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35


 봄단비


  봄에 오는 비라면 ‘봄비’입니다. 한동안 가물다가 반가이 내리는 비라면 ‘단비’입니다. 그러면 여름에 내리는 비라면? 가을이나 겨울에 내리는 비라면? 이때에는 ‘여름비·가을비·겨울비’가 될 테지요. 여기에서 더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봄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면?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면?


  사전에는 ‘봄비’부터 ‘겨울비’까지 싣습니다. ‘단비’도 싣지요. 그러나 봄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가리킬 ‘봄단비’는 없습니다. ‘여름단비·가을단비·겨울단비’도 없어요.


  사전에 꼭 ‘봄단비’나 ‘겨울단비’를 실어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어요. 아직 사전에 안 실렸어도 봄에 맞이하는 단비를 가리킬 ‘봄단비’를 누구나 생각해 내거나 지어서 써 볼 수 있습니다.


  사전에 ‘꽃비’가 나옵니다. 꽃잎이 마치 비처럼 내린다고 할 적에 씁니다. 그렇다면 봄에 꽃비를 만나면 ‘봄꽃비’라 하면 되겠지요. 여름에는 ‘여름꽃비’라 하면 될 테고요. 가을이면 잎이 져요. 가을에 잎이 지는 모습이 마치 비가 오는 느낌이라면 어떻게 가리키면 좋을까요? 네, 사전에 없습니다만 ‘잎비’라 하면 되어요. 가을에 ‘가을잎비’를, 겨울에 ‘겨울잎비’를 말할 수 있습니다.


  말은 누구나 짓습니다. 즐겁게 지어요. 말은 누구나 씁니다. 기쁘게 써요. 틀에 얽매이지 않기에 즐겁게 짓고, 틀에 갇히지 않기에 기쁘게 씁니다. 봄에 꽃지짐이나 꽃떡을 먹는다면 ‘봄꽃지짐’이나 ‘봄꽃떡’입니다. 가을꽃을 잘 말려서 차로 끓여 마시면 ‘가을꽃차’나 ‘가을꽃물’입니다. 여름에 찾아오는 손님은 ‘여름손·여름손님’이요, 겨울에 누리는 마실은 ‘겨울마실·겨울나들이’예요.


  살아가는 결을 살펴 말 한 마디를 새롭게 짓습니다. 살림하는 결을 헤아려 말 한 마디를 곱게 나눕니다. 동무가 쓰는 말이 봄꽃처럼 곱구나 싶으면 “넌 ‘봄꽃말’을 하네.” 하며 웃을 만합니다. ‘여름바람말·가을잎말·겨울눈말’을 그려 봅니다. 2018.4.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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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4


 삶터


  우리 삶터를 돌아보면 어수룩하거나 모자란 대목을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날하고 견줄 수 없이 나아지거나 발돋움한 대목도 참 쉽게 찾아볼 만해요.


  어느 모로 보면 아직 아쉽지만, 어느 모로 보면 앞으로 새로운 길을 열 만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우리가 즐겁게 나아갈 길이란 언제나 기쁨으로 새로 짓는 길이라고. 우리가 아름답게 걸어갈 길이란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웃음꽃을 터뜨리는 길이라고.


  저는 으레 말을 새로 짓습니다. 그러나 아예 없던 말을 감쪽같이 지어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을 이리 엮거나 저리 맞추면서 새로 지어요. 아주 낯선 새말은 짓지 못하고, 수수하거나 쉬운 말을 새로 짓습니다.


  제가 짓는 말은 제가 처음으로 짓기도 하지만, 둘레에서 예전에 일찌감치 지어서 더러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하고 이웃님하고 무엇이 다른가 하면, 저는 제가 새로 지었든 이웃님이 새로 지었든, 이 낱말이 알맞고 아름답구나 싶으면 신나게 써요. 손이며 입이며 눈이며 머리에 익도록 신바람을 내면서 씁니다.


