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농증 수술 안 하기’와 ‘숨쉬기’



  내가 처음으로 병원에 간 때가 언제인 지 떠올리지 못한다. 다만, 무척 어릴 적부터 병원을 드나든 줄은 안다. 다섯 살인지 일곱 살인지 이무렵에도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떠오르는데, 내가 떠올리는 병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비인후과이고, 다른 하나는 피부과이다. 치과도 자주 다녀야 했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이비인후과와 피부과를 자주 다녔다. 이비인후과는 한 주 가운데 닷새나 엿새를 다녔고, 피부과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올 적부터 가을이 될 때까지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축농증 진단을 아마 다섯 살인가 일곱 살 때에 처음 받았고,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까지 그야말로 이비인후과 마실을 늘 다녀야 했다. 피부과는 중학교에 들어선 뒤에는 더 다니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하면,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학교에 매인 채 지냈으니 햇볕을 쬘 일이 너무 적었다.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는 여름에 반소매나 민소매를 입고 몇 시간쯤 해를 쬐면 팔뚝과 어깨까지 살갗이 다 일어나서 벗겨졌고, 반바지를 입으면 살이 드러나는 자리가 모두 일어나서 벗겨졌다.


  아무튼 이비인후과를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하니 집에서도 진료비를 대느라 만만하지 않았을 텐데, 병원에서는 하루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나를 꽁꽁 묶어서 입원을 시킨 뒤 수술을 시키려던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이때마다 대단히 무섭고 싫어서 엄청나게 몸부림이랑 발버둥을 쳤기에 가까스로 수술은 안 받았고 진료만 받고 약을 탔다. 축농증 약은 국민학교에 들 무렵부터 먹었지 싶은데, 이 약은 군대에 갈 무렵이 되어서야 더 먹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이런 약을 주지도 않으니까.


  어떤 이는 소금물을 코에 넣으면 좋다고 하지만, 나는 소금물을 코에 넣기도 쉽지 않았고, 소금물을 코에 넣어도 코가 뚫리지 않았다. 딱히 어떤 수도 쓸 수 없이 늘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흐르는 채 고단하게 숨을 쉬면서 서른 몇 해를 살았다. 어릴 적부터 ‘숨쉬기’를 놓고 언제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를테면, 엄청난 돈과 ‘숨쉬기’가 있을 적에, 내가 무엇을 고르겠는가 하는 대목에서 ‘숨쉬기’를 고르겠노라 하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수술로는 코를 고칠 수 없다고 느꼈다. 돈이 아니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기’를 바랐고, 숨을 쉬면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기를 바랐다.


  숨 쉬는 걱정이 없는 사람은 모를 텐데, 늘 코가 막혀서 괴로운 사람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숨 쉬는 소리’를 늘 듣거나 느낀다. 저절로 부드럽게 쉴 수 있는 숨이 아니라, 힘을 들여서 쉬어야 하고, 코가 자주 막히지만, 코를 후빈들 코를 풀든 코가 뚫리지 않으니 언제나 코가 맹맹하고 머리가 띵하다. 이제 와 돌아보니, 늘 코가 아프고 괴로우니, 나 스스로 ‘내 삶을 깊이 생각하는 일’조차 제대로 할 틈을 못 내기도 했겠구나 싶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숨을 못 쉬어서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노릇인데, 다른 어느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숨을 한 번 쉴 적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죽을 노릇인 사람이 어떤 꿈을 가슴에 품을 만할까.


  때때로 숨을 잘 쉴 수 있기도 하다. 바람이 매우 맑은 곳에 있거나, 풀내음이 짙게 흐르는 곳에서는 숨을 잘 쉰다. 그러고 보니, 내가 김매기나 풀베기를 안 좋아하는 까닭은 ‘코가 나빠서 숨을 잘 못 쉬지만, 풀내음이 짙게 흐르는 곳에서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니, 풀을 베는 일이 달갑지 않다고 몸으로 느꼈구나 싶다. 그리고, 머리를 깨우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자리에서도 문득 ‘숨쉬기’를 잊는다. 새로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맞아들일 적에도 으레 ‘숨을 쉬기가 괴롭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요즈음 들어서 나는 숨쉬기가 무척 부드러워졌다. 꽁지뼈 언저리부터 불바람을 일으켜서 가슴을 지나 머리 뒤꼭지와 이마로 이 불바람이 터져나오도록 하는 숨쉬기(C & E)를 제대로 익혀 꾸준히 이 숨쉬기를 한 뒤, 언제부터인가 ‘나한테 서른 몇 해 묵은 축농증이 있다’는 대목을 잊었다. 그동안 숨쉬기가 늘 괴로워서 잠자리에 들 적마다 몹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냥 잘 잔다. 참말 나한테 축농증이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주 가끔 콧물이 조금 나면, ‘아, 그래, 내가 어릴 적에 이 콧물 때문에 날마다 죽어났지. 늘 코가 빨개야 했지.’ 하고 되새긴다.


  코가 뚫려서 비로소 숨을 부드럽게 쉴 뿐 아니라 ‘숨을 쉬어야 산다’고 하는 생각에서 홀가분하게 놓여나니, 내 몸을 이루는 빛띠가 돌아가는 소리를 또렷하게 듣는다. 이제껏 코맹맹 소리와 코훌쩍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하던 온갖 소리를 하나하나 새롭게 듣는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못 하고 살던 ‘생각하기’도 요즈음에는 조금씩 한다. 그동안 ‘생각하기’를 꽤 오랫동안 못 하고 살다 보니 ‘생각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주 잊은 듯한데, 차근차근 하루하루 생각을 하면서 지낸다.


  1980년대 첫무렵에 축농증 수술비는 꽤 비쌌다. 요새는 이백만 원 즈음이면 된단다. 불바람을 일으키는 숨쉬기를 하면서 축농증이 내 몸에서 떨어지도록 했으니, 돈으로 치면 나는 얼마쯤 번 셈일까. 아니, 이를 돈값으로 따질 수 있을까. 몸에 칼을 대지 않고 몸을 낫게 했으니, 나는 스스로 내 길을 연 셈이고, 어릴 적에 수술대에 눕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악을 쓰듯이 온몸과 온마음이 새겼던 ‘죽어도 축농증 수술은 안 해, 수술 안 하고 낫고야 말겠어’를 이루었다. 이를 이룬 지 꽤 된 듯한데, 오늘에서야 ‘아, 내가 나한테서 축농증을 참말 떨쳤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왜 오늘에서야 이를 알아차렸을까? 요즈음 들어 비로소 ‘생각하기’를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오늘 집에서 곁님이 나한테 ‘생각하며 살기’를 건드려 주어서 비로소 이 여러 가지가 그림처럼 하나씩 떠오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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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 사이, 두려움, ‘삶 되짚기’


  죽음과 삶 사이에 다리가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있습니다. 이 냇물은 냇물이지만, 물이 흐른다기보다 그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작은 금입니다.

  죽음 문턱에 이르면 두렵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막상 죽음 문턱을 밟을 적에는 두려움보다는 ‘아무것도 없음’을 느끼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 말이나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1998년 팔월 첫무렵 어느 날입니다.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자전거로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꾸렸습니다. 한여름이었고, 신문배달을 마친 뒤 새벽 다섯 시가 채 안 되어 신문사지국으로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몰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른 새벽이기도 하고 휴가철이기도 해서, 참말 길거리에 자동차 하나 없는 때였습니다. 이무렵, 나는 새벽 한 시 반이나 두 시부터 신문을 돌려서 새벽 네 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을 마쳤습니다. 

  비탈길을 올라가야 해서 발판을 더 힘을 주어 구릅니다. 찻길을 달리며 골목 옆을 지나갈 때면 으레 옆을 살핍니다. 자동차가 언제 불쑥 튀어나올는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날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까만 차는 아주 빠르게 달리면서 내 짐자전거 뒷바퀴를 치었습니다. 이 까만 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나는 ‘죽었구나! 죽음이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이러면서 생각했어요. ‘그래, 이렇게 죽는다면, 죽음이 무엇인지 찬찬히 지켜보자!’ 두려움이나 무서움 같은 느낌이 없이 ‘아, 사람은 죽으면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알았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하늘로 날아오르던 이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나는 자동차에 치여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넋’이 곧바로 몸에서 빠져나왔지 싶습니다. 드러누워서 고요히 숨이 멎는 사람과 달리, 차에 치이면서 갑자기 곧바로 넋이 빠져나왔다고 할까요.

