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2021.11.14.


우리말 길잡이

1 국민학교·초등학교



 국민학교 이상의 학력이라면 → 어린배움터를 나왔다면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 씨앗배움터를 마치고서

 당시의 국민학교를 회상하면 → 그무렵 첫배움터를 떠올리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셋 → 어린배움터에 다니는 아이가 셋

 인근 초등학교에 배정받았다 → 둘레 씨앗배움터로 간다

 초등학교 생활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 첫배움터에서는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국민학교(國民學校) : [교육] ‘초등학교’의 전 용어

초등학교(初等學校) : [교육] 아동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학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만 6세의 어린이를 입학시켜서 6년 동안 의무적으로 교육한다. 1995년부터 ‘국민학교’ 대신 쓰이게 되었다



  우리는 1996년에 이르러서야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나라(정부)에서 앞장서지 않았어요. 나라는 그때까지 팔짱을 끼었습니다. 아무리 ‘국민학교’란 이름이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짓밟던 무렵에 ‘국민학교령’으로 ‘황국신민학교’란 이름을 내세웠다 하더라도, 1941년부터 1995년까지 자그마치 쉰네 해나 쓰지 않았느냐고 콧방귀였습니다.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고치자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 동안 나라가 팔짱만 끼고서 아이들을 모르쇠하지 않았느냐고 외쳤어요.


  자, 이 두 가지를 생각해 볼까요? 나라는 ‘자그마치 쉰네 해를 쓴 이름을 바꿀 수 없다’요,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나 팽개친 엉터리 이름을 이제부터 바꾸자’라 했어요.


  쉰 해 넘게 쓴 이름이기에 바꾸면 안 될까요? 쉰 해 넘게 얄궂은 찌끄레기를 퍼뜨렸기에 이제부터 바로잡고서 새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익숙한 이름을 버리기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해 봐요. 누구한테 익숙할까요? 어린이한테 익숙할까요, 어른한테 익숙할까요? 쉰네 해를 썼다는 ‘국민학교’는 바로 어른한테 익숙합니다. 배움터에 다닐 어린이나 배움터를 다니는 어린이는 이름에 어떠한 뜻이 서렸는가를 알면 “뭐야? 그런 이름이라구? 그럼 바꿔요!” 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을는지요?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모레를 살아가는 길이라면, 이 자취를 살펴야지 싶습니다.


  그러면 이름을 어떻게 고치느냐인데, 어린이가 다니는 곳이니 ‘어린이’란 이름을 넣을 적에 가장 어울려요. 그렇지요? ‘학교 = 배우는 곳·터’입니다. 이 얼거리를 살피면 ‘배움곳·배움터’처럼 이름을 고칠 만합니다. ‘학교’란 이름이 익숙한 어른한테 맞추지 말고, 이제 새롭게 배우는 길에 접어들 어린이 자리에서 헤아리며 맞출 노릇입니다. 배우는 곳이기에 ‘배움곳’이라 하면 되고,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터’라 하면 됩니다. 더 줄여서 ‘배곳·배터’라 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 : 어린이 + 배우다 + 곳 = 어린이배움터·어린배움터


  말짓기는 가장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말짓기는 어린이 눈높이로 어깨동무하면서 바라보면 됩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이기에 ‘어린이배움터’란 이름을 얻어요. 이 이름을 줄여 ‘어린배움터’나 ‘어린배곳’처럼 쓸 만합니다.


 어린이터·어린터

 씨앗배움터·씨앗터

 첫배움터·첫터


  이밖에 이름은 더 생각할 만해요. ‘배움’이란 말을 굳이 안 넣어도 돼요. ‘어린이터’나 ‘어린터’라 지어도 되고, 어린이는 앞으로 푸르게 우거질 숲으로 무럭무럭 자랄 밑바탕이라는 뜻으로 ‘씨앗 + 배움터’라 할 만합니다. 처음 배운다는 뜻으로 ‘첫 + 배움터’라 해도 어울려요.


  이렇게 차근차근 이름을 짓노라면 ‘어린터·어린배곳’이나 ‘씨앗터·첫터’처럼 길이까지 퍽 짧게 새말을 얻습니다. 한자말을 쓰기에 더 짧지 않아요.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이면 우리말로도 넉넉히 짧게 지을 뿐 아니라, 한자말보다 훨씬 짧으면서 쉽게 살필 만한 낱말을 엮기도 합니다.



