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촉각, 안테나, 더듬이



[물어봅니다]

  선생님은 ‘안테나’란 말을 안 쓰시고 ‘더듬이’라고 쓰시던데, 안테나하고 더듬이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안테나는 그냥 ‘안테나’라고 쓰는 쪽이 더 나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궁금한 생각이 들 적에는 사전을 먼저 펴 보셔요. 저도 사전에 나온 뜻풀이부터 옮길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입니다.


더듬이 :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안테나·촉각

촉각(觸角) : 1.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더듬이 2. [생명] 주위에서 일어나는 각종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테나(antenna) : 1.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더듬이 2. [물리] 공중에 세워서 다른 곳에 전파를 내보내거나 다른 곳의 전파를 받아들이는, 도선(導線)으로 된 장치. 무선 전신, 무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따위에 쓴다 ≒ 공중선


  ‘더듬이·촉각·안테나’ 세 낱말을 찾아봤어요. 자, ‘동물’이란 앞머리를 붙인 뜻풀이는 모두 같아요.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먼먼 옛날부터 ‘더듬이’라 했고, 한자를 쓰는 이웃나라에서는 한자말 ‘촉각’이라 했고, 영어를 쓰는 이웃나라에서는 영어 ‘안테나’를 썼다는 뜻이에요.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다르니, 똑같은 무엇을 바라보며 나타내는 말씨도 이처럼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를 눈여겨보면 좋겠어요. 한국말 ‘더듬이’는 한 가지로만 뜻풀이를 하고 그칩니다. 한자말 ‘촉각’은 “감지 능력”을 나타내는 자리로 쓰임새를 넓히고, 영어 ‘안테나’는 “전파 송수신 장치”를 나타내는 자리로 쓰임새를 넓히네요.


  생각해 봐요. “무엇을 느끼는 힘”을 가리킬 자리에 한국말 ‘더듬이’를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전파를 보내거나 받는 틀”을 가리킬 자리에 한국말 ‘더듬이’도 즐겁게 쓸 만해요. 한자를 쓰는 이웃나라는 그 나라 수수한 말에 새 쓰임새를 보태었고, 영어를 쓰는 이웃나라도 그 나라 수수한 말에 새롭게 쓰임새를 덧붙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오랜 한국말을 오랜 쓰임새 하나로 그치게 하고, 새로운 쓰임새를 보태거나 덧붙이지 않을까요?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새롭게 살려서 쓰는 길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영어 ‘안테나’는 처음부터 “전파 송수신 장치”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는 대목을 읽으면 좋겠어요. 수수하게 쓰던 영어에 새롭게 쓸 길을 밝힌 마음을 잘 읽으면 좋겠습니다.


  생물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리에서 쓰는 이름이라면 어린이나 푸름이가 아닌 어른이 짓거나 붙입니다. 그렇지요? 푸른 벗님도 생각해 보셔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푸른 벗님이 “감지 능력”이나 “전파 송수신 장치”를 가리킬 새로운 이름을 오래된 수수한 말에서 찾으려 한다면 한국말에서 찾겠지요. 그러나 학문을 하는 어른들은 그만 외국말로 학문을 하던 버릇에서 못 벗어나면서, 어른한테 익숙한 외국말을 그냥 쓰고 말아요. 누구보다 어른이 앞장서서 한국말로 새말을 짓거나 새로운 쓰임새를 넓혀 줄 노릇이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어른이 수수한 한국말을 싱그러이 가꾸는 일을 잘 해내지 않았어요.


  익숙한 말씨를 그냥 쓰는 모습이란, 길든 버릇을 그대로 잇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더 좋은 말 쓰기’가 아닌 ‘마치 쇠사슬처럼 길든 버릇을 풀어내어 홀가분하면서 새롭게 생각을 살리기’를 할 줄 아는 마음이 되기를 바라요.


