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겪었으면 쓰지요 : 나는 몸소 겪지 않고 마음으로 보지 않은 삶을 한 줄은커녕 한 마디로도 못 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몸소 겪었거나 마음으로 본 이야기이다. 읽지 않은 책이라면 느낌글을 쓸 수 없으니, 책느낌글은 모조리 읽은 책만 놓고서 쓴다. 그리고 한 벌만 읽고서 느낌글을 쓰지 않는다. 적어도 서너 벌은 읽고서야 그 책을 놓고서 느낌글을 쓰고, 아름책으로 여긴다면 열 벌 스무 벌 쉰 벌 거듭거듭 읽고서 느낌글을 쓰는데, 자꾸자꾸 새롭게 느낌글을 쓰고 싶더라. 겪지 않았다면 몸이며 마음에 스며든 이야기가 없으니 쓸 말이 없다. 겪었기에 몸이랑 마음으로 바라보고 헤아린 이야기가 수두룩하여 쓸 말이 많다. 밥을 안 지어 본 사람이 밥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사랑을 안 한 사람이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자전거를 안 탄 사람이 자전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아이들 똥오줌기저귀나 곁님 핏기저귀를 손빨래로 정갈히 건사한 살림을 꾸려 보지 않고서 성평등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모두 그렇다. 겪기에, 하기에, 살아가기에 쓸 뿐이다. 어떤 글이든 꾸밀 까닭이 없다. 글을 왜 꾸미겠는가? 안 겪은 이야기를, 안 한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억지로 쓰자니 겉멋에 허물좋은 꾸밈결로 쓰겠지. 2020.10.8.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씨앗한테 물주기 : 마늘싹이 엊그제 마음으로 나한테 들려준 노래를 옮겨적었다. “우리(씨앗)는 너희(사람) 손길을 받으면 반가워. 즐거워서 확 달라오르고 웃음이 나와. 그런데 우리는 굳이 너희 손길을 받을 까닭이 없어. 너희 손길이 없이 스스로 의젓하게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푸른바람으로 들숲을 빛내기에 너희가 이 풀물결을 마주하면서 기뻐서 웃음지을 적에 우리도 새삼스레 기쁘단다. 우린 이슬을 먹기에 따로 물을 안 줘도 되는데, 너희가 물을 줄 때마다 길들어서, 너희 물이 없으면 말라버리는 아이들이 있어.” 이렇게 옮겨적고서 생각에 잠기다가 밤에 꿈을 꾼다. 꿈에서 내 몸은 씨앗이 되어 들을 누비고, 때로는 물방울이 되어 구름을 누빈다. 다시 씨앗이 되어 숲에 깃들고, 어느새 아지랑이가 되어 바람을 탄다. 이렇게 갖은 몸이 되는 사이에 새롭게 헤아린다. 들이나 숲에서 푸나무가 떨군 씨앗 가운데 사람이 애써 심거나 물을 주는 일이란 없는데, 들이며 숲은 언제나 푸르고 싱그러우며 아름답다. 풀씨나 꽃씨나 나무씨는 어느 만큼 잠을 잔 다음에 어느 때에 알맞게 깨어나서 삶을 지으면 튼튼한가를 다 아는 셈이지 싶다. 사람은 어떨까?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얼마나 보여주고 이끌고 가르쳐야 하는가? 어른이나 어버이가 무엇을 보여주거나 이끌거나 가르치더라도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미리 꿈꾼 길에 맞추어 하나씩 새롭게 맞이하면서 삶을 짓지 않는가? 오늘날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싹트고 뿌리내리면서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운 다음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까지 나아갈 길을 모두 똑같은 틀에 가두지 않는가? 다 다른 씨앗을 모조리 똑같이 짜맞춘 뒤에, 언제나 똑같은 먹이에 길들도록 내모는 셈 아닌가? 농약·비료·비닐·기계·전기·석유가 아니라면 도무지 싹트지도 못하고 자라나지도 못하도록 아이들(씨앗)을 송두리째 가둔 오늘날 제도권 교육이자 학교이자 마을이자 터전은 아닐까? 