여덟살박이 올해 국민학교 이학년 사내아이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 여덟살박이 올해 어린이터 두걸음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 여덟살박이 올해 첫배움터 두발짝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16쪽


초등학교는 등수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어린배움터는 줄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씨앗배움터는 줄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요?》(정주진, 철수와영희, 2020) 70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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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살려쓰기

숲노래 우리말꽃 : ‘자연’을 가리킬 우리말



[물어봅니다]

  ‘자연보호·환경보호’처럼 말하는데요, ‘자연’이란 한자말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우리말에도 ‘자연’을 가리키는 말이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영어 ‘내츄럴’을 일본사람은 한자말 ‘자연’으로 풀었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이 우리나라를 짓누르면서 우리 삶터에 일본말하고 일본 한자말이 두루 퍼지기 앞서까지 이 나라에서는 ‘자연’이란 한자말을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썼습니다. 바깥에서 새물결이 밀려들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지어야 했는데, 예전에는 바깥나라에서 쓰던 말씨를 그냥 받아들이곤 했어요. 그래서 ‘내츄럴·자연’이 우리나라에 스미기 앞서 어떤 말로 그러한 결을 나타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제가 찾아낸 낱말은 ‘숲’입니다. 1900년으로 접어들 즈음까지 우리나라에서 우리말로 수수하게 살림을 지으며 살던 사람들이 널리 쓴 말은 ‘숲’이더군요. ‘숲’하고 맞물려 ‘메(산)’도 꽤 썼어요. 아무래도 옛날에는 ‘숲’이랑 ‘메’는 거의 같은 결로 썼구나 싶은데요, 오늘날 우리가 ‘자연보호·환경보호’처럼 말하는 자리에서는 ‘숲’ 하나가 가장 어울리겠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숲’인가를 얘기해 볼게요. 먼저 ‘숲’을 넣은 낱말을 하나둘 엮어 보겠습니다.


숲 ← 자연, 자연환경, 자연주의

숲터 ← 자연환경

숲사랑·숲돌봄·숲지킴 ← 자연보호, 환경보호

숲살림 ← 자연농, 자연농법, 자연유산, 자연친화

숲짓기 ← 자연농, 자연농법

숲책 ← 환경책, 생태환경책, 자연도감, 생태도감


  낱말 하나를 찾아내면서 끝나지 않아요. 그 낱말 하나를 바탕으로 새살림을 새말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자말 ‘자연’을 놓고서 숱한 새말이 태어났어요. 우리말 ‘숲’을 놓고도 숱한 새말을 엮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숲이란 터이니 ‘숲터’이고, 숲을 돌보자는 뜻은 ‘숲돌봄’이되 ‘숲사랑’으로 담으면 한결 낫지 싶습니다. 숲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푸른 터예요. 숲처럼 흙을 가꾸자는 뜻인 ‘자연농’이니 ‘숲살림·숲짓기’ 같은 낱말을 엮을 만하고, ‘자연·생태·환경’을 다루는 책을 ‘숲책’이라 할 만합니다.


숲정이 ← 인공림, 공용림, 근린공원

숲사람·숲님 ← 자연인, 자연보호 운동가

숲지기 ← 자연보호 운동가

숲빚·숲막짓·숲죽이기 ← 자연오염, 자연파괴

숲너울 ← 자연재해

숲적이 ← 자연도감


  왜 ‘숲’일까요? 숲에는 나무가 우거지지요. 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들풀이며 들꽃도 우거집니다. 들풀·들꽃·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새·들짐승을 비롯해 풀벌레랑 벌나비가 넉넉히 어우러집니다. 나무에 새에 풀꽃이 얼크러진 곳은 으레 냇물이 흘러 적시기 마련이요, 물에서 사는 목숨도 많을 테니 더더욱 푸른 터전입니다. 숲으로 깊이 들어가면 첫 물줄기인 샘이 있기 마련이에요.


  숲이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붙이가 ‘그 목숨결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바탕이 되는 터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한자말 ‘자연’이 나타내는 뜻하고 매한가지예요.


숲빛 ← 자연친화, 자연적

숲보람 ← 자연 혜택

숲마실·숲맞이·숲하루 ← 자연체험, 자연학습

숲말 ← 자연어, 자연 언어

숲눈 ← 자연적 관점

숲넋 ← 자연관, 자연사상, 자연철학


  글을 모르더라도 손수 흙을 짓고 살림을 가꾸고 아이를 낳아 돌보던 수수한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말을 물려주었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시골 흙지기는 살림짓기·삶짓기·사랑짓기란 하루를 누리면서 아이한테 ‘이야기’로 말을 가르치고 들려주었습니다. 더없이 숲다운(자연스러운) 모습이에요. 오랜 숲말이란 시골말이면서 사투리이자 고장말이기도 합니다.