  비슷한 얼거리로 ‘길잡이·안내인·가이드’가 있어요. 한국말하고 한자말하고 영어입니다. 셋은 모두 같은 사람을 나타내지만, 정작 한국말로 일자리를 나타내지 않고 으레 한자말이나 영어를 앞장세우곤 해요. ‘채식’을 하거나 ‘비건’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지만, 정작 ‘풀사랑’이나 ‘풀밥먹기’처럼 한국말로 수수하게 살림길을 밝히는 사람은 잘 안 보여요.


  삶을 새롭게 가꾸는 길에 생각부터 새롭게 추스르기를 바라요. 우리 곁에 있는 수수한 말이 새롭게 빛나도록 슬기롭게 마음을 기울일 줄 안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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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좋은 말이 따로 있을까



[물어봅니다]

  선생님 ‘우리말 바로쓰기’를 말씀하시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말을 쓰면 나쁘’니까, 이 나쁜 말을 쓰지 말고 좋은 우리말을 찾아서 쓰자고 하는 뜻인가요?


[이야기합니다]

  제가 2011년에 낸 이야기책에 붙은 이름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입니다. 아무래도 이 책에 붙은 이름도 있으니, 제가 푸른 벗님한테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우리말 바로쓰기)’를 이야기한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푸른 벗님뿐 아니라 여러 어른 이웃한테도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고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살짝 엉뚱할 만하지만, 왜 이렇게 할까요? 먼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뒷얘기를 듣기 앞서, 함께 눈을 감고서 1분쯤 생각에 잠겨 볼까요?


  자, 천천히 짚을게요. ‘바르다’를 먼저 생각합시다. 무엇이 바를까요? 바른말이나 바른길이나 바른삶이란 무엇일까요? 말보다 우리가 걸어갈 삶길이 바르지 않으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우리 살림이나 사랑이 바르지 않다면? 정치나 행정이 바르지 않다면? 사회나 문화나 복지나 평화나 평등이 바르지 않다면?


  여러분, 바르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요? 이렇게 따지면 아마 모든 분들이 ‘바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면 이제 말을 살펴요. 바르지 않아서 민주도 평등도 평화도 없는 나라가 아름답지 않다면, 바르지 않은 말도 안 아름답겠지요?


  다음을 짚을게요. 아름다이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갈 길을 살폈다면, 아름다운 삶길이나 나라나 마을이나 평등이나 민주나 평화를 즐겁게 가꾸거나 돌보는 길을 찾을 만합니다. 아름답기만 해서는 빡빡하거나 심심해요. 어렵거나 딱딱하지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을 써서 할 일이란 ‘즐거움’이지 싶어요. 즐겁게 손잡는 평등, 즐겁게 이루는 평화, 즐겁게 싹틔워 돌보는 민주, 즐겁게 나누는 마을, 즐겁게 함께하는 나라, 이러한 결처럼 즐겁게 주고받는 말이랍니다.


  다음을 볼게요. 아름다움하고 즐거움이 있으면, 이제 무엇을 헤아릴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니, 이 숨결을 사랑으로 보듬거나 펼 만해요. 모든 놀이도 배움도 일도 살림도 사랑으로 할 적에 웃음이 피어나요. 차분하거나 조용하게 즐거움을 맛보며 말을 폈다면, 이제 다같이 기쁘게 웃음꽃에 춤마당에 잔치판이 벌어지도록 사랑을 담아서 삶길이며 마을이며 나라이며 지구별이며 북돋울 빛을 그려 봅니다. 이러한 결을 말에도 고스란히 담지요. 사랑으로 쓸 말입니다. 사랑으로 쓸 글이지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까지 맞추면 더 좋습니다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좀 틀리더라도, 더 낫거나 좋은 말은 아직 모르더라도, 사랑으로 말하고 글쓰면 그야말로 눈부시게 빛나는구나 싶어요.


  ‘이런 말을 이렇게 쓰니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어서 나쁘다’기보다는 ‘이런 말을 쓸 적에는 이러한 기운이 우리 마음으로 스며든다’고 이야기하겠어요. 이를테면, 거친 말을 떠올려요. 깎아내리거나 얕보거나 괴롭히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말을 혀에 얹거나 귀로 스미면 어때요? 소름이 돋거나 싫거나 짜증스럽지 않습니까? ‘어느 말이 나쁘다’가 아닌, ‘어느 말에 깃든 기운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갉아먹을 수 있다’고 느껴요. 좋은 말 나쁜 말이 따로 있기보다는,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다 달라지는 말이에요.


