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쟤가 2024.8.31.흙.



‘쟤’는 ‘저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야. ‘나’하고 ‘남’을 그어서 멀리하려는 말이야. ‘저쪽’이란 “먼 쪽”을 가리켜. ‘그쪽’이란 “안 보는 쪽”을 가리켜. 안 보니까 모르고, 모르니까 ‘거기’라든지 ‘그쪽’이라고 해. 아주 멀지는 않으나 옆에 안 두는 마음으로 가리키는 ‘저쪽’이니까, ‘쟤’라고 섣불리 말할 적에는 자칫 차츰 멀어가다가 동떨어지곤 한단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 사람이 말이야”라 할 적하고, “저 사람이 말이야”라 할 적은 참 다르지. 다만, 넌 ‘이쪽·저쪽·그쪽’을 그냥그냥 쓸 수 있어. 그리고, 넌 네가 으레 쓰는 말씨를 다시 처음부터 새기면서 하나씩 새로 담을 수 있어. 보렴! 오늘까지 못 했으면 오늘부터 하면 돼. 오늘까지 안 했으니 오늘부터 하기에 즐거워. 오늘까지 못 했다고 탓하기만 할 적에는 오늘부터 아무것도 못 하게 마련이야. 오늘까지 안 했다고 타박만 할 적에는 오늘도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굴레란다. 너한테나 남한테나 마찬가지야. 그저 해. 그대로 해. 그냥 해. 나중에 따지고 이곳에서 이제부터 그저 해. 이다음에 나무라기로 하고 오늘 이곳에서 그대로 해. 이러쿵저러쿵은 접고서 그냥그냥 웃으며 해. 네가 하기에 네가 빛나. 네가 안 하기에 네가 안 빛나. 오늘까지 쟤가 안 빛나는 줄 느꼈으니까, 오늘도 안 빛나기를 바라니? 오늘도 쟤가 헛발질에 사로잡혀서 “또 실컷 꾸중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지는 않아? 좋은삶·나쁜삶이 없다면, ‘오늘삶’만 있어. 좋은말·나쁜말이 없다면 ‘오늘말’만 있어. ‘좋은곳·나쁜곳’이 없다면 ‘오늘곳’만 있어. 이쪽 저쪽 그쪽 가리려 하지 말고, 오늘을 보면 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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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배우자’란 2024.9.1.해.



바꿨으면, 조금 앞서까지 있던 허물과 허울은 다 내려놓으렴. 바꿨더라도, 예전 허물과 허울을 되새기고 뉘우칠 수는 있어. 그러나 바뀐 뒤에는 이제부터 새로 나아가는 길을 바라볼 노릇이란다. 바뀌었는데도 예전 허물과 허울을 자꾸 되새기거나 뉘우칠 적에는, 자칫 예전대로 돌아가려는 쳇바퀴일 수 있단다. 네가 ‘배우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배울 테지. 모든 날과 모든 때와 모든 곳에서 배우겠지. 모든 일에서 배울 테고, 모든 말을 배우게 마련이야. ‘배우는’ 사람은 안 잊어. 안 잊으니 안 잃어. 배우는 사람은 안 붙잡아. ‘받아들이는’ 배움길이란, 스스로 받아서 스스로 살리는 하루야. ‘붙잡기’란 “틀·굴레를 똑같이 따라가려는 짓”이지. 허물이나 허울을 배웠으면, 이제는 따뜻하게 녹여서 새몸으로 나아가면 돼. 네가 볼 곳은 “너는 그 허물을 쓰던 놈이잖아!”나 “너는 그런 허울을 쓰던 녀석이잖아!”일 수 없어. 너는 “허물을 벗고서 거듭난 빛”을 바라고 바라볼 일이야. 너는 “허울을 내려놓고서 온넋으로 깨어난 숨결”을 그리고서 품을 일이지. 허물은 허물면 돼. 허우대를 자랑하는 허울은 허우적거리는 수렁이니까, 가볍게 벗어던지면 돼. 문득문득 이 한 마디, “배우자!”를 새겨 봐. 배우고 익히고 가꾸면서 하루를 살아 봐. 바라보고 알아보고 나아가 보면서 이곳에 있는 너를 느껴 봐. 배우기에 말을 할 수 있어. 배우지 않으니 말을 못 하거나 ‘말시늉’을 잔뜩 부린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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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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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사랑이 아니니 2024.7.26.쇠.



사랑이라면 누구를 흔들지 않고, 누구한테서 흔들리지 않아. 사랑이 아니니 누구이든 흔들고, 누구한테서나 흔들려. 네가 스스로 사랑일 적에는 이 모두를 알 테지. 네가 스스로 사랑이 아니기에 이 모두뿐 아니라 자그마한 어느 하나도 알 길이 없어. 자, 이따금 ‘너’가 아닌 ‘둘레’를 물끄러미 보렴. 네 둘레에 있는 누가 “사랑으로 빛나는 눈”이니? 지치거나 바쁘거나 걱정하거나 부아나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눈이지 않아? 웃고 노래하는 눈이란 없이, 눈치를 보거나 딴청이거나 팽개질이나 팔짱질인 눈은 아니니? 사랑인 사람이라면, 어떤 쇳덩이(자동차)를 어디에서 몰든 사랑으로 몰아. 사랑이 아니니, 언제 어디에서나 사납고 고약하고 괘씸하지. 사랑이란, 속에서 고요히 피어나서 온누리를 따사로이 품은 꽃빛이야. ‘사랑척’이나 ‘사랑시늉·사랑흉내’라면, 시끌벅적하거나 왁자지껄하거나 어수선하단다. 사랑이기에 부드럽고 넉넉하고 즐거워. 사랑척이나 사랑없는 메마른 눈이기에 퀴퀴하고 얽매인 굴레를 잔뜩 짊어지지. 나무는 나무인 척하지 않아. 구름은 구름인 척하지 않아. 나비는 나비인 척할 까닭이 없지. 나무는 풀을 흉내내지 않고, 구름은 바위를 따라하지 않고, 나비는 잠자리를 닮을 마음이 없어. 네가 사람이라면 사랑을 할 노릇이야. 네가 사람일 적에는, 푸르게 우거지는 숲빛으로 살림을 지으면서 언제나 해맑게 사랑을 하는 하루이겠지. 사랑이 아니니 숲을 등지거나 잊거나 몰라. 사랑이기에 어깨동무하는데, 사랑이 아니니 고개를 돌릴 뿐이란다. 사랑하기에 사람이고, 사람이기에 사랑한다면, 사랑이 아니니 사람이 아니겠지. ‘사람척’이나 ‘사람시늉·사람흉내’를 하는 얼뜨기를 알아보기를 바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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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매연 2024.7.31.물.



