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5] 마늘빵

 


  마늘을 넣어 밥을 지으면 마늘밥이 됩니다. 고구마를 넣어 밥을 지으면 고구마밥이 됩니다. 쑥을 넣으면 쑥밥이요, 팥을 넣으면 팥밭이며, 콩을 넣으면 콩밥입니다. 보리로 지으면 보리밥이고, 쌀로 지으면 쌀밥이에요. 이리하여, 마늘을 써서 빵을 구으면 마늘빵이 될 테지요. 한국사람도 오늘날에는 빵을 널리 먹으니, 마늘로 얼마든지 빵을 구울 만합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마늘’이 아닌 ‘갈릭(garlic)’이라는 낱말을 쓸 테니 ‘갈릭 브레드’라 해요. 한국에서도 ‘마늘빵’과 ‘갈릭 브레드’라는 낱말을 함께 쓰는데, 서양사람으로서는 마땅히 ‘갈릭 브레드’일 테지만, 한국에서는 어떤 이름을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빵’ 아닌 ‘브레드’라고 말해야 할까요. 서양사람은 ‘밥’과 ‘라이스(rice)’ 사이에서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요.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4] 물볶음밥

 


  나는 볶음밥을 으레 물로 합니다. 언제부터 물볶음밥을 했는 지 잘 안 떠오르지만,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몽땅 기름투성이가 아닌가 하고 느낀 날부터, 볶음밥을 할 적에 기름을 안 쓰고 물을 썼어요. 따로 누구한테서 배운 물볶음밥은 아닙니다. 찌개를 끓이건 떡볶이를 끓이건 물로 하는데, 볶음밥도 물을 자작자작 맞추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볶음밥이라면 언제나 기름을 두른다고만 여기니 물로 볶을 적에는 ‘물볶음밥’처럼 이름을 새롭게 써야겠지요. 물볶음밥이라 말하지 않으면 기름으로 볶았겠거니 여길 테니까요.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3] 뻘빛 바다

 


  파랗게 눈부신 바다를 가리켜 ‘쪽빛 바다’라고 합니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빛깔은 파란 하늘빛을 담아 파랗디파랗게 밝습니다. 갯벌이 너른 서쪽과 남쪽에서는 으레 ‘뻘빛 바다’를 만납니다. 뻘빛은 잿빛을 닮았다고도 할 만합니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얕은 갯벌 둘레에서는 ‘잿빛 바다’를 보겠지요. 속이 비치는 물잔에 바닷물이나 냇물을 담으면, 이때에는 해맑은 물빛을 마주합니다. 물빛은 물빛입니다. 물빛은 물이 흐르는 곳에 따라 다 다릅니다. 도랑에서 내에서 가람에서 바다에서 모두 빛깔이 달라요. 바다빛을 으레 파랑으로 떠올린다면, 아무래도 드넓은 바다가 드넓은 하늘과 마주하기 때문이지 싶어요. 뻘내음 물씬한 곳에서는 뻘빛입니다. 끝없이 파란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는 파랑입니다. 바닷말이 바닷속에서 한창 자랄 적에는 풀빛입니다. 고운 모래밭으로 밀려드는 바다는 속이 환하게 비치는 해맑은 빛입니다. 4347.4.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2] 부름택시

 

 

  나는 콜택시를 몰랐습니다. 어느 때부터 어느 택시회사에서 콜택시를 부름택시로 이름을 바꾸어 말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콜택시라 말하면 그러려니 했고, 부름택시로 이름을 고쳤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한국말을 알맞거나 바르거나 예쁘거나 사랑스럽게 살려쓰는 길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자리에서 일하는 어느 분이 부름택시라는 낱말을 꺼내며 택시를 부를 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 말이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기도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냥 바꿔서 쓰면 다 되는 일이었어요. 학자들이 애쓴대서, 방송에서 떠든대서, 책을 써낸대서 말이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그저 삶으로 말을 받아들이고 익히고 살피고 생각하다가 쓸 뿐입니다. 이럭저럭 한 해 두 해 닷 해 열 해 흐르는 동안, 내 둘레 사람들 가운데 부름택시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집니다. 예전에는 부름택시라 말하던 분도 어느새 콜택시라고만 말합니다. 그러던 엊저녁, 전남 신안에서 만난 공무원 아저씨가 문득 부름택시라는 말을 꺼냅니다. 이녁한테 아직 자가용이 없던 지난날, 곁님이 몸이 아플 적에 부름택시를 부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른 이야기도 가만히 귀여겨듣다가 부름택시라는 낱말 하나를 오래도록 곱씹어 보았습니다. 말은 죽지 않는구나, 말은 싱그럽게 사람들 가슴속에서 곱게 깨어날 때를 기다리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4347. 4.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1] 내림종이

 


  곁님과 함께 읍내 가게에 갑니다. 곁님이 읍내 가게 일꾼한테 ‘커피 필터’ 있느냐고 묻습니다. 읍내 가게 일꾼은 ‘여과지’가 이쪽에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은 끝까지 ‘필터’라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여과지’라 말합니다. 뒤에서 듣던 나는 ‘내림종이’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커피를 안 마시기에 ‘커피를 내려서 먹는 사람’이 어떤 종이를 쓰는지 모릅니다. 다만, 커피를 내려서 마신다고 하면 ‘내림종이’를 쓰겠거니 생각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를 내릴 적에 쓰는 종이는 따로 ‘거름종이’라는 이름으로 가리킨다고 해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거르니까 거름종이입니다. 그리고, 내리니까 내림종이예요. 두 가지 이름을 함께 쓸 만합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거름종이’라는 낱말이 실려요. ‘내림종이’라는 낱말은 안 실립니다. ‘여과지’는 ‘거름종이’로 고쳐서 쓰라고 나오고, ‘필터’는 ‘여과지’로 고쳐서 쓰라고 나옵니다.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