  예부터 나이든 어른들은 “아이구 내 새끼!” 하면서 진득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만 ‘새끼’란 낱말 앞에 아무 말이나 붙이면 끔찍한 막말도 되어요. 같은 말이어도 담는 기운이 확 바뀝니다.


  더 좋은 말을 찾지 않아도 되어요. 하루하루 즐겁게 삶을 가꾸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말을 가꾸는 눈빛하고 입하고 손이 되면 반갑습니다. 처음부터 가장 멋지거나 빛날 만한 말을 찾지는 말아요. 우리 느낌이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서로 어깨동무를 할 만한 말을 살펴서 차근차근 풀어내는 이야기를 하면 반갑습니다. 일본 한자말을 안 써야 하거나, 번역 말씨를 걷어내야 하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스스로 이루거나 일구고 싶은 길을 즐겁게 담아낼 만한 말글을 바로 우리가 스스로 찾고 가꾸면서 사랑으로 펼 적에 저절로 빛나는 말글이에요.


  노래할 만한 삶으로 말을 해요. 웃고 춤출 만한 몸짓으로 글을 써요. 푸른 벗님 입이며 손에서 노래가 되는 꽃 같은 말글이 흐른다면, 모두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럽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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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시와 소설 쓰기가 좋아요



[물어봅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생님과 저는 조금 비슷한 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과 소통하고 싶어요. 저는 시와 소설 쓰는 것을 좋아해서 작가라는 직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선생님께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이야기합니다]

  ‘시’란 참 아름다운 글이고, ‘소설’이란 무척 즐거운 글이라고 느낍니다. 시하고 소설을 쓰기를 좋아한다니, 두 가지 글쓰기를 하는 푸른 벗님은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고 누리면서 오늘을 짓는 길을 가겠네 하고 느낍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즐겁게 쓴 글을 보여주고 싶다니, 반가우면서 설렙니다. 어떤 눈빛을 어떤 손빛으로 일군 열매를 나누어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기다려 봅니다.


  그나저나 시쓰기하고 소설쓰기를 좋아한다면, 무엇보다도 ‘시란 무엇인가?’하고 ‘소설이란 무엇일까?’ 두 가지를 먼저 갈무리해 보면 좋겠어요. 교과서에 적힌 풀이나, 여느 사전에 나온 풀이가 아닌, 푸른 벗님 스스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시’하고 ‘내가 바라보고 즐기는 소설’을 새롭게 생각하면서 아주 새롭게 스스로 풀이를 달아 보셔요.


  저는 ‘시 = 노래’, ‘소설 = 이야기’라고 단출히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풀이하라고 누가 물으면 늘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둘 가운데 ‘시’ 하나를 놓고서 조금 깊이 짚어 볼게요. 저는 ‘시’라고 하는 글을 놓고서 다음처럼 두 가지로 갈무리를 해 놓았습니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 73쪽

시를 쓰는 사람은 낱말풀이를 하는 사람. 낱말풀이를 하는 사람은 새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 새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은 말에 깃든 삶·살림·사랑을 새로 바라보고 느껴서 노래하듯 이야기하는 사람. 이리하여 시를 쓰는 사람은 노래하는 벗님, 노래님이고, 노래님 손끝에서 태어나는 글은 노래꽃이 된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 313쪽