  ‘삶터’라는 말을 진작에 지어서 쓴 이웃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어요. 널리 퍼뜨리지 못했어요. 저는 ‘삶터’라는 낱말이 참 마음에 들면서도 한동안 쓰임새를 못 넓히다가 이즈막에 들어서 새 쓰임새를 찾아냅니다. 바로 ‘사회(社會)’라는 일본 한자말을 ‘삶터’로 담아낼 만하구나 싶더군요.


  일본 지식인은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면서 갖은 머리를 짜내고 온갖 슬기를 모두어 새 낱말을 지었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머리를 맞대어 슬기롭게 새말을 지을 만합니다. 굳이 ‘사회’라는 일본 한자말을 더 써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라는 한자말을 그냥 더 쓸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삶에 따라 말이 바뀌고 넋이 거듭나며 사랑이 새로 솟아요. ‘삶터’를 새삼스레 쓰며 ‘삶자리·살림터·삶마당·살림판’ 같은 낱말도 혀에 얹습니다. 2018.3.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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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3


 자는 게 취미


  그림책을 읽다가 “그러고 보니 사자가 낮잠 자는 게 취미라고 농담했었지”라는 글월을 보았어요.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멈칫합니다. 그대로 읽는들 못 알아듣겠네 싶어, “그러고 보니 사자가 낮잠을 즐긴다고 웃기는 말을 했지”로 고쳐서 읽어 줍니다. “그러고 보니 사자가 낮잠을 좋아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로도 고쳐 봅니다.


  “낮잠 자는 게 취미라고 농담했었지”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어른들이 쉽게 쓸 뿐입니다. 그러나 그림책에 이런 글월을 넣어야 했을는지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이제 이런 말씨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노릇이지 싶어요.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알뜰한 줄거리랑 사랑스러운 이야기뿐 아리나 즐거운 말을 익히거든요.


  어떻게 말할 적에 즐거울까요? 낱말을 어떻게 가려서 쓸 적에 우리 마음을 제대로 담아낼까요? 우리는 말을 어느 만큼 가다듬을 수 있을까요? 흔히 쓰는 말 한 마디에 얼마나 마음을 기울여 사랑을 쏟을 만한가요?


  익숙한 대로 쓸 수 있으나,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아름답게 자리잡은 말씨를 넉넉히 쓸 수 있고, 앞으로 아름답게 자리잡을 말을 살펴서 쓸 수 있어요. “독서하는 게 취미야”가 아닌 “책을 좋아해”나 “책을 즐겨 읽어”나 “책읽기를 즐겨”라 할 수 있습니다. “요리하는 게 취미야”가 아닌 “밥을 좋아해”나 “밥하기를 즐겨”나 “밥을 즐겁게 지어”라 할 수 있어요.


  말끝 하나를 바꾸어 말결을 새롭게 가꿉니다. 말씨 하나를 손보아 말마디에 새옷을 입힙니다.


  가만히 헤아려 봐요. 우리는 “먹는 게 취미야”나 “노래하는 게 취미야” 같은 일본 말씨+번역 말씨가 아니어도, “먹기를 좋아해”나 “노래를 좋아해”처럼 수수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새 말씨도 지을 만합니다. “나는 밥님이야”라든지 “난 맛밥을 즐겨”처럼. “나는 노래 즐김이야”라든지 “나는 노래꽃님이야”처럼. 2018.3.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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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2


 다솜


  ‘다솜’이라는 이름을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1970년대부터 ‘다솜’이라는 이름을 아이한테 붙이는 분이 나타났지 싶고, 1950∼1960년대에도 이 말을 아이한테 붙였을 수 있고, 더 먼 옛날에도 즐거이 썼을 수 있어요.


  2018년에 이르도록 국립국어원 사전에는 ‘다솜’이라는 낱말이 없습니다. 국립국어원 일꾼은 ‘다솜’을 구태여 사전에 올려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낱말을 매우 즐거우면서 기쁘게 써요. 생각해 보셔요. 아이한테 붙이는 이름으로 ‘다솜’을 쓴다면, 이 말을 얼마나 사랑한다는 뜻입니까.