  요새는 ‘자연체험’이란 한자말보다 영어 ‘에코티어링’을 더 쓰는구나 싶은데요, ‘숲’을 넣어 부드럽게 ‘숲마실·숲맞이·숲하루’라 하면 어떨까요? “자연이 주는 혜택”이란 말을 곧잘 듣는데, 숲이 우리한테 베푸는 빛이란 ‘보람’일 테니 ‘숲보람’ 같은 낱말을 엮을 만합니다. “자연적 관점”이라고 해야만 전문말이 되지 않아요. 숲처럼 보는 눈길이니 ‘숲눈’처럼 단출히 나타내는 전문말을 지어도 어울려요.


숲뜰 ← 수목원

숲딸기 ← 자연종 딸기

숲내음 ← 자연향, 자연의 향기, 자연의 향, 아로마, 피톤치드

숲것 ← 자연자원

숲가꿈터 ← 자연보호구역

숲바구니 ← 에코백

숲씻이 ← 자연치유


  ‘자연’을 넣은 낱말은 아닌 ‘수목원’이지만, 사람들이 푸른바람을 마시면서 몸을 달래는 곳을 ‘숲뜰’ 같은 이름으로 나타내면 어떨까요? 숲을 뜰처럼 삼는 곳이라는 뜻으로 그 터전을 나타낸다면, 숲뜰을 찾아가는 마음도 한결 푸르리라 생각합니다. 요새는 딸기를 늦봄이나 첫여름 아닌 한겨울부터 가게에서 사다 먹는 사람이 많지만, 워낙 딸기란 들열매는 삼사월에 흰꽃을 피우고 오뉴월에 빨간알을 맺습니다. 사람이 따로 밭을 가꾸어 거두는 딸기가 아닌, 저절로 철에 따라 돋는 딸기인 “자연종 딸기”는 ‘숲딸기’라 할 만해요.


  우리 몸에 이바지하는 풀꽃나무한테서 얻은 ‘아로마’를 쓰는 분이 꽤 늘었어요. 풀꽃나무는 바로 숲을 이루는 바탕이니, ‘숲내음’이나 ‘숲물’ 같은 낱말을 지어서 담아내어도 어울립니다. ‘에코백’은 숲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짓는 바구니란 뜻으로 ‘숲바구니’라 해볼 만해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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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노래 우리말꽃 : 다문화



[물어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데요,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말은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까요?


[이야기합니다]

  물어보신 대목을 이야기하기 앞서 ‘다문화’가 무엇인지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들출게요. ‘다문화(多文化)’처럼 한자를 붙이고,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말뜻을 살피니 “여러 문화”를 가리키는군요. ‘문화’라는 한자말은 이웃나라 일본이 바깥물결을 받아들이면서 영어 ‘culture’를 옮긴 말씨입니다. 우리는 이 일본스러운 한자말을 그대로 따라서 쓰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다문화’란 낱말뿐 아니라 ‘문화’라는 낱말을 넣어 가리키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느끼나요?


 여러 삶·온갖 삶·숱한 삶

 여러 살림·온갖 살림·숱한 살림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한겨레만 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러 이웃나라로 퍼져서 살아갑니다. 곰곰이 보면 이 푸른별에 있는 모든 나라에는 ‘그 터전에서 처음 나고 자란 사람만 있지 않’습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아니 어쩌면 맨 처음부터 모든 터전에서는 모든 사람이 울타리 없이 홀가분히 넘나들었지 싶어요.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많이 들어오기 앞서도 늘 어느 나라 어느 고장에서든 사람들은 가벼이 넘나들면서 이웃이 되고, 일을 함께했습니다.


  요즈막에 들어서 ‘다문화’ 같은 낱말을 지어서 쓴다면, 그만큼 이웃일꾼을 비롯해 이웃나라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안 좋게 본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우리가 슬기롭고 아름다이 나아가는 몸짓이라면 굳이 ‘다 + 문화’가 아닌 ‘문화’란 이름으로 넉넉하면서 포근히 품는 매무새여야지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면 어깨동무라고 생각합니다. 동무란 자리를 헤아려 봐요. 동무는 가까이 사귀는 사이입니다. 동무는 우리 집에서 살지 않아요. 동무는 이웃집이나 옆집이나 이웃마을이나 옆마을에 살지요. 때로는 이웃나라나 옆나라에서 살 테지요. 동무를 만나고 사귀고 어울린다면, 이러한 하루야말로 ‘다문화’입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늘 ‘다문화’로 살았어요. 굳이 이런 이름은 없어도 됩니다.