노래꽃 : 소리에 느낌하고 생각을 실으면 말이 된다. 이 말에 가락을 입혀서 이야기가 부드럽고 곱게 흐르도록 단출히 다스리기에 ‘시’라 하고, 한국말로는 ‘노래’라 한다. 예전에는 ‘노래’라는 낱말로 뭉뚱그려서 썼다면, 오늘날에는 ‘노래’ 한 마디로 뭉뚱그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글로 빚어 가락을 담는 이야기를 따로 ‘노래꽃’이라고 일컬어 본다. 꽃처럼 피어나는 노래이기에, 노래가 마치 꽃처럼 피어나기에, 동시도 어른시도 ‘노래꽃’이로구나 싶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직업이 아니기도 합니다. 시나 소설을 써서 돈을 얻고 살림을 꾸린다면 틀림없이 직업이겠지요. 그런데 “쓰는 사람(작가)”은 ‘공식 직업’으로 안 여기더군요. “쓰는 사람”은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도 아닌 터라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같은 세금을 다른 직업보다 좀 많이 냅니다. 이도 저도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뜻밖이라면 뜻밖으로 여길 텐데, 막상 이렇기에 푸른 벗님이 시나 소설을 쓰는 ‘직업’을 섣불리 헤아리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시나 소설을 써서 돈을 벌어도 좋습니다만, 이보다는 스스로 아름답게 삶을 노래하면서 저절로 시가 되기를, 또 스스로 즐겁게 삶을 지으면서 저절로 소설이 되기를, 이 두 가지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오늘 하루를 노래할 줄 알기에 시인이에요. 오늘 하루를 이야기할 줄 알아서 소설가예요. 아름다운 눈, 곧 ‘아름눈’이 되어 온누리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서 쓰는 아름다운 글, 곧 ‘아름글’이 시라고 여깁니다. 즐거운 몸, 곧 ‘즐몸’이 되어 온누리에 즐거운 놀이를 퍼뜨리고 싶어서 쓰는 즐거운 글, 곧 ‘즐길’이 소설이라고 여겨요.


  다만 하나는 알아두면 좋겠어요. 웃음만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은 아닙니다. 때로는 눈물이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입니다. 웃는 보람도 우는 아픔도 언제나 아름답거나 즐거이 새로 피어나요. 뚜벅뚜벅 걷는 길에서 두 손을 활짝 펴고 바람하고 햇볕을 가만히 받아 보셔요. 한 손에는 바람을 받으며 시를, 다른 손에는 햇볕을 받으며 소설을, 차곡차곡 사랑으로 여미시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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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트라우마’하고 ‘마음멍’



[물어봅니다]

  궁금한 낱말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내신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한 책에서, ‘트라우마’ 를 “마음속 상처” 또는 ‘생채기’로 바꿔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요. 현재 제가 독서 중인 코뿔소·코끼리 보호구역 관련 책에는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대략 30회쯤 등장해요. 이렇게 자주 나오는 말을 “마음속 깊은 상처” 한 마디로 고쳐서 읽어도 좋을까요? 정신 충격을 받아 그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때 다시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후유증이란 의미가 충분히 전달될 만한 말로 ‘생채기’ 말고 또 어떤 말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야기합니다]

  저는 ‘상처(傷處)’라는 한자말을 안 써요. 한자말이기에 안 쓰지 않습니다. ‘생채기’란 낱말이 있어서 ‘생채기’를 씁니다. 때로는 ‘허물’을 쓰고, 때로는 “다친 곳·다친 데”라 써요. “아픈 곳·아픈 데”를 쓰기도 합니다.


  영어사전을 살피면 ‘트라우마’를 “마음의 상처”쯤으로 풀이합니다. 저는 트라우마를 “마음의 상처”로 손볼 만하다고 밝히지 않았어요. 영어사전에 나오는 뜻풀이가 그럴 뿐입니다. ‘생채기’라고만 해도 몸이나 마음에서 다친 곳이 있다는 느낌을 넉넉히 나타내요. 한자말 ‘상처’도 그렇지요. “나, 상처 받았어.” 하고 말할 적에는 “마음이 다쳤다”는 뜻이면서 “마음이 다쳐서 ‘앙금’이 남았다”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앙금’이란 말을 써도 어울리지요.


  어느 때이든 예전에는 어떤 말을 어떻게 썼을까를 헤아리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수수하게 “생채기가 남았다”라 했을 테고 “마음이 다쳤다·마음을 다쳤다”라 했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다쳐서 오래도록 뒤앓이(← 후유증)’가 있다고 할 적에는 ‘고름’이나 ‘앙금’이 있다고 말해요. 그냥 ‘뒤앓이’라고도 했어요.


