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꽃

숲집놀이터 233. 한때



어찌 보면 아주 짧게 지나가는 값진 한때이지 싶다. 아니 언제나 아주 짧게 지나가는 아름다운 한때로구나 싶다. 미처 못 깨달은 나머지 어수룩하게 보낸 한때여도 좋다. 제대로 바라보고서 찬찬히 이야기를 들려주고서 빠르게 지나간 한때여도 좋다. 다만 한때일 뿐이다. 잘하건 잘못하건 한때이다. 이 모든 한때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차분히 맞아들이면 되는구나 싶다. 아이 곁에 앉아서 말을 섞는다. 어제 한때에 너희가 참 멋지더구나 하고. 오늘 한때에 아버지도 제법 멋지네 하고. 우리는 어느 날에는 참 엉성하기도 하지만, 어느 날에는 참으로 눈부시기도 하다. 이래서 나무라거나 저래서 부추겨야 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때에는 이런 하루를 물끄러미 보면서 살며시 토닥이면 되네. 저때에는 저런 나날을 말끄라미 보면서 살가이 쓰담쓰담하면 되더라.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배움꽃

숲집놀이터 238. 어떤 동무



‘졸업장 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를 다니면서 마음껏 노는 우리 아이들을 마주하는 이웃 어른은 으레 “아이가 자랄수록 또래 동무를 바랄 텐데?” 하고 걱정을 한다. 걱정할 수도 있겠으나, 또래 동무가 많은 곳에 있대서 아이들이 동무를 잘 사귀면서 “사회성이 안 떨어진다”고는 조금도 안 느낀다. 졸업장 학교만 보면 쉽게 안다. 졸업장 학교를 다니는데 “사회성이 매우 떨어져”서 또래뿐 아니라 이웃을 괴롭히는 막짓을 일삼는 아이가 꽤 있다. 어느 학교를 다니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터전이 있다. 바로 “어떤 집”에서 “어떤 사랑하고 살림”을 누리느냐이다.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따사로운 사랑을 누리면서 따사로운 살림을 스스로 익히는 아이라면,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마주하더라도 따스한 숨결을 나눈다. 더구나 ‘우리 집 학교’를 다닌대서 집에만 있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늘 여기저기 같이 돌아다닐 뿐 아니라, 홀가분하게 숱한 사람을 마주한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은 늘 숱한 사람을 곳곳에서 마주하니, ‘사회성’이란 늘 몸으로 보고 부대끼며 배운다. 왜 졸업장 학교에서만 사회성을 배워야 하지? 졸업장 학교에 다니며 또래 동무를 만나야 한다고 여기는 어른들 길들여진 틀이 오히려 아이들이 사회성을 모르거나 멀리하도록 짓누른다고 느낀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32. 언제


입시지옥 얼개를 그대로 따르면서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많다. 어쨌든 초·중·고등학교를 마쳐야 하는 줄 여겨, 꿈은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고서, 또는 대학교를 다니고서 펴려고도 한다. 꿈꾸는 모든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한마디 들려주고 싶다. “언제 그 학교 그만둘래? 언제 네 꿈대로 살래? 하루라도 그 학교를 더 다니면서 꿈을 미뤄야겠니? 하루라도 그 학교를 빨리 그만두고서 네 꿈을 하루라도 더 누릴래?” 만화를 그리고 싶은 아이라면 이렇게 한마디 들려줄 만하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만화라면, 하루라도 만화를 더 그릴래, 아니면 하루라도 만화를 덜 그리면서 그냥 학교에 다니며 학교가 시키는 대로 시험공부 하면서 보낼래?” 꿈길을 언제 가려는 지 생각해야 한다. 사랑길을 언제 첫걸음을 떼려는 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삶길을 언제 지으려는 지 헤아릴 노릇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31. 겉절이


배추를 세 포기 장만했다. 어제 장만했으나 어제는 겉절이를 할 기운이 없어 하루를 묵혀 오늘 낮에 한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노느라 바쁘시고, 아버지가 밥을 하건 무엇을 하건 쳐다볼 겨를이 없다. 놀이가 좋고 놀이가 신나니 배고픈 줄도 모른다. 무 손질에 배추 손질을 마쳐서, 먼저 무를 썰어 절여 놓는다. 이제 배추를 썰어 절일 즈음 큰아이가 “뭘 도울까요?” 하고 묻는다. “응, 이제 낮꿈을 꾸면 돼.” 아이들이 낮꿈을 누리고서 일어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무도 배추도 폭 숨이 죽으면서 깍두기도 겉절이도 즐거이 담글 수 있으려나? 깍두기나 겉절이는 곁밥살림 가운데 매우 손쉽다고 느낀다. 손질해서 썰고 절이고 풀이랑 양념을 넣어서 잘 섞어서 통에 옮겨 차게 두면 끝. 가만 보면 어려운 집일이나 살림이란 없다. 품을 들이고 마음을 쓰고 차분히 노래하면서 맞이하면 다 되기 마련. 때로는 쓴맛을 보고, 때로는 참맛을 누리면서 배우는 하루.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30. 기다려



  글 하나를 마무리짓기 앞서 큰아이가 불쑥 부른다. 다섯 줄로 한 자락을 마치면 될 글이다. 아이가 부른대서 마음이 살짝이라도 흐트러질 일은 없으나, 뭔가 아이한테 알려줄 일이 생겼다고 뼛속 깊이 짜르르 번쩍거린다. 글마무리를 멈추고 아이를 두 손으로 품에 안고서 속삭인다. “사름벼리야, 어머니가 뜨개할 적에 너희가 안 건드리지?” “응.” “너희가 책짓기 하거나 그림 그리거나 뭔가 쓸 적에 아버지가 안 건드리지?” “응.” “아까 아버지가 한창 밥할 적에 동생이 이것 좀 보라고 불렀지만 아버지는 밥을 지켜봐야 하니까 그쪽으로 고개도 돌릴 수 없잖아?” “응. 그래.” “아버지는 곧 마무리를 지어야 할 글이 있어. 조금 더 쓰면 끝나거든. 그런데 마무리를 지을 적에 누가 말을 걸면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어. 그때에는 기다려 주렴. 얼른 끝내고 다시 이야기하자.” 큰아이하고 함께 살아온 열두 해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바랄 적에 ‘기다려’ 하고 말한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없다시피 하다. 다만 이제는 아이도 뭔가 기다리고서 제 할 말을 하면 좋겠구나 하고 느낄 때이지 싶다. 기다리는 사람이란 너그러운 사람이란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란 엄청나게 넉넉한 사람이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