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52. 지옥



나를 보고 우리 아이들을 보는 둘레 어른들은 하나부터 쉰 일흔 아흔까지 “학교를 안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해요? 대학교도 못 사고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요?” 하고 걱정한다. 나는 “우리나라는 참되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게 가르치는 길보다는 죽음수렁이 있잖아요? 배움수렁(입시지옥)은 어쩌지요?” 하고 되묻는다. 서로 아끼거나 돌보는 배움길이 아니라, 치고받거나 겨뤄야 하는 수렁을 걷어낼 생각은 없이 아이들을 그저 배움터에 몰아넣기만 해도 좋을까? 우리 집 두 아이는 “집에서 느긋하게 얼마든지 다 배워요. 우리는 우리가 배울 길을 스스로 생각해서 찾고 배워요.” 하고 말한다. 불구덩(지옥)은 왜 불구덩일까? 스스로 사랑인 줄 헤아리지 않은 채 치닫다가 굴러떨어지는 불구덩이지 싶다. 왜 궂거나 못되거나 나쁜 짓을 할까? 스스로 사랑이 없거나 아니기에 궂거나 못되거나 나쁘지 않을까? 우리가 모두 배우는 살림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배움나날이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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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51. 투덜



투덜대도 좋다. 토를 달아도 된다. 이래저래 새길을 밝히거나 말할 수 있지 않아도 좋다. 아니다 싶기에 아니라 말하고, 손사래치고 싶으니 손사래치면 된다. ‘비판을 하려면 대안을 말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이 있으나, 왜 꼭 누구나 ‘대안을 말하며 비판을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부터 느끼고 알아야 한다. 못마땅하거나 안 내키는가부터 헤아리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까지 모두 밝히지 못하더라도 마음·생각·느낌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홀가분히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보고 느끼고 안 다음에 차근차근 오래오래 살피기에 비로소 ‘새길(그러면 어떻게·대안)’을 가늠하거나 어림할 만하다. 새길은 바로 내놓아야 하지 않아. 새길은 하루 만에 뚝딱 내놓아야 하지 않아.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해이고 새길을 못 내놓고서 헤매도 좋고, 끝끝내 새길을 찾기 어렵다고 여겨 두 손을 들어도 된다.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면 삶이다. 뾰족하게 새길(대안·답·정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다그치거나 서두르지 말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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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50. 나이



아이를 어떻게 돌보거나 가르쳐야 좋을는지 모르겠다는 이웃님한테 “잘 모르겠으면 아이한테 물어보셔요.” 하고 이야기한다. “아니,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아이한테 묻는다고요?” 하고 되물으면 “아이가 바라는 길이며 삶이며 사랑이 무엇인가 하고 아이가 스스럼없이 생각해서 이야기하도록 마음을 열어 보셔요. 그러면 길은 저절로 나와요.” 하고 덧붙인다. ‘전문가·교사·작가’한테 물어보기에 자꾸 길을 헤맨다. 아이하고 사랑으로 살림을 짓고 싶은 어버이라면 바로 아이한테 먼저 물어볼 노릇이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나무랑 바람이랑 하늘이랑 별이랑 들꽃이랑 새한테 물어보자. 마음으로 물어보자. ‘돌봄길·배움길’은 책보다 삶에 있다. 책에는 아주 조금만 밝히거나 적을 뿐이다. 나이가 적다고 삶을 못 읽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고 삶을 잘 읽지 않는다. 그저 ‘나이에 따라 다르게 삶을 보고 읽고 알’ 뿐이다.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무엇을 누리고 싶은가를 아이한테 물어봐야 아이도 어버이도 함께 즐겁기 마련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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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49. 교원자격증