  이밖에 ‘마음앓이·가슴앓이·속앓이’란 말이 있어요. 힘주어서 ‘고름덩이’나 ‘피고름’이라 해도 되겠지요. ‘괴로움·괴롭다’라든지 ‘아픔·아프다’를 써도 되어요. 그리고 ‘마음아픔’을 쓸 만한 자리도 있어요. 찬찬히 간추릴게요.


트라우마 → 가슴앓이, 가슴앓이하다, 속앓이, 속앓이하다, 고름, 고름덩이, 괴로움, 괴롭다, 뒤앓이, 마음앓이, 마음앓이하다, 마음아픔, 마음아프다, 마음고틈, 생채기, 아픔, 피고름, 앙금, 멍, 멍들다, 피멍


  늘 똑같은 말을 쓸 까닭은 없어요. 흐름을 살펴서 여러 말을 고루 쓸 수 있어요. 그리고 똑같은 말을 잇달아 써도 되어요. 구태여 다른 말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앓이(마음앓이하다) ← 마음고생, 내면의 상처, 한(恨), 속병, 전전긍긍, 성장통, 심적 고통, 트라우마, 쇼크, 정신적 충격, 후유중, 내상(內傷)

아픔 ← 고통, 상처, 통각, 한(恨), 원한, 원망, 비애, 치부(恥部), 벌(罰), 트라우마, 쇼크, 정신적 충격, 후유중, 내상(內傷), 내면의 상처, 속병, 심적 고통, 한(恨), 마음고생


  ‘마음앓이’이든 ‘아픔’이든, 또 ‘앙금’이든 ‘고름’이든 쓰임새가 꽤 넓습니다. 살갗이나 몸 어느 곳이 다쳤을 때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마음이 다쳤다든지, 몸이나 마음이 다쳐서 그 느낌이 오래도록 이어진다고 할 때에도 두루 써요. 마음 한켠에 다쳤다는 뜻만 나타내고 싶다면 ‘마음-’을 앞에 붙이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마음앓이·가슴앓이·속앓이’ 같은 말을 사람들이 널리 쓴다고 느껴요. 이 얼거리대로 ‘마음고름·마음멍·마음멍울’ 같은 말도 지어서 쓸 만합니다.


  그래요. 마음에 ‘멍’이 들었네요. ‘마음멍’하고 ‘마음멍울’ 같은 말도 어울립니다. 맞거나 부딪혀서 멍이 든다고 해요. 멍은 하루아침에 빠지지 않아요. 멍은 무척 오래 남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뿌리내리기도 합니다. 사람들 마음·가슴에 갖가지 아픔이나 괴로움이나 슬픔으로 맺힌 자리란 ‘마음멍·마음멍울’로 잘 나타낼 수 있겠구나 싶어요. 부디 모두들 마음멍을 지울 수 있도록 서로서로 곱게 다독여 주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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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우리말 이야기꽃 : 글쓰기로 먹고사는 길



[물어봅니다]

  수수하고, 소소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음악도 좋아해서, 어떤 노래에 대해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의 머릿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작가가 안정적인 직업인가 생각도 들어서 망설이게 돼요. 어떻게 할까요?


[이야기합니다]

  “수수하고 소소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먼저 ‘수수하다’라는 낱말하고 ‘소소하다’라는 낱말이 어떤 뜻을 품는지 살펴보면 좋겠어요. 저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써내면서 ‘수수하다’를 “1. 도드라지지도 않고 뒤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조용히 어울리다 2.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조용하고 부드럽다 3. 어느 것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면서 쓸 만하다”처럼 풀이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수한 글쓰기 = 있는 그대로 글쓰기 = 꾸밈없는·거짓없는 글쓰기 = 조용조용한 글쓰기”라 할 만해요. ‘소소하다(小小-)’는 한자말이에요. ‘작디작다’를 나타내지요.


