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88. 쨍그랑
몸이 아파 일을 쉬고 병원에 들어가신 장모님을 고흥집으로 오시라 했다. 병원이 오히려 쉬기 어렵고 몸을 다스리기도 나쁜 줄 알기에 우리 시골집으로 오셔서 몸하고 마음이 얽힌 길을 제대로 다시 바라보면서 푹 쉬시기를 바란다. 병원에서 지낸 일을 듣는데, 느긋하게 아침잠을 자고 싶어도 새벽 여섯 시부터 일어나야 하고, 아침은 거르고 싶어도 꼬박꼬박 세끼를 먹어야 해서 더부룩하며, 병실에 led불을 환히 밝히니 눈이며 머리도 힘드셨겠구나 싶다. 씻을 적 말고는 손에 물을 못 대도록 하면서 내가 밥을 도맡아 짓는데(여태 늘 그랬지만), 낮밥을 거의 다 지을 즈음 큰아이가 부엌에 와서 “내가 뭘 도울까요?” 하고 말하는 소리에 ‘행주로 접시 물기를 훔치다가 그만 떨어뜨려’서 쨍그랑 깨뜨렸다. 일을 거들려면 진작 와서 거들 노릇인데, 아무도 거들지 않거나 거들 수 없는 부엌에서 혼자 모든 살림과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잰놀림으로 움직이다가 큰아이 말을 듣고 ‘혼자 일하던 흐름’이 살짝 흐트러지면서 접시가 미끄러졌다. 뭐, 큰아이가 도울 일이 생겼네. “얘야, 깨진 조각을 비로 쓸어 주렴.” 다 쓸고 난 뒤 큰아이한테 말한다. “벼리야, 일을 도우려면 처음부터 와서 도울 노릇이란다. 너희가 아무도 안 도와서 혼자 일을 하니까 아버지는 혼자 하는 결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네가 갑자기 부엌에 와서 그런 말을 하니, 마음이 살짝 어긋났구나.” 큰아이가 잘못한 일은 없다. 다만 서로 한 가지씩 배운 아침나절이라고 여긴다. 고운 접시 하나는 제 몸을 바쳐 쨍그랑 깨져 주면서 ‘혼자 일하는 흐름’에 누가 불쑥 끼어들어도 마음이 안 흔들리도록 다스리는 길을 나더러 더 익히라고 알려주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언제부터 부엌일을 도우면 좋은가를 배웠기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