  아이한테 ‘사랑’이란 이름을 붙이는 어버이도 많지요. ‘다솜·사랑’, 두 낱말은 한 뜻입니다. ‘다솜’은 사랑을 가리키는 옛말이라고도 해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다시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참말로 ‘다솜’이 옛말일까요? 오늘날 사전에조차 오르지 않는 그저 아스라한 옛말일까요? 아직 말밑이 어렴풋하니 사전 올림말로 다루기에는 엉성하다고 여기면 될까요?


  모든 말은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씁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 쓰지 않는 말은 바로 죽습니다. 쓰지 않으니까 죽어요. 쓰니까 삽니다. 쓰기 때문에 살아나지요. ‘쓰는 말 = 오늘말’입니다. ‘안 쓰는 말 = 죽은말’이에요.


  오늘날 ‘다솜’은 사람이름뿐 아니라 가게이름이나 집이름으로 널리 씁니다. 물건에도 이 낱말을 이름으로 붙입니다. 이 낱말을 혀에 얹어서 말할 적마다 마음 가득 즐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기에 오늘 이곳에서 널리 써요. ‘사랑’ 한 가지만 써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다솜’이란 낱말을 굳이 오늘날 새롭게 쓰려고 하는 마음이란, 사랑을 더 깊고 넓게 살피고픈 마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즐겁게 짓는 삶을 더 사랑스레 바라보고, 날마다 기쁘게 돌아보려는 뜻일 수 있어요. 머잖아 ‘다솜’뿐 아니라 ‘다솜하다’나 ‘다솜벗·다솜이웃·다솜님·다솜놀이·다솜노래·다솜꿈·다솜말·다솜잔치·다솜마을’처럼 갖가지 사랑스러운 말을 새롭게 쓸 수도 있지요. 2018.3.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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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1


 그럴듯하다


  그렇다고 여길 만할 적에 ‘그럴듯하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다고 여길 만하거나 저렇다고 여길 만할 적에는 어떻게 나타낼까요? 입으로 말할 적에는 ‘이럴듯하다·저럴듯하다’처럼 나타내겠지만, 손으로 적는 글에서는 ‘이럴 듯하다·저럴 듯하다’처럼 띄어야 맞춤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곰곰이 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말할 적에 띄어쓰기는 거의 안 따집니다. 느낌이나 결을 살필 뿐입니다. 그리고 새말을 하나 지었다면 그 낱말 하나만 새롭게 ‘붙여서 쓸’ 노릇이 아니라, 비슷한 얼거리인 다른 낱말을 함께 헤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국립국어원은 꽤 오랫동안 ‘신나다’를 한 낱말로 안 받아들여서 ‘신 나다’처럼 적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립국어원에서 ‘신나다’를 한 낱말로 받아들여 사전에 올렸습니다. 다만 ‘신나다’는 올림말이 되었습니다만, 비슷한 얼거리인 ‘신명·신바람’은 아직 ‘신명나다·신바람나다’처럼 쓰면 맞춤법에 어긋난다고 하더군요. ‘어깻바람’도 ‘어깻바람나다’처럼 쓰면 안 된다고 하고요.


  오래지 않아 ‘신명나다·신바람나다·어깻바람나다’도 올림말이 되리라 여깁니다. 되어야지요. 그러나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학자는 으레 낱말 하나만 볼 뿐, 낱말 하나하고 비슷한 얼거리로 묶을 수 있는 여러 낱말을 살피지 못해요. 처음부터 비슷한말을 한묶음으로 슬기롭게 다루지 못한다고 할까요.


  ‘그럴듯하다’라는 낱말을 살피면 ‘-듯하다’를 붙여서 새롭게 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터질듯하다·미칠듯하다·죽을듯하다’는 새말이 될 만합니다. ‘알듯하다·볼듯하다·살듯하다’도 새말로 삼을 만하지요. 맞춤법으로는 ‘듯하다·듯싶다’를 앞말하고 띄도록 다루지만 ‘-듯하다·-듯싶다’로 다루면 온갖 자리에 한결 알맞게 새말을 지어서 우리 느낌이며 생각을 나타낼 만합니다. 2018.3.2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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