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노키즈존 : 아이가 시끄럽다고? 노래하거나 울거나 웃지 않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아이가 마구 군다고? 그러면 아이를 가르치고, 어른으로서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주어야지. 여러 판 가르치고 보여주었는데도 아이가 안 하거나 못 한다고? 그러면 더 상냥하고 따스하게 가르치고 보여주어야지. 모든 아이가 한글을 척 보면 다 외워서 반듯하게 쓰는가? 글씨를 익혀서 반듯하게 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아이가 예의범절을 모른다고? 그러면 아이가 예의범절을 익히도록 온마을이, 온나라가, 온집안이 함께 마음을 기울여서 차근차근 이끌 노릇이지. 아이는 으레 넘어진다. 아이는 으레 떨어뜨린다. 아이는 으레 부딪히고 깨뜨린다. 이때마다 ‘너 한 판 잘못했으니 다시는 만지지 말거나 하지 못하’게 하면 잘 풀릴까? 넘어지고 깨지고 부수는 길을 어떻게 찬찬히 다스리고 돌보고 보듬으면서 튼튼하고 참한 사람으로 나아가는가 하는 길을 익히지 못한 아이가 ‘나이만 먹는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아마 어릴 적에 이 아이가 둘레 어른한테서 받은 그대로 새로운 아이들한테 돌려주겠지. ‘노키즈존’을 말하는 사람은 어릴 적에 따스하거나 차분한 손길을 받았을까, 못 받았을까? 노키즈존을 찬성하거나 반대해야 할 까닭이 없다. 아이도 어른도 새롭게 배울 노릇이다. 아이는 다같이 어우러지는 마을에서 즐겁게 뛰노는 길을 익힐 노릇이요, 어른은 아이가 마을에서 즐겁게 어우러지는 길을 상냥하면서 부드럽고 사랑스레 알려주거나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길을 익힐 노릇이다.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배워야지. 노키즈존이란, 어른하고 아이가 새롭게 만나며 배우는 길을 모조리 가로막고 만다. 아이도 배울 일이지만, 어른도 배울 일이다. 자꾸 장난을 치거나 개구지게 구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때와 곳을 가리도록 이끌어야 서로 즐거울까’를 어른도 배워야지. 언제까지 어른들이 골만 부리거나 아이를 꽁꽁 싸매거나 두들겨패거나 막말을 하는 길을 갈 셈인가? 아이가 ‘못 하게 막으’면 풀릴 줄 아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아이가 배울 수 있는 마을’로 달라져야 한다.


아이를 함께 아끼거나 돌볼 줄 모르는 마음이란 사랑이 없는 차디차거나 메마른 삶이겠지. 더구나 어른이란 사람 누구나 아이란 나날을 지나와야 한다. 아이로 살지 않고서 어른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5살 밑으로 안 된다”거나 “19살 밑으로 안 된다”고 금을 긋는 책이나 영화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마구잡이로 하거나 구는 짓을 “15살 밑”이나 “19살 밑”으로 그어 놓지는 않는가? 20살부터는 마구잡이로 구는 짓이 흐르는 책이나 영화를 거리끼지 않고 보아도 좋은가? 아이를 손사래치겠다는 곳이라면 ‘사랑이 없는 곳’이라고 느낀다. 또는 ‘생각이 없는 곳’이거나 ‘삶이 없는 곳’이거나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 곳’이라 하겠지. 노키즈존이니 ‘아기를 밴 어머니’도 가면 안 되겠지. 스스로 아이였고, 오늘 곁에서 아이로 살아가는 숨결을 슬기로이 가르치고 이끌면서 아름다운 어른으로 살아가도록 어깨동무하는 빛을 키우지 않는다면, 이 나라나 마을이나 터전이 갈 길은 뻔하다. 2019.12.1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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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곁에 있는 바람을 스스로 바라는 대로 흐르도록 만져 주는 몸짓이 추밀 테지. 틀에 박힌 흐름이나 결이 아닐 적에 춤을 잘 춘다. 어려운 몸짓을 똑같이 해내려고 용을 쓸 적에는 보기에도 힘들고 춤을 못 추는 셈이로구나 싶다. 어려운 몸짓은 그저 어려운 몸짓이다. 