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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 셋길



  네 식구가 서울마실을 하며 전철을 탈 적입니다. 일곱 살 큰아이가 전철 길그림을 읽습니다. “저기는 노란 줄로 셋이라고 적혔네. 셋길이야, 셋길! 어, 저기는 다섯이라고 적혔네. 다섯길이야!” 나는 큰아이한테 ‘삼호선’이나 ‘오호선’이라는 말로 바로잡지 않습니다. 아이가 한 말 그대로 “그래, 셋길이네. 저기는 다섯길이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전철을 타고 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인천이든 큰도시에 놓은 전철이나 지하철에 모두 ‘일호선·이호선’처럼 이름을 붙입니다. 일곱 살 아이가 문득 떠오르는 대로 말하듯이 ‘한길·두길·셋길’처럼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조차 어른들은 못 했으리라 싶습니다. 이런 이름을 생각했다 하더라도 이런 이름을 즐겁게 널리 쓰자는 데까지 생각을 뻗지 못했으리라 싶습니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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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9] 잎빛



  꽃샘추위가 있고 잎샘추위가 있습니다. 꽃이 필 무렵에 추위가 다가오기도 하고 잎이 돋을 무렵에 추위가 다가오기도 해요. 그런데, 꽃이 먼저 피는 나무나 풀이 있고, 잎이 먼저 돋는 나무나 풀이 있어요. 그러니, 꽃샘추위와 잎샘추위는 거의 같은 때를 가리키지 싶어요. 들과 숲을 바라보는 눈길이 따라 달리 쓰는 낱말이 되리라 느낍니다. 달을 바라보며 달빛을 누리고, 해를 바라보며 햇빛을 받습니다. 꽃을 바라보며 꽃빛이 새롭고, 잎을 바라보며 잎빛이 싱그럽습니다. 다만, 한국말사전에는 ‘꽃빛·잎빛’ 같은 낱말이 안 나와요. 그러면, 이 낱말은 띄어서 적어야 할까요? 한국말사전에 이 낱말을 올려야 할까요? 물빛과 같은 사랑이고 싶은 사랑빛입니다. 들빛과 같은 꿈이고 싶은 꿈빛입니다. 이월이 지나고 삼월이 흐르며 사월이 찰랑이는 시골마을에서 시골빛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침저녁으로 풀을 뜯으며 풀빛이 얼마나 고운가 하고 새롭게 깨닫습니다. 풀잎 빛깔은 우리들을 살찌우고 살리는 해맑은 바람빛입니다. 4347.4.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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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8] 하느님



  서양에서 몇 가지 종교가 들어오며 한국에서는 ‘하느님’과 함께 ‘하나님’을 널리 쓰는데, 서양종교가 들어오기 앞서에도 한겨레는 오랜 옛날부터 ‘하느님’을 이야기했습니다. 해님도 달님도 별님도 꽃님도 이야기했어요. “하늘 + 님”이기에 하느님일 텐데, 이 낱말에서 ‘하늘’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깊이 살피거나 헤아리는 일은 아주 드물지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얼거리로 빚은 낱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느님이라고 하면, 하늘에 있는 님이거나 하늘에서 온 님이거나 하늘과 같은 님이거나 하늘을 만든 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늘에 있거나 하늘에서 왔을까요. 하늘과 같은 님은 어떠한 숨결이요, 하늘을 만든 님은 어떠한 목숨일까요. 내 마음속에는 어떤 하느님이 있을까요. 내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어떤 하느님 넋으로 하루를 가꾸는가요. 4347.4.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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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7] 물



  시외버스를 타고 멀리 마실을 갑니다. 시외버스는 두 시간 남짓 달리다가 쉼터에서 섭니다. 쉼터에서 아이들 쉬를 누입니다. 물병을 채우려고 쉼터에 있는 밥집으로 갑니다. 물이 있는 곳을 살핍니다. 저기에 있구나 하고 물을 받으려는데, 물을 받는 곳에 ‘음용수’라는 푯말이 붙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실물’도 ‘먹는물’도 아닌 ‘음용수’로군요. 이곳에서 물을 받아서 마시는 아이들은 저 글을 읽으려 하겠지요. ‘믈’을 마시려고 이곳에 와서 ‘믈’은 못 마시겠지요. 4347.4.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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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6] 모래가람

 


  하동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조문환 님이 쓴 책을 읽다가 ‘섬진강’을 가리키는 옛이름 하나를 듣는다. 먼먼 옛날에는 ‘모래가람’이라 했단다. 고운 모래가 많이 모래가람이라 했고, 어느 곳에서는 ‘모래내’라고 했단다. 그러고 보면 ‘모래내’라는 이름을 쓰는 데가 이 나라 곳곳에 있다. 그렇구나. 모래가 고운 냇가에서는 으레 모래내였구나. 물줄기가 굵거나 크면 모래가람이라 했구나. 바닷가와 냇가와 가람가에는 모래밭이 있지. 그런데 왜 모래가람이라는 이름이 잊히거나 밀리면서 섬진강이라는 이름만 쓸까. 이 나라 모든 고장과 마을이 한자로 이름이 바뀌면서 모래가람도 제 이름을 빼앗기거나 잃은 셈일까.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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