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읽은 어느 독자가 '바지저고리'라는 낱말은 오늘날에도 '바보스러운 사람'과 '시골사람'을 따돌리면서 쓰는 낱말인데, 이런 낱말로 '한복'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자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물었기에, 이 물음에 대답하려고 씁니다. 아이들이 아직도 학교에서 이런 낱말로 서로를 따돌리거나 괴롭힌다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어른인 우리들이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올바로 가르치고 이야기하면서, 바로잡을 대목은 바로잡도록 힘쓸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힘쓸 일을 힘쓰지 않으면, 아직도 한국은 일본 식민지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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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 바지저고리

 


  예부터 한국사람이 입은 옷은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입니다. 바지와 치마는 아랫도리이고, 저고리는 웃도리예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제국주의자는 한국사람이 입은 ‘바지저고리’를 업신여겼어요. 슬프고 아픈 발자취는 오늘날 한국말사전 뜻풀이에까지 고스란히 남습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도시 문화’가 아닌 ‘시골 문화’였기에, 일본 제국주의자가 한겨레 시골사람을 얕잡거나 깔보는 느낌까지 고스란히 둔 채 해방이 되었고, 이런 말빛을 털어내지 못합니다. 해방 뒤로는 바지저고리를 챙겨 입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갔지만, 서양옷을 입어야 보란듯이 여깁니다. 여기에 새마을운동이 밀려들며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서 공장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흐름이 됩니다. 가시내가 입는 치마저고리도, 사내가 입는 바지저고리도 제자리를 못 찾습니다. 하루 빨리 벗어던져야 할 차림새로 여깁니다. “솜을 두어 지은 바지”인 ‘핫바지’를 놓고도 이런 느낌이 같아요. 한국사람은 일본에서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말이나 짓을 일삼으면 나무라지만, 막상 일제강점기 찌꺼기를 털지 않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슬프고 아픈 멍울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바지저고리·핫바지’를 지난날 일본 제국주의자 눈썰미대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앞으로도 한국사람 옷차림을 한국사람 스스로 업신여기거나 깔볼 뿐 아니라, 시골사람을 깎아내리는 투로 그대로 써야 할까요? 4347.3.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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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 들빵

 


  마을 할매와 할배가 들일을 나옵니다. 일흔 언저리인 분들은 서로 품앗이를 합니다. 여든 언저리인 분들은 두 분이 경운기를 타고 천천히 논밭으로 가서 낮에 샛밥을 자시곤 합니다. 도시락을 챙겨서 들밥을 자시기도 하고, 가게에서 사 둔 빵을 가져와서 술 한 잔과 함께 드시기도 합니다. 지난날에는 모두 밥만 먹었을 테니 들밥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빵을 들에서 샛밥으로 더러 먹기도 하니 ‘들빵’일 때가 있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어른은 들일입니다. 들에서 노는 아이는 들놀이입니다. 들에서 부르는 노래는 들노래이고, 들에서 꽃피우는 사랑은 들사랑입니다. 들밥 먹는 사람들은 들사람입니다. 들숨을 쉬면서 들바람 마시는 오늘은 들빛으로 물든 들살이입니다.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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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 죽여버릴 거야

 


  일곱 살 아이가 만화책 《안녕 자두야》를 읽다가 다가옵니다. “아버지, 여기 왜 ‘죽여버릴 거야’라고 나와? 나, ‘죽여버리’는 거 싫어. 이 말 고쳐 줘.” “그래, 왜 이렇게 말할까.” 어떤 말로 고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꾸짖을 테야’나 ‘때려 줄 테야’를 떠올립니다. 더 생각해 보다가 ‘혼낼 거야’로 고쳐 줍니다. ‘魂내다’는 ‘꾸짖다’를 뜻하는 낱말인데,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서는 이쯤으로 손질해도 잘 어울리겠지요. 그나저나, 왜 만화책에 ‘죽여버릴’ 같은 낱말이 나와야 할까요. 어른들은 왜 이런 말로 누군가를 윽박지르거나 외치는 느낌을 담으려 할까요.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좋을까요. 어른들은 말 한 마디로 마음을 살리거나 죽이는 줄 어느 만큼 헤아리는가요. 4347.3.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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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7] 물빛그림

 


  ‘수채화’가 언제부터 수채화였을까 궁금합니다. 물감을 물에 풀어서 그리는 그림을 두고 언제부터 누가 왜 ‘수채화’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합니다.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 ‘수채’가 무엇인지 몰랐고,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수채’라는 한자말을 그냥 외웠습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와 함께 그림놀이를 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일곱 살 어린이한테 굳이 ‘수채’라는 말을 써야 할까 하고. 일곱 살 어린이한테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알려주어도 될 만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나는 아이와 그림놀이를 하며 “자, 물감에 물을 묻혀 그려 볼까?” 하고 말하면서 “물빛그림을 그리자.” 하고 덧붙입니다. 4347.3.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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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 배짱

 


  일본사람은 한자말 ‘근성(根性)’을 ‘곤조’로 읽어요. 한국에서는 한자말 ‘근성’을 무척 단단하며 야무진 매무새를 가리킬 적에 쓰곤 하는데, 이 한자말을 일본사람이 읽는 ‘곤조’로 받아들이는 자리에서는 다른 느낌이나 뜻을 담으려 해요. 이를테면 ‘골부림’이라거나 ‘고약한 외곬’로 여긴다고 할까요.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거친 탓에 이 땅에는 일본말이나 일본 한자말이 너무 많이 퍼졌어요. ‘근성’이나 ‘곤조’ 같은 말이 함부로 스며들기 앞서는 ‘배짱’이라는 낱말을 썼어요. 두둑한 배짱이라느니, 배짱이 있게 산다느니, 하면서 스스로 단단하면서 야무지게 먹는 마음씨를 가리켰습니다. 아무래도 어느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이나 마음이나 넋이 달라질 테니, 슬기로우면서 착하고 참다운 빛을 누리고 싶다면, 낱말 하나도 슬기로우면서 착하고 참답게 다스려야지 싶어요. 우리들이 갖출 매무새라면 배짱이어야지 싶어요. 우리들이 걸어갈 길이라면 배짱 있는 씩씩함이어야지 싶어요. 우리들이 아끼고 사랑할 넋이라면 배짱이 두둑하면서 착한 눈빛이어야지 싶어요. 4347.3.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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