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 우는 아침 - 굴렁쇠동화 1
이오덕 지음, 김환영 그림 / 도서출판 굴렁쇠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오덕을 읽는다 14

 


멧골서 나무와 노래하는 아이
― 종달새 우는 아침
 이오덕 글
 굴렁쇠 펴냄, 2007.9.10.

 

 

※ 책풀이 ※
1987년 종로서적에서 처음 나온 동화책으로, 2007년에 새롭게 옷을 입고 다시 나온다. 멧골마을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며 겪거나 느낀 이야기를 동화로 빚었다. 오늘날에는 이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과 같은 아이가 없다 할는지 모르나, 학교에서 거친 말을 일삼는 아이들은 똑같이 있고, 거칠고 메마른 학교와 마을에서 씩씩하며 꿋꿋하게 착한 마음 지키려는 아이들은 똑같이 있다.


..


  한 달쯤 앞서부터 딱새 두 마리가 우리 집을 꾸준하게 드나듭니다. 처음에는 초피나무 가지에 앉거나 마당을 쏘다니더니, 빨랫줄에도 앉고, 섬돌 앞까지 내려