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32] 찻삿

 


  시외버스를 탑니다. 고흥부터 서울까지 달리는 시외버스에 네 식구가 타니, 네 사람 몫 표를 끊습니다. 어른 두 장을 끊고 어린이 두 장을 끊습니다. 버스에 손님이 거의 없으면 버스 일꾼은 “아이 표는 안 끊어도 되는데.”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버스에 손님이 있을는지 없을는지 우리가 알 길은 없습니다. 네 식구가 움직이면 표를 넉 장 끊으니 버스삯을 만만하지 않게 씁니다. 네 식구가 기차를 타면 기찻삯을 냅니다. 배를 탄다면 뱃삯을 치르고, 비행기를 탄다면 비행기삯을 뭅니다. 택시를 타면 택시삯을 내요. 자가용을 몰지 않기에 누군가 우리 식구를 실어 나릅니다. 누군가 우리 식구를 태워서 옮겨 주면 고맙다는 뜻으로 삯을 치릅니다. 찻삯 얼마를 들이면 어디이든 가뿐하게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4347.5.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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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1] 세 시 세 분



  일곱 살 아이가 숫자를 읽습니다. ‘3분’이라 적힌 글을 ‘세 분’이라 읽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 일곱 살 아이는 “세 시 삼 분”을 “세 시 세 분”이라 읽습니다. 이 아이가 읊는 말을 “삼 분”으로 고쳐 줄 수 있지만, 고치지 않습니다. “세 분”이라는 말을 곱씹으니, 이렇게 읽어야 맞는데 어른들은 구태여 ‘三’이라는 한자를 빌어서 쓰는 셈이거든요. 더 곱씹으니 ‘時’와 ‘分’이라는 한자를 굳이 쓸 일이 없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어른들은 왜 이런 한자를 끌어들여서 때를 읽거나 세려 했을까요. 때를 알려주는 기계라는 ‘시계’를 읽을 적에 “셋 셋”이라 하면 됩니다. “셋 서른”이라 하면 돼요. “열둘 서른아홉”이라 하면 되어요. 처음 말하는 숫자가 ‘시’이고 나중 말하는 숫자가 ‘분’입니다.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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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0] 웃보



  작은 일에도 으레 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울음이 많은 아이를 가리켜 ‘울보’라 합니다. 작은 일에도 으레 웃는 아이가 있습니다. 웃음이 많은 아이를 가리켜 곧잘 ‘웃보’라 합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울보’는 실어도 ‘웃보’를 안 싣습니다. 우는 아이를 가리키는 이름은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웃는 아이를 가리키는 이름은 한국말사전에 안 나옵니다. 예부터 누구나 흔히 웃으면서 살아가니 “잘 웃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은 따로 없을까요. 누구나 웃으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잘 웃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을 만하지 않을까요. 아이와 살을 부비면서 놀면 아이는 끝없이 웃습니다. 웃고 또 웃으며 자꾸 웃습니다.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나옵니다. 너무 웃은 탓에 힘들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서로 웃보가 되어 하루를 즐깁니다. 4347.5.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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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9] 벌교문집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벌교를 지나가는데, 벌교 읍내에서 ‘벌교문집’이라고 투박하게 적은 오래된 글씨를 스치듯이 봅니다. 두 자릿수 전화번호를 보면서 ‘문집’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래, 문을 만드는 집이라서 문집이로군요. 신을 팔기에 ‘신집’이고, 떡을 팔기에 ‘떡집’이며, 기름을 팔기에 ‘기름집’입니다. 차를 팔면 ‘찻집’이고, 책을 팔면 ‘책집’이며, 쌀을 팔면 ‘쌀집’이에요. 예부터 가게 이름에 ‘-집’이라는 낱말을 붙여요. 빵을 파는 집도 ‘빵집’입니다. 술을 파는 집은 ‘술집’입니다. 밥을 파는 집은 ‘밥집’이지요. 꽃을 파는 집은 ‘꽃집’이고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 사람들 사이에서 수수하게 섞이는 가게는 ‘-집’이라는 낱말을 살며시 붙입니다. 동네 작은 가게는 ‘분식집’입니다. 전국 어디에나 똑같은 이름으로 있는 가게는 ‘chain + 店’과 같은 이름을 씁니다. 4347.5.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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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8] 사진책


  한국말사전에서 ‘그림책’을 찾아보면 “(1) 그림을 모아 놓은 책 (2) 어린이를 위하여 주로 그림으로 꾸민 책”이라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빚은 그림을 그러모은 책이 그림책이라는 뜻입니다. ‘화집(畵集)’이나 ‘화첩(畵帖)’은 한국말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림으로 꾸민 책이 왜 어린이가 보도록 꾸민 책일까 알쏭달쏭합니다. 그림책은 어린이만 읽지 않아요.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도록 꾸미는 책이에요. 한국말사전에는 ‘글책’이나 ‘사진책’이라는 낱말을 안 실어요. 그래도 ‘만화책’이라는 낱말을 싣습니다. 예부터 글책과 그림책이 함께 있었으나 아직 글책은 옹근 낱말로 대접받지 못해요. 만화책과 함께 사진책이 일찍부터 있었지만 여태 사진책을 오롯한 낱말로 다루지 못해요. 책이라면, 이야기책도 있고, 노래책도 있습니다. 꿈을 담은 꿈책이라든지, 사랑을 밝히는 사랑책이 있어요. 밥짓기를 다루면 밥책(요리책)이 되고, 흙을 가꾸는 길을 보여주면 흙책(농사책)이 됩니다. 어린이한테 베푸는 어린이책과 푸름이한테 베푸는 푸른책이 있어요. 생태와 환경을 헤아리는 환경책이 있고, 생각을 곰곰이 돌아보는 생각책(철학책)이 있으며, 문학을 담은 문학책이 있어요. 낱말을 다루는 낱말책(사전)이 있는 한편, 역사를 밝히는 역사책과 인문학을 나누려는 인문책에, 과학을 파헤치는 과학책이 있습니다. 4347.5.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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