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곁노래

곁말 4 삶맛



  지난 2004년에 〈The Taste Of Tea〉라는 영화가 나왔고, 우리말로는 “녹차의 맛”으로 옮겼습니다. 아이들을 맞이하기 앞서 만났고, 아이들을 맞이하고서 이따금 이 영화를 함께 보았어요. 줄거리를 간추리자면 딱히 없다 싶으나, 다 다른 한집안이 다 다르면서 스스로 즐겁게 삶이라는 꽃을 피우는 길을 수수하면서 새롭게 숲빛으로 나아간다고 풀어낼 만합니다. 일본사람은 말을 할 적에 ‘の’가 없으면 막힙니다. 이와 달리 우리는 ‘-의’가 없대서 말이 안 막혀요. 저는 ‘-의’ 없이 서른 해 즈음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만, 여태 막힌 일이 아예 없습니다. 글살림이 널리 안 퍼지던 지난날, 그러니까 누구나 손수 살림을 짓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며 숲살림으로 보금자리를 가꾸던 무렵에도 우리말에 ‘-의’는 아예 없다고 여겨도 될 만한 말씨였어요. 영화를 우리말스럽게 옮긴다면 ‘차맛’나 ‘녹차맛’입니다. 이웃님 한 분이 뜻깊에 읽은 책에서 “삶의 맛을 알 수 있어”에 밑줄을 죽 그으면서 되새기셨다고 해서 곰곰이 생각했어요. 영어를 옮긴 이 글자락은 “삶이 어떠한가 맛볼 수 있어”나 “삶을 맛보며 알 수 있어”로 손질할 만합니다. 우리로서는 “삶의 맛”이 아닌 ‘삶맛’입니다. 삶멋·삶길·삶꿈·삶글·삶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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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맛 (삶 + 맛) : 삶에서 누리거나 느끼거나 나누는 맛. 오늘을 살거나 하루를 살면서 새롭게 겪거나 마주하거나 배우거나 알아차리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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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1.10.14.

곁말 3 난날노래



  서른 몇 살 무렵부터 ‘난날’을 세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느 하루만 난날이 아니라고 느꼈고, 한 해 모든 날이 새롭게 난날이자 ‘빛날’이고 ‘온날’이며 ‘사랑날’이라고 생각했어요. 둘레에서는 난날을 맞이해 영어 노래인 “Happy Birthday to You”를 “생일 축하합니다”로 바꾸어서 부르곤 하지만 이 노래도 영 마음에 안 들어요. 판박이요, 어린이는 ‘축하(祝賀)’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왜 어린이가 못 알아들을 말을 노래로 불러야 할까요? 저는 ‘난날노래’를 안 부르지만, 둘레 어린이한테 노래를 불러야 할 일이 있다면 “기쁘게 온 날, 반갑게 온 날, 사랑스레 온 날, 고맙게 온 날.”처럼 부르자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왔고, 반갑게 왔네. 사랑스런 ○○○, 고맙고 기뻐.”처럼 부를 수도 있어요. 모든 말은 스스로 쓰면서 둘레에 빛이나 어둠을 퍼뜨려요. 한결 어울리는 말은 즐겁게 생각하면 어느 날 문득 나타난다고 느낍니다. 난날노래를 부를 적에도 그때마다 다르게 손보면서 다 다른 우리 아이들하고 이웃하고 동무를 헤아리면 새롭게 말과 넋과 삶이 빛나리라 봅니다. 어린이하고 눈을 마주보면서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려는 마음이라면, 이렇게 태어난 말은 어른 삶터에서도 눈부시게 피어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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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쁘게 온 날, 반갑게 온 날, 사랑스레 온 날, 고맙게 온 날.

- 즐겁게 왔고, 반갑게 왔네. 사랑스런 ○○○, 고맙고 기뻐.

- 별에서 왔지. 꽃에서 왔네. 아름다운 ○○○, 기쁘게 왔어.

- 신나게 웃자. 노래하며 놀자. ○○○가 태어난, 고마운 오늘.

- 별처럼 노래해. 꽃처럼 춤을 춰. ○○○가 태어난, 기쁜 오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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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1.10.12.

