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손글씨 : 누구를 만나러 움직이는 길이면 으레 노래꽃 열여섯 줄을 쓴다. 이 노래꽃은 으레 둘을 떠올리면서 쓴다. 한켠으로는 ‘오늘 마주할 이웃’이요, 다른 한켠으로는 ‘우리 집 어린이’이다. 글꾸러미에 먼저 손글씨로 쓰고, 정갈한 종이에 두 벌 옮겨쓴다. 한 벌은 ‘오늘 마주할 이웃’한테 드리고, 다른 한 벌은 ‘우리 집 어린이’한테 준다. 오늘 마주할 이웃한테 어제 쓴 손글을 건네지 않는다. 바로 오늘 써서 곧장 오늘 건넨다. 오늘 이곳에 흐르는 바람이 온누리를 휘휘 돌다가 사분히 내려앉아서 나란히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손글씨란 손에 담는 글빛이다. 손으로 또박또박 옮기면서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빛이다. 머리로 짓고 마음으로 심은 이야기를 함께하려고 들려주는 사랑노래이기도 하다. 2020.3.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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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달 손가락 :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이 영 안 내킨다. 손가락을 보면 어때서? 달만 보느라 손가락을 못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한테 눈이 둘이 있으면, 두 눈으로 달하고 손가락을 나란히 볼 노릇이다. 하나만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달’을 안 본다. 나는 오직 ‘별’을 본다. 그리고 별이니 달이니 손가락이니보다는 ‘나’를 보려고 한다. 2000.3.2. ㅅㄴㄹ


月と指 : “月は見ないで指だけ見る”という言葉がある。 私はこの言葉が氣に入らない。指を見たらどうかな? 月だけ見ていて指が見られない人がどれほど多いか? 僕たちには目が二つあれば, 

兩眼で月と指を一緖に眺めよう。 一つだけ見られない。 何よりも私は‘月’を見ない。 私はただ‘星’を見る。そして星だの月だの指だのよりは‘私’を見ようとする。 (作 : 森の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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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 홀가분하기에 날갯짓을 한다. 날갯짓을 하니 스스럼없고, 스스럼없으니 환하며, 환하니 아름답고, 아름다우니 사랑스럽다. 살림·그림·사진·글·일솜씨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멋지게 하려고 애쓸 까닭이 없다. 잘하려고 힘쓸 까닭도 없다. 홀가분하게 하면 어느새 아름다운 살림·그림·사진·글·일솜씨가 되고, 사랑스러운 살림·그림·사진·글·일솜씨로 피어난다. 2020.2.28. ㅅㄴㄹ


