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13. 넘어졌네



넘어졌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넘어져서 아프다는 생각으로 무릎을 붙잡으면 될까? 넘어진 뒤이니, 이제 이 넘어진 곳이 새롭게 나으면서 한결 튼튼해지자는 생각을 하면 될까? 넘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아프다고 끙끙 앓을 수 있어. 네가 그 길을 바라면 그리 가렴. 그러나 우리는 얼마든지 새롭게 나아갈 수 있어. 밥을 먹은 뒤에 즐겁게 똥을 누지. 땀을 쪽 뺀 뒤에는 시원하게 씻지. 한창 뛰놀고 나서 느긋하게 잠을 자. 넘어져서 다쳤구나,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이렇게 넘어질 적에는 다치기도 하니까, 다친 뒤에 어떻게 스스로 다스리면 될는지를 생각해 보렴. 다음에 비슷한 일을 맞닥뜨릴 적에 스스로 튼튼하면서 기운찬 몸짓이 되려면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지를 헤아리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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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4. 물맛



여러 달 동안 우리 집 아닌 다른 집에 머무는, 우리 고장 아닌 다른 고장을 다니는, 마실을 다녔다. 마실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 작은아이가 불쑥 묻는다. “아버지, 수돗물은 다 이렇게 안 차가워? 우리 골짜기 물이나 우리 집 물은 덜덜 얼 만큼 차갑잖아. 마을 빨래터 물도 그렇고.” 작은아이가 묻는 말을 가만히 머리에 띄운다. 물맛하고 물결하고 물내음을 헤아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물기운이 왜 그러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집이나 마을 빨래터나 뒷자락 골짜기에는 ‘흐르는 물’이야. 흐르는 물은 늘 차갑다 싶도록 시원해. 그러나 수돗물은 안 흐르는 물이야. 안 흐르는 물은 고인 물이지. 고인 물은 시원할 수 없어. 오랫동안 갇혔다가 흐르니 죽은 물이기도 해.” 내가 작은아이만큼 어릴 적에도 우리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 물결이 궁금해서 여쭌 적이 있을 텐데, 그때 나한테 물맛이나 물기운이 왜 다른가를 제대로 밝혀서 알려준 분이 없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도시라는 곳에서 꽤 오래 살며 스스로 물맛을 알아내야 했구나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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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2. 어른



나이를 먹으면 나이를 먹을 뿐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 뿐이다. 나이가 어리면서 철이 들지 않으면 ‘철딱서니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었을 뿐 사람다운 슬기나 사랑이 없다면 ‘늙어빠졌다’고 한다. 어른은 나이를 먹거나 늙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른은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이다. 그래서 나이가 적거나 어리더라도 ‘어른스러운’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철든’ 사람이란,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서 사람답게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길을 가는 몸짓을 펴는 사람이다. 우리 삶터를 보면 나이만 먹은 사람, 곧 ‘늙은 사람(늙은이)’인 몸으로 마구 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른이 말하면 아이가 들어야지!” 하고 여기는 이는 어른이 아닌 늙은 사람이다. 늙은 사람한테서는 배울거리가 없고, 늙은 사람은 아무도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어른한테서 배울거리가 샘솟으며, 어른인 사람만 가르칠 수 있다. 덧붙여, 아이다운 숨결일 적에 배우며, 아이답게 살아가는 숨결이기에 즐겁게 배워서 새롭게 거듭나거나 피어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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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1. 듣는다



마음을 열어 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생각을 틔워 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눈을 뜨고서 바람이 나무하고 나누는 말을 듣는다. 온몸을 써서 흙하고 새롭게 이야기하면서 꿈을 듣는다. 귀로도 듣지만 마음이나 눈이나 몸으로도 듣는다. 말도 듣지만 생각이나 사랑을 함께 듣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들을 수 있다. 마음을 닫거나 생각을 닫거나 눈을 감거나 꼼짝하지 않으면서, 모든 소리랑 말이랑 이야기를 하나도 안 받아들일 수 있다. “말을 잘 듣다”를 으레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르다”로만 여겨 버릇하지만, 말을 잘 듣는 삶이란 온누리에 있는 뭇목숨이나 뭇숨결이 저마다 노래하는 이야기를 알아채고 우리 목소리를 나누어 주는 몸짓이라고 느낀다. 시끌벅적한 자동차 소리나 기계 소리 말고, 상냥한 구름 소리나 미리내 소리를 듣자. 자질구레한 텔레비전 소리는 접어두고, 넉넉한 풀노래 꽃노래 나무노래 숲노래를 듣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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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0. 여느 날 낮에 버스 타기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면서 ‘여느 날 낮에 버스 타기’를 거의 해 보지 못했다. 아주 드물게 여느 날 낮에 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어쩐지 대단히 잘못했거나 사람들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요즈음 아이들 가운데 제도권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다시피 할 테니, 여느 날 낮에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면서 볼일을 보거나 마실을 다니는 삶을 누려 본 적도 드물 테지. 여느 날 낮에 느긋하게 책집에 들른다거나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찾는다거나 공원에서 나무그늘을 찾는다거나 숲길을 걸어 보는 일도 드물 테고. 주말이나 방학에 우르르 몰려서 가는 ‘여느 날 볼일이나 마실’이 아닌, 언제라도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삶을 돌아보고 삶터를 헤아리는 나날이 되어야지 싶다. 여느 날 낮에 해를 보며 해바라기를 한다. 여느 날 낮에 바닷가에 찾아가 바닷물에 풍덩 뛰어든다. 여느 날 낮에 풀밭을 거닐며 풀내음을 먹는다. 여느 날 낮에 만화책을 펴고 시 한 줄을 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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