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곁말 54 손글씨



  이불이라면 손힘으로만 빨래하기 벅차 발힘을 보태었기에 ‘발빨래’라 할 만한데, 손으로건 발로건 그저 ‘빨래’라고만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손이 아닌 틀(기계)을 다루면서 ‘틀빨래(기계빨래)’를 하기에 따로 ‘손빨래’란 낱말이 태어납니다. 글살림도 오래도록 손수 붓을 쥐어 적었기에 굳이 ‘손글’이라 안 하고 ‘글’이라고만 했으나, 이제는 손으로 남기는 글은 ‘손글’이요 ‘손글씨’입니다. 요사이는 종이에 이름꽃(도장)을 굳이 안 찍어도 되어요. ‘서명·사인’을 하면 된다지요. 그런데 한자말 ‘서명’하고 영어 ‘사인’은 “손으로 글씨를 써 넣으라”는 뜻입니다. 아직 국립국어원 낱말책에는 안 오르지만 ‘손글·손글씨’라는 낱말을 쓰면 어린이부터 누구나 쉽게 알아들으면서 손빛을 밝히리라 생각합니다. 손으로 쓰거든요. 손빛을 살리는 글씨도 ‘손글’이라 하면 되어요. 글씨에 멋을 부리면 ‘멋글·멋글씨’일 테지요. 글씨가 꽃처럼 피어나도록 손길을 담아서 펼칠 적에는 ‘꽃글·꽃글씨’라 할 만하고 ‘꽃내음글·꽃바람글’처럼 꾸밈말을 넣을 만해요. 손으로 지을 적에는 투박하다고 하지만, 이 투박한 맛이 천천히 피어나는 다 다른 들꽃처럼 우리 곁에서 춤추는 들꽃글이요 들꽃글씨입니다.


손글씨 (손 + 글 + 씨) : 손으로 쓴 글이나 글씨.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나타내려고 손으로 쓴 글이나 글씨. 스스로 짓는 숨결을 손수 새롭게 담아내는 글이나 글씨. (= 손글·손빛글·손빛글씨·꽃글·꽃글씨·꽃글월·꽃내음글·꽃바람글·들빛글·들빛글씨·들꽃글·들꽃글씨. ← 캘리그래프, 수결手決, 수인手印, 서명署名, 사인sign, 수기手記, 필기, 필기체, 필사筆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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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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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곁말 53 빛줄기



  처음에는 모르니 그냥 쓰지만 곰곰이 생각합니다. 낯선 말을 들을 적에는 무슨 뜻이고 어떠한 결이며 어느 곳에 쓰는가를 살펴요. 귀로 들어온 낱말을 혀에 얹고서 곰곰이 생각하노라면, 이제 이 낯선 낱말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풀어내어 들려주어야 즐거이 넉넉히 새롭게 받아들일 만한가 하고 반짝반짝 머리가 빛납니다. 한자말 ‘신경세포’는 영어 ‘뉴런’을 일본사람이 옮긴 말씨입니다. 일본사람은 한자를 이모저모 엮어서 새말을 잘 지어요. 우리는 일본 한자말을 그냥그냥 써도 나쁘지 않습니다. 영어를 이냥저냥 써도 안 나빠요. 다만, 우리한테 우리말이 있다면 우리말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말로 새롭게 엮을 수 있을까요? 우리말로 즐겁게 풀어내어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나요? ‘신경세포·뉴런’이란 이름을 처음 들을 적에는 시큰둥했지만, 아이들이 문득 이 이름을 물어보면 “그래, 이제는 생각할 때로구나!” 하면서 온몸이 찌릿찌릿 울려요. 네, 그렇습니다. ‘빛이 짜르르 돌면’서 온몸이 일어나고 온마음이 출렁여요. ‘꽃줄기·물줄기·잎줄기’란 이름처럼, 우리 머리(뇌)에서 반짝이면서 여러 이야기(정보)를 실어나르거나 퍼뜨리기에 ‘빛줄기’예요. 다른 빛줄기하고 헷갈릴 만하면 ‘빛톨’이라 할 만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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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줄기 1 : 빛이 나거나 흐르거나 퍼지거나 뻗거나 이루는 줄기. 빛이 나거나 퍼질 적에 곧고 길게 생기는 환한 결. (= 빛살. ← 광선, 섬광, 플래시flash, 오라aura, 라이트light, 빔beam, 신호, 조명照明, 시그널, 서치라이트)


빛줄기 2 (빛 + 줄기) : 느끼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결을 빛으로 보내는 일을 맡는 작은 줄기. (= 빛톨. ← 신경세포神經細胞, 뉴런neuron)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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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2022.5.14.

곁말 52 봉긋님



  누리그물에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살피면, 우리말 ‘벙어리’에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 같은 붙임말이 있어요. 놀랐어요. 우리말이 따돌림말(차별어)이라니? 한자말 ‘청각장애인·언어장애인’은 따돌림말도 들볶음말도 돌림말도 괴롭힘말도 아니라 하는군요. 조선 무렵부터 불거진 ‘우리말을 깎아내리는 버릇’이 오늘날까지 짙게 남은 모습이로구나 싶습니다. ‘벙어리’는 따돌림말일 수 없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거나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킬 뿐인 우리말입니다. 우리말을 낮춤말로 여겨 깎아내리지 말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말이 태어난 밑바탕을 안 살핀 탓입니다. ‘벙어리(버워리)’는 ‘벙·버’가 뿌리이고, ‘벙긋·방긋’이며 ‘벗다’나 ‘바위·벅수’나 ‘봉오리·봉우리’에서 실마리를 찾을 만합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웃는 ‘벙긋’이요, 떼어서 없는 ‘벗다’요, 가만히 단단하게 있는 ‘바위·벅수’이고, 고요히 피어나려는 ‘봉오리’에, 바위가 겹겹이 크게 선 ‘봉우리’입니다. 이 모두를 품은 우리말 ‘벙어리’가 어찌 낮춤말일까요? 정 우리말을 깎겠다면, 오늘에 맞게 새말 ‘봉긋님·바위님’을 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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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긋님 (봉긋 + 님) : 소리를 내지 않거나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 피어나는 봉긋봉긋한 봉오리처럼, 고요하면서 맑게 숨빛을 품은 사람. (= 바위님. ← 청각장애인·언어장애인)


