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70. 맛있는 고무신



  큰아이는 고무신 꿰기를 즐깁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고무신을 꿰고 함께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큰아이는 고무신이 즐겁습니다. 신거나 벗기에도 수월하고, 빨아서 곧 말릴 수 있어서 발가락이며 발바닥이 아주 상큼해 합니다. 그런데 시골 면소재지나 읍내만 하더라도 고무신을 꿴 어버이와 아이를 보는 사람들이 ‘요즘 시대에 뭔 고무신?’ 하면서 묻기 일쑤입니다. 시골에서조차 고무신은 신을 만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마당 한쪽 밭자락에서 까마중을 훑는 아이는 하얗게 눈부신 고무신 차림새입니다. 가랑잎이며 풀줄기며 까마중 까만 알이며 하얀 신이며 꽃치마이며 모두 곱습니다. 4348.10.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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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9. 가을날 시골아이



  가을날에 가을볕을 쐬면서 가을들을 걷습니다. 큰아이는 다섯 살 언저리에 저만치 앞장서서 달려가면서도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한 데에 있었는데, 작은아이는 저만치 앞장서서 달려가다가 내 눈에서 사라져서 도무지 안 보이는 데까지도 신나게 그냥 달립니다. 층층논으로 이루어진 논둑길을 꺾어서 달리는 작은아이는 내가 미처 좇아갈 틈조차 주지 않고 사라지려 합니다. 오른무릎을 다쳐서 천천히 걸어야 하는 나로서는 작은아이 꽁무니를 좇기도 벅찹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몸이요 하루이기에 작은아이가 층층논 사이로 사라지려는 모습을 아스라이 바라봅니다. 사진 한 장 고맙게 찍습니다.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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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8. 마지막 사진이 될 뻔하다



  백 날 동안 꽃이 차근차근 피고 진다고 하는 배롱나무입니다. 배롱나무는 꽃송이를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고 그야말로 천천히 터뜨리지만, 여름이 저물면서 살그마니 가을빛이 퍼지려고 하는 때에 발그스레한 꽃빛이랑 살며시 노랗게 물들려는 들빛이 곱게 어우러집니다. 이무렵 이 빛물결이 사랑스러워 으레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다녀요. 그런데 이 사진을 찍은 9월 2일,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둑길을 달리며 들내음을 맡으려 하다가 그만 물이끼를 밟고 미끄러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다음 일은 알 수 없어요. 아늑한 사진을 찍고 나서 며칠 동안 사진기는커녕 숟가락조차 못 쥐고 드러누워 앓았으니까요. 자칫하면 내 마지막 사진이 될 뻔했습니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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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7. 밥상맡


  날마다 차리는 밥은 날마다 먹는 밥입니다. 날마다 먹는 밥에는 오늘 하루도 새롭게 기운을 내어 즐겁게 새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숨결을 담습니다. 배가 고파서 먹는 밥이기도 하면서, 몸을 살찌우려고 먹는 밥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밥그릇을 새로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버이는 날마다 밥그릇을 새로 내어주면서 마음을 북돋우지요. 오늘은 어떤 밥으로 하루를 열고 닫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밥 한 그릇에 어떤 사랑을 실어서 함께 웃고 노래하는 살림이 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밥상맡에서는 ‘밥 이야기’가 있고 ‘밥 노래’가 있으며 ‘밥 사진’이 있습니다. 4348.10.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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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6. 서로 나란하게 다른



  두 아이는 함께 섞여서 놀다가도 따로 떨어져서 놉니다. 두 아이는 한 가지 책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놀다가도 저마다 다른 책을 집어서 펼치면서 놉니다. 두 아이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로 놀다가도, 저마다 마음에 드는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집고는 나란히 앉아서 조용하게 책을 읽기도 합니다. 같은 어버이한테서 태어나도 다른 숨결입니다. 서로 다른 숨결이지만 똑같이 사랑스러운 숨결입니다. 서로 다른 책을 쥐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맞아들이지만, 놀이와 삶과 사랑이라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나는 늘 두 아이 사이에서, 이러면서 두 아이랑 함께 사진놀이를 합니다. 4348.10.1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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