  바깥에서 본다면, 자동차가 자전거를 치어서 자전거에 탄 사람이 하늘을 붕 날아서 길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몇 초 안 걸립니다. 나는 이때 하늘로 붕 날아오르면서 이 생각도 했습니다. ‘차에 치여서 하늘을 날아올랐는데 참 오래도 나는구나!’ 하고. 이런 생각이 지나가면서 곧바로 ‘내 지나온 나날’이 아주 빠르면서도 천천히 흘렀습니다. 자동차에 치여서 하늘을 날던 그무렵에는 그 그림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알아요. 바로 ‘내 삶 되짚기(인생회고)’를 했습니다. 갓 태어나던 날부터 신문배달을 하는 이날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했고 생각했고 보았는가 하는 대목이 그대로 영화처럼 흘렀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모습’도 보았는데, 아마 ‘잘 모르는 모습’은 오늘 이곳에서 이 몸으로 지내는 삶이 아닌, 예전 삶(전생)이었지 싶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그림(물결처럼 흐르는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웃음도 눈물도 없이 그저 환하게 펼쳐진 빛살을 누리면서 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놀랍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두 ‘내가 스스로 살아온 모습’이니 놀라울 까닭도 새로울 까닭도 없습니다. ‘그래, 그동안 이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만 들엇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끝’을 보았어요. 환한 빛이라고 할는지, 빛이면서 빛이 아닌 것으로 하얗게, 이러면서 하얗지도 않게 눈부시도록 빛줄기가 퍼지는 곳에서 ‘내 삶 되짚기’를 하는데, 저 끝에 ‘까맣고 고요하면서 까맣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작은 씨앗 같은 점’을 보았습니다. 스물 몇 해 앞선 그무렵에는 그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이 ‘고요누리(제로포인트)’인 줄 알지만, 그무렵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다른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서 머리를 스쳤습니다.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때 나는 ‘내가 이렇게 신문배달을 하다가 죽으면, 내가 신문을 돌리는 구역은 어떻게 될까? 우리 지국장님은 내 구역 몫을 땜질을 하느라 힘드시겠네. 내 자리를 채울 사람은 언제 들어올까? 가뜩이나 우리 지국은 가난한데 자전거가 찌그러져서 망가지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달 수 있는데, 사람이 삶을 내려놓고 죽음으로 건너갈 적에는 ‘이런 터무니없다 싶은 자잘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는, ‘내가 죽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짓는 지국장님과 지국 형들이 보입니다. 여느 때에는 늘 늦잠을 자면서 배달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지국 형들이 내 주검을 둘러싸고 우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이 나를 둘러싸고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죽지 말아야지’ 하고 느끼지 않았어요. 그저 그런 모습을 보았을 뿐이고 ‘신문배달원이 새벽에 자동차에 치여 죽는다’고 해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지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나는 신문배달원이었으니 이런 생각도 들었겠지요.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생각 한 가지가 머리를 스쳤어요. 불현듯이 ‘아, 죽더라도 예쁘게 죽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저 차갑고 딱딱하고 새까만 아스팔트 길바닥에 머리통이 깨져서 박살이 나면 피가 여기저기 튈 텐데 하나도 안 예쁘잖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다 보면, 밤새 술을 퍼마시고 여기저기에 게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요한 새벽에 자전거를 달리다가 술떡을 보면 에그 지저분해라 하면서 못마땅해 했어요. 내 머리통이 길바닥에 찧어서 깨지면 핏자국으로 길바닥이 더러워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청소하는 일꾼이 핏자국을 지우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리하여, 나는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가볍게 오른손으로 머리통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내 신문배달 자전거! 자전거 다치면 안 돼!’ 하는 생각도 스치면서 왼손을 뻗어  자전거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이러면서 내 몸을 감싸던 ‘눈부신 하얀 나라’는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든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퍽 오랫동안 이 대목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나는 내가 어떤 몸짓으로 하늘을 날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하늘을 날다가 자전거를 다시 붙잡고, 한손으로 머리통을 감쌌는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내가 스스로 다 지켜보았을까 하는 대목이 참 궁금했어요(그때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이 대목을 알 수 있는 까닭이, 내 몸에서 내 넋이 빠져나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지켜본 줄 알았으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때에는 넋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지식’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몸에서 뭔가 빠져나간다는 느낌만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다 보았다 싶을 무렵, 나는 쿵 하는 꽤 큰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떨어졌고, 얼마나 먼 길을 굴렀는지 모르지만 한참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자동차에 치이면서 곧바로 넋이 몸을 빠져나가서 ‘내 삶 되짚기’를 했고, 내 넋이 고요누리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 넋은 내 몸뚱이 바깥에서 나를 이끌어 오른손으로는 머리통을 감싸고 왼손으로는 자전거를 다시 붙잡도록 시킨 뒤, 몸뚱이가 길바닥에 찧고 나서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왔구나 싶습니다. 넋이 내 몸으로 언제 돌아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릅니다. 한동안 넋을 잃었다가 문득 ‘숨을 쉬는 내 몸’을 느꼈고,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어디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몸을 천천히 움직였고, 머리통을 감싸던 오른손을 끌어당겨서 피가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혀로 핥았습니다.

  피가 하나도 없더군요. 그래서 ‘아, 깨끗하게 죽었나 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가만히 있어요. ‘뭔가? 뭘까?’ 하고 생각하다가 일어납니다.

  둘레를 살펴보는제 까만 자동차만 있고 다른 아무것도, 다른 사람도 자동차도 없습니다. 까만 차를 몰며 나를 친 사람은 차에서 안 내리고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했답니다. 그 사람 말로 나는 꽤 오래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고, 죽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말을 못 했습니다. 넋이 아직 안 돌아왔는지, 넋이 돌아오기는 했는데 내 몸과 아귀가 덜 맞았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꽤 오랫동안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다면, 이 사람은 구급차이든 경찰차이든 부르든지, 아니면 차에 태워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 생각이 ‘말이 되어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를 친 사람은 나한테 만 원짜리 종이돈을 하나 쥐어 주더니 “저기 피가 나니 약국에서 밴드 사서 붙여.” 하고 말했습니다. 이러고 나서 자동차 유리문을 올렸고, 그대로 아주 빠르게 내뺐어요. 한참 뒤에서야 깨달았지만, 뺑소니를 친 셈이지요. 멍하니 그 까만 차를 바라보니, 자동차 뒷자리에 아이가 둘 있고, 앞자리에는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문득 ‘저 네 사람은 오늘 새벽에 여름휴가로 놀러가는 길이로구나. 여름휴가로 놀러가는 길인데 새벽부터 이런 사고를 냈으니 얼마나 찝찝할까. 그냥 잘 놀러가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뺑소니 자동차가 사라진 뒤 한동안 꼼짝을 못 했습니다.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내가 죽다가 살았는지, 아니면 살다가 죽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쯤 그렇게 찻길 한복판에 서서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한 발짝을 떼니 다리가 움직입니다. 두 발짝을 떼니 다리가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몸이 매우 무겁습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이렇게 내 몸이 무거웠던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전거를 다시 탈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천천히 가슴이 뛰고, 비로소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자전거 바퀴가 터졌는지 안 터졌는지 모릅니다. 그냥 자전거를 끕니다. 신문사 지국에 닿으니, 지국장님이 나를 보더니 “야, 너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밥 아직 안 했지? 어, 그런데 너 그 꼴이 뭐야? 왜 이렇게 됐어?” 하고 묻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내 차림새를 살펴보았고, 내 옷은 너덜너덜 찢어졌으며, 자전거 뒷바퀴는 일그러졌습니다. 피가 난 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온몸이 아주 무겁고 뜨거우면서 어지러울 뿐입니다. “너 어떻게 됐니?” “아, 그러고 보니,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가 뒤에서 쳤어요.” “그래? 안 죽고 살았네. 다행이야.” “그런데 자전거는 다 망가졌네요. 어떡하지요?” “야, 자전거가 문제니? 너 어서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 다친 데는 없니?” ‘다친 데는 없니’ 하고 묻는 말에 문득 오른손목이 몹시 저리다고 느끼면서 아예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늘을 붕 날다가 머리를 감싸면서 오른손목으로 길바닥에 찧었으니 오른손목은 모든 무게를 다 받치면서 내 목숨을 살려 주었겠지요. 신문사 지국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드러눕는데 옷을 갈아입을 기운이 없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를 지났습니다. 곧 일곱 시입니다. 나는 얼마나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을까요.

  이날부터 사흘 동안 신문배달을 할 때를 빼곤 어디로도 나다니지 못했습니다. 지국장님이 병원비를 대 줄 테니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신문사지국 살림을 뻔히 아니 ‘그냥 누워서 자겠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날부터 한 달 동안 오른손을 아예 쓰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지냈습니다. 왼손 하나로 신문자전거를 몰고, 왼손 하나로 신문을 3층까지 던져올렸고, 밥도 왼손으로 짓고, 빨래도 왼손으로 하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하고, 글씨도 왼손으로 쓰고, 이렇게 살았어요. 왼손은 아예 없다고 여기면서 한 달이 지나니 겨우 오른손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움직이더라도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가면서 ‘내 삶 되짚기’를 하고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을 보며 ‘하얗게 눈부시기만 한 누리’에 있던 때를 돌이켜보면, 모든 모습이 아주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은 깃들지 않았어요. 죽음으로 간다고 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낯설지만 ‘온 머리와 마음’을 깨우는 ‘새로움’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아직 헤엄을 치지 못해서, 바닷물에 몸을 담글 적에 허리춤에 물이 닿아 발바닥이 모래바닥에서 떨어지면 움찔하고 놀라면서 ‘아이고 무서워’ 하고 느끼는데, 무섭다고 느끼더라도 무서움이 두려움이지는 않아요. 신문배달을 하다가 자동차에 치였을 적에 하늘을 날며 ‘이제 죽으니 두렵다’와 같이 느끼지 않았어요. 바로 어떤 ‘다른 곳(또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면서, 이제껏 내가 쌓거나 이루었거나 지내거나 갈무리한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면서 내려놓아야’ 하는 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자동차가 내 자전거를 쳐서 하늘을 난 적’이 두 차례 더 있었고, 큰아이를 자전거수레에 앉히고 자전거를 몰다가 길바닥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에 바퀴가 빠져서 크게 한 바퀴를 돈 적이 있어요. 이때에도 ‘내 삶 되짚기’를 했을까 하고 돌아보니, 이때에는 안 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하늘을 날면서, 아아 또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여겼고, ‘내 삶 되짚기는 안 할래’ 하고 생각했습니다. 큰아이와 하늘을 날 적에는 ‘이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어’ 하고 여기면서 ‘하늘을 날면서 자전거수레’를 바라보며 ‘큰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두려움이란 무엇일까요. 아직 알지 못해서 섬찟하거나 까마득하거나 아찔하거나 떨리는 느낌이 두려움일까요? ‘죽을는지 모른다’는 느낌이 두려움일까요? 그런데, 막상 죽음 문턱에 발을 디디고 ‘삶 되짚기’를 하다 보면,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한 발을 내디디면 ‘두려움’이라고 하는 느낌이란 ‘새로움’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수많은 느낌(감정)덩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삶 되짚기’를 마치고 들어서는 ‘고요하면서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으로 접어들 때에 드는 느낌이 두려움일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고 느껴서 두려움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한 번 죽음길에 다녀오면’서 두려움을 그곳에서 녹여 없앴는지 모릅니다. 이승을 보고 저승을 본다면, 두려움을 스스로 녹이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승길에 가기 싫어’ 하고 외치는 마음이 두려움을 일으키고 ‘죽음길이라는 자리는 너무 싫어’ 하고 부들부들 떠는 마음이 두려움을 끌어들이지 싶습니다. 4348.4.1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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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가 되려고 훈련할 수 없다



