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빛 2022.6.21.

숲집놀이터 273. 멍울



어버이도 아이였다. 아이도 어른으로 자란다. 어버이로 서기 앞서 아이로 살던 숨결은 어린날 받은 생채기가 쌓여 멍울이 질 만하다. 그리고 이 생채기나 멍울을 스스로 기쁘게 씻어내어 우리 아이한테 ‘생채기·멍울’이나 ‘근심·걱정·끌탕’이 아닌 ‘오롯이 사랑으로 눈부시게 누리는 삶·살림이라는 오늘 하루’를 보여주고 들려주면서 물려줄 수 있다. 나는 “멍울 능금(또는 보조개 능금)”이 오히려 한결 달콤하다고 느낀다. 멍울(또는 보조개)이 하나도 없는 능금도 달콤하되, 부딪히거나 긁힌 능금은 ‘다친 자리’를 스스로 아물도록 돌보는 숨빛이 피어나기에 우리한테 새록새록 이바지하는구나 싶더라. 어버이가 짊어지는 멍울이란, 아이한테 넘겨주고 싶은 짐이란 뜻이다. 어버이가 기쁘게 달래어 씻어내는 멍울이란, 아이한테 옹글게 사랑씨앗을 건네면서 푸른숲을 보금자리부터 일구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아기는 왜 걸을 수 있을까? 숱하게 넘어지고 다치고 무릎이 깨지더라도, 넘어지거나 다치거나 무릎이 깨진 줄 깨끗이 잊고서 ‘걷는 기쁨’을 누리려는 마음이 눈부시거든. 나는 아이로 살던 지난날, 날마다 어머니·언니·마을 또래·마을 언니·마을 어른한테 숱하게 얻어맞으면서 보냈다. 날마다 신나게 얻어터졌다. 이밖에 둘레 어른·또래·여러 언니가 괴롭히거나 짓밟은 생채기는 책 즈믄(1000) 자락으로 쓸 만큼 넘치지만, 오늘 우리 아이들한테 “너희 아버지는 어려서 신나게 맞고 컸어.” 하고 웃으며 말한다. 이제는 멍울이 아니니까. “에? 왜 때렸대?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응. 그때에는 다들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을 테니까.” “그렇구나. 아버지 애쓰셨어요.” “어, 뭐가?” “그냥. 사랑해요.” “아, 고마워. 사랑합니다.” 나는 나를 괴롭히고 때린 모든 사람을 봐준(용서한) 적이 없다. 그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짜증낸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남을 봐줄 수 없더라.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봐줄 수 있을 뿐이고, 나는 오직 나를 봐줄 수 있을 뿐이더라. 내가 나를 스스로 봐주면서 사랑할 적에, 내 멍울이며 생채기를 스스로 씻으며 어느새 꽃으로 피워 사랑씨앗을 맺고는 아이들 마음에 심을 수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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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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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2.6.11.

숲집놀이터 272. 시사상식



  우리 집 아이들은 ‘설민석·용선생·박시백’ 같은 이름을 내건 책을 하나도 안 읽는다. 나부터 이런 책은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마침종이(졸업장)를 거머쥘 생각이 없으니 부스러기(지식·정보)를 다룬 책은 덧없다. 모든 부스러기는 마침종이랑 맞물리고, 이 마침종이는 벼슬자리(공무원 임용)하고 큰일터(대기업 취직)로 나아가자면 거느려야 할 이야기일 테지. 아이들은 부스러기(시사상식)를 알아야 하지 않는다. 어른도 부스러기를 머리에 담을 까닭이 없다. 아이어른은 함께 ‘삶을 사랑으로 짓는 살림빛’을 노래하고 웃고 이야기하고 춤추면서 즐겁게 누리고 나누면 넉넉하다. 모든 부스러기는 다 다른 사람을 똑같은 틀에 맞추거나 가두려 한다. 모든 ‘삶·사랑·살림’은 다 다른 사람이 언제나 다르면서 새롭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스스로 밝히는 실마리이다. 부스러기를 잔뜩 끌어안기에 겉치레에 얽매인다. ‘삶·사랑·살림’을 품으니 삶을 사랑하는 살림말을 수수하게 쓰면서 서로서로 생각을 맑고 밝게 가꾼다. 서울에 빼곡하게 모여서 더 빠르고 크고 세게 돈·이름·힘을 다투어야 하는 자리이기에 부스러기(지식·정보·시사상식)를 높이 친다. 저마다 보금자리를 손수 일구는 숲에 깃드는 어질고 참한 어버이에 신나고 재미난 아이로 살아가는 길이라면 ‘삶·사랑·살림’을 온마음으로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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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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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2.6.11.

