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 부름택시

 

 

  나는 콜택시를 몰랐습니다. 어느 때부터 어느 택시회사에서 콜택시를 부름택시로 이름을 바꾸어 말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콜택시라 말하면 그러려니 했고, 부름택시로 이름을 고쳤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한국말을 알맞거나 바르거나 예쁘거나 사랑스럽게 살려쓰는 길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자리에서 일하는 어느 분이 부름택시라는 낱말을 꺼내며 택시를 부를 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 말이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기도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냥 바꿔서 쓰면 다 되는 일이었어요. 학자들이 애쓴대서, 방송에서 떠든대서, 책을 써낸대서 말이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그저 삶으로 말을 받아들이고 익히고 살피고 생각하다가 쓸 뿐입니다. 이럭저럭 한 해 두 해 닷 해 열 해 흐르는 동안, 내 둘레 사람들 가운데 부름택시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집니다. 예전에는 부름택시라 말하던 분도 어느새 콜택시라고만 말합니다. 그러던 엊저녁, 전남 신안에서 만난 공무원 아저씨가 문득 부름택시라는 말을 꺼냅니다. 이녁한테 아직 자가용이 없던 지난날, 곁님이 몸이 아플 적에 부름택시를 부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른 이야기도 가만히 귀여겨듣다가 부름택시라는 낱말 하나를 오래도록 곱씹어 보았습니다. 말은 죽지 않는구나, 말은 싱그럽게 사람들 가슴속에서 곱게 깨어날 때를 기다리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4347. 4.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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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 내림종이

 


  곁님과 함께 읍내 가게에 갑니다. 곁님이 읍내 가게 일꾼한테 ‘커피 필터’ 있느냐고 묻습니다. 읍내 가게 일꾼은 ‘여과지’가 이쪽에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은 끝까지 ‘필터’라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여과지’라 말합니다. 뒤에서 듣던 나는 ‘내림종이’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커피를 안 마시기에 ‘커피를 내려서 먹는 사람’이 어떤 종이를 쓰는지 모릅니다. 다만, 커피를 내려서 마신다고 하면 ‘내림종이’를 쓰겠거니 생각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를 내릴 적에 쓰는 종이는 따로 ‘거름종이’라는 이름으로 가리킨다고 해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거르니까 거름종이입니다. 그리고, 내리니까 내림종이예요. 두 가지 이름을 함께 쓸 만합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거름종이’라는 낱말이 실려요. ‘내림종이’라는 낱말은 안 실립니다. ‘여과지’는 ‘거름종이’로 고쳐서 쓰라고 나오고, ‘필터’는 ‘여과지’로 고쳐서 쓰라고 나옵니다.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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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읽은 어느 독자가 '바지저고리'라는 낱말은 오늘날에도 '바보스러운 사람'과 '시골사람'을 따돌리면서 쓰는 낱말인데, 이런 낱말로 '한복'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자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물었기에, 이 물음에 대답하려고 씁니다. 아이들이 아직도 학교에서 이런 낱말로 서로를 따돌리거나 괴롭힌다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어른인 우리들이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올바로 가르치고 이야기하면서, 바로잡을 대목은 바로잡도록 힘쓸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힘쓸 일을 힘쓰지 않으면, 아직도 한국은 일본 식민지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

 

[말이랑 놀자 10] 바지저고리

 


  예부터 한국사람이 입은 옷은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입니다. 바지와 치마는 아랫도리이고, 저고리는 웃도리예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제국주의자는 한국사람이 입은 ‘바지저고리’를 업신여겼어요. 슬프고 아픈 발자취는 오늘날 한국말사전 뜻풀이에까지 고스란히 남습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도시 문화’가 아닌 ‘시골 문화’였기에, 일본 제국주의자가 한겨레 시골사람을 얕잡거나 깔보는 느낌까지 고스란히 둔 채 해방이 되었고, 이런 말빛을 털어내지 못합니다. 해방 뒤로는 바지저고리를 챙겨 입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갔지만, 서양옷을 입어야 보란듯이 여깁니다. 여기에 새마을운동이 밀려들며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서 공장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흐름이 됩니다. 가시내가 입는 치마저고리도, 사내가 입는 바지저고리도 제자리를 못 찾습니다. 하루 빨리 벗어던져야 할 차림새로 여깁니다. “솜을 두어 지은 바지”인 ‘핫바지’를 놓고도 이런 느낌이 같아요. 한국사람은 일본에서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말이나 짓을 일삼으면 나무라지만, 막상 일제강점기 찌꺼기를 털지 않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슬프고 아픈 멍울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바지저고리·핫바지’를 지난날 일본 제국주의자 눈썰미대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앞으로도 한국사람 옷차림을 한국사람 스스로 업신여기거나 깔볼 뿐 아니라, 시골사람을 깎아내리는 투로 그대로 써야 할까요? 4347.3.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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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 들빵

 


  마을 할매와 할배가 들일을 나옵니다. 일흔 언저리인 분들은 서로 품앗이를 합니다. 여든 언저리인 분들은 두 분이 경운기를 타고 천천히 논밭으로 가서 낮에 샛밥을 자시곤 합니다. 도시락을 챙겨서 들밥을 자시기도 하고, 가게에서 사 둔 빵을 가져와서 술 한 잔과 함께 드시기도 합니다. 지난날에는 모두 밥만 먹었을 테니 들밥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빵을 들에서 샛밥으로 더러 먹기도 하니 ‘들빵’일 때가 있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어른은 들일입니다. 들에서 노는 아이는 들놀이입니다. 들에서 부르는 노래는 들노래이고, 들에서 꽃피우는 사랑은 들사랑입니다. 들밥 먹는 사람들은 들사람입니다. 들숨을 쉬면서 들바람 마시는 오늘은 들빛으로 물든 들살이입니다.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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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 죽여버릴 거야

 


  일곱 살 아이가 만화책 《안녕 자두야》를 읽다가 다가옵니다. “아버지, 여기 왜 ‘죽여버릴 거야’라고 나와? 나, ‘죽여버리’는 거 싫어. 이 말 고쳐 줘.” “그래, 왜 이렇게 말할까.” 어떤 말로 고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꾸짖을 테야’나 ‘때려 줄 테야’를 떠올립니다. 더 생각해 보다가 ‘혼낼 거야’로 고쳐 줍니다. ‘魂내다’는 ‘꾸짖다’를 뜻하는 낱말인데,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서는 이쯤으로 손질해도 잘 어울리겠지요. 그나저나, 왜 만화책에 ‘죽여버릴’ 같은 낱말이 나와야 할까요. 어른들은 왜 이런 말로 누군가를 윽박지르거나 외치는 느낌을 담으려 할까요.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좋을까요. 어른들은 말 한 마디로 마음을 살리거나 죽이는 줄 어느 만큼 헤아리는가요. 4347.3.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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