‘차방귀’라고 할 ‘배기가스’를 맡으면서 튼튼하거나 푸를 나무나 풀은 없어. 매캐한 배기가스를 늘 마시면서 멀쩡할 집이란 없어. 뿌옇게 휩싸는 배기가스를 누가 언제 얼마나 내뿜는지 돌아보렴. 자동차가 내뿜기 앞서는 ‘싸움수레(전차·탱크)’에 ‘싸움배(군함)’가 내뿜고, 온갖 배와 날개(비행기)가 내뿜었어.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곳마다 내뿜고, 기름돌(석탄)을 때면서 내뿜었지. 배기가스를 내뿜는 둘레에 들이나 숲이 있을까? 오늘날 서울을 보렴. 서울에 무엇이 있니? 이제 시골을 보렴. 시골에서 사라지는 숲만큼, 시골에 자동차와 아파트가 늘어나는구나. 얼마나 자주 많이 멀리 빨리 오가야 하고, 쓰고 버려야 하고, 기계를 돌려야 하기에 배기가스와 매연이라고 하는 죽음재를 쏟아내야 할까? 서로 북돋우면서 살리는 길은 어디일까? 살림길을 잊은 채 죽임길을 내달리면서, 어떻게 숨을 마시고 뱉는 하루일까? 숨을 이루는 바람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잊는다면, 네 삶이란 무엇일까?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읽지 않으면서, 숨을 느끼지 않는다면, 너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는 셈일까? 자동차가 끝없이 달리는 둘레는 배기가스와 먼지로 새까맣지. 공장과 전쟁무기가 가득한 둘레도 배기가스와 먼지로 새까맣구나. 마을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나라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지? 집에는 어떤 바람이 흘러야 할까? 힘(총칼·폭력)으로 억누르려는 무리는 한 줌일 뿐인데, 사람들을 꾀고 홀려서 허수아비로 세운단다.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짓는 오늘을 잊은 채 우두머리를 쳐다보며 하루가 지나가. 네 눈길이 가는 곳에는 네 꿈씨앗이 자랄 틈이 있을까? 네가 숨을 불어넣어야 씨앗이 깨어난단다. 배기가스는 씨앗숨을 다 가로막아서 죽이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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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협회 2024.8.1.나무.



누구나 스스로 길을 내어 나아간단다. 가깝든 멀든 제 발로 걸어서 가지. 그래서 누구나 길손이면서 길잡이야. 누가 알려주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디디고 밟고 느끼면서 배우거든. 어렵거나 힘들거나 땀빼는 일이 없다는 꽃길만 걷는다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울까? 아마 매우 얕을 만해. 이 꽃길조차 가마에 몸을 맡긴 채 간다면, 어떤 꽃길인지 모를 테고, ‘꽃길이라는 터전’조차 모르게 마련이야. 가시밭길을 걷기에 안 나빠. 가시밭길이 눈앞에 있기에, “가시밭길에서 아프지 말라”고 다 걷어내거나 치우면 어찌 될까? 스스로 걷지 않은 가시밭길이라면, 남이 맡아 준 가시밭길이라면, 무엇을 알거나 배울까? 혼자 하기에는 버겁거나 힘들 만하다고 여겨서 모임(협회)을 꾸리곤 한단다. 한우물을 파거나 한길을 가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을 만하지. 모임이라고 한다면, “길을 가는 마음”을 함께 보고 살피고 느끼면서 “여러 눈썰미를 나눌” 적에 뜻이 있어. 그러나 숱한 모임(협회)은 ‘여러눈’이 아닌 ‘외눈’으로 기울기 일쑤이구나. 모일 적에는 모든 숨빛으로 새로 하나라는 길을 볼 적에 아름다울 텐데, 어쩐지 모임은 자꾸 닫아걸면서 끼리끼리 놀려고 하네. 어린이가 춤추고 놀도록 틔우는 자리여야 모임이야. 어린이가 실컷 말하고 노래하도록 여는 곳이어야 모임이야. 나이든 이들이 ‘자리’를 거머쥐고서 힘을 부리는 데라면, 허울은 모임이지만 속내로는 담벼락이지. 갈수록 여기저기에 ‘협회’라는 허울이 늘어나는구나. 여러 사람이 여러 목소리를 고루 내면서 여러 길을 고루 살피는 눈을 찾아보기 어렵네. “모여서 살아가는 길”을 어우르려는 마음을 잊은 탓이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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