 다문화 가정 → 온살림집 / 무지개집 / 다살림집

 다문화 시대 → 온살림 나날 / 무지개 나날 / 다살림 나날


  한자말을 그냥 쓴다면 ‘문화’라는 이름 하나로 되고, 따로 새말을 지으면 좋겠다고 여긴다면 ‘이웃살림’이나 ‘다살림·온살림’이나 ‘무지개’를 그리면 좋으리라 봅니다. ‘다살림’에서 ‘다’는 한자가 아닌 우리말입니다. ‘모두’를 가리키는 ‘다’예요. “모두 살리는 길”이라는 ‘다살림’입니다.


  세글씨로 맞추어 말한다면 ‘다살림’이 무척 어울리지 싶고, ‘온살림’도 퍽 어울립니다. 온누리·온마음 같은 낱말에서 쓰는 ‘온’도 크게 아우르는 모든 숨결을 나타내요. 온마음으로 이웃으로 어울리는 길을 나누고 싶다면 ‘온-’을 붙인 새말도 좋습니다.


다문화가 만나는

→ 여러 삶이 만나는

→ 온삶이 만나는

→ 다살림이 만나는


특히 다문화 다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 더욱이 온갖 삶겨레가 어우러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 게다가 숱한 삶겨레가 어우러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출생하는 아이 100명 가운데 4명이 다문화 가정 출신이야

→ 태어나는 아이 100 가운데 넷이 이웃살림 집안이야

→ 태어나는 아이 100 가운데 넷이 다살림 집안이야

→ 태어나는 아이 100 가운데 넷이 무지개 집안이야


  몇 가지 보기글에 맞추어 “여러 삶”도 ‘다살림·온살림’도 ‘무지개’도 ‘온삶’도 넣어 봅니다. 꼭 낱말 하나만 써야 하지 않아요. 바탕으로 한 가지 낱말을 놓되, 자리나 흐름이나 때를 헤아려 이모저모 조금씩 달리 이야기를 펴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이러면서 제 나름대로 새말에 새 뜻풀이를 붙여 볼게요.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가꾸면 좋겠다고 여기는 길이라면, 이러한 길에 걸맞게 뜻풀이를 나란히 추슬러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하고 눈빛으로 거듭나기를 빕니다.


[숲노래 말꽃]

다살림 : 다 있는 살림. 다 어우러진 살림. 다 만나는 살림.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 ‘다문화’를 가리킨다


온살림 : 무엇이든 고르게 있는 살림. 무엇이든 어우러진 살림. 무엇이든 고르게 만나는 살림. 모든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 고르게 있어서 알차게 어우러진 살림. ‘다문화’를 가리킨다


무지개 : 1. 빛을 받아 나타나는 일곱 가지 결로 이룬 띠나 무늬. 하늘에서 물방울이 길게 모여서 햇빛을 받아 나타나기도 하고, 촛불이나 유리창에 어리기도 한다. 빨강·귤빛·노랑·풀빛·파랑·쪽빛·보라 같은 빛깔로 나타나곤 한다 2. 저마다 다른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은 저마다 다르기에 곱거나 뜻있거나 값있거나 넉넉하다는 이야기를 빗대는 말. ‘다양성·다양한 가치’를 나타낸다


다살림집 :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으로 가꾸는 집. “다문화 가정”을 나타낸다


온살림집 : 모든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 고르게 있어서 알차게 어우러진 살림으로 가꾸는 집. “다문화 가정”을 나타낸다


무지개집 : 저마다 다른 빛깔이 곱게 어우러지는 무지개처럼, 저마다 다른 살림이 곱게 어우러지는 집. “다문화 가정”을 나타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숲노래 사전] https://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C%88%B2%EB%85%B8%EB%9E%98&frameFilterType=1&frameFilterValue=359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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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노래 우리말꽃 : ‘말’하고 ‘언어’는 다른가?



[물어봅니다]


  숲노래 님은 ‘언어’라는 말은 안 쓰고 ‘말’이라는 말만 쓰시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언어’란 한자말을 써야 하는 자리도 있지 않을까요? 왜 ‘말’이라는 말만 쓰시는지 궁금해요.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마음을 짓는 생각이 됩니다. ‘말’하고 ‘마음’은 말밑이 같아요. 한자말이기 때문에 ‘언어’란 낱말을 안 쓰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저부터 스스로, 그리고 저를 둘러싼 이웃님 누구나, 여기에 우리 집 아이들하고 곁님이 늘 ‘말’이 모두 ‘마음’인 줄 알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곱게 즐겁게 새롭게 맞아들여서 하루를 짓는 씨앗이나 징검돌로 삼기를 바라면서 ‘언어’ 아닌 ‘말’이란 낱말을 가려서 쓸 뿐이에요.


