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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남자도 여자도 아닌 2] 왜 ‘여자만’ 집일을 배울까?


  만화책 《달려라 하니》가 있습니다. 1985년에 나온 만화이고, 1988년에 만화영화로도 나왔어요. 만화책은 이제 찾아보기 매우 어렵지만, 만화영화는 텔레비전에서 곧잘 다시 나오기도 해서, 이 만화가 처음 나오던 1980년대 어린이뿐 아니라 1990년대나 2000년대 어린이도 ‘하니’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뜬금없는 하니 이야기를 꺼낸다고 여기실 수 있을 텐데, 우리 집 아이들은 2010년대를 살아가지만 이 하니를 압니다. 저한테는 《달려라 하니》 만화책이 있어요. 꽤 오래된 만화영화이지만, 동영상을 장만할 수 있기도 해요. 아이들하고 만화책을 돌려서 보거나 만화영화를 함께 보곤 합니다. 아이들은 하니 만화에서 이래저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찾아내는데, 며칠 앞서 ‘홍두깨 선생님이 옥탑에 있는 하니네 자취방에 찾아가서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아주 재미있다면서 자꾸 말해요. 홍두깨 선생님이 손이 안 보일 만큼 빠르게 무를 써니까 무가 숭숭숭 썰리면서 하늘을 날아 커다란 통에 담긴다고 말이지요.

  부엌에서 무를 썰며 아이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자, 보렴, 무를 아주 빨리 썰어도 만화영화처럼 하늘을 날지는 않아. 만화영화는 사람들이 더 재미나고 또렷하게 잘 느껴 보라면서 그렇게 보여준단다. 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야말로 손이 안 보이도록 무를 썰면 무가 숭숭숭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썰린 무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를 알아챕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 나온 만화책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홍두깨 선생님은 ‘사내’이지만 김치를 담글 줄 알 뿐 아니라, 밥이나 국을 매우 잘 합니다. 다른 ‘하니’ 이야기에 나오는 ‘만화가 홍두깨 아저씨’도 밥솜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요.

  1980년대에 ‘사내가 부엌칼을 쥐는 일’은 으레 손가락질이나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런 때였어도 만화에서는 ‘부엌칼을 쥔 사내’를 그렸어요. 이 대목을 좀 곰곰이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홍두깨 선생님이나 홍두깨 만화가는 어머니나 곁님 없이 홀로 살림을 짓습니다. 혼자서 김치도 담가야 할 테고, 밥도 짓고 국도 끓여야 할 테지요. 빨래이며 청소이며 홀로 거뜬히 해내야 할 테고요.

  만화에서 ‘하니’가 가시내 아닌 사내였다면, 하니가 집을 뛰쳐나와 옥탑방에서 혼자 먹고산다고 할 적에 무엇을 했을까요? ‘가시내 아닌, 사내 하니’는 김치를 담그겠다고 생각할까요?

  만화를 보면서 ‘살림’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혼자 제금을 난다고 할 적에는 밥이며 옷이며 집을 스스로 건사합니다. 가시내이건 사내이건 손수 밥을 지어야 합니다. 김치나 반찬도 손수 마련해야 할 테고요. 빨래나 청소도 손수 해야 할 테고요. 우리는 가시내나 사내를 떠나서 옷이랑 집이랑 밥을 건사하는 살림을 누구나 배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저는 집안일을 얼추 열 살 무렵부터 거들었다고 떠올라요. 그무렵부터 뭔가 머리가 굵으면서 이런저런 집안일을 거들었구나 싶어요. 그즈음 마을 이웃 아주머니들은 으레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종규 너는 어쩜 그렇게 어머니를 잘 돕니. 야무지지. 너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그러게 말야, 쟤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여자로 태어나서 일을 도우면 얼마나 잘 도울까.” “우리 집 딸은 일을 시키면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 “싫어하기만 하면 좋게. 우리 집 딸은 일도 잘 못해.”

  김장철에는 한 집에서만 김장을 하지 않고 집집마다 온 살림을 너른 마당에 다 내어놓고 함께 합니다. 그야말로 여기도 저기도 온통 김장 담그는 일로 시끌벅적해요.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 일손도 거들고 이웃 아주머니 일손도 거들다가 이런 말을 들으니 아뭇소리도 할 수 없는데다가 얼굴이 벌게집니다.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어머니를 거들지 못하겠어요. 얼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이제 좀 놀러갈게요” 하는 말을 짧게 내뱉고는 후다닥 달아납니다.

