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하늘 : 우리가 마시는 숨은 모두 바람이고, 이 바람은 언제나 하늘이다. 우리는 하늘숨을 먹는 사람이다. 우리가 몸이 아프다면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숨이 아닌 매캐한 먼지구름을 자꾸 먹기 때문이겠지. 우리 몸이 튼튼하고 싶다면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 되겠지. 우리가 튼튼한 몸이면서 마음일 적에는 어떠한 돌림앓이도 생기지 않고, 아플 일이란 없다. 우리가 하늘빛을 먹지 않고서, 그러니까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파랗게 돌보지 않고 하늘을 그저 어지럽히기만 한다면, 우리 몸이나 마음은 튼튼한 길하고는 동떨어지면서, 자꾸자꾸 새로운 돌림앓이에 휘둘리고 만다. 하늘이 깨끗한 곳에서 누가 아플까. 하늘이 지저분한 곳에서 튼튼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엇을 하고 무엇을 그쳐야 할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어떤 터전에서 살면서 어떤 하루를 그려야 할까? 2020.2.2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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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나는 1992년부터 헌책집을 다녔고, 바로 이해부터 고등학교 동무를 헌책집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서 책맛을 새롭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새책집에는 같이 책마실을 다니던 동무들은 얄궂게도 헌책집을 가자면 하나같이 안 가려 했다. 이런 모습을 보다가 1994년부터 헌책집을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고 느꼈다. 1994년 12월부터 혼자서 ‘우리말+헌책집’ 소식종이나 잡지를 사흘마다 엮어서 내놓아 거저로 돌리고, 헌책집을 함께 찾아가서 신나게 책을 장만하고, 또 헌책집을 다녀온 이야기를 저마다 남기자고 북돋았고, 헌책집 찾아가는 길그림을 손으로 그려서 뿌렸고, 헌책집을 사진으로 아름다이 찍어서 널리 알리자고 했고, 서울·전국 헌책집 목록을 엮어서 누구나 곳곳 헌책집을 잘 찾아가도록 이바지하지고 했다. 이런 일을 열 몇 해쯤 하던 어느 날 부산에 있는 헌책집지기가 사진책 하나를 고맙다면서 건네셨다. 그분이 건넨 사진책은 이일라(Ylla) 님 사진책이었고, 아직 한국에 거의 안 알려졌던 분이며, 이분 책도 안 나오던 무렵인데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값비싼 사진책이었다. 이러고서 여러 해 지나니 이일라 님 사진책이 한국말로 나온다. 그리고 2018년에 일본 도쿄로 이야기마실·책마실을 다녀오며 〈姉川書店〉에서 이일라 님 사진책을 새삼스레 만난다. 일본에서는 이분 사진을 제대로 알아줄 뿐 아니라 꾸준히 오래도록 책으로 내놓는구나. 이분 사진책을 오늘날에 이르도록 지며리 읽고 보고 장만하는 손길이 있구나. 반짝거리는 새책으로도 이일라 님 사진책을 장만하고 싶었지만 이날 일본에서 주머니가 간당간당했다. 나한테 있는 낡은 사진책을 앞으로도 고이 건사하자고 생각하며 새책은 살살 쓰다듬고서 내려놓았다. 애틋한 사진책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책집을 다니면서 책집을 사랑하는 이웃님한테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품을 들였기에 어느 날 이일라 님 사진책이 나한테 왔고, 내 품에 안긴 낡은 사진책 하나를 오래도록 책상맡에 두면서 지켜본 어느 날 이웃나라에 와서 새로운 빛을 보았네. 품이란 뭘까. 앞으로 들일 품이란, 앞으로 이 품에 담을 숨결이란 무엇일까. 2018.4.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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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글 : 이제 한국에서도 거의 모든 마을책집은 손글씨로 책을 하나하나 알린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이러했다.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일하며 길거리에서 책장사를 할 적에, 또 책잔치에 나가서 책팔이를 할 적에, 기계글씨 아닌 손글씨로 골판종이에 적어서 척 책상에 올려놓았더니 “야, 손글씨가 뭐니? 컴퓨터 있잖아? 컴퓨터로 뽑지, 손으로 그게 뭐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했다. 그때에는 교보·영풍을 비롯해서 어느 책집에서도 ‘손글씨로 책을 알리는 글종이’를 마련하면 죄다 손사래를 치거나 치우거나 내다버렸다. 