숲집놀이터 271. 보던 책만



  어릴 적에 어머니나 둘레 어른한테서 익히 들은 꾸지람 가운데 하나는 “왜 보던 책만 자꾸 보니?”이다. 나로서는 굳이 ‘새로운 책’을 들여다볼 마음이 없으니 ‘보던 책’을 다시 본다고 할 텐데, ‘보던 책’을 다시 쥘 적에는 ‘예전에 읽은 책을 또 본다’가 아닌, ‘언제나 새삼스레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책’을 기쁘게 손에 쥐어 ‘새빛’을 누린다고 느낀다. 아이도 어른도 온갖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지는 않는다. 개미를 하루 내내 바라보아도 즐겁다. 나무 한 그루를 하루 내내 안아도 즐겁다. 가랑잎이 구르는 춤사위를 하루 내내 지켜보아도 즐겁다. 새끼를 먹이고 돌보는 제비를 하루 내내 살펴보아도 즐겁다. 하늘을 적시는 구름을 하루 내내 쳐다보아도 즐겁다. 풀을 베는 낫질로 하루를 보내어도 즐겁다. 종알종알 쉬잖고 수다꽃인 아이 곁에서 하루 내내 같이 춤추고 뛰놀아도 즐겁다. 스스로 마음을 살찌우는 일손을 붙잡으면 하루 내내 안 쉬어도 즐겁다. 이 마음으로 살아왔고 자라왔으니, 나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이란 꾸러미를 엮느라 예닐곱 시간을 꼼짝않고 앉아서 뜻풀이를 추스르고 말결을 가누고 말밑을 캐내면서 지치거나 힘든 적이 없다. “아, 이제 하나를 마쳤구나!”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하루(시간)가 훅 지나간 줄 알고서 빙긋 웃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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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2.5.2.

숲집놀이터 270. 돌봄하루



천기저귀를 손빨래하고, 부릉이(자가용)를 안 몰고, 유리병을 쓰고, 포대기에 처네를 늘 다루고, 아이들 주전부리나 도시락을 챙기는데, 온통 등짐으로 바리바리 싸서 움직이는 나날이었다. 집에서 집안일하고 집살림에다가 바깥일까지 도맡아서 했다. 가시어머니나 둘레에서는 “그렇게 다하려면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물었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 돌보는 하루가 힘들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지요.” 하고 얘기했다. 돌봄하루가 힘들다고 느낀 적은 하루조차 없다. 아이는 몸이 안 좋거나 뜻이 있기에 보챈다. 아이는 졸립기에 어디에서나 잔다. 아이는 쉬나 뒤가 마려우니 언제라도 눈다. 아이는 배고프니까 바로바로 밥을 달라고 바란다. 이 모두를 “네, 알겠습니다. 바로 할게요.” 하면서 차근차근 했고, 밥을 지어서 차리건, 똥오줌기저귀를 빨아서 널건, 아이를 씻기거나 재우건,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다니건, 늘 노래를 불렀다. 이 모든 집안일에 집살림에 바깥일까지 신바람으로 하려고 아이를 낳은 삶이니까. 이런 나를 보며 “도인 같네요.” 하고 말하는 분한테 “옛날에는 모든 어버이가 이렇게 했어요. 요새 이렇게 하는 사람이 적다고 해서 제가 대단할 수 없어요. 모든 수수한 어버이는 참말로 ‘깨달은이(도인)’였다고 하겠네요. 아이를 돌보는 하루를 누리기에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우거든요.”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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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22.

숲집놀이터 269. 갈림길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아버지를 두었기에, 아이들은 ‘너무도 깐깐할 아버지 곁에서 힘들지 않겠느냐?’고 설레발 같은 걱정을 하는 분이 꽤 있는 줄 느끼고는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웃었다. “저기요,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치마를 입고 다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요. 아니, ‘치마차림 아버지’를 구경하는 사람들 때문에 저희까지 눈길을 받는다고 여겨서 짜증내지요.” 하고 말한다. 아이들이 맞춤길이나 띄어쓰기가 틀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따금 “얘야, 이 말을 글로 옮길 적에는 소리가 이렇게 난단다.” 하고 천천히 입을 놀려서 소리를 다시 들려주고서 글씨를 보여준다. 여기서 끝이다. 이다음에 또 틀리면 또 틀렸네 하고 그러려니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데 말야, 이 글씨는 이 소리를 이렇게 내며 옮긴 그림이란다.” 하고 보탠다. 이처럼 느슨히 열 몇 해에 걸쳐서 천천히 가끔 짚어 주면 아이들 스스로 어느 날 차근차근 깨달아서 다독이더라. 이렇게 느슨히 천천히 간다면, 아이들이 ‘셈겨룸(시험)’에서 0점을 맞거나 떨어질 만하겠지. 그러면, 아이들이 셈겨룸을 안 치러도 될 터전을 우리가 어른으로서 마련하거나 열 노릇이다. 아이도 어른도 ‘외워야’ 하지 않는다. ‘외우려’고 하니 글읽기나 책읽기가 모두 버겁다. 외울 생각이 아니라면, 누구나 하루에 책 100자락을 가볍게 읽어낼 수 있다. 우리는 ‘책읽기’를 즐길 삶이지, ‘책외우기’를 하며 갇힐 삶이 아니다. 하늘을 읽듯 책을 읽고, 사랑을 읽듯 오늘을 읽으면 넉넉하다. 언제나 우리 앞에는 갈림길이 있는데,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지 말자. 아침에 스스로 그린 우리 꿈그림을 돌아보면서 ‘스스로길’을 가자. 갈림길을 내려놓고서 ‘스스로길·숲길·삶길·사랑길·살림길·오늘길·노래길·춤길·꽃길’을 가면 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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