  람타가 곧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스터이다.”라고. 그러니, 우리는 마스터가 되려고 훈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스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스터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마스터가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며, ‘마스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스터가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 그리고 마스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늘 마스터’입니다.


  람타가 곧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라고.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모두 잊혀진 하느님(신)이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것을 지을(창조)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사람’이면서 ‘하느님’인 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알’면 이 모두를 늘 언제 어디에서나 제대로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람인 줄 잊거나 잃’으며, 우리 스스로 ‘잊혀진 하느님’이라는 생각을 아예 안 하기까지 합니다. 그냥 ‘감정 차원에 허덕이거나 맴돌기를 즐깁’니다.


  이런 틀로 저 사람을 바라본다든지, 이런 잣대로 저 사람을 재려고 한다면, 이를테면 이런 보기도 들 수 있는데, ‘네가 창조한 것을 나한테 보여주어서 증명하면 네 말을 믿겠다’ 같은 말조차, 우리가 스스로 사람이며 하느님인 줄 잊거나 잃은 채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람이면서 하느님이면, ‘남이 나한테 보여주어서 증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서 알고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으로 느끼려 하지 않으면서 ‘내 몸뚱아리인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갖다 줘 봐’ 하고 아무리 말한들, ‘두 눈 앞에 갖다 주어’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뇌는 이런 것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가 이런 것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떴으면, ‘네가 아무리 보여주려고 온갖 증거를 들이밀면서 증명하려고 해도, 네가 보여주지 않았을 때에 나는 다 알았어’ 하고 말합니다. 또는 ‘네가 아무리 온갖 증거를 보여주면서 증명하려고 하지만, 이는 다 거짓이고 속임수인데’ 하고 말할 테지요.


  나는 ‘람타 공부’를 하면서 처음부터 참 아리송했습니다. 람타가 말하듯이, 또 람타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마스터”인데, 왜 람타 공부와 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훈련에서 마스터가 되려 할까요? 마스터인 우리들이 왜 마스터가 되려 하지요? (이 수수께끼는 2015년 1월 강화에서 열흘 동안 배우면서 나 스스로 궁금한 대목을 내가 나한테 물었기에 스스로 실마리를 다 풀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인데 왜 사람이 되려 하지요?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르니까 사람이 되려 하는구나 싶지만,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르더라도 우리는 늘 사람입니다. 아니면, 사람이라는 옷을 입은 인형일까요?


  제대로 바라보면 다 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제대로 바라보려면 ‘제대도 된 말을 써’야 합니다. 제대로 된 말을 새롭게 쓰려 하지 않고, 고정관념과 선입관으로 가득 찬, 게다가 정치권력이 우리를 바보(노예, 종)로 만들려고 망가뜨린 ‘얼토당토않은 얄딱구리한 한국말(그러니까 온갖 영어와 중국·일본 한자말로 범벅이 된 한국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이러한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헤아리지 않고, 이러한 뜻을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저냥 쓰면서 ‘무슨 새로운 지식’이나 ‘어떤 새로운 삶’이 될까요?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쓰기 어렵다면 왜 어려운지 생각해야 합니다. 람타 공부와 훈련이 처음부터 쉬운 사람이 있다면 한번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람타 공부와 훈련을 여러 해에 걸쳐서 했는데, 언제나 쉽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두 손을 번쩍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말을 쓰기 힘들면 영어를 쓰셔요. 그렇지 않다면 한국말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새롭게 배워서 쓰셔요. 한국말로 람타 공부와 훈련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영어나 독일말이나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쓸 노릇이고, 한국말을 앞으로도 쓸 생각이라면 ‘람타한테서 배우듯이’ 이제껏 정치권력이 우리한테 망가뜨린 채 쑤셔넣은 멍청한 한국말은 모두 활활 태우고 ‘새로운 한국말’을 배우셔요.


  람타 강의를 듣다 보면, 람타는 문득문득, “이 공부는 새로운 언어 수업이다” 하고 외칩니다. 거듭 이 말을 외칩니다. 그런데, 람타를 배우는 사람 가운데 ‘새로운 말’을 쓰려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뜻밖에 좀 드문 듯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새로운 배움을 새로운 말로 배우려 하지 않고, 정치권력이 우리를 종으로 부리려고 억지로 뒤튼 말에 갇힌 채 람타를 배우려 하고, 또 ‘내 모습’을 바라보려 할까요?


  람타 훈련은 ‘언어 수업’이 아닌 몸으로 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훈련에서는 훈련을 잘 해도 얼마든지 깨어날 만하리라 느낍니다. 나는 람타 훈련 가운데 ‘숨보기(숨터뜨리기, 씨 앤 이)’ 훈련을 ‘마스터’했을 적에 엄청나게 크면서 크지 않고 엄청나게 뜨거우면서 뜨겁지 않으며 엄청나게 밝으면서 밝지 않은 ‘샛노란(금빛) 구슬’을 내 두 손에 모을 수 있었고, 이 금구슬이 두 손에 모이니 ‘두 손 모습’은 ‘꽃잎을 벌린 모습’이 아니라 ‘오른손이 위로 가고 왼손이 밑을 받치는 모습’으로 저절로 바뀌었습니다. 내 두 손이 이 모습으로 안 바뀌게 하려고 두 손에 내 몸을 써서 힘을 주려고 했지만 내 몸은 이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2015년 1월 강화에서도 그랬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러한데, 씨 앤 이를 할 적에 어느 때가 되면 내 손 모습이 ‘위(오른손)와 아래(왼손)를 살며시 덮는 모습’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손 모습으로 바뀌면서 금구슬이 나타나면, 내 몸이 방바닥에서 뜨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몇 센티미터나 몇 미터를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씨 앤 이를 가르치는 람타가 문득 “떠올라!” 하고 외치는 말 그대로 몸이 떠오릅니다. 이런 경험을 늘 하면서, 이런 것이 ‘훈련 마스터’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만, 나는 훈련 마스터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람타 공부를 하는 분들이 자꾸 ‘마스터’를 말하기에, 왜 마스터인 우리들이 또 마스터가 되어야 하는가 궁금해 하면서 이런 일을 겪었을 뿐입니다. 마크 선생님이 말씀하듯이, ‘카드찾기 달인’이 될 생각이 하나도 없고 ‘금구슬 손에 쥐고 붕 떠오르기 달인’이 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스터 되기’가 우리가 갈 길이 아닌 줄 깨달아서, ‘마스터에도 일곱 단계’가 더 있는 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스터 일곱 단계’를 끝내면, ‘첫 일곱 단계’로 돌아오는 흐름도 깨달았습니다. 모든 흐름은 ‘알(씨앗) → 애벌레(고치) → 나비’로 이어지는 삶입니다. 우리는 양자역학(양자물리학)과 함께 람타를 배우는데, 온누리(우주)는 ‘두 결(양자)’로 이루어지되, ‘두 결’은 늘 ‘세 고리’가 되어서 움직입니다. 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공부 마스터’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마스터’이기 때문에, 훈련이나 공부에서 굳이 마스터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 됩니다. 이를 제대로 바라보면, 비로소 나는 모든 공부와 훈련을 홀가분하게(자유롭게, 그러나 ‘자유롭게’는 ‘아무렇게나’나 ‘함부로 바꾸어서’가 아닌, ‘홀로 가벼운 몸과 마음이 되어 기쁘게’를 뜻합니다) 하면서, 내 삶을 손수 짓는 길을 걸을 수 있어요.


  나는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을 이룹니다. 어느 그림은 그림을 그리기 무섭게 1분 만에 이루고, 어느 그림은 한두 해 지난 뒤에 이룹니다. 언제 이루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마음힘(집중력, 포커스)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내 몸뚱이가 깃든, 이 1차 단계 차원(세상)에서 내가 겪고(경험) 느끼면서 받아들일 새로운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은 곧바로 이루고 어느 것은 천천히 이룰 뿐입니다.