그러나 책집에서든 길에서든 책잔치에서든 사람하고 사람이 만나서 책을 주고받는 장사를 하니, 책을 사 가는 분들한테 ‘이 책을 땀흘려서 꾸미고 펴낸 사람 숨결’을 보여주면서 건네고 싶었다. 책살림이 그렇게 앞선 일본이란 나라에서 굳이 예전부터 손글씨로 책알림글을 쓴 까닭을 헤아려 본다. 한국은 이제라도 이러한 살림결에 흐르는 마음빛을 찬찬히 나누면서 누릴 수 있으니, 이러한 모습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득 생각하기로 ‘깨알같이 쓴 손글’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다시 보니 깨알은 너무 작아서 보기 어렵고 ‘콩알같이 쓴 손글’이라 말해야 옳겠구나 싶다. 동글동글 콩알글. 흙을 살리고 몸을 살리며, 새도 벌레도 한 톨씩 나누어 먹는 콩알 같은 콩알글. 그래, 콩알글이로구나. 2020.2.2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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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 : 어릴 적부터 떠올리면, 어느 집에 열 해 넘게 눌러앉은 적이 없지 싶다. 태어난 인천 도화동 집이며, 옮겼던 주안동 집에서도 얼마 안 있다가 옮기기 바빴다고 등본에 나오고, 그나마 인천 신흥동 집에서는 아마 아홉 해를 살았나 싶은데, 연수동으로 옮겨야 했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 적에도 이문동에서 세 해를 있다가 종로 교남동으로 옮겨 다섯 해 있었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뒤에도 으레 거듭 옮기는 걸음이었다. 이제 고흥으로 옮겨서 열 해째인데, 열 해 동안 미적거리며 쓰지 못한 ‘책숲마실’ 이야기를 여민다. 이 열 해 사이에 ‘미적거리며 못 쓴 여러 책집’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책집지기로 일하시다가 문을 닫으면 아주 연락이 끊기는데, 그분들이 씩씩하게 책집살림 가꿀 적에 마치지 못한 글을 이제 겨우 매듭을 지으며 가늘게 한숨을 쉰다. 2020.2.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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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말 : 어린이부터 읽는 그림책을 펴면, 거의 모두라 할 만한 그림책마다 ‘어린이 눈높이에 안 맞는 말씨’가 흐르기 일쑤이다. 게다가 요새는 ‘그녀·필요·이해·행복’ 같은 말씨까지 그림책에 나오고 ‘시작·존재·-하고 있다·-었었-’까지 쉽게 춤추고 ‘위·속·안·아래’를 어느 곳에 어떻게 써야 알맞은가를 가리지 못하는 분이 참으로 많다. “나무 아래”라고 하면 “나무뿌리가 있는 땅속”을 가리킨다. 나무 곁이나 나무가 드리운 그늘을 말하려면 “나무 밑”이나 “나무 곁”이라 해야 한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을 적에는 “가지 위에 앉을” 수 없다. “가지에 앉는다”라 해야 맞다. 어째 하나같이 띄어쓰기나 맞춤길만 살필 뿐, 말이 안 되는 말을 헤아리지 않고, ‘어른 인문책이나 논문에나 쓰는 일본 한자말에 번역 말씨’를 섣불리 그림책이나 동시나 동화에 쓰는 이가 너무 많고, 어린이 인문책은 차마 어린이한테 읽으라고 말하기 껄끄러울 만큼 어수선하다. 그런데 교과서도 똑같더라. 무엇이 말썽일까? “어려운 말”을 썼기에 말썽일까? 아니다. “어려운 말”은 써도 된다. 어렵고 쉽고 하는 대목이 아닌 “어린이 눈높이에 어울리는 말”을 썼느냐를 첫째로 살필 노릇이다. 이다음으로 “함께 즐거이 나눌 말”인가를 살피고, “기쁘게 물려받아 새롭게 가꿀 말”인가를 살필 노릇이지. 생각해 보라. 어린이한테 아무것이나 먹으라고 건네는 어버이나 어른이 어디 있는가? 어린이한테 아무 밥이나 섣불리 먹이지 않듯, 어린이한테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지 않아야, 비로소 우리는 ‘어버이·어른’이란 이름을 어린이 곁에서 쓸 만하다. 아무 곳이나 집으로 삼지 않아야 ‘어버이·어른’이다. 아무 밥이나 먹이지 않고, 아무 옷이나 입히지 않고, 아무 살림이나 그냥그냥 꾸리지 않을 뿐더러, 아무 말 잔치를 하지 않을 줄 알아야 ‘어버이·어른’이다. 그렇지만 한국이란 나라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숱한 일꾼은 아직 어린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어깨동무도 못한다. 이제는 어린이를 바라보고 어깨동무를 하면 어떨까? 이제부터 어린이 눈높이를 살피고, 어린이한테 물려줄 말살림을 사랑스레 가꾸어 가면 어떨까? 2020.2.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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