바위님 (바위 + 님) : 소리를 내지 않거나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 커다랗고 단단하게 삶터를 버티는 바위나 멧자락처럼, 넉넉하고 푸르게 숨빛을 품은 사람. (= 봉긋님. ← 청각장애인·언어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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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 2022.5.10.

곁말 51 집사람



  어릴 적부터 듣기에 거북한 말이 꽤 많았어요. 우리 아버지가 손님 앞에서 “우리 집사람이 …….” 하고 말할 적마다 “아버지, 어머니는 집에만 있는 사람이 아닌걸요? 어머니가 집살림을 꾸리려고 집밖일을 얼마나 많이 하시는데요?” 하고 따지고픈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거북하거든요. 요새야 아이가 어버이한테 이렇게 따지기 쉽다지만, 지난날에는 아이가 ‘사내 어른’ 앞에서 대꾸를 하거나 먼저 말하면 호되게 얻어맞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한또래로 자라는 마을순이도 밖이며 골목이며 배움터에서는 신나게 재잘재잘하지만 다들 집에만 가면 벙어리로 바뀌어요. 동무네에 놀러갔다가 “야, 너 이렇게 얌전한 아이였어? 집에서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네?” 했더니 옆구리를 힘껏 찌르더군요. 우두머리가 서며 사람들을 사슬에 가둘 적에는 입을 가리고 목을 죕니다. 우쭐사내(상남자)만 말을 늘어놓고 나머지는 고분고분 듣도록 하지요. 우리는 아직 어깨동무하는 살림하고 먼 터라, 우리가 쓰는 말부터 하나씩 제자리를 잡도록 추스를 일이라고 느껴요. 이 가운데 ‘집사람’은 “집을 이루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써야 맞다고 느낍니다. 집에만 있는 사람이 아닌, 집을 이루는 사람이기에 집사람인걸요.


집안사람 (집 + 안 + 사람) : 집에서 함께 살림을 하면서 사랑으로 맺어 살아가는 사람. 낳은 사이가 아닌 품은 사이에도, 같은 집에서 함께 살림을 하면서 사랑으로 맺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집안사람’을 줄여 ‘집사람’일 텐데, 일본말 ‘내자(內子)’를 엉성히 옮긴 뜻으로 ‘집사람(또는 아내)’을 쓴다면 알맞지 않다. 순이(가시내)는 집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고, 돌이(사내)하고 한집을 이루면서 함께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 집사람. ← 혈연, 혈통, 친척, 일족, 친족, 가족, 부양가족, 식구, 구성, 구성원, 성원成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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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곁말》 글손질을 하다가

문득 이 글을 썼다.

4쪽을 새로 채워야 하는데

이 글을 《곁말》에 보탤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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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곁말 50 그림잎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 길잡이(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며 글월(편지)을 자주 주고받았어요. 집전화조차 흔하지 않던 지난날에는, 손바닥만큼 작은 종이에 짤막히 알릴 이야기를 적어서 곧잘 띄웠어요. 우체국에서 “작은 종이”를 사서 부치기도 하지만, 두꺼운종이를 알맞게 자르고 그림을 척척 담아 날개꽃(우표)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작은 종이”는 ‘엽서’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쓰는 말을 곧이곧대로 외워서 썼는데, 저 스스로 어른이란 자리로 나아가는 동안 자꾸 생각해 보았어요. 가을이면 가랑잎을 주워 알맞게 말리고서 한두 마디나 한 줄쯤 적어서 동무한테 건네었어요. 이러다가 새삼스레 느껴요. “작은 종이”를 “잎에 적는 글”을 가리키듯 ‘잎(葉) + 글(書)’이란 얼개이니, 우리말로는 ‘잎글’이라 할 만하더군요. ‘잎쪽’이나 ‘잎종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잎글에 그림을 담으면 ‘그림잎글’입니다. 가랑잎이건 나뭇잎이건, 글을 슬며시 적어서 건네면 그야말로 ‘잎글월’인데, ‘잎글’에 날개꽃을 붙여 띄우듯, ‘그림잎글’이란 낱말에 날개를 달고 싶어요. 끝말 ‘-글’을 떼어 ‘그림잎’이라고 읊어 봅니다. 온누리 어느 곳이나 나무가 우거져 푸르기를 바라며 이야기 한 자락 띄우려 합니다.


그림잎 (그림 + 잎) : 한쪽에는 그림·빛꽃(사진)을 담고, 다른 한쪽에는 이야기를 적도록 꾸민 조그마한 종이로, 날개꽃(우표)을 붙여서 가볍게 띄운다. 나무가 맺는 잎이 바람·물결을 타고서 가볍게 멀리 나아가듯, 조그마한 종이에 그림·글·이야기를 엮어서 가볍게 띄우는 종이. (= 그림잎글 ← 그림엽서(-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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