  달음박질을 치며 그 자리를 빠져나옵니다. 그렇다고 동무들이 노는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을 벗어나서 기찻길로 갑니다. 오래되어 하루에 몇 번 안 지나가는 기찻길이 마을 가까이 있었어요. 그 기찻길을 여러 시간 하염없이 거닐며 ‘애먼 시간을 때웠’습니다. 이동안 생각에 잠겼어요.

  ‘그래, 내가 가시내로 태어났으면 느긋하게 김장을 거들며, 김치를 어떻게 담그는가를 배울 수 있었겠지. 그런데 사내로 태어나도 김장을 거들며 김치를 어떻게 담그는가를 배우면 되지 않아? 왜 가시내만 김장을 거들고 김치 담그기를 배워야 해? 왜 가시내한테만 김장을 가르쳐야 해? 왜 가시내한테만 집일을 시켜야 해? 왜 사내는 놀기만 하고 집일을 안 배워? 이건 뭔가 잘못이 아니야?’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평등’이라든지 ‘남녀평등(또는 여남평등)·성평등’ 같은 말은 한 마디도 듣지 못하던 어린 날입니다. 1980년대를 이렇게 보냈어요. 평등이라는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니 알지도 못했습니다만, 가슴에 어떤 싹 하나가 몽실몽실 태어나려고 했어요. 2017.5.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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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남자가 무슨 김장이야?”
[남자도 여자도 아닌 1] ‘사람으로 사는 사랑’ 꿈꾸기


... (이 글을 쓰는 뜻)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


  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쓰던 무렵입니다. 열 살이던 때라고 떠올라요. 그러니 국민학교 3학년이었겠지요. 저는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랐어요. 시골 아닌 도시이지만, 도시에서도 해마다 가을이면 집집마다 부산했어요. 마을마다 시끌벅적했지요. 김장을 하고 김치독을 묻느라 부산하고 시끌벅적했답니다.

  저는 아홉 살 무렵까지는 마냥 뛰어논다는 생각이었지만, 열 살부터는 철이 좀 트였어요. 아홉 살까지는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며 부산하실 적에 곁에서 이모저모 거들자는 생각을 거의 못 했다면, 열 살부터는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며 여러 날 부산하실 적에 ‘어머니가 이렇게 일하시는데 어떻게 나가서 놀지?’ 하고 생각했어요. 동무들이 불러도 못 나갔지요.

  두 마음이 흘렀어요. 하나는 집에서 어머니를 돕자. 둘은 밖에서 동무들하고 놀자. 이때 저는 늘 어머니를 돕자는 마음이 이겼어요. 어머니는 저더러 “안 도와도 돼. 나가서 놀아.” 하셨지만, 제가 나가지 않고 어머니 곁을 맴돌며 “이거 나를까요?”라든지 “이 그릇 설거지해요?” 하고 여쭈면 “응, 그래.” 하면서 자잘한 심부름을 맡기셨어요. “저기 소금 좀 여기다 부어.”라든지 “물 좀 가져와.”라든지,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러모로 손을 쓰느라 바쁜데다가 손이 고춧가루 양념으로 물들어 다른 것을 만질 수 없는 터라 ‘아주 작은 손’조차 도움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이때에 ‘부지깽이’조차 어떻게 바쁜 일철에 돕는다고 하는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이런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무렵을 보내는데, 가을 김장철이면 학급마다 가시내가 꽤 많이 학교를 빠졌어요. 제가 6학년이던 해(1987년)까지도 적잖은 가시내는 김장철에 어머니 일손을 거들어야 하기에 며칠 동안 학교에 못 나왔어요. 그저 가시내이기 때문에 집안일을 거든 셈이지요. 사내 가운데 ‘어머니 김장 일손을 거들려고 학교를 빠지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저는 밤 늦게까지, 또 새벽에도, 어머니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김장을 돕는데, 어머니가 하루 내내 혼자서 엄청난 김장을 하셔야 할 모습을 볼 적에 차마 발길이 학교로 안 떨어졌어요. 저더러 얼른 학교로 가라고 내쫓으셨지만, 첫 수업을 하기 앞서까지 버티며 일손을 도우려 했습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학교에 가는데 가슴이 얼마나 무겁던지요. 겨우 학교에 가서 걸상에 앉으니, 마침 옆이나 둘레에 빈 자리를 봅니다. 첫 수업을 하며 담임교사가 출석부를 부르는데 열 몇 가시내가 안 왔어요. 학교에 안 온 아이하고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가 말합니다. “선생님, 걔는 오늘 김장 거들어요.” “김장 결석인가? 그래.” ‘김장 결석’은 짧으면 사흘, 길면 닷새입니다.

