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45] 골짝마실



  아이들과 책방에 갈 적에는 책방마실입니다. 아이들과 읍내에 갈 적에는 읍내마실입니다. 아이들과 바다로 갈 적에는 바다마실이고, 아이들과 일산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뵈러 갈 적에는 일산마실이에요. 음성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갈 적에는 음성마실입니다. 아이들하고 골짝마실을 합니다. 골짜기에 가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골짝마실을 합니다. 이웃집에 찾아간다면 이웃마실이 되고, 우체국까지 소포를 부치러 가면 우체국마실입니다. 우리 식구는 늘 마실을 하면서 지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꿈나라로 갈 적에는, 꿈마실이 됩니다. 4347.6.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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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4] 풀



  이웃한테서 ‘산야초 발효원액’을 선물로 받습니다. 고운 상자에 담은 고운 병을 만지면서 즐겁습니다. 이 고운 병에는 얼마나 고운 풀물이 깃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병에 붙은 종이딱지를 읽습니다. ‘○○○ 산야초 발효원액’이라는 이름을 읽습니다. ‘산야초(山野草)’라 하는군요. 그러고 보면, 마을 할매와 할배는 늘 ‘잡초(雜草)’를 뜯거나 농약을 뿌려 죽입니다. 도시에서 지내는 이웃들은 ‘채식(菜食)’이나 ‘생채식(生菜食)’을 합니다. ‘유기농 채소(菜蔬)’를 찾아서 먹는다든지 아이들한테 ‘야채(野菜)’를 먹이려고 애쓰기도 해요. 아이들과 아침을 먹으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중학교 적에 배운 김수영 님 시 〈풀〉을 떠올립니다. 오늘날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은 〈풀〉이라는 시를 배우리라 느껴요. 그러나, ‘풀’을 풀로 배우거나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늘 풀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풀을 풀로 느끼지 못하기 일쑤이고, 언제나 풀을 먹으면서 풀을 풀이라 여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숲에도 들에도 밭에도 멧골에도 바닷가에도 길에도 빈터에도 꽃그릇에도 푸르게 빛나는 싱그러운 풀이 돋습니다. 4347.6.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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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3] 하얀눈이



  곁님이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줍니다. 무슨 만화영화인가 하고 기웃거리니 ‘백설공주’입니다. 그런데 곁님은 아이들한테 ‘백설공주’라는 이름을 안 쓰고 ‘하얀눈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하얀눈이’가 뭔가 하고 생각하다가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요, 만화영화에 나오는 아이는 ‘하얀눈이’로군요. 아무래도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을 작품인 ‘백설공주’일 텐데, 이 작품을 지난날 한국 작가와 번역가와 어른은 그저 한자로 ‘白雪公主’라 썼을 뿐입니다. 아이들 어느 누구도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백설’이라 말하지 않지만, 어른들은 구태여, 어른들 가운데에서도 학교를 다니거나 책 좀 읽었거나 지식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굳이, ‘백설’이라 읊습니다. ‘흰눈’도 ‘하얀눈’도 말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말사전을 들추면 ‘白雪’이라는 한자말만 덩그러니 실리고, 한국말은 안 실려요. 하얗게 내리는 눈이기에 ‘하얀눈·흰눈’이요, 하얗게 내리는 눈처럼 고우면서 환한 빛을 가슴에 품은 아이인 터라 ‘하얀눈이’입니다. 4347.6.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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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2] 손톱꽃·손톱빛


  손톱을 곱게 물들입니다. 봉숭아를 빻아서 물들입니다. 바알갛게 물든 손톱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아하, ‘손톱물’을 들였구나. 물든 손톱은 곱게 빛납니다. 그래요, ‘손톱빛’이 새롭습니다. 요즈음은 손톱을 이쁘장하게 가꾸거나 꾸미는 사람이 많습니다. 손톱을 곱게 빛나도록 가꾸는 일을 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분들이 찬찬히 손을 놀려 이웃 손톱에 새로운 빛을 입히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합니다. 그렇군요. 손톱을 가꾸는 이들은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도록 하네요. ‘손톱꽃’입니다. 손톱에서 빛이 나고, 손톱에서 꽃이 핍니다. 손톱에 고운 물이 흐르고, 손톱마다 맑은 이야기가 감돕니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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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1] 치마순이, 바지순이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며칠 앞서까지 ‘치마순이’였습니다. 언제나 치마만 입겠다 했고, 바지를 입더라도 치마를 덧입겠다 하며 지냈습니다. 이러다가 그제부터 갑자기 바지를 입습니다. 웬일인가 하며 놀라는데, 일곱 살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아버지, 내가 예전에 치마만 입었어요? 아, 그렇구나.” 하고 말합니다. 고작 이틀만에 지난날은 깡그리 사라집니다. 돌이켜보면, 큰아이가 치마순이로 지내는 동안 작은아이도 치마돌이로 지냈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만 ‘고운 옷’을 입는다며 투정을 부렸고, 저 고운 옷(치마)을 저한테도 달라며 울었어요. 이리하여 두 아이는 치마순이와 치마돌이로 지내며 놀곤 했습니다. 나와 곁님은 아이들을 굳이 치마순이로 키우거나 바지순이로 돌볼 마음이 없습니다. 치마도 좋고 바지도 좋습니다. 때에 맞게 즐겁게 입으면서 뛰놀면 된다고 느낍니다. 작은아이도 치마돌이가 될 수 있고, 바지돌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옷은 스스로 몸을 보살피면서 즐겁게 갖출 때에 아름다우니, 아이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4347.6.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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