自由 : 自由であるから羽ばたく。 羽ばたくのに憚ることなく, 憚らないから明るいし, 明るいから美しくて, 美しいから愛しい。 生活, 繪, 寫眞, 文, 仕事ぶりはみな同じだ。 素敵にしようと努める必要がない。 よくしようと努める必要がない。 自由ならば いつのまにか 美しい生活, 繪, 寫眞, 文, 仕事ぶりになって, 愛らしい生活, 繪, 寫眞, 文, 仕事ぶりで笑く。 (作 : 森の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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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아이 : 일본에서는 2007∼2012년에, 한국에서는 2008∼2013년에 나온 만화책 《해수의 아이》가 있다. 2019년에는 만화영화로 나왔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 《리틀 포레스트》가 상큼했다면, 《해수의 아이》는 아름다웠다고 할 만하다. 다만, 두 만화 모두 군소리가 살짝 흘러서 조금 아쉬웠는데, ‘군소리’가 무엇인가 하고 낮에 등허리를 펴면서 꿈을 꾸고 보니 문득 알겠더라. ‘군소리’란 ‘이 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요, 상큼함이나 아름다움이란 ‘이 별에 찾아와서 노래하는 사랑’이더라. 두 아이하고 저녁에 만화책 《해수의 아이》를 오랜만에 다시 펼쳤다. 이제 큰아이는 이 만화에 흐르는 빛살을 읽어낼 만하지 싶다. 아니, 예전부터 읽어냈을 테지만, 빛살을 읽어낸 다음에 ‘제 말로 나타내기’를 할 만하지 싶은, 아니 예전부터 빛살을 읽어내고 아이 말로 나타냈을 테니, ‘스스로 글씨로도 옮길 수 있다’고 해야겠네. 두 아이가 잠든 밤에 먼저 만화영화 《해수의 아이》를 천천히 본다. 이튿날에는 곁님이랑 아이들하고 다같이 만화영화를 보아야지. 2020.2.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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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made in China’가 언제부터 이 나라를 휩쓸었는가를 돌아본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made in Korea’가 여러 나라로 퍼졌고, 이 나라는 ‘한국 곳곳에 엄청나게 때려지은 공장에서 빨리빨리 많이많이 만들어서 내다팔기’에 바빴다. 이때에 이 나라는 돈은 제법 벌었으리라. 그리고 돈을 버는 만큼 아픈 사람이 부쩍 늘었고, 아파서 죽는 사람도 참으로 많았다. 다만 그때에 ‘환경병’으로 죽는 사람은 통계로 안 잡았을 뿐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을 치르고서 조금씩 달라졌다. 이 나라 한국은 온산병을 치르고도 달라지지 않아 페놀사건도 터졌고, 아직까지도 썩 달라질 낌새가 안 보인다. 이제 ‘우한 폐렴·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돌림앓이가 빠르게 번진다. 이 돌림앓이가 아직 서울에는 안 퍼진 듯하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서울에 퍼지지 않고서야 나라가 안 바뀔는지 모르겠구나 싶다. 중국 탓을 할 일이 아니다. 왜 중국이 그렇게 망가졌을까? ‘made in China’ 때문 아니겠는가. 중국은 ‘농민공’이라고 해서, 시골일을 쉴 적에 도시로 나와서 공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중국은 그야말로 공장이 어마어마하게 돌아간다. 중국 공장은 한국뿐 아니라 온누리 구석구석으로 공산품을 내다파는데, 공산품이란 무엇인가? 화학소재를 다루어 물건을 만들면, 바람하고 물하고 흙을 얼마나 더럽히겠는가? 중국은 오늘날 돈은 많이 벌 테지만, 중국이란 터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워진다. 중국에서 비롯하는 환경병이 생길밖에 없다. 이 나라는 지난 스물 몇 해 사이에 값싼 중국 공산품을 터무니없이 썼고, 값싼 중국 푸성귀를 암청나게 사들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모두 멈추고 생각할 노릇이다. ‘made in China’를 들여오지 않을 수 있을까? 중국사람이 이 땅에 못 들어오게 막는대서 될 일이 아닌, ‘made in China’를 끊고서 ‘made in Korea’도 아니라 ‘스스로짓기’하고 ‘파란하늘을 되찾아 푸른숲을 가꾸는 조그마한 마을살림’으로 생각을 지필 수 있을까? 방역을 하고 문을 닫고 학교나 일터를 쉬는 일은 반짝질이다. 반짝질로는 달라지지 않고 잠재우지 못한다. 밑뿌리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대통령이며 청와대이며 국회이며 행정얼개를 모조리 뜯어고칠 뿐 아니라, 이제는 학교교육·졸업장·대학교도 몽땅 갈아엎을 일이다. 돌림앓이 하나로 가게가 다 문을 닫고 학교를 쉰다면, 이제는 스스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 무엇을 먹고 어떤 살림을 꾸리며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면서 앞길을 함께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할까? ‘made in China’를 ‘made in Korea’로 바꾸면 또다시 새 환경병이 생긴다. ‘스스로짓기’를 작은 마을에서 조촐히 가꾸는 길을 갈 때이다. 스스로짓기를 하나도 할 수 없는 서울 같은 큰고장을 잘게 가르고, 서울에 넘치는 아파트를 하나하나 허물어서 숲으로 바꿀 노릇이다. 이러면서 군부대를 논밭과 숲밭으로 갈아엎을 줄 안다면 훨씬 좋을 테고. 2020.2.2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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