  어느 분은 ‘언어학자’나 ‘언어학’처럼 써야 알맞다고 여기고, ‘언어연구’처럼 말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분은 그렇게 배우고 그런 말을 쓰셨으니 그렇게 여기실 텐데, 저는 ‘말님·말지기’가 되고 ‘말길·말갈·말꽃’을 가다듬으면서 ‘말익히기·말살피기·말가꾸기’를 하면 넉넉하다고 생각해요. 그곳에서는 꼭 그 말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따라서 늘 새롭게 말빛이 피어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곳에 쓸 가장 어울리는 낱말을 찾아내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나름대로 그곳에 알맞게 새말을 짓지 못해요.


  우리가 사랑으로 아이를 낳을 적에 어떻게 아이이름을 붙여야 가장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기쁠까요? 아이한테 이름을 지어서 붙여 주듯이, 우리 삶자리에서 흐르는 모든 낱말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그냥그냥 ‘말’하고 ‘언어’라는 두 낱말을 견주기보다는 “왜 두 낱말 사이에서 하나를 가려서 쓰는 마음일까?”를 생각하시기를 바라요.


  우리 이야기는 푸념 아닌 꿈이랑 사랑이랑 노래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한 톨씩 심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요. 그렇기에 아무 낱말이나 쓰지 않는답니다.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저는 모든 낱말을 하나하나 가려요. 낱낱이 돌아보지요. 말뜻을 되살피고 말결을 곱씹으며 말빛을 다시 짚어요. 그냥 써도 되는 말이란 없다고 느끼거든요.


  “그냥 쓰는 말”이 되면, “그냥 사는 하루”가 되는구나 싶어요. 늘 이렇게 느낍니다. 우리 입에서 흐르는 모든 말은 “그냥 쓰는 낱말”이 아닌, 또 우리 손에서 피어나는 글은 “그냥 쓰는 낱말”이 아닌, “늘 스스로 사랑이 되고 꿈이 되고 꽃이 되고 노래가 되어 아름답게 우리 보금자리·마을·푸른별을 고루 비추는 빛줄기가 되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요.


  다시 말하자면, 저는 “순수한 토박이말”을 안 좋아할 뿐 아니라, 구태여 “순수한 토박이말”을 캐내어 쓸 뜻조차 없습니다. “말은 늘 모두 마음”인 터라, “마음이 될 말”을 즐겁게 쓰고, 곱게 쓰고, 새롭게 쓰고, 넉넉히 쓰고, 햇살처럼 쓰고, 눈비바람처럼 쓰고, 사랑스레 쓰고, 살림하며 쓰고, 살아가며 쓰는 길에 서려고 합니다.


  언뜻 보면 ‘언어’란 한자말이든 ‘말’이란 텃말이든 대수롭지 않을는지 몰라요. 그러나 ‘말’이라는 가장 수수한 낱말을 가려서 쓰면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알아들어요.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누구한테나 어울리면서 쉽고 즐거우면서 새롭게 생각을 빛내는 밑바탕이 되는 낱말인 ‘말’이에요.


  ‘말’이란 낱말을 쓰기에 ‘말빛’이며 ‘말결’이며 ‘말길’이며 ‘말꽃’처럼 가지를 칩니다. ‘언어란 용어를 사용’하면 ‘언어감각’이며 ‘언어표현’이며 ‘언어구사’이며 ‘언어정보’로 흘러요. 두 갈래 말씨를 나란히 놓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말길로 나아갈 적에 생각을 북돋우면서 가꾸고 빛낼 만할까요? 우리는 어느 말길로 가다듬을 적에 스스로 새마음이 되고 새삶을 짓는 바탕을 닦을 만할까요?


  그냥 써도 되는 말이란 없습니다. 모두 마음인걸요. 그냥 해도 되는 말이란 없습니다. 모든 말은 씨앗이거든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이며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을 늘 곰곰이 새롭게 돌아보면 좋겠어요. 우리 입에서 흐르고 우리 손으로 쓰고 우리 눈으로 읽는 모든 말글은 ‘우리 마음’을 이루고, 이 ‘우리 마음’은 ‘우리 오늘·우리 삶·우리 살림’으로 이어갑니다.


  아무 말이나 안 쓰면 좋겠어요.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숲바람 같은 생각으로 하나하나 가누어서 쓰는 말이면 좋겠어요. 말꽃을 노래하고, 말숲을 나누고, 말꿈을 키우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름말을 쓰는 아름마음으로 아름사랑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숲노래 사전] https://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C%88%B2%EB%85%B8%EB%9E%98&frameFilterType=1&frameFilterValue=359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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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노래 우리말꽃 : “하고 있다”라는 말씨



[물어봅니다]

  “이제 밥 먹고 있어”나 “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앉아 있어”에서 ‘있어’가 어쩌다가 영국말에 있는 현재진행형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야기합니다]

  “하고 있다”는 우리 말씨가 아니지만 요즈음 사람들이 꽤 널리 씁니다. 우리 말씨인 척하는 이 말씨는 언뜻 보면 걷잡을 길 없는 듯하지만, 찬찬히 짚으려 한다면 무척 쉽게 걷어낼 길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도 이 말씨를 한동안 썼지만 이제는 말끔하게 털어냈습니다.