 김장을 거드느라 여러 가시내가 빠진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 가시나는 어머니를 도우려고 안 나왔구나(또는 못 나왔구나). 나도 좀 씩씩하게 그냥 남아서 도울걸.’ 하고요. 첫 교시를 마친 뒤 담임교사한테 갑니다. 말씀을 여쭙니다.

  “선생님.” “왜?” “어머니가 김장으로 너무 힘드신데, 집에 가서 김장을 도우면 안 될까요?” “뭐? 남자가 무슨 김장이야? 너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말 하는 거지!”

  담임교사는 출석부로 머리통을 내리칩니다. 출석부로 얻어맞았어도 그리 아프지 않습니다. 되게 세게 맞았지만 아프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제 마음은 이때 여러 가지로 불타올랐어요. 차마 담임교사 앞에서 이 말을 터뜨리지는 못했으나, 속으로 이렇게 외쳤어요. ‘선생님은 김치 안 먹어요? 김치를 먹으면서 김장이 여자만 하는 일이에요?’ 하고요.

  이 땅 모든 사내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여보세요, 우리 사내들, 이녁은 김치를 먹나요 안 먹나요? 김치를 먹는다면, 그대는 김치를 담그냐요 안 담그나요? 김치를 먹는 그대들은 김치를 담글 줄 아나요 모르나요? 김치를 좋아하는 그대는 소매 걷어붙이고 즐겁게 김치를 담그는가요 안 담그는가요? 2017.5.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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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노래 8 손끝에서 태어나는 그림



  그림을 잘 그리는 손이나 그림을 못 그리는 손은 따로 없습니다. 그저 ‘그리는 손’이 있습니다. 그림쟁이나 화가나 예술가인 손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숨결이라면 누구나 그림쟁이요 화가이며 예술가입니다. 붓을 들든 연필을 들든 크레파스를 들든 늘 활짝 웃는 마음이라면, 이 손끝으로 그림을 빚을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담는 그림을 빚고, 내 이야기를 나누려는 그림을 빚습니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그림을 빚고, 신나게 노래하는 그림일 빚습니다. 아이들은 예술품이나 창작품을 그려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늘 아침저녁으로 신나게 뛰노는 기쁨을 그림으로 담을 수 있으면 되고, 앞으로 새롭게 뛰놀 꿈을 그림으로 드러낼 수 있으면 됩니다. 4348.11.2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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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노래 7 구름을 보며 사는 하루



  하늘을 볼 적에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땅을 볼 적에 땅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볼 적에 나무를 보고, 풀을 볼 적에 풀을 볼 수 있습니다. 문득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합니다.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드는데 하늘을 가리는 건물이나 전깃줄만 가득하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요? 나무를 보려고 둘레를 살피는데 자동차나 가게만 가득하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요? 구름을 보고 싶어 고개를 듭니다. 마당에 서고, 대청마루에 앉습니다. 자전거를 달리고, 고샅을 거닐며, 논둑길을 아이들하고 함께 걷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하늘바람을 마시고, 구름빛을 먹습니다. 4348.11.1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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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노래 6 한가을 텃밭에



  가을을 앞두고 강냉이를 심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심어 보고 싶었습니다. 워낙 따스한 고장인 고흥이다 보니, 한가을에도 강냉이가 익을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노릇이기에, 잘 마른 강냉이에서 스무 알쯤 훑어서 새한테 예닐곱 알을 준 뒤에 나머지를 텃밭에 옮겨심었지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 주었고, 어느새 수꽃도 암꽃도 흐드러지면서 열매가 차츰 굵습니다. 씨앗은 참으로 멋지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고, 이 작은 씨앗처럼 우리 아이들도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랄 뿐 아니라,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한테 작고 어여쁜 씨앗이었구나 하고 새롭게 배웁니다. 4348.1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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