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곁말 101 물고물리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잇다’라 하면 될 텐데, 굳이 다른 삶을 빗대어 말을 엮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다”를 줄이면 “물고 물리다”나 “물리고 물다”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으나 ‘물고물리다’나 ‘물리고물다’처럼 붙여 봅니다. 한 낱말로 쓸 수 있고, 한 낱말이 어울리지 싶어요. 어느 날 어느 삶에서 문득 깨어난 새말이거든요. 이와 비슷하게 “돌고 돌다”가 있는데 굳이 띄기보다는 ‘돌고돌다’처럼 한 낱말로 삼을 적에 쓰기에도 낫고 뜻이 확 들어올 만해요. 쓰임새를 넓히면서 살릴 적에 즐거워요. 쓰임결을 새로 찾으면서 나눌 적에 넉넉합니다. ‘물고물리는’ 일이란 싸움·다툼·겨룸·얽힘이란 자리에 곧잘 쓰는데, “물고물리듯 떠오르는 생각”처럼 써도 어울려요. 궂거나 기쁜 일은 ‘돌고돌게’ 마련이기에 섣불리 나서기보다는 차분히 둘레를 바라볼 줄 알 적에 아늑하지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기에 ‘오가다’예요.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기에 ‘주고받다’예요. 이어가는 말씨인 ‘-고’로 새말을 차곡차곡 잇습니다. 너랑 내가 서로 만나는 길에 ‘-고’를 넣습니다. 생각하고 그리고 쓰고 나누고 얘기하고 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노래하고 춤춥니다. 하고많은 꿈을 고이 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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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물리다 (물다 + -고 + 물리다) : 1. 서로 붙거나 겨루거나 다투거나 싸우기를 이어가다. 2. 서로 붙거나 닿거나 이어가다. 3. 서로 힘이 비슷하여 어느 쪽이 쉽게 이기거나 지지 않아, 서로 때리고 받기를 이어가다. (= 물리고물다. ← 접전, 용호상박, 새옹지마, 치열, 맹렬, 격돌, 격전, 신경전, 공방攻防, 난전亂戰, 박빙, 생존경쟁, 경쟁, 각축전, 난타전, 승강昇降, 일진일퇴, 쟁탈전, 혈전血戰, 혈투血鬪)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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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곁말 100 하늘수레



  꼭대기에 발을 디뎌야 멧길을 탔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멧자락을 휘감는 들숲을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만나지 않고서 꼭대기만 오가는 발걸음은, 서울하고 큰고장 사이에 빠른길(고속도로)을 척 놓고서 씽씽 다니는 몸짓하고 닮습니다. 이른바 서울·부산이나 서울·광주를 빠르게 오가는 씽씽길을 달리자면, 이 사이에 마을이 있는지 들숲바다가 있는지 하나도 몰라요. 얼핏 스치기는 하더라도 그저 먼발치 구경거리입니다. 밑자락부터 멧꼭대기를 잇는 ‘하늘수레’는 얼핏 어느 멧자락을 사람들이 쉽게 누리도록 이바지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 하늘수레를 놓느라 멧자락도 숲도 망가뜨려요. 더구나 사람들 스스로 멧숲을 누리기보다는 살짝 구경하고 지나치기만 하는 셈이니, 멧노래도 멧바람도 멧빛도 찬찬히 품지 않지요. 천천히 걷거나 오르는 길이 나쁠까요? 걷거나 오르다가 지치면 도로 내려가도 되지 않을까요? 굳이 꼭대기를 밟아야 한다는 마음은 이 땅을 푸르게 아끼거나 돌보려는 마음하고 너무 멀어요. 하늘수레가 오가면 쇠줄에 매단 쇳덩이가 오가느라 시끄럽기에 멧새가 어떤 노랫가락으로 멧골을 어루만지는가를 하나도 못 느낍니다. 멧꽃을 만나고 멧풀하고 사귀려면 발바닥으로 흙빛을 느끼며 걸을 노릇이에요.


하늘수레 (하늘 + 수레) : 하늘을 가로지르며 오가도록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싣는 수레. 사람이 걸어서 오가기에 어렵거나 힘든 곳, 이를테면 벼랑이나 골짜기나 긴 냇물 사이를 쇠줄로 단단하게 이어서, 이곳하고 저곳 사이를 쉽고 가볍게 오가거나 짐을 옮길 수 있도록 마련한 수레. (←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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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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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99 큰미르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이름을 부르거나 듣는 느낌이 다릅니다.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가리키는 대로 공룡은 ‘공룡’이라 여겼는데,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들한테 ‘공룡’이라는 말을 쓰자니 어쩐지 거북하더군요. ‘恐龍’처럼 적는 한자 이름은 우리가 안 지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지은 한자말을 예전 사람들이 그냥 따왔을 뿐입니다. 한자를 뜯으면 ‘恐龍 = 두려움(무서움) + 미르’입니다. ‘미르’는 ‘믿다·미다’하고 ‘마루’가 얽힌 낱말로, 커다랗거나 높으면서 힘을 크거나 세게 부리는 숨결을 가리킵니다. 곰곰이 보면 ‘미르’라고만 해도 ‘공룡’이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을 담아낼 만합니다. 다만, 이렇게 쓸 적에는 우리가 헤아리는 ‘미르(용)’하고 섞일 만하니, 따로 ‘큰미르’라 할 만하고, ‘땅미르·하늘미르’처럼 가를 수 있습니다. 이름에 아예 두렵거나 무섭다는 뜻을 담으면, 함께 이 땅에서 살던 이웃을 얄궂거나 나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덩치가 커다랗기에 두렵거나 무서울까요? 처음부터 우리 스스로 두렵거나 무섭다는 마음을 심은 바람에 그야말로 두렵거나 무서울 뿐 아닐까요? 모든 말은 씨앗입니다. 모든 말대로 마음이 흐르고 바뀌며 나아갑니다.