  예전에는 왜 썼고, 이제는 어떻게 털어냈을까요? 저 스스로 우리 말씨를 제대로 생각하고 즐겁게 찾아내어 사랑스레 익히자는 마음을 튼튼히 세우기 앞서까지는, 그냥 줄줄이 열두 해를 다닌 배움터에서 들려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책에서 읽은 대로 썼어요. 배움터에서 가르치고 배움책에 나오며 여느 낱말책이나 글책에 적힌 말씨가 더없이 얄궂거나 엉성하다고 느껴, 이 모두를 갈아엎을 노릇이겠다고 느낄 때부터 어느새 싹 씻어낼 수 있더군요.


  ‘배움터에서 가르치는 말이 말다운 말이 아닐 수 있다’라든지 ‘말다운 말을 오히려 배움터에서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친다’라든지 ‘여느 길잡이뿐 아니라 숱한 글꾼도 말을 말답게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헤아려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라든지 ‘우리말꽃(우리말사전)을 쓴다고 하는 붓잡이마저 우리말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슬기롭게 가다듬어 알맞게 쓰는 길하고는 동떨어지기도 한다’처럼 생각해 본다면 맨 먼저 모두 와르르 무너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아기로 돌아가서 말을 말답게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할 노릇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말이 일그러진 곳은 이 별에 드물거든요. 가만 보면, 몽골이나 만주는 중국말에 밀려서 말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적잖은 나라는 힘센 나라가 쳐들어와서 ‘힘센 나라 말만 쓰라’고 윽박지른다든지 ‘힘센 나라 말이 아름답고 뛰어나다’고 하는 달콤발림에 홀딱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도 싸워요.


  우리나라는 지난 조선 오백 해에 걸쳐서 중국 섬김질에 나라가 찌들었고, 이동안 입말하고 글말이 쫙 갈렸습니다. 조선 위아래틀(봉건신분제)이 무너진 자리에는 유럽·미국 믿음길잡이(선교사)하고 싸움나라 일본이 스며들면서 ‘토씨만 한글’인 글말이 태어납니다. 이러한 때를 거쳐 일본한테 짓밟히던 무렵에는 오롯이 일본말로 생각해서 말하고 글을 쓰는 틀이 뿌리를 내립니다. 1945년에 이 굴레에서 풀려난 다음에 나라살림이며 모든 배움터에 다시 ‘일본 앞잡이 글꾼과 벼슬아치와 길잡이’가 그대로 또아리를 틀었고, 이들이 지난날 싸움나라 일본한테 굽신거리면서 쓰던 일본말이나 일본 말씨를 이때에도 똑같이 ‘토씨만 한글’이고 ‘새까만 한자말투성이’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생각을 했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어 이오덕이란 어른이 《우리 글 바로쓰기》란 책을 선보이면서 크게 애쓰기는 하였지만, 1800년대 끝무렵부터 1900년대 끝무렵에 이르도록 백 해에 걸쳐 길들거나 물든 일본말하고 일본 말씨를 놓고서 ‘백 해쯤 썼으면 이제 이 말씨도 우리 말씨라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팔짱을 낀 글쟁이하고 벼슬아치하고 길잡이하고 붓잡이가 수두룩합니다.


  “하고 있다”를 비롯한 숱한 옮김 말씨·일본 말씨는 지난 백 해에 걸쳐서 소용돌이치는 이 나라에서 어지럽게 춤추면서 번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를 생각하면 좋겠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이쯤 싸워야 했다면 제 말을 잃거나 잊었어요. 우리나라는 용케 한말(우리말)을 잃지 않았고, 한글(우리글)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어수선하거나 뒤죽박죽인 옮김 말씨·일본 말씨에 젖은 모습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오늘 이럭저럭 ‘한글로 한말을 담는 삶’입니다.


  《아빠표 초등영어 교과서 확장패턴》(마이크 황, miklish, 2019)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린이가 영어를 배우도록 돕는 책이에요. 이 영어 길잡이책에 나오는 글월을 옮기면서 “하고 있다”랑 얽힌 실타래를 풀어 보겠습니다. 어린이배움터(초등학교) 영어 배움책에 나오는 글월을 옮겨도 되기는 합니다만, 굳이 이 책에 나온 글월을 옮기려 해요. 배움책이든 도움책이든 다 똑같습니다만, 그만큼 여느 사람들이 이런 말씨에 젖어들 뿐 아니라, 어린이가 처음 바깥말을 배우는 자리에 이렇게 ‘우리말 얼개를 망가뜨린 채 틀거리를 세운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려고 합니다.