“홈스쿨링을 한다니 잘 가르치시나 봐요?” 하고 묻는 분이 많다. “잘 가르쳐서 집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놀며 스스로 하루를 그리도록 이끌지 않아요.” 하고 먼저 말머리를 연다. 난 ‘가르칠’ 마음이 없고,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찾고 짓고 생각해서 놀도록 판을 깔’ 마음이 있을 뿐이다. “잘 하는 사람은 교원자격증이 없어도 잘 합니다. 잘 못하는 사람은 교원자격증이 있어도 잘 못합니다. 거꾸로도 똑같습니다. 학교와 교사라는 울타리만 바라본다면 아이를 아이 그대로 마주하면서 사랑을 물려주고, 이 사랑에 아이들 나름대로 새롭게 사랑을 그리는 길을 스스로 가도록 북돋우지는 못할 테지요.” 하고 보탠다. ‘교원자격증’이란 ‘교사라는 이름인 공무원으로 지내면서 교과서를 아이한테 잘 알려주는 사람’을 뜻할 뿐이다. 아이를 잘 가르치려면 아이한테서 잘 배우면 된다.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면 아이는 스스로 배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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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살림 2021.2.19.

숲집놀이터 248. 보여준다



아름답다면 무엇이든 보여준다. 틀림없다. 안 아름답다면 무엇이든 감춘다. 어김없다.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뭘 보여주거나 가르치면 될까? ‘아름다움’ 하나이다. 감추거나 숨길 모습은 하나도 안 보여주거나 안 가르치면 된다. 아이를 가르치는 길은 그야말로 쉽다. 아이를 가르치는 길이 어렵다면, 아스라한 옛날 옛적부터 1945년까지 이르도록 그렇게 많은 시골자락 수수한 어버이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 살림꾼으로 길러내었겠는가? 시골자락 수수한 어버이가 아이들을 스스로 가르치는 살림을 내팽개치고서 그냥 학교로 내몰아 마침종이(졸업장)에 얽매는 굴레를 씌운 뒤로 이 나라가 휘청거리는 길이지 않을까? 글을 익히고 책을 읽는 일은 좋다. 가멸차건 가난하건 나란히 앉아서 함께 배우는 터전도 좋다. 그러나 마침종이는 주지 말자.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서 홀가분히 드나드는 배움터여야 한다. 다그치지 말고, 매를 들지 않아야 한다. 겨루거나 싸울 까닭이 없다. 놀고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면 된다. ‘엘리트 스포츠 + 올림픽 메달’이 무엇을 낳았나? 바로 ‘총칼나라(제국주의)에서 주먹질(폭력)로 억누르는 짓’을 끌어들여서 길들였다. ‘국가대표 선수를 대놓고 주먹과 발길로 두들겨패서 피멍이 들도록 한 사람’조차 멀쩡히 감독 노릇을 하고, ‘초·중고등학교 때 칼부림까지 하며 엄마 힘을 등에 업고서 막짓을 일삼은 배구선수 쌍둥이’조차 손가락질이 수그러들기만을 기다린다. 다들 본 대로 배웠다. 그러나 보았어도 물리치면서 새길을 닦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어버이라면 보여줄 만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아름답게 사랑이 되어야 ‘자칫 잘못을 저지르는 때’에도 아이들은 ‘아, 어른도 저렇게 잘못을 하네? 그러나 나는 앞으로 어른이 되면 잘못이 아닌 사랑을 하겠어!’ 하는 마음이 싹트도록 살아야지 싶다.


ㅅㄴㄹ


이듬해에 여덟 살이 되는 아이를 둔

어느 어머니가 

'아이를 앞으로 학교에 보내야 하느냐?'고 물으셔서

슬기롭게 생각해서 아이랑 이야기하시면

실마리를 풀 만하다고 말씀을 여쭈었다.

.

이러고서 이렇게 '숲집놀이터' 이야기를 넉 꼭지

잇달아 쓴다.

교원자격증이 있어야 가르치지 않는 줄,

아이를 가르칠 적에는

자격증 아닌 오직 사랑 하나가 있으면 되는 줄,

즐거이 헤아려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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