큰미르 (크다 + ㄴ + 미르) (= 큰이·땅미르·우람미르·우람이. ← 공룡恐龍) : 1. 몸이나 덩치가 큰 미르. 지난날 이 땅에서 살다가 어느 때에 모두 사라졌다. 2. 겉으로 드러나는 길이·넓이·높이·부피·무게 같은 모습·몸이 여느 것·다른 것보다 더 되거나 더 있거나 넘을 적에 빗대는 말.


하늘미르 (하늘 + 미르) : 하늘을 나는 미르. 지난날 이 땅에서 살다가 큰미르(공룡)와 함께 어느 때에 모두 사라졌다. (= 날개미르·나래미르. ← 익룡翼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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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98 바람꽃



  열 살 언저리에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적 있습니다. 쉽게 앓고 힘이 여리고 언니하고 대면 못하는 투성이에 날마다 꾸중을 듣다 보니, “난 아무것도 못 하나 봐. 그렇지만 나처럼 못 하는 아이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하늘을 날면 좋을 텐데.” 하고 혼자서 생각하는 나날이었어요. 요즈음은 바람종이(연鳶)를 하늘에 띄워 노는 아이가 드물 텐데, 제가 어릴 적에는 바람이 센 날이면 골목이며 빈터마다 바람종이를 챙겨서 나온 아이가 많았어요. 회오리바람이 씽씽 부는 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바깥을 다녀오다가 이 바람이 저를 와락 품고는 하늘로 휙 올리더군요. “아!” 발이 땅에서 가볍게 떨어지면서 하늘로 오르니 대단히 신났는데, 덜컥 두렵더군요. “날았다가 어떻게 내려오지? 안 떨어지나?” 이때 회오리바람은 “두렵니? 두려우면 다시 내릴게.” 하고 속삭이더니 천천히 땅바닥으로 내려주었어요. 풀꽃나무는 바람을 반기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우리는 즐겁게 바람을 타면서 일을 하거나 놀이를 찾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타는 새처럼 홀가분히 온누리를 누비는 사람이 있어요. 바람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바람꽃을 타다가 바람꽃 같은 동무를 만나서 함께 바람놀이를 즐깁니다. 이 바람은 모두를 보드라이 살리는 기운입니다.


바람꽃 (바람 + 꽃) : 1. 꽃가루를 바람으로 옮겨서 받는 꽃. 수술에 있는 꽃가루를 바람으로 옮겨서 암술로 받는 꽃. (= 바람받이꽃) 2. 움직이거나 흐르거나 일어나거나 생기도록 하는 기운. (= 바람) 3. 어느 곳에 오래 머무르거나 뿌리내리지 않고서, 마치 바람처럼 가볍게 어디로든 다니면서 삶·살림·사랑을 짓는 들꽃 같은 사람. (= 바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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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97 검흙



  사람은 흙을 일구어 논밭을 누릴 수 있지만, 사람 손힘으로 ‘검흙’을 짓지 못 합니다. 풀벌레가 잎을 갉으면서 똥을 누어야 하고, 지렁이랑 쥐며느리를 비롯한 작은목숨이 부스러기나 찌쩌기나 주검을 조각조각 갉아서 똥을 누어야, 시나브로 ‘깜흙’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심은 푸성귀만 있는 밭이라면 흙빛이 누렇거나 허옇게 마련입니다. 푸성귀 곁에 온갖 들풀이 어우러지면, 이때에는 풀벌레나 잎벌레도 딱정벌레도 노린재도 깃들 수 있고, 벌나비가 찾아들 만하고, 지렁이가 숨쉴 만하면서, 매미로 깨어나기 앞서 기나긴 해를 꿈꾸는 굼벵이도 함께 살아갈 만하니, 이러한 자리에서는 흙빛이 까무잡잡합니다. ‘까만흙’은 싱그럽습니다. 살아숨쉬는 흙빛은 검어요. 햇볕에 살갗이 타면서 까무잡잡한 아이들은 언제나 튼튼하면서 밝게 웃고 뛰놉니다. 햇볕을 온몸으로 머금으며 일하느라 살깣이 까만 어른들은 늘 어질고 참하게 살림을 건사하면서 기쁘고 새롭게 아이를 마주합니다. 어느덧 ‘검정흙’인 밭이 사라지고, 잿빛이 가득하면서 부릉부릉 시끄럽고 매캐한 나라로 바뀌는데, 이제부터 새삼스레 ‘검은흙’인 숲누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요. 구수하면서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흙은 까맣습니다. 모두 살아가는 땅은 넉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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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흙 (검다 + 흙) : 검거나 까무잡잡한 빛깔로 살아숨쉬는 흙. 주검·부스러기·찌꺼기·풀잎·나뭇잎·가랑잎·열매를 비롯한 숨결이 몸을 내려놓고서 흩어질 적에 지렁이·쥐며느리·작은목숨이 갉거나 걸러서 새롭게 태어나면서 검거나 까무잡잡한 빛깔이 되는 흙. (= 검은흙·검정흙·까만흙·깜흙. ← 부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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