㉮ She has a headache. 그녀는 두통을 가진다.

㉮ She has a cold. 그녀는 감기를 가진다.


  길잡이책은 으레 이렇게 풀이를 붙입니다. 이렇게 풀이를 붙여야 ‘우리말하고 다른 영어’를 알기 좋다고 여기더군요. 그러나 이 풀이가 옳을까요? 이 풀이는 우리말일까요?


㉮ → 그 사람은 골이 아프다.

㉮ → 아이는 콜록거린다.


  우리말에서는 사내나 가시내를 가리지 않고 ‘그’를 씁니다. 영어에 ‘she’라 나와도 우리말로는 ‘그·그이·그분·그님·그 사람’으로 옮겨야 맞습니다. 낱낱이 밝히고 싶다면 ‘그 사람’이 아주머니인지 어머니인지 어린이인지 할머니인지 이모인지 고모인지 누나인지 언니인지 동생인지를 따져서 이러한 이름으로 가리켜야 어울려요. 그리고 영어 ‘have’는 섣불리 ‘가지다’로 옮기지 않습니다.


㉰ He gives a pencil. 그는 한 연필을 준다.

㉱ He gives an answer. 그는 한 정답을 준다.


  우리말은 ‘임자말’을 흔히 지웁니다. 임자말을 안 써 버릇하는 말씨입니다. 자, 보셔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적에도 웬만해서는 ‘저는(나는)’ 같은 임자말을 안 씁니다.


㉰ → 연필을 준다.

㉱ → 풀다.


 ‘저는(나는)’이 없이 말할 적에 부드럽게 흐를 뿐 아니라, 이런 임자말이 없을 적에 오히려 ‘누가 누구를 보며 말하는가’를 환하게 알아차리기도 하는 우리말입니다. 그리고 영어 ‘a·an’은 함부로 ‘한’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 It's sweet. 그것은 달콤하다.

㉳ It's delicious. 그것은 맛있다.


  영어에서는 툭하면 ‘It's’를 붙입니다. ‘It's’를 안 붙이고 말하기도 하지만, 웬만해서는 이 말씨를 앞에 붙여야 합니다. 영어에서는 이 말씨를 안 붙이다가는 뜬금없는 뜻으로 잘못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요.


㉲ → 달콤해.

㉳ → 맛있어.


  우리말로 하자면 ‘그것은’은 아예 없다시피 해요. 더구나 우리말은 ‘-다’로 안 끝내 버릇하지요. 때때로 ‘-다’로 끝맺기도 하지만, 우리 말씨는 말하거나 말을 듣는 사람 마음이나 느낌이나 숨결이나 빛이나 자리나 흐름이나 결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그때그때 말끝을 바꾸어요. 우리말은 토씨랑 말끝을 신바람 내듯 바꾸는 결이 재미납니다.


㉴ I'm happy. 나는 행복하다.

㉵ I'm good. 나는 좋다.


  영어 ‘happy’는 그냥 ‘행복’이란 한자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말하는 자리마다 느낌이 달라요. 게다가 영어에서는 걸핏하면 ‘I'm’을 넣어야 말이 될 텐데, 우리말에서는 으레 ‘저는(나는)’을 지워야 말이 됩니다.


㉴ → 즐거워. / 기뻐. / 사랑해. / 반갑다. / 좋아, 좋아.

㉵ → 좋아. / 좋지. / 좋네. / 좋구나. / 맘에 들어.


  우리말하고 영어가 다른 결을 밝히면서 서로 맞대어 제대로 배우도록 이끌자면, ‘㉵’를 손질한 대목처럼 다 다른 토씨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웃나라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길잡이책에서도 바로 이 대목, ‘우리말은 스스로 느낌을 살려서 온갖 토씨를 바꾸어야 한다’를 꼼꼼하게 짚습니다.


㉶ They're taking a picture. 그는 한 사진을 찍는 중이다.

㉷ They're riding bicycles. 그들은 자전거들을 타는 중이다.


  우리말은 ‘그들’이란 임자말은 더더구나 안 써 버릇합니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They're’도 꼬박꼬박 붙여야겠지요. 자, 여기에서 “-는 중이다”란 말씨가 불거집니다. “-는 중이다”는 “-는 中이다”를 무늬만 한글로 옮긴 말씨이고, 일본사람이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면서 쓰던 말씨입니다.


