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과 오른손 비빔질



  내 첫 빨래는 국민학생 때이지 싶다. 어쩌면 더 일찍 빨래를 했을는지 모르나, 더 앞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국민학교 3학년 때가 아닌가 싶으나, 이 또한 또렷하지는 않다. 아무튼, 그무렵 운동신을 손수 비벼서 빨던 때가 첫 빨래이지 싶고, 운동신을 한 켤레 빨기까지 한 시간쯤 걸렸다. 어머니가 운동신을 빨면 십 분이나 이십 분이면 척척 해내는데, 나는 자그마치 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운동신을 한 번 빨면, 더럽히지 않으려고 한 주 내내 살금살금 얌전하게 다닐 뿐 아니라, 누가 내 발을 밟기라도 하면 잔뜩 뿔이 났다.


  스무 살 적부터 제금을 나서 살면서 모든 빨래를 손으로 했다. 마흔 살을 넘은 오늘도 거의 모든 빨래를 늘 손으로 한다. 빨래가 많거나 두툼한 옷가지나 이불을 빨래할 적에는 힘이 꽤 든다. 그래서 비빔질을 오른손으로 하다가도 왼손으로 해야 한다. 한쪽 손으로만 비빔질을 하면 팔이 저리다.


  비누를 묻힐 적에도 두 손을 갈마드는데, 스무 해 남짓 두 손을 갈마들면서 비빔질을 하는데 아직 왼손 비빔질이 오른손 비빔질만큼 척척 나아가지 못한다. 왜 그럴까? 내가 왼손으로는 좀 힘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런데 두 손을 갈마들면서 비빔질을 하고 헹굼질을 하니, 내 왼손은 힘살이 제법 붙는다. 오른손잡이이지만 왼손으로 팔씨름을 할 적에 밀리는 일이 드물다.


  오늘 빨래를 잔뜩 하면서 새롭게 한 가지를 생각해 본다. 오른손이 힘드니 왼손으로도 비빔질을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두 손이 골고루 튼튼하기를 바라면서 두 손으로 비빔질을 하자고 생각해 본다. 왼손으로도 씩씩하게 비빔질을 하고, 오른손으로도 재미나게 비빔질을 하자고 생각해 본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넌다. 어깨와 팔뚝이 없는 듯하다. 아, 오늘 빨래 참 많이 했구나. 등허리를 톡톡 두들긴다.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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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빨래를 안 했으니



  아침부터 내내 비가 와서 오늘은 빨래를 안 했다. 하루쯤 빨래를 미루자고 생각했다. 팔과 다리가 결리기도 했다. 밤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모두 걷히고 별이 돋는다. 이튿날에는 볕이 몹시 좋겠구나. 오늘은 쉬기에 좋은 날이고, 이튿날은 빨래하기에 좋은 날이 되겠네. 푹 자자. 밤새 기운을 잘 모아서 이튿날 아침에 씩씩하게 빨래를 하자.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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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만에 기저귀 삶기



  여러 해 만에 기저귀를 삶는다. 곁님 동생이 지난달에 아기를 낳았다. 곁님 동생이 아기를 돌보면서 쓰도록 보내려고 천기저귀 열 장을 삶고, 기저귀싸개 둘을 삶으며, 기저귀띠 하나를 삶는다. 기저귀를 석 장씩 삶는 동안 다른 기저귀와 기저귀싸개는 마당에 널어서 햇볕을 먹인다. 햇볕을 골고루 먹고 잘 마른 기저귀를 곱게 갠다.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삶아서 널 즈음, 이웃집에서 마늘밭에 농약을 뿌린다. 마침 바람이 우리 집 쪽으로 분다. 다른 날도 아니고 이런 날 농약을 뿌린담 하고 생각하다가, 이웃집에서는 오늘이 아니면 마늘밭에 농약을 뿌리기 어려웠다고 여겼겠지 하고 느낀다. 나쁠 일이 없고 다 잘 될 테니 걱정은 내려놓자고 마음을 먹는다. 이웃집은 농약을 얼마 안 뿌리고 돌아간다. 그나저나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우체국 택배로 경기도 일산에 보낸다 하더라도 다음주 월요일에나 받을 수 있다. 시골에는 우체국 아니면 택배로 보낼 길이 없다. 두 아이를 이끌고 천기저귀를 일산에 가져다주는 마실길을 가야 할까? 갓난쟁이는 하루가 바쁘게 천기저귀를 대야 샅이 짓무르지 않을 테니, 찻삯이나 품이 들더라도 이 길밖에 없으리라. 그러면 찻삯은 어떻게 하지? 돈이 나올 뾰족한 수는 없지만, 이 천기저귀를 하루 빨리 일산에 가져다줄 길을 생각해 본다. 햇볕아, 바람아, 꽃내음아, 이 천기저귀에 너희 고운 숨결을 실어 주렴. 새로 태어난 아기한테 너희 맑은 넋을 베풀어 주렴.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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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가기 앞서 햇볕을 보고



  바다로 마실을 간다.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워서 마실을 가려 한다. 다만, 마실을 가기 앞서 빨래를 마저 한다. 옷가지가 보송보송 이 고운 볕에 잘 마르기를 빌면서 빨래를 한다. 마실길을 신나게 다녀오는 동안 빨래가 다 마르면 아주 신날 테지. 빨래를 마친 뒤 큰아이가 일손을 거든다. 옷걸이를 챙겨 주고, 함께 마당에 널어 준다. 4348.5.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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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이불을 빨자



  새봄에 길게 해가 나기를 기다렸다. 오늘부터 한동안 해가 따뜻하게 내리쬐리라 느낀다. 이리하여 오월 첫날인 오늘부터 이불을 빨기로 한다. 이른아침에 이불 한 채와 깔개 두 장을 빨래한다. 마당에 떨어진 후박잎과 비늘잎을 쓴 뒤, 아이들이 놀도록 천막을 친다. 첫 이불빨래는 곧 마친다. 볕이 곱고 바람은 가볍게 부니, 이불도 잘 마르고, 놀기에도 멋진 하루가 되리라 느낀다. 이불을 한 채 더 빨고 아침밥을 차린 뒤, 아이들과 놀이터로 마실을 가야겠다. 오늘은 바닷바람을 쐬는 곳까지 좀 멀리 마실을 가서 풍남면에 있는 작은 놀이터로 가 볼까 싶다. 4348.5.1.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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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5-05-01 09:59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이불빨래해야하는데 세탁기가 넘 작아서...ㅠㅠ 말릴데도 마땅찮고...ㅠㅠ 마당있는집 부럽습니다.^^

숲노래 2015-05-01 10:25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 모든 집이 저마다 마당을 누리고
햇볕도 즐기고
이불도 넉넉히 빨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