어른은 하늘이 되어 바람을 품고 구름하고 노니는 숨결로 가야지 싶다. 어버이는 바다가 되어 물방울을 품고 빗방울로 온누리를 적시고 보듬는 숨빛으로 가야지 싶다. 2020.10.5.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풀잎이슬 : 아침이나 새벽이나 밤에 맞이하는 풀잎이슬은, 보기만 해도 스치기만 해도 잎을 훑어 뺨에 대기만 해도 온몸을 사르르 녹인다. 해가 뜨면 가뭇없이 사라지는 듯한 풀잎이슬이지만, 마른다기보다 찬찬히 풀잎이며 풀줄기이며 꽃송이에 녹아들어 하루를 싱그러이 살아내는 새숨빛이 되는구나 싶다. 들짐승이나 풀벌레는 바로 이 풀잎이슬을 조금조금 나누면서 목을 축인다. 사람도 이 풀잎이슬을 살짝살짝 나누면 하늘처럼 맑고 바람처럼 상냥한 새숨결이 깨어나지 않을까. 2015.10.5.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마음다리 : 얼굴이나 목소리를 모르는 채 마주하는 누리그물인데, 지난날에 종이에 이야기를 담아 주고받던 손글월도 얼굴이나 목소리를 모르는 채 마주하던 마음이다. 손에 쥐어 읽는 책도 매한가지이지. 글쓴이를 만난 사람도 있을 테지만, 글쓴이를 만난 적 없는 사람이 훨씬 많다. 글쓴이를 본 적이 있더라도 스스럼없이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조곤조곤 깊고 넓게 이야기를 펴 본 사람은 드물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웬만한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하고 어울린다. ‘아는 사람’하고 어울려 일하는 일은 드물다. 글을 써서 내놓든, 책을 묶어 펴내든, 살림을 지어 팔든, ‘우리를 아는 사람’보다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마주하기 마련이다. 모르는데 어떻게 글이며 책이며 살림을 주고받을까? 아무래도 마음이 다리가 되어 만나기 때문이지 싶다. 스스로 북돋우고 서로 살찌우고픈 즐거운 숨결을 바람 한 줄기에 얹어서 글이나 책이나 살림으로 띄워 보내는 셈 아닐까. 2020.10.1.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우리말을 모르는 번역 : 바깥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 서울이나 큰고장이 아닌, 시골이나 숲에 깃들어서 삶을 읽고 새기는 일꾼은 얼마쯤 있을까. 풀꽃나무하고 숲을 곁에 두고 마음으로 품으면서 책을 짓거나 엮거나 쓰는 글님이나 일꾼은 몇쯤 있을까. 풀꽃나무를 곁에 두고 마음으로 함께하지 않고서는 풀꽃나무를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못 담는다. 처음 태어나는 글·그림·사진은 언제나 풀꽃나무하고 한마음으로 살아낸 길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글·그림·사진으로 엮는 이가 풀꽃나무를 모르거나 등진 삶이라면? 이렇게 해서 나온 이웃나라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이가 풀꽃나무를 모르거나 등진 살림이라면? 바깥말만 잘 하기에 우리말로 잘 옮기지 않는다. 바깥말만으로는 옮기기를 하지 않는다. 언제나 ‘이 나라 이 땅에서 살아가며 흐르는 말씨’를 읽고 알고 새길 적에 비로소 옮기기를 한다. 더구나 풀꽃나무랑 숲을 다룬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데, 옮긴이 스스로 풀꽃나무하고 숲을 모를 뿐 아니라 생각조차 할 길이 없는 서울 한복판에서 지낸다면? 서울 한켠에 있는 ‘공원’을 드나드는 눈높이로 풀꽃나무를 옮기려 한다면? 우리말을 제대로 몰라서 옮김말이 서툴거나 엉성하거나 뜬금없거나 엉터리이거나 뒤틀리거나 엇갈리는 일도 수두룩하지만, 막상 풀꽃나무하고 숲을 하나도 모르는 채 ‘일감을 받아 옮기기’만 하느라 뭔가 뒤죽박죽이거나 어수선하거나 뜬구름을 잡는 책이 너무한다 싶도록 쏟아진다. 2020.9.29.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