  그런데 글에는 작은 글이나 큰 글이 따로 없다고 느껴요. 짧게 쓴 글이나 길게 쓴 글만 있다고 느껴요. 수수하게 썼대서 “작은 글”이 되지 않습니다. 잔뜩 꾸며서 쓰기에 “큰 글”이 되지 않아요. 널리 알려지거나 팔리거나 읽히기에 “큰 글”이 되지 않는답니다.


  글쓰기를 놓고서 ‘소소한 길’보다는 다른 길을 생각하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단출한 길’이나 ‘조촐한 길’이 있습니다. ‘즐거운 길’이나 ‘신나는 길’이 있어요. ‘재미난 길’이나 ‘사랑스런 글’이나 ‘고운 길’이나 ‘착한 길’이나 ‘참한 길’이나 ‘바람 같은 길’이나 ‘꽃다운 길’도 있고요.


  우리가 쓰는 글이란 우리가 걷는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고스란히 글이 됩니다. ‘문장수련’을 하거나 ‘문장작법’을 갈고닦아야 글쓰기를 잘 해내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삶을 슬기롭게 사랑하면서 알뜰살뜰 살림을 가꾸는 따사로우며 즐거운 손길이 되면 넉넉합니다. 바로 이 손길로 ‘수수한 글’도 ‘산뜻한 글’도 ‘새로운 글’도 쓸 수 있어요.


  글을 풀어내며 머리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면, 머리말 없이 써도 좋아요. ‘머리말·몸말·맺음말’이란 얼개를 안 따라도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기면 되어요. 살아가고 싶은 길을 즐겁게 살아가면 될 뿐인 오늘이듯, 이러한 삶을 가만히 옮기면 넉넉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머리말뿐 아니라 몸말이나 맺음말을 어떻게 엮어야 좋은가는 구태여 안 따져도 됩니다. 우리한테는 줄거리가 있으면 돼요. 글로 담을 이야기에서 알맹이가 될 삶을 스스로 느끼고 알면 됩니다. ‘어떤 글’을 쓰느냐도 대수롭겠지만, ‘어떤 하루와 삶과 생각을 바로 내가 즐겁게 스스럼없이 마음껏 쓴다’는 길을 갈 수 있으면 좋구나 싶어요.


  글을 쓰는 뜻은 ‘살아가려는 뜻’하고 같아요. 스스로 짓고 싶은 꿈길을 걷는 하루이듯, 스스로 짓고 싶은 꿈을 글로 담습니다. 스스로 가꾸고 싶은 사랑길을 짓는 삶이듯, 스스로 짓고 싶은 사랑을 글로 적어요.


  그리고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없기도 하고, 글만 써도 먹고살 수 있기도 해요. 어느 쪽이 될는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글을 쓰지 않아도 먹고사는 길이 있으면서도 이 삶에서 꿈으로 이루고픈 사랑을 낱낱이 느껴서 제대로 나타낼 줄 안다면, 글쓰기는 물흐르듯 풀리겠지요. 글로 먹고살겠다는 다짐을 너무 앞세우거나 얽매이노라면 어느새 ‘우리 마음을 어떻게 왜 얼마나 글로 담아야 하는가’를 잊어버리기 쉬워요. 글팔이꾼이나 글장사꾼이 되고 맙니다.


  뒷돈을 받고서 거짓글을 써 주는 분이 제법 있어요.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꾸밈글을 마구 써내는 분도 꽤 있어요. 이분들은 글쓰기로 돈을 버는 셈일 테지만, 거짓글이나 꾸밈글로 돈이나 이름을 얻는대서 이분들 삶이 얼마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울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순천 할머니가 손수 글씨랑 붓질을 익혀서 선보인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란 책이 있어요. 할머니들은 책을 내려고 글을 쓰지 않았어요. 지나온 삶을 되새기면서 꼭 남기고 싶거나 눈물웃음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단출히 여미었어요. 우리는 논밭을 일구며 글을 쓸 수 있어요. 공장 일꾼이나 버스 일꾼으로 지내며 글을 쓸 수 있어요. 아기를 돌보며 글을 쓸 수 있고, 회사원으로 지내며 글을 쓸 수 있어요. 마음이 흐르는 삶을 먼저 제대로 지켜보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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