㉶ → 사진을 찍는다.

㉷ → 자전거를 탄다.


  “-는 중이다”는 일본에서 영어 잇는말씨(현재진행형)을 어떻게 옮겨야 하나 하고 골머리를 앓다가 찾아내어서 쓰지요. 우리나라는 일본을 거친 영어를 들여와서 배운 터라, 숱한 영어 말씨는 바로 ‘일본 영어 말씨·일본말을 옮긴 말씨’라 할 만합니다.


㉸ She's climbing a mountain. 그녀는 한 산을 오르는 중이다.

㉹ She's drawing a picture.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는 中이다”는 “-는 중이다”라는 옷으로 바꿔 입는데, 이다음으로는 “-고 있다”로 다시 옷을 바꾸어 입기까지 합니다. 우리말로는 “밥 먹어.”처럼 짤막하게 써야 올바르지만, “나는 밥을 먹는 중이다.”라든지 “나는 밥을 먹고 있는 중이다.”라든지 “나는 밥을 먹고 있다.” 같은 ‘일본 옮김 말씨’가 마구 춤을 춥니다.


㉸ → 멧길을 오른다.

㉹ →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우리말을 어떻게 써야 알맞을까 하고 생각하려면, 이제까지 배움터랑 책이랑 누리집에서 듣고 읽고 본 모든 말씨를 까맣게 지워야 한다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모두 잊고서 처음부터 새로 배울 노릇이라고 여겨요. 그런데 모두 지워 놓았더라도 똑같이 배움 불구덩이라는 쳇바퀴로 들어가서 배움책하고 숱한 책을 편다면, 일본말꽃(일본말사전)을 그대로 훔친 듯한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을 그냥 읽는다면, 또 이와 엇비슷한 어린말꽃(어린이사전) 《보리 국어사전》(보리 출판사)을 그냥그냥 읽으면 도루묵이 되어요.


  영어 길잡이책에서 여러 보기글을 들면서 이야기를 엮었는데요, 영어를 우리나라에서 찬찬히 가르치려 한다면, ‘바로옮기기(직역)’나 ‘뜻옮기기(의역)’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노릇이 아닌, 우리 말씨를 제대로 밝힌 다음에, ‘맞대기’를 풀이해 주어야겠지요. 다음 보기글을 더 보겠습니다.


ㄱ. 나는 눈들을 가진다.

ㄴ. 나는 한 얼굴을 가진다.

ㄷ. 나는 한 코를 가진다.

ㄹ. 그들은 한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ㅁ. 나는 한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

ㅂ. 나는 한 과학자가 되기를 원한다.

ㅅ. 그는 이것을 하는 중이다(자기 위해.)

ㅇ. 나는 2학년에 속해 있다.

ㅈ. 그것은 5월 5일이다.

ㅊ. 나는 사야 한다(그 표들을.)

ㅋ. 그것은 너의 것이 아니다.


  영어 길잡이책 《아빠표 초등영어 교과서 확장패턴》에 나오는 글월을 열한 가지 더 옮겼고, 이다음에는 이 열한 가지 글월을 어떻게 손질해야 우리 말씨가 되는가를 밝힐 텐데요, 제가 손질한 글월에 앞서, 이 열한 가지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려나 하고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스스로 생각해 봐요. 이러면서 우리 마음을 밝히는 말씨란 무엇일는지 곰곰이 짚기로 해요. ‘말씨’란 “말이 되는 씨앗”입니다. 말이 되는 씨앗이란, 우리 삶을 이끌거나 일구는 바탕이 되도록 마음자리에서 흐르는 생각입니다. 마음에 담거나 마음을 드러내는 생각이 ‘말이라는 씨앗’으로 우리 입이나 손을 거쳐서 태어납니다. 어떤 말씨를 가려서 쓰느냐는,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떻게 생각을 가다듬느냐 하는 삶하고 맞물려요.


  말만 곱게 쓰지 못해요. 언제나 삶을 곱게 가다듬으면서 말이 저절로 곱게 빛날 뿐이랍니다. 말만 꾸미거나 치레하지 못해요. 언제나 살림을 손수 짓는 즐겁고 신나는 하루를 누리기에 말이 시나브로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ㄱ. 눈이 있다.

ㄴ. 내 얼굴이다.

ㄷ. 코가 있다.

ㄹ. 노래를 부른다.

ㅁ. 글을 쓰고 싶다.

ㅂ. 과학자가 되려 한다.

ㅅ. 이렇게 한다(자려고.)

ㅇ. 나는 2학년. / 나는 2학년이다.

ㅈ. 5월 5일이다.

ㅊ. 사야 한다/표를.

ㅋ. 네 것이 아니다.


.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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