이 빚은 그림하고 사뭇 다르다. 남한테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닌, 스스로 즐겁게 살아낸 하루를 담은 그림이다. 붓솜씨를 뽐내려는 그림이 아닌, 스스로 사랑하는 살붙이랑 동무랑 이웃을 기쁘게 담은 그림이다. 모름지기 모든 그림이 처음에는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그림이 아니라, 저마다 살림을 지으면서 사랑하는 삶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가 활짝활짝 피어난 그림이었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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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2.4.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 글, 사회평론, 2004.10.25.



설을 앞두니 시골이 북새통이다. 그 조용하던 곳마다 자동차로 붐빈다. 마을 어디나 시끌벅적하다. 이런 모습을 보기좋다고 여기는 눈이 있는데, 나는 한 가지를 생각한다. ‘서울에서 들고 온 쓰레기는 시골에 버리지 말고 서울로 가져가십시오’ 해거름에 아이들하고 책숲집에 가서 책시렁을 갈무리하다가 《힘내라 진달래》가 보여서 집어든다. 2004년에 처음 나왔으니 열다섯 해를 묵었네. 집으로 돌아와서 마저 읽으며 돌아보니, 어느새 낡은 길이 된 얘기가 있고, 아직 거듭나야 할 길이 있다. 지난 열다섯 해 사이에 우리 눈은 얼마나 새롭게 피어났을까? 우리는 얼마나 민주스럽거나 평화스러운 살림을 가꿀까? 떠난 분은 이녁 글을 갈무리할 수 없으나, 남은 이가 이녁 글을 갈무리해서 새로운 책이 두 가지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책으로 묶인다. 어떤 이야기가 남길 만한지,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지 헤아려 본다. 설에 시골에 찾아온 서울내기는 밤나절에 폭죽을 터뜨리던데, 시골 밤하늘을 폭죽질로 물들이는 손길이나 눈길, 이 시끄러운 마음길도 진달래 봉오리를 알아보기를 빈다. 곧 진달래가 핀다. 봄까지꽃은 벌써 피었고, 매화 봉오리도 굵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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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2.3.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곽재구 글, 문학동네, 2019.1.25.



시인 곽재구 님은 순천에 있는 마을책집 〈책방 심다〉 단골이라고 한다. 이녁은 새로운 책을 내놓으면 이녁 책에 이름을 적어서 이녁 단골 마을책집에 한 권씩 선물로 준단다. 전남 고흥에는 마을책집이 딱히 없으니 순천으로 마실을 가서 나도 이곳에 내 새책을 으레 한 권씩 이름을 적어서 선물로 드리곤 한다. 책선물을 하며 생각한다. 시인이든 소설가이든, 이런 책이나 저런 사전을 내는 사람이든, 저마다 제 고장 마을책집 몇 곳을 단골로 삼아서 사뿐사뿐 마실을 하고 책선물을 나누는 살림이란 매우 즐거우리라고.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를 순천 마을책집에서 장만한다.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읽는다. 냇물살 같은 이야기를, 또는 냇물살에 띄우는 이야기를, 또는 스스로 냇물살이 되고픈 이야기를 한 줄 두 줄 읊는다. 우리 몸은 물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냇물살일 수 있다. 바다일 수 있고, 빗물이며 이슬일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모습인 물빛이면서 숨빛이요 사랑빛이자 이야기빛은 아닐까? 그나저나 설을 앞두고 순천마실을 했다가 자칫 고흥으로 못 돌아올 뻔했다. 이런 때에는 시외버스에 빈자리 하나 없구나. 시골버스도 택시도 모두 부산한 설대목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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