춤은 바람물결하고 하나된 몸짓이거나 바람물결을 우리한테 끌어당기는 몸짓이리라. 2015.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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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즘 : 코뮤니즘이든 공산주의이든 뜻은 좋으리라. 그러나 어린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자면 코뮤니즘도 공산주의도 안 어울리지 싶다. 이 삶터하고 앞으로 나아갈 살림길을 헤아려 새말을 지어서 쓸 노릇이라고 본다. ‘커뮤니티·커뮤니케이션’하고 맞닿는 ‘코뮤니즘’은 ‘어울림·이야기’를 바탕으로 두지 싶고, ‘함께하기·나누기’를 뜻하는 ‘공산’이라면, 이 뜻을 그대로 밝히거나 ‘두레’란 낱말을 떠올릴 만하다. 어울림길·나눔길·두레길, 어울살림·나눔살림·두레살림, 이런 이름을 그릴 만하다. 아니, 이런 이름을 바탕으로 새판을 짤 생각을 키워야지 싶다.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그리자면, 어떤 이름을 함께 쓸 적에 어깨동무를 할 만한가도 헤아려야겠지. 2019.12.1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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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었기 때문에 잔다. 몸이 괴롭고, 마음이 생각을 새로 할 수 없어서 잔다. 자는 동안에 ‘앞서 먹은 것’을 씻어내고, 이제 가벼운 몸에 즐겁고 홀가분한 생각이 흐르도록 ‘꿈’을 꾼다. 꿈을 다 꾸었으면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몸에 밥을 안 넣으면(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온다. 몸에 밥을 안 넣을 적에는 잠을 자야 할 까닭이 없다. 이때에는 마음이 또렷하다. 어느 모로 본다면 ‘마음이 또렷한 몸’을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주체할 수 없거나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밥을 먹는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 또렷한 몸인 채 꽤 오래도록 움직였다고 여겨, 이제 몸을 쉬고 싶다고 느끼면서 밥을 먹는 셈일 수 있다. ‘마음이 또렷한 몸’이 낯설거나 두려운 나머지 밥을 퍼먹기도 한다. 이리하여 마구 먹고서 깊이 잠들려 하겠지. 그러나 꿈자리에는 ‘앞서 먹은 것’을 바탕으로 꿈이야기가 펼쳐지기 마련이라서, 즐거운 꿈을 못 꾸는 이가 많다. 왜 그러한가? 무엇을 먹든 먼저 ‘먹을거리한테 마음으로 말을 걸어’서 ‘어떠한 먹을거리라도 우리 몸빛에 걸맞도록 숨빛이 달라지도록 해놓아’야 하는데, 이를 안 하면 힘겨운 꿈에 시달린다. 자, 더 생각해 보자. 잠을 안 자기에 이튿날 찌뿌둥할까? 잠을 안 자면 몸이 찌뿌둥하다고 여기는 ‘사회의식에 길든’ 탓에 찌뿌둥하고 여기지 않는가? 우리는 며칠 동안 잠을 안 자도 멀쩡하고, 며칠 동안 안 먹고 안 자도 몸이 튼튼할 뿐 아니라 외려 한결 거뜬하기 마련이다. 이제 사회의식을 버릴 때이다. 즐겁게 꿈을 꾸고 싶기에 모든 먹을거리를 즐거운 숨결로 돌려놓고서 즐겁게 누리면 된다. 2016.12.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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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 모든 벌레는 의사이다. 모든 벌레는 사람한테 찾아와서 이 몸뚱아리에서 막힌 데를 뚫어 주려고 한다. 벌레가 사람 몸뚱아리를 보듬거나 다루거나 짚는 모습을 살핀 눈밝은 이는 나중에 뛰어나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한 의사 노릇을 한다. 몸에 바늘을 꽂거나 째거나 뚫는 벌레 몸짓도 배우지만, 벌레가 좋아하는 풀잎이며 열매도 찬찬히 보면서 배운다. 2016.1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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