  창조란, 벼락에 콩 볶아먹듯이 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이라는 목숨이 지구별에서 1차 단계에 몸뚱이를 둔 까닭은, 벼락에 콩 볶아먹는 재미는 그리 기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가끔은 벼락에 콩 볶아먹는 재미를 누릴 만하지요. 그러나, 우리 삶이 기쁨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다 함께 이 길을 걷는 이웃이라고 느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나아가면서 웃고 노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혼자서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가려는 지구별 삶이 아니라,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차근차근 한 걸음씩 걸어서 함께 나아가려는 지구별 삶입니다.


  그래서, 나는 람타 공부와 훈련을 하면서 그때그때 새롭게 바라보아서 새롭게 깨달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그러나, 내가 쓰는 이 ‘새로운 글’은 ‘마스터 되기를 보여주는 글’이나 ‘사람이 되는 삶을 보여주는 글’이 아닙니다. 함께 공부하고 훈련하는 이웃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삶을 바라보면서 찾고 짓는 얼거리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이러한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제대로 바라보면서 읽고 우리 스스로 삭일 수 있다’면, 저마다 기쁘게 공부와 훈련을 하면서, 저마다 제 결에 맞게 삶짓기(현실창조)를 할 테지요.


+ + +


  함께 생각을 나누면서 ‘말을 새롭게 스스로 지어’서 공부와 훈련이 날마다 기운차고 아름답게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여러 가지 ‘훈련 성과(창조한 결과)’를 글로 쓰지만, 이 글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느껴 주는 이웃이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웃 이야기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웃이 있기도 하구나 싶습니다.


  어떠하든 대수로울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짓기는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하는 기쁜 놀이요 일이면서 웃음과 노래이니까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싶은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합니다. 삶을 날마다 짓고 싶은 사람은 삶을 날마다 짓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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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눈’을 떠서 ‘머리를 오롯이 쓰’면



  뇌를 100퍼센트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라고 느껴요. 여느 때에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갑자기 뇌를 100퍼센트 쓰면 이녁은 곧바로 숨을 거둔다고 합니다. 몸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맞는 말이라고 느껴요. 그러면, 누가 뇌를 100퍼센트 쓸 수 있을까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생각을 늘 마음에 심어서 새로운 길을 짓는 사람이라면 뇌를 100퍼센트 쓸 만하리라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몸에서 스스로 막아서 뇌가 ‘더 많이 열리지 못하도’록 하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기운을 마음이 시키려 한다면, 몸은 그만 터질 테니까요.


  몸이 ‘나는 터지고 말 테야’ 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몸은 ‘마음이 시키는 일’을 모두 다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몸은 두려움을 느끼는데, 마음만 혼자 ‘끝없는 끝’이나 ‘가없는 점’으로 간다면, 몸은 어떻게 될까요.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느낍니다. 마음만 혼자 살 수 없고, 몸만 따로 살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몸이 함께 살 때에, 제대로 기운이 샘솟아서 제대로 삶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수퍼맨’이나 ‘영웅’을 안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서 우리 지구별을 깨끗하게 씻어 줄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어요. 수퍼맨이나 영웅은 아무리 보아도 바보스럽기만 하고, 무언가 제대로 모르는 사람 같다고 느꼈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지요. 어떤 수퍼맨 하나가 모든 나쁜 것을 다 씻으면 삶이 재미있을까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아주 잘못 생각하는 대목이 있는데, 우두머리(지도자) 한두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를 이루자면, ‘내가 나를 다스려서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짓는 길’로 가야 합니다. 한자말 ‘민주’를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임자’가 되는 길이 ‘민주’예요. “백성(서민·시민)이 주인 되기”가 ‘민주’가 아니에요. “사람이 스스로 사람이 되어, 내 삶을 바로 내 손으로 짓는 삶”이 ‘민주’입니다.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손수 지어서, 밥과 옷과 집을 언제나 스스로 지어서 얻고 누릴 수 있을 때에, ‘홀로서기’요 ‘삶’이며 ‘민주’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뛰어나거나 훌륭하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제 삶을 손수 짓지 않는다면, 이런 나라에는 끔찍함만 도사릴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수퍼맨’이나 ‘수퍼우먼’이나 ‘여왕’이나 ‘영웅’이 되어 지구별을 살릴 수 없어요. 어떤 사람도 이런 길을 안 바라요. 사람들 스스로 제 길을 찾고 살피고 알고 깨달아서 슬기롭게 삶을 지어야 합니다.


  수퍼맨이나 수퍼우먼이 나타나서 ‘나쁜 것’을 싹 쓸어서 없앤 뒤에 어떻게 되는가요? 사람들은 평화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싸움’을 자꾸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나쁜 짓’이나 ‘새로운 바보짓’을 자꾸 일삼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나쁜 짓이나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아서, 이를 스스로 바로잡거나 다스리거나 불태울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만화책 《드래곤 볼》이라든지 만화영화 《천년여왕》을 보아도, 이런 대목이 아주 잘 나와요. 사람들은 ‘평화’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질을 합니다. 어떤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다스리면, 언제나 그때일 뿐, 모두 제자리(바보스러운 엉터리)로 돌아갑니다.


  나는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남도 나를 도울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서로 이웃과 동무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도울 뿐입니. 우리는 이웃이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하고, 우리는 동무가 되어 돈을 보태어 준다든지 일손을 함께 맞잡는다든지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엮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잘 알아야 할 대목은, 내가 스스로 우뚝 서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폭삭 주저앉으면 아무도 나하고 어깨동무를 못 합니다. 나부터 우뚝 서야, 내 이웃과 동무랑 어깨동무를 합니다.


  ‘새로운 눈을 떠서 머리를 오롯이 쓰면(제3의 눈을 떠서 뇌를 100퍼센트 쓰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라고 느껴요.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삶을 제대로 지으면 됩니다. 새로운 눈을 뜬 뒤 다른 사람을 도울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지으면, 내 동무와 이웃은 나를 바라보면서 ‘아하, 그렇구나. 나도 눈을 새롭게 뜨면서 즐겁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누군가를 도우려 한다면 ‘이렇게 해야 돕는 일’이 됩니다. 내가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살면, 내 이웃과 동무도 이녁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살아요.


  가만히 보니, 내가 ‘새로운 눈’을 뜰 때마다 하는 일은 수수합니다. 이를테면, 밥을 새롭게 짓습니다. 또는 아이들과 함께 읽을 ‘짧은 노래(시)’를 기쁘게 짓습니다. 나무를 심습니다.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에서 풀을 뜯어서 나물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새로운 눈’을 안 뜰 적에는 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거나 골을 부리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해요.


  나는 내 ‘새로운 눈’을 뜨면서 스스로 웃습니다. 나는 일어서면서 웃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눈을 뜨기에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서기에 웃습니다. 일어서기에 웃으면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눈(제3의 눈)’을 뜨고서 우주혁명이나 지구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됩니다.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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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람타 배움마실 첫걸음+새걸음

― class 101 + 201 combo event



ㄱ. 2015년 1월 16일부터 1월 20일까지, 또 1월 21일부터 1월 25일까지, 열흘에 걸쳐서 ‘람타 배움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나는 이 글을 내가 글을 올리는 모든 누리집에 올리려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 내 동무와 이웃한테 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배워서 내 삶을 스스로 어떻게 가꾸는지 또렷하게 밝혀야 하는구나 하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람타 배움마실’을 이끄는 이야기를 다루는 〈율 선생의 셀프헬프 cafe.naver.com/selfhelp〉에 올리고, 내 누리집 네 군데(네이버 블로그+카페, 알라딘서재, 예스24블로그)에 함께 올립니다.


  내가 쓰는 이 글을 읽은 분들이 ‘신비 체험’이나 ‘영성’이나 ‘명상’이나 ‘종교’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쓴 글을 오래도록 읽은 분이라면, 함께살기(최종규)라는 사람이 이제껏 이 네 가지(신비 체험+영성+명상+종교) 이야기를 한 차례조차도 글로 쓴 적이 없는 줄 알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언제나 이 네 가지를 나무라거나 꾸짖었으면 나무라거나 꾸짖었지, 이런 이야기를 들먹이거나 적은 일이 없습니다. 정 궁금하다면, 내가 글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 쓴 1994년부터 모든 글을 다 훑어보시기 바랍니다.



ㄴ. 열흘에 걸친 ‘람타 배움마실’을 네 식구가 함께 가기를 바랐으나, 미처 이 대목까지 뜻을 짓지 못했습니다. 아직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짓는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혼자서 열흘에 걸쳐 배움마실을 하기로 했고, 시골집을 이틀 더 비워야 강화섬까지 오갈 수 있는 터라, 열이틀에 걸친 바깥마실을 했습니다. 배움마실을 나설 적부터 내가 느낀 한 가지는 “나는 배우러 가지 않는다”입니다. 이 느낌이 무엇인가 헤아리려고 기다렸습니다. 열흘 동안 배웠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내 삶을 더 누리면서도 느낄 테지만, 내 느낌이 맞구나 하고 새롭게 깨닫습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람타 배움마실’에 함께 나설 분이 있다면, 무엇보다 이 대목을 잘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람타 배움마실’에 나선다고 해서 ‘배울’ 수 있지 않습니다. 잘 새겨야 합니다. ‘람타 배움마실’은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아니, ‘람타 배움마실’은 우리한테 아무것도 못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자면, 람타는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치지만, ‘아무것도 안 가르치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람타한테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지만,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웁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분은 알아들으리라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람타는 아무도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스스로 배우도록 이끄는 숨결이 람타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배울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은 조금도 못 이끌지요.