곁말 2 늘꽃



  구경하면 재미없습니다. 엉성하더라도 스스로 할 적에 재미있습니다. 높일 까닭도 낮출 까닭도 없습니다. 수수하게 있는 오늘이 그대로 아름답기에 서로 동무요 이웃으로 지내고, 이웃이나 동무이니 굳이 거룩하거나 이쁘장해야 하지 않아요. 아이는 아이대로 놀고, 어른은 어른대로 일합니다. 바깥일을 하느라 아침에 열한 살 작은아이하고 헤어지고서 저녁에 다시 만나는데, 아이가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하면서 저를 폭 안습니다. 아이 등을 토닥토닥하면서 “우리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으로 함께 있어.” 하고 들려줍니다. 우리는 늘 서로 그립니다. 우리는 늘 서로 생각하며 마음에 담습니다. 우리는 늘 서로 꽃이며 나무이자 숲입니다. 늘꽃이자 늘나무요 늘숲으로 어우러지면서 저마다 즐겁게 놀거나 일합니다. 글은 어떻게 쓰고 그림은 어떻게 그리며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저는 늘 스스로 집에서 부엌일·비질·걸레질·빨래를 도맡아서 하고, 아이들이 한참 어릴 적에는 똥오줌기저귀를 갈고 삶고 씻기고 입히고 놀면서 보내다가 쪽틈에 글을 쓰고, 이 아이들이 자라나는 하루를 사진으로 담고, 아이들하고 붓을 쥐고서 그림을 그렸어요. “살림하고 사랑하는 수수한 눈빛”으로 하면 늘 빛나는 오늘을 누립니다.


늘꽃 (늘 + 꽃) : 늘 꽃으로 있는 숨결. 언제 어디에서나 곱고 밝으며 싱그럽게 피어나는 꽃 같은 숨결. 한결같이 빛나는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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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1.10.11.

곁말 1 온눈



  하루에 한 낱말씩 바꾸기도 안 나쁘지만, “늘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눈빛”으로 즐겁게 살림수다·숲수다를 편다는 마음이 되어, 생각이 꿈을 사랑으로 펴는 길로 차근차근 나아가면 넉넉해요. 한글은 대단하지 않아요. 우리가 스스로 즐겁고 푸르게 지어서 노래하고 춤추며 함께 일하고 노는 수수한 하루를 그리는 말이면 저마다 다른 사투리처럼 다 다르게 빛나지 싶어요. 좋거나 바른 낱말을 안 찾아도 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말씨(말씨앗)를 헤아려서 찾고, 스스로 꿈꾸는 마음을 펼치는 글씨(글씨앗)를 신바람으로 살펴서 품으면, 우리말(우리가 쓰는 말)은 늘 별빛으로 흘러서 포근하더군요. 마음씨(마음씨앗)를 돌보면서 가꾸는 밑자락이 될 낱말 하나이기에, 오늘 하루를 “노래하는 놀이”로 누리면 아침노을 같은 말이 태어나고 저녁노을 같은 말이 피어나다가 바다물결 같은 말이 싱그러이 자란다고 느껴요. 우리는 누구나 하늘빛을 품은 아기로 이 별에 칮아와서 큰 사람이니, 문득 ‘온눈’으로 무지개를 그리는 사이에, 생각을 틔우고 눈귀를 열면서 초롱초롱 몸짓으로 하하호호 이야기 짓는 숨결로 어우러질 테지요. 가을빛이 깊어 가는 새벽입니다. 풀벌레는 풀밭에서 부드러이 노래를 들려줍니다.


온눈(온 + 눈) : 온누리를 오롯이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아는 눈. 트인 눈. 열어 놓은 눈. 이른바 ‘개안(開眼)’이나 ‘제3의 눈’이라 할 만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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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1.10.11.

곁말 0 곁말



  곁에 있는 사람은 곁사람입니다. 곁에 있으며 서로 아끼는 사이는 곁님이요 곁씨입니다. 곁에 있는 아이는 곁아이요, 곁에 있는 어른은 곁어른이에요. “곁에 있을” 적하고 “옆에 있을” 적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곁에 둘” 적하고 “옆에 둘” 적도 비슷하지만 달라요. ‘곁·옆’은 우리가 있는 자리하고 맞닿는다고 할 만하기에, 가깝다고 할 적에 쓰는 낱말인데, ‘곁’은 몸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만나도록 흐르는 사이를 나타낸다고 할 만해요. 그렇다면 우리 곁에 어떤 말이나 글을 놓으면서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새롭거나 사랑스럽거나 빛날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곁말이나 곁글로 마음을 다스리거나 생각을 추스르면서 참하고 착하며 고운 숨빛으로 하루를 짓고 살림을 누릴까요? 곁말을 그립니다. 늘 곁에 두면서 마음을 가꾸도록 징검다리가 될 말을 헤아립니다. 곁말을 생각합니다. 언제나 곁에서 맴돌며 사랑을 빛내도록 이음돌이 될 글을 생각합니다.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곁개요 곁고양입니다. 곁짐승이에요. 곁에서 함께 숨쉬는 곁꽃이요 곁풀이며 곁나무입니다. 모든 보금자리에 곁숲이 있기를 바라요. 모든 마을에 곁빛이 드리우기를 바라요. 곁말을 한 땀씩 여미어 오늘을 돌아보는 곁책을 지어 봅니다.


곁말 (곁 + 말) : 곁에 두거나 놓으면서 늘 생각하는 말. 삶·살림·사랑을 가꾸거나 북돋우도록 마음을 북돋우는 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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