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70. 꽃을 들고 걷다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꽃을 들고 걷는다. 논둑길에 핀 꽃을 꺾은 두 아이는 저마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걷는다. 그저 바라보아도 싱그러운 꽃은 한손에 한 송이씩 쥐면서 더욱 싱그럽다. 꽃순이는 세 송이를 꺾은 뒤 한 송이는 아버지한테 준다. 다른 한 송이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한테 주겠노라 한다. 꽃돌이는 아직 제 몫을 챙길 뿐이지만, 머잖아 꽃순이 누나처럼 다른 식구 몫을 헤아릴 수 있을 테지. 들꽃 한 송이는 들꽃내음을 베풀면서 들바람을 함께 나누어 준다. 들꽃 두 송이는 두 아이한테 들꽃빛을 밝히면서 들사랑을 고루 흩뿌려 준다.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으면 꽃마음을 가꾸는 꽃아이로 자라리라 느낀다. 우리가 심는 꽃을 보고, 들꽃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서 피어나는 꽃도 함께 보면서 우리 이웃을 가만히 돌아본다. 4348.11.1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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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9. 아이한테 바란다



  나는 아이한테 무엇을 바랄까 하고 돌아본다. 딱히 바라는 것은 없다. 애써 무엇을 바라야 한다고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한다. 어버이인 나부터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는 삶을 생각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저희 사랑을 스스로 기쁘게 가꾸는 삶을 헤아린다. 우리는 이 보금자리를 함께 가꾸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하루를 누리는 동안 저마다 기쁜 사랑을 곱게 돌볼 줄 알면 된다. 무엇을 아이한테 바라야 한다면 꼭 하나를 바랄 뿐이다. 바로 ‘사랑’ 하나이다. 이뿐이다. 그뿐이다. 달리 무엇을 바라려나. 사랑으로 씨앗을 심고, 사랑으로 마당을 쓸며, 사랑으로 밥을 짓고, 사랑으로 설거지를 한다. 사랑으로 노래를 부르고, 사랑으로 글을 쓰며, 사랑으로 온누리를 어루만지는 어깨동무를 한다. 5458.11.11.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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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8. 가방이 무거워



  도서관에 다녀올 적에 집으로 가져와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큰아이더러 스스로 가방을 챙기라고 말한다. 큰아이는 가방 챙기기를 늘 잊다가 비로소 한 번 가방을 메어 본다. 음성에 사는 할아버지가 사 주신 가방이다. 튼튼하고 야무져 보이는 가방인데, 막상 큰아이는 이 가방을 잘 안 메려 한다. 왜 그러한가 하고 궁금해 하던 어느 날 큰아이가 “이 가방 무거워. 아무것도 안 들었는데 무거워.” 하고 말한다. 얼마나 무겁기에 이런 말을 하나 싶어서 한번 들어 본다. 어른으로 보자면 안 무겁다 할 만하지만, 아이로서는 제법 묵직하다고 느낄 만하다. 그래, 튼튼해 보이는 만큼 두껍고 무거운 천을 많이 쓴 가방인가 보네. 이 가방은 아직 너한테 안 맞겠구나. 음성 할아버지가 네 나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나중에 열 살은 더 넘은 뒤에야 멜 만한 가방을 사 주신 셈이로구나. 가방으로도 꽤 묵직하면, 여기에 책 몇 권을 넣고 필통을 넣고 또 뭘 넣으면 얼마나 무거울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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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7. 둘이 짓는 그림



  큰아이하고 둘이 그림노래를 짓는다. 나는 글을 쓰고,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8절 그림종이에 둘이 함께 이야기를 짓는다. 문득 떠올라서 이 놀이를 해 보는데 무척 재미있다. 아이도 재미있어 할까? 아이도 재미있어 하기에 신나게 그림을 그려 줄 테지. 다만,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빠르기를 아버지가 글을 쓰는 빠르기가 좇지 못한다. 나는 글 한 꼭지를 쓰자면 며칠이 걸리기도 하는데, 아이는 십 분 남짓이면 석석 그림을 다 그린다. 둘이 함께 그림노래를 지으며 생각한다. 아이 빠르기를 좇을 생각은 하지 말고,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이야기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하나하나 적어 보자고. 그러면 하루에 두어 가지 그림노래도 빚을 만하리라 생각한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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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6. 졸업장



  학교를 다니지 않는 우리 아이들은 졸업장을 딸 일이 없다. 학원도 다니지 않으니 자격증을 딸 일도 없다. 다만, 이 아이들이 나중에 학교나 학원이라는 데를 다니고 싶으면 얼마든지 다닐 수 있을 테지. 학교이든 학원이든 스스로 다니고 싶을 때에 다녀야 제대로 배운다. 나이가 찼으니 보내야 한대서 보낸다고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그러니까, 따로 ‘가르치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따로 ‘건물’을 세워서 학교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따로 ‘졸업장’이라고 하는 종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배우면서 삶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숨결인 줄 알면 된다. 즐겁게 노는 아이가 즐겁게 배우고, 즐겁게 웃는 아이가 즐겁게 노래한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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