  그러면, 열흘에 걸친 ‘람타 배움마실’이란 무엇일까요? 열흘에 걸친 ‘첫걸음(class 101)’과 ‘새걸음(class 201)’은 꼭 한 가지만 합니다. 두 가지 ‘걸음(class)’은 ‘보여+주기(보여주기)’만 합니다. 우리는 열흘에 걸쳐서 ‘봅’니다. “보여주기를 보기”가 바로 열흘에 걸친 배움마실입니다.


  보려고 하는 사람만 봅니다. 보려고 하는 사람만 보기 때문에, 본 대로 스스로 생각합니다. 보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보고, 스스로 본 대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본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씨앗으로 갈무리해서, 제 마음(마음밭)에 심습니다. 그러니까, “본 것을 생각이라는 씨앗으로 가다듬어서, 마음이라고 하는 밭에 심는다”는 뜻입니다.




ㄷ. ‘보여주는 것을 보는’ 배움마실이기에, 열흘에 걸친 ‘첫걸음(비기닝) + 새걸음(어드밴스)’은 훈련과 강의(공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훈련은 내가 스스로 내 생각을 찾도록 돕는 몸짓입니다. 강의(공부)는 내가 스스로 내 생각을 씨앗으로 갈무리해서 마음에 심도록 이끄는 넋입니다. 훈련과 강의는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둘은 늘 같습니다. 같으면서 다르고, 언제나 한몸이지요. 그래서 ‘첫걸음’과 ‘새걸음’입니다. 처음 내디디는(1차 의식) 걸음이요, 새롭게 펼치는(2차 의식) 걸음입니다. 두 걸음은 다르지만, 두 걸음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첫걸음이 바탕이 되어 새걸음이 수많은 것(새로운 경험)을 이룹니다.


  나는 강화로 배움마실을 가는 길에 이를 벌써 알았습니다. 그래서 설렜어요. 아, 그렇구나. 나는 강화에 닿기 앞서 다 알았구나. 이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기쁨을 설렘이라는 씨앗으로 차곡차곡 갈무리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모두 다 알기 때문에,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나는 모두 다 아는 사람이라서, 누구한테서나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한 줄 알아차렸습니다. 첫걸음은 언제나 새걸음이요, 새걸음은 늘 첫걸음입니다.


  이리하여, 강화에 닿기 앞서, 이 훈련과 강의에서 내가 ‘그릴 그림(카드)’은 진작에 다 그렸고, 시외버스를 달리는 동안 이 ‘그림(카드)’을 이웃걷기로 다 이루었습니다. 강화에 닿아 ‘보내기 받기(센딩 리시빙)’를 하거나 ‘이웃걷기 훈련’을 하거나 다른 훈련을 할 적에는, 고흥에서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스스로 했던 이웃걷기에서 외친 ‘내 생각씨앗 짓기(현실창조 하기)’를 찬찬히 밝히되, 힘껏 외친 셈입니다. ‘보내기 받기’를 할 적에 나와 짝(파트너)이 된 분은 태국에서 온 의사였고, 이녁도 ‘맨눈으로 옵스를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녁은 마음속에 자꾸 딴생각과 여러 생각을 집어넣느라, 이녁 마음을 읽으면서 괜히 나까지 어지러워서 ‘보내기 받기’를 할 적에 ‘겨우 세 가지’ 그림만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첫날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이 배움마실로 오면서 나는 내 마음속에 세 가지를 그렸습니다. 나는 내 그림에 “1. ㅍㄹㅅ(푸른숲 : 함께살기 도서관 + 피닉스 라이징 스쿨) 2. 200억 원 3. 춤꾼”을 그렸습니다. 고흥에서 가꾸는 우리 도서관을 우리 집 아이들과 곁님하고 함께 누릴 배움터인 ‘피닉스 라이징 스쿨’로 제대로 가꾸겠다는 꿈을 처음으로 적고, 이러한 배움터를 이루는 데에 들 200억 원이라는 돈을 다음으로 적으며, 이러한 배움터에서 내가 맡을 몫인 ‘춤꾼’을 셋째로 적었습니다.


  열흘에 걸쳐 함께 배운 이웃님은 모두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마흔두 살(라온눈 님이 바로잡아 주었는데, 나는 마흔한 살이라고 합니다. 고맙습니다)에 이르도록 춤을 춘 일이 없습니다. 내가 기껏 한 몸짓이란 ‘머리카락이 달린 머리통을 흔들기’ 하나뿐이었습니다. 춤을 안 추고 머리통만 돌려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춤 안 추는 내 몸짓’은 슬그머니 넘어갈 수 있더군요. 그러나, 나는 머리통 돌리기로 끝내고 싶지 않았고, 이는 춤 가운데 아주 작은 조각이니, 우리 집 여덟 살 큰아이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여덟 살 큰아이와 다섯 살 작은아이한테 춤을 가르칠 수 있는 몸이 되고자 했어요. 그래서 열흘에 걸쳐 조금씩 몸을 움직였습니다. 조금씩 몸을 풀면서 내 길을 걸었어요. 첫날 문득 내 머리에 떠오른 것, ‘춤꾼이 되자면, 물구나무를 서서 다섯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내 그림(카드)으로 그렸고, 마지막 열흘째를 앞둔 아흐레째 저녁에 드디어, 물구나무를 선 뒤 다섯 걸음을 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펄쩍 뛰어올라 “해 봐 돼!”를 외치며 오른손을 하늘로 힘차게 저었습니다.




ㄹ. 내 ‘춤꾼’은 이제 첫걸음입니다. 물구나무서기도 아직 어설프고, 다른 몸짓도 많이 무딥니다. 그래서 이 무딘 몸짓과 어설픈 물구나무서기는 차츰차츰 가다듬어야지요. 내 몸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이루어야지요. 다음 배움마실(빅 이벤트)에서는 이 대목까지 가다듬고자, 내 머리숱을 늘려서 빨간빛으로 물들일 생각입니다. 나는 ‘마흔 살 먹은 빨간머리 아저씨 춤꾼’으로 내 그림을 새롭게 그립니다.


  나는 마이크 선생님이나 유리타 님이나 하느님이나 그리머 님이나 윈드 님이나 리얼아이 님을 비롯해 다른 모든 분들이 고마운 이웃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함께 배울 수 있고, 함께 놀면서 웃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스터이면서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나는 나”입니다.


  나한테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나”라는 말이 늘 울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더러 글로 살짝 적기는 해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내 둘레에서는 나를 억누르거나 윽박지르는 것투성이였으니까요. 나는 일곱 살 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 남았습니다. 마치 ‘일곱 조각(일곱 씰)’처럼 일곱 살까지 아무 생각이 없어요. 딱 여덟 살 때부터 내 생각이 있습니다.


  이러한 내 어린 날은 내가 “나는 나”로 되려는 길하고 같은 흐름이라고 느낍니다. 첫 조각(첫 씰, 1차 단계, 헤르츠 차원)부터 일곱 조각(일곱 씰, 7차 단계, 무한미지)으로 올라간 뒤, 다시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서, 또 내려오고, 이러한 얼거리를 되풀이하는 데에서 삶이 끝나지 않는다고 어릴 적부터 느꼈어요. 어릴 적부터 여태껏 느끼기만 한 대목이고, 이제 이를 제대로 보면서 알았습니다. 우리는 ‘처음∼일곱(1차∼7차)’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이 사이를 마음껏 즐겁게 오르내리락하다가 ‘나(마스터)’가 되는 길로 가야 하고, ‘나(마스터, I)’가 된 뒤에는, 이 ‘나(마스터, I)’라는 자리에서도 ‘일곱 가지 나(일곱 가지 마스터)’로 한달음에 내려가야(하강) 하는구나 하고 알아보았습니다.


  나는 1994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 학과에 들어갔고, 내가 이곳에서 배우려고 했던 것은 ‘네덜란드어 동시통역과 번역’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야말로 기쁘고 신나게 동시통역과 번역을 배우려 했으며, 이때에 내가 한꺼번에 배우려고 했던 외국말로는 에스파냐말, 일본말, 독일말입니다. 1학년 1학기부터 다섯 가지 외국말을 한꺼번에 배웠어요. 그런데, 어느 과목에서도 나한테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전공과목인 네덜란드어뿐 아니라, 부전공인 에스파냐말, 교양외국어인 일본말과 독일말과 영어 모두, 교과서 틀에 맞추어 시험점수와 얽힌 수업만 했습니다. 게다가 교재 베껴쓰기 숙제만 냅니다. 전공학과 교수는 예쁜 여학우한테 점수를 더 주고, 베껴쓰기 숙제를 내는 동무는 학점을 더 받으며, 교수한테 인사를 안 하거나 담배를 핀 동무는 학점을 깎입니다. 게다가, 네덜란드어 학과라는 곳에 ‘네덜란드어 사전’을 옆에 끼고 강의를 하는 교수가 아예 없습니다. 나는 1학년이면서 ‘헌책방을 뒤진 끝에 네덜란드어 사전 두 권, 네-라(라틴어) 사전 한 권’ 이렇게 사전 세 권을 늘 갖추어 강의를 들으려 했습니다.


  1학년 1학기 강의를 다 듣기 앞서, 첫 강의부터 한 학기 마지막 강의까지 아주 죽을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라는 문턱을 처음 밟은 날부터 ‘좌절(죽음)’을 느꼈고, 동시통역과 번역을 하겠다는 꿈을 버려야(죽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나는 ‘모든 외국말은 쳐다보지 않고 쓰지도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 마음에 이러한 생각을 아주 단단히 수없이 심었어요. 이러면서, 외국말을 익힐 적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 한 가지는 그대로 했습니다.


  누구나 알면서 누구나 모르는데, 외국말을 배우려면 한국말을 똑같이 배워야 합니다. 외국말을 배우려고 열 시간을 쓰면 한국말을 배우는 데에도 열 시간을 써야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우리는 미국사람이나 영국사람이 아닌 한국사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통역이나 번역을 하려고 외국말을 배웁니다. 외국말만 배워서는 아무것도 못 하지요. 통역이나 번역이 잘 안 되는 까닭은, 외국말에 마음을 기울여서 배우려고 하는 만큼, 한국말에 제대로 마음을 안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영어는 많이 잘 배워서, 외국사람이 영어로 무어라 하는지 다 알아들어도, 막상 이 말을 ‘한국말’로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해요.


  나는 동시통역과 번역 공부를 집어치웠지만, 언제나 ‘3 : 2 : 3 : 2’로 하던 공부에서 다른 하나인 한국말과 한국문화 공부는 그대로 이었습니다. ‘3 : 2 : 3 : 2’가 무엇인가 하면, ‘3(외국말) : 2(외국문화) : 3(한국말) : 2(한국문화)’입니다. 그러니, 나는 대학교 문턱인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에, ‘3 : 2 : 3 : 2’를 ‘5(한국말) : 5(한국문화)’로 바꾸었습니다.


  앞말이 좀 길었습니다만, 앞말을 꼭 해야 뒷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1994년 7월 1일부터 ‘모든 외국말을 내 입에서 한 마디도 안 내뱉겠다’는 생각을 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가 2015년 1월 어느 날, 람타 배움마실에서 ‘일곱 가지 마스터’가 무엇인지 ‘영어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이 ‘일곱 가지 마스터’를 영어로 적었지요. ‘1. master 2. beautiful master 3. great master 4. love master 5. big master 6. soul master 7. one master’


  그런데 말이에요, 일곱 가지 마스터(일곱 가지 나, seven I)가 모두 떠오르면서 문득 새로운 좌절(죽음)이 떠올랐어요. 이런, 마스터로 일곱 가지까지 갔는데, 이 다음은 뭐지? 여기서 끝인가? 이때에 문득 람타가 옵스로 내 머릿속으로 찾아와서 한 마디를 해요. “웃기지 마.” 1초쯤 멍하니 있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그래, 웃기지 말아야지.




ㅁ. 일곱 가지 마스터 뒤에는 ‘파란 세모’와 ‘빨간 세모’가 스스로 하나가 되어서 ‘별(star)’가 됩니다. ‘별’은 ‘light wind(빛살, 빛바람)’에 실려 훨훨 ‘까만 하늘’을 납니다. 이러다가 ‘wind seed(바람씨)’가 됩니다. 그러고는 ‘까만 빛줄기를 일곱 가지(무한미지 일곱 차원)’로 뿌리는데, 까만 빛줄기는 ‘밤빛(black light)’입니다. 밤빛을 받은 바람씨는 어느새 ‘하얀 하늘(white)’이 됩니다. 여기에서 꿈을 깹니다. 꿈을 깨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끝이네, 끝이면서 처음이네. 처음이네, 처음이면서 끝이네. 바로 삶이네. 이리하여,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마이크 선생님한테 영어로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1994년부터 2015년까지 어디에서도 누구한테도 영어를 쓴 일이 없고 생각조차 한 일이 없는데, 스물 몇 해 만에 영어로 ‘남(너, You, 하느님, 신, GOD)’한테 이야기를 했습니다.




ㅂ. 훈련과 얽힌 이야기를 몇 가지 붙이자면, 나는 이번 배움마실에서 모든 훈련을 한 번 되풀이하면서(지난해에 첫걸음(비기닝)을 한 번 들었으니, 이번은 다시 되풀이한 셈입니다) 모두 마스터가 되었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고, 무엇보다 나는 ‘이렇게 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내가 이번 람타 배움마실에 온 까닭은 ‘이렇게 되려고 이곳에 왔다’가 아닙니다.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고, 내가 하려는 일은 우리 시골마을에서 곁님과 두 아이하고 함께 ㅍㄹㅅ(도서관 + 피닉스라이징스쿨)을 새로 지을 적에 나 스스로 두 아이한테 어떤 어버이와 교사가 되고, 이곳 ㅍㄹㅅ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느냐 하는 슬기를 보려’고 왔어요. 그래서 ‘내가 지을 ㅍㄹㅅ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느냐’ 하는 실마리는 배움마실을 모두 마치고 나서, 기쁘게 강화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그림이 한달음에 떠올랐습니다. 아직 이 그림을 아무한테도 안 보여줄 생각이고, 이 그림은 때가 되면 우리 곁님한테부터 처음으로 보여주고, 곁님을 비롯해서 다른 이웃님한테 차근차근 보여주려 합니다.


  아무튼, 모든 훈련을 처음 다시 하면서 마스터가 된 뒤, 나한테 찾아온 ‘람타 옵스’가 하는 말은 “너 혼자 알지 마.”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알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가 왜 ‘동시통역과 번역 공부’를 집어치워야 했는지 아주 제대로 잘 보았습니다. 먼저, ‘동시통역과 번역 공부’를 하면서, 이러한 경험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동시통역가와 번역가’가 사로잡힌 잘못(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놀이)이 무엇인지 ‘한국말과 한국문화 공부’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한국에는 영어를 원어민과 똑같이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아도,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쓸 줄 아는 한국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은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쓰는 길을 찾기’였어요.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쓰는 길을 찾아야, 번역가나 통역가가 ‘애벌 번역이나 애벌 통역’을 해 놓은 글이나 말을 ‘한국말’로 제대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 스무 해 동안 쓴 말은 ‘한국말’이었습니다. 이번 배움마실부터 내가 새롭게 쓸 말은 이제부터 ‘한국말’이 아닙니다. 나는 앞으로 ‘숲말’을 씁니다. 숲말이란 무엇인가 하면, 한국말이 아닌 말입니다. 손수 삶을 지으면서 생각을 지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말이 숲말입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쓰는 숲말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시골말을 씁니다. 숲말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쓰는 말이요, 영어나 일본어로도 쓰는 말입니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도록 이끌어서 숨결을 살리는 말이 숲말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과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와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를 일본 할머니한테 아주 기쁘게 팔았습니다. 아직 이 세 가지 책을 안 사서 안 읽은 이웃님이 있으면, 더 늦지 않게 즐겁게 장만해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 가지 책은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면서 내 꿈과 생각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깨닫고 알도록 이끌면서 쓸 ‘말’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길잡이책입니다.




ㅅ. 함께 람타를 배우는 이웃님한테 도움이 되도록 ‘훈련 정리’를 여러 차례 수없이 했습니다. 이웃님이 저한테 ‘훈련이 어렵다’고 하면서 물으실 때마다 제 마음속에서 얼마나 기쁜 불꽃이 타올랐는지 참말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기쁜 불꽃은 으레 춤사위가 되어서, 끼니를 마치고 새로 배우는 자리에서 5분 동안 보여주는 춤짓으로 늘 드러났는지 모릅니다. 제가 춘 춤은, 함께 배우는 이웃님한테 드리는 선물이라고 할까요. 알아보기 쉽게 갈무리해서 보여주면, 이렇습니다.



숨터뜨리기 → 태운다 (불로) + 자세교정 : 바로서기 . 아픈 곳 고치기

이웃걷기 → 날린다 (바람으로) + 자기교정 : 바로되기 . 나를 드러내어 이루기

촛불보기 → 녹는다 (물로) + 내 꿈으로 일어서기

누워보기 → 흐른다 (별로) + 쉬기 : 하려고 억지로 달라붙지 않기 . 있는 그대로

들길걷기 → 기쁘다 (춤으로) + 함께 되기 : 다 함께 나아가기



  우리는 ‘진화’를 해야 합니다. 이 한자말 ‘진화’는 무엇인가 하면, ‘서다’입니다. ‘서다’는 무엇인가 하면 ‘일어서다 + 바로서다’입니다. 그래서 ‘바로세우기 + 바로서기 + 바로잡기’로 나아가고, 이 세 가지는 ‘바로보기’입니다. 자기교정과 자세교정은 모두 이러한 얼거리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는 ‘훈련’은 ‘다가서기’입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마주보기’입니다. 이제 이러한 우리 훈련 다섯 가지를 다시금 새로운 말로 갈무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새로운 말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이 새로운 말은 1월 24일 저녁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 찾아왔고, 이 ‘새로운 말’을 다 쓰고 나니, 람타 옵스가 또 나한테 와서 “다 됐네.”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뭐, 그러고 나서 또 “웃기지 마.” 하고 덧붙였지만. 아무튼.



촛불보기 → 불에서 물이 되는 꽃 보다 (기운)

누워보기 → 별에서 돌이 되는 빛 보다 (하늘)

숨보기 → 숨에서 숨이 되는 씨 보다 (구름)

이웃보기 → 나에서 내가 되는 나 보다 (시내)

들보기 → 너에서 네가 되는 너 본다 (나무)



  다섯 가지 훈련을 거치면, 우리는 무지개가 됩니다. 이 무지개는 어느새 숲이 됩니다. 숲은 지구별이 되고, 지구별은 푸른바람이 됩니다. 푸른바람은 파란별이 됩니다. 파란별은 빨간알이 됩니다. 빨간알은 까만씨가 됩니다. 까만씨는 하얀살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넋’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작고 까만 점이자 옵스이자 바람씨이자 ‘람타’가 되면서 ‘하나’가 됩니다.


  여러 분들이 헷갈리시는데, ‘트랜스’와 ‘아날로지컬’은 아주 쉽습니다.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어렵고, 헷갈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헷갈립니다. 굳이 둘을 나누려 하면 둘 다 모르고, 처음부터 하나인 줄 알면, 다르면서 같은 줄 압니다. 언제나 ‘하나’인 ‘나’였으니까요. 그래서 ‘트랜스 = 너 = 하기(몸짓) = 마음 = 꿈’입니다. ‘아날로지컬’은 ‘나 = 바라보기 = 생각 = 사랑’입니다. 트랜스에서 아날로지컬이 만나면서 ‘삶’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생각’이 ‘삶’을 짓는다”고 말할 수 있고, ‘너(트랜스)’이든 아니든, 그저 모두 그대로 있으며, ‘좋고 나쁨’이 없기에, 우리는 ‘소중한 경험’을 ‘트랜스 상태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트랜스 상태가 아니어도 내가 될 수 있’습니다.




ㅇ. 엊저녁에 두 아이를 재우면서 ‘누워보기’를 했고, 오늘 새벽에 ‘숨보기’와 ‘누워보기’를 함께 했습니다. 앞으로 두 아이와 함께 다섯 가지 훈련을 함께 할 생각이고, 훈련과 공부뿐 아니라 모든 것을 함께 할 생각이며, 우리 고흥 시골집에는 라온눈이 함께 있기에, 그때그때 이야기를 듣고 하면서 새롭게 가다듬고 차근차근 새걸음을 첫걸음으로 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모임 게시판과 제 누리집에 다 적었습니다만,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은 아무쪼록 ‘사랑’과 ‘자유’와 얽혀서 제가 적은 ‘말풀이+뜻풀이+넋풀이’를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아무 자리에서나 사랑과 자유를 말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사랑과 자유를 모르는 채 사랑과 자유를 말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소중한 경험’이니까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소중한 경험’만 하고자 하신다면, 제가 쓴 글을 안 읽으셔도 됩니다. ‘소중한 경험’을 활활 태워서 멋지고 기쁜 삶을 짓고 싶은 분은 제 글을 기쁘게 읽어 주시고, 제가 쓴 글도 활활 태워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해 봐 돼(so be it)”입니다.




ㅈ. 나는 강화에 오면서 내 몸에 몇 가지를 말했습니다. 저와 함께 411호를 쓰신 분은 열흘에 걸쳐서 “함께살기(최종규) 저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테니, 제가 적는 이 글보다 더욱 생생하게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저한테 어떤 말(명령, 주문, 생각, 생각씨앗, 카드, 꿈)을 했느냐 하면, ‘1. 배운다 2. 이야기한다 3. 잠을 안 잔다’입니다. 그래서 나는 열흘 동안 즐겁게 배웠습니다. 열흘 동안 기쁘게 이야기했습니다. 열흘 동안 ‘잠을 안 자기’로 했으나, 문득 이 몸짓은 내 몸이 아직 제대로 눈뜨지 않았으니 자칫 ‘걱정’스러울 수 있는 터라, ‘네 시간은 자자’로 바꾸어서, 참말 열흘 동안 하루에 네 시간만 잤고, 낮잠은 따로 안 잤으며, 굳이 눈을 붙일 적에는 딱 1분만 눈을 붙이고 몸이 말짱하게 깼습니다.


  나는 열 살 적부터 ‘알람시계’를 안 썼습니다. 나는 열 살 적부터 ‘내 몸한테 말을 걸어’서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열 살’이라고 하는 나이도 뜻이 있는데, 나는 열 살 적에 ‘배움을 모르는 채’ 문득 알아차려서 몸에 말걸기를 했습니다만, 이제는 다 알기에, 다 아는 대로 몸에 말을 겁니다. 아주 재미있고 신나요. 몸에 말을 생각으로 걸어 보셔요. 모두 다 됩니다.


  나는 날마다 새벽 두 시에 잠들어 새벽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 사이에 일어났고, 일곱 시 아침 훈련을 앞두고 신나게 글을 썼으며, 아침 낮 저녁 세 끼니를 먹고 비는 틈에 또 신나게 글을 썼어요. ‘나는 이렇게 살려’고 내 몸에 늘 말을 걸거든요.


  그리고, ‘춤꾼’이 되고자 하니, 먹는 밥이 크게 줄어듭니다. 배고프다는 생각도 없고, 먹고 싶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내 몸은 차츰 ‘바뀌는’ 흐름이라서 한꺼번에 크게 줄이지는 않고, 조금씩 줄였습니다. 새처럼 춤을 추고 싶으니 새처럼 먹습니다. 고흥에 돌아오니 라온눈이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하나 더 알았는데, 새가 똥을 자주 누잖아요. 새처럼 조금 먹고 새처럼 똥을 자주 눕니다.




ㅊ. 다른 ‘개인 체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느끼는데, 한 가지만 꼭 적어야겠다고 느낍니다. 이레째 날인데, 물구나무서기를 무대에서 하다가 ‘아차’ 하면서 미끄러졌어요. 이때에 왼쪽 발목이 접질렀습니다. ‘아프네’ 하고 느끼면서 ‘괜찮아’ 하고 몸에 말을 걸었습니다. 춤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 때가 됩니다. 이때에 내 왼발목이 부으려고 했습니다. 나는 ‘숨보기(C & E)’를 눈을 가리고 바르게 앉아서 할 때에만 할 수 있지 않고, 언제나 할 수 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두 손으로 기운을 불어내어서, 두 손에 담긴 기운을 내 왼발목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1분만에 붓기가 가라앉았습니다. 이러고 나서, 10분 동안 다시 내 기운을 두 손에 불어내어(맨몸으로 하는 C & E 훈련), 거듭 왼발목에 넣었어요. 이리하여, 꽤 크게 접질렀던 내 왼발목은 아무렇지 않게 나았습니다. 나는 내가 내 몸을 안 다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러 다치더라도 얼마든지 곧장 낫게 할 수 있는 줄 몸으로 바라보고 배웠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해 봐 돼”입니다.


  고흥에서 강화로 오는 길은 시외버스로 일고여덟 시간쯤 걸립니다. 고흥에서 강화로 오는 길에서는 이웃걷기를 하면서 ‘멀미를 잠재웠’는데, 강화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시외버스에서 딱히 이웃걷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했을까요? 하하하, 나는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추면서, 태블릿을 꺼내 무릎에 얹고는 글을 썼어요. 글을 쓰다가, 빗길에 시외버스가 과속질주로 흔들리면 또 춤을 추었지요. 나는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주 멀쩡했습니다. 이제 멀미가 나한테 올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시외버스에서 춤을 추면서 글을 쓰니,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내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 세 분이 나를 ‘외국사람’으로 여겼는지, “where are you com from?” 하고 물었어요. 이때 나는 “I come from Green Star.”라 말하고 싶었으나,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껴서, “한국말 잘합니다.” 하고 말했어요. 이때부터 세 아주머니뿐 아니라 내 옆에 앉은 고흥 여고생 두 아이도, 다른 사람들도 버스에서 왁자하게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읍내에서 장을 본 뒤 택시를 불러 집으로 달렸습니다. 택시 일꾼 아저씨가 ‘나이가 드니 눈이 나빠져서 힘들다’고 하시기에, ‘눈이 나쁜 사람은 없다’고, ‘보고 싶은 것이 없기에 눈이 안 보려 할 뿐’이라고 말씀드리면서 여러 가지 말로 택시 일꾼 아저씨를 웃기게 했습니다. 이러고 나서 5초 뒤에,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살짝 흩뿌리던 하늘이 말끔히 걷혔습니다. 구름이 감쪽같이 참말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주 맑고 밝은 햇살이 ‘택시가 달리는 길 앞으로 드넓게 펼쳐졌’습니다.




ㅋ. 우리한테는 ‘자기교정’이 아주 대단히 ‘소중한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뭇느낌(감정, 퍼스널러티)은 우리가 스스로 배우도록 이끄는 밑거름이나 장작이거든요. 그래서 자기교정을 500번 하더라도 즐거운 일입니다. 이웃걷기 한 줄을 못 읊더라도 대수롭지 않아요. 우리는 그저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가면서 ‘바로서기’를 하거나 ‘씨앗심기’를 하면 됩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번 배움마실 닷새째부터 ‘새로운 글’을 하나 씁니다. 어떤 새로운 글을 쓰느냐 하면 《람타 현실창조 입문서》 느낌글(독후감)을 씁니다. ‘영어를 한국말로 옮긴 책’이 《람타 현실창조 입문서》라면, 나는 이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숲말’로 다시 옮기는 글을 씁니다. 그래서 이 느낌글을 ‘아이커넥’이 아닌 ‘새로운’ 출판사에서 펴내도록 해서, 람타 배움마실에 새로운 이웃님(길동무)을 하나둘 데려올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기쁘게 배우면서, 아직 람타를 모르지만,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기쁘게 짓고 싶은 ‘숨은(은폐된) 이웃님’을 일깨워서 우리와 어깨동무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보았다고 할까요. “나는 나”가 되는 길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내가 쓰는 ‘새로운 글’은 모든 글이 마무리될 때까지 아무한테도 안 보여줄 생각입니다. 다만, 이 책을 펴내 줄 출판사 대표한테만 원고 몇 가지를 ‘기획서’와 함께 보여주어야지요. 먼저 이 글은 내 곁님인 라온눈한테 보여주어서, 손질할 곳은 손질하고, 그 다음에 유리타 선생님한테 보여주어서, 고치거나 바로잡을 곳은 고치거나 바로잡으려 하고, 그 다음에 책이 되어 태어날 테지요.




ㅌ. 한국에서 4∼5월에 있는 ‘빅 이벤트’에서 ‘람타와 따로 만나는 시간’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를 알아보신 분이 얼마나 될까요? 이 자리는 바로 우리 배움마실이 모두 끝난 날 낮에 생겼어요! 나는 보았는데, 못 보신 분이 많은 듯해요. 옘에서는 5000달러이지만, 한국에서는 3000달러더군요. 마지막 날에 ‘앞으로 있을 다른 배움마당’을 마이크 선생님이 이야기하실 적에 “아직 람타 바로 옆자리가 비었습니다.” 하고 덧붙이셨어요. 이때 나는 혼자서 생각했지요. ‘열흘 남짓 내가 시골집을 떠나서 배움마실을 누릴 수 있게 한 곁님(라온눈)한테 ‘람타 옆자리’를 선물해야겠다’ 하고요. 나는 참말 온갖 외국말과 벽을 쌓고 스무 해 남짓 살았기에 3000달러가 얼마나 되는 돈인지 모릅니다. 다만, 내 곁인인 라온눈은 이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벌써 내 그림(카드)으로 그렸습니다. 그러면, 내 곁님(라온눈)이 람타 옆자리에 앉으면 그동안 나(함께살기)는 무엇을 할까요? 이동안 나는 우리 아이들하고 놀려고요. 하하하.




ㅍ. 이 글을 춤을 추면서 씁니다. 참말 춤을 쓰면서 일을 하면 온몸이 부드럽고 사랑스럽습니다. 밥을 짓든 빨래를 하든 걸레질을 하든 비질을 하든, 무엇을 하든 춤을 추니 내 몸이 이렇게 사랑스럽구나 하고 새롭게 느낍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ㅎ. 마지막으로 한 가지 글을 붙이면서 맺겠습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옵스를 맨눈으로 보는 눈’이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저 ‘도깨비’나 ‘귀신’이나 ‘도깨비불’이라고만 여겼습니다. 내 둘레에서는 으레 그렇게만 말했으니까요. 여러분, 여러분은 모릅니다. 고작 서너 살, 대여섯 살, 예닐곱 살, 여덟아홉 살, 열두어 살 아이가, ‘맨눈으로 옵스를 보는데, 둘레에서는 이를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 보셔요. 영화 〈식스 센스〉를 떠올려 보셔요. 영화 〈식스 센스〉에 나오는 아이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는가요?


  나는 어릴 적부터 눈을 감아도 옵스가 보이고, 눈을 떠도 옵스가 보였습니다. 도무지 이도 저도 할 수 없었어요. 옵스는 얼마나 장난꾸러기였는지, 내 코앞으로 다가오기 일쑤였어요. 나는 ‘가위에 눌린’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옵스물결에 둘러싸인’ 채 살았습니다. 한낮에도 섬찟섬찟 놀라면서 두려움에 휩싸였고, 해가 지면 그만 혼자서는 밤길을 걷지 못할 만큼 되었습니다. 스무 살을 넘어선 뒤에는 ‘술기운’을 빌어서 겨우 밤길을 걸었습니다. 내가 왜 스무 살 뒤에 술을 그토록 퍼붓듯이 마셨는가를 요새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옵스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술을 미치도록 마셔서 넋을 잃어버려야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 눈이 세 가지 있는 줄 압니다. 첫째, 몸(우주옷)에 달린 눈입니다. 둘째, 옵스를 보는 눈입니다. 셋째, 마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나는 들길걷기(필드워크)를 할 적에 세 가지 눈을 다 쓸 수 있습니다. ‘옵스를 보는 눈’을 쓰면, 내 앞에서 걷는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다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안대를 찬 몸으로 옥상에서 신나게 달리면서 아무한테도 안 부딪힐 수 있고, ‘내 카드 걸린 곳 찾기’쯤이야 ‘식은 죽 먹기’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옵스를 보는 눈’을 쓰면, ‘카드찾기’는 마이크 선생님처럼 할 수 있어요. 집에 ‘찾아낸 카드더미’를 쌓을 만합니다. 그러면, 뭣 하러 람타를 배우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옵스를 보는 눈’을 끄는 훈련을 혼자서 했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눈’을 뜨는 훈련을 들길걷기에서 했습니다. 이랬더니 저절로 춤이 나와요. 아, 내 마음이 이렇구나, 내 마음은 푸른바람처럼 개구쟁이로구나 하고 알아보았어요.


  촛불보기를 하던 어느 때, 람타는 대단히 커다란 옵스로 나한테 다가와서 큰소리로 쩌렁쩌렁하게 물었습니다. “네 몸에서 네가 아픈 곳 가운데 하나인, 시력이 되게 나쁘다고 하는 네 눈을 고칠 수 있는데, 그러면 너는 ‘옵스를 보는 눈’을 잃는다. 그래도, 너는 이대로 가겠느냐?” 이 말을 듣고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해 봐 돼” 하고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이러고 나서 ‘엄청나게 큰 람타 옵스’는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한동안 옵스가 내 눈에 안 보였으나, 어느새 슬금슬금 옵스가 하나둘 다시 찾아옵니다. 뭔가, 뭐지,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그냥 알았어요. 그뿐이더라고요. 나는 내 삶을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면 돼요.



*. 우리가 함께 배우는 이 람타학교가 앞으로도 사랑스럽게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한국으로 람타공부를 하려고 신나게 배움마실을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언제나 우리 삶을 기쁘게 짓고, 이 기쁨을 서로 나누면서 아름다운 꽃으로 사랑스레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한 가지 덧붙여, 제 책을 사거나 읽으신 분들은, 꼭 이웃 200 사람한테 제 책을 소개해 주시기를 빌어요. ^___^ 그래서, 한국에 멋지고 새로운 ㅍㄹㅅ(피닉스 라이징 스쿨)을 이루는 기운을 어깨동무하여 이룰 수 있기를 빕니다.



[노래 1] 한대수 님 노래 〈바람과 나〉를 〈바람은 나〉로 고쳤습니다. 앞쪽은 101 배움을 간추린 대목이고, 뒤쪽은 201 배움을 간추린 대목입니다. 유투브에서 노래를 찾아서 들으면서 노랫말을 맞춰 보시면, 지난 열흘에 걸쳐 배운 이야기가 한눈에 갈무리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제가 ‘물구나무서기 다섯 걸음’을 마치고 나서 웃통 벗은 채 부른 노래입니다.



= 바람은 나 =

끝 끝없는 바람

저 거친 숲으로 나뭇잎 사이로 불어 가는

아 푸른 바람

저 언덕에서 물결처럼 춤추던 님

아무것도 없는 그대

나도 님과 같은 웃음을

지어 볼래, 지어 볼래.


구름 건너편에

해질녘에 젖은 이 길보다도 아름다운

아 우리 님 바람

뭇느낌 없이 흐르는 오늘 모레

너와 나는 하나이네

나도 내가 되어 내 삶을

바라+볼래, 지켜+볼래.



[노래 2] 신중현 님이 짓고 이선희 님이 부른 〈아름다운 강산〉을 〈아름다운 숲〉으로 고쳤습니다. 이 노래는 101과 201을 아우르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배움마실을 마치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와서 날마다 짓는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웃음꽃이 터지는가를 보여줍니다. 아침마다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가슴으로 꽂히리라 생각합니다.



= 아름다운 숲 =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가슴

나뭇잎 푸르게 냇물은 해맑게

아름다운 이곳에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 잡고 가 보자 달려 보자 더 들녘을

우리들 모여서 말해 보자 새 숨결을


마음은 파랗게 생각은 하얗게

밤무지개 뜨면서 빛나는 작은 씨


우리는 이 땅에서 다 함께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사랑스런 그곳에 살리라



눈부시게 빛나는 노란 해님이 비추고

파란 물결 넘치는 저 바다와 함께 있네

그대 얼마나 좋은가, 우리 사는 여기에

사랑하는 그대와 노래하리


●→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새 모레에 너와 나 살고 지고

가없는 이곳에 우리들 이 꿈을 지어 보고파


봄 여름이 지나면 가을 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푸른 숲

네 마음 내 마음, 내 마음 네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너와 나


우리 언제나 언제나

사랑 여기에 여기에

서로 모두 다 이렇게

끝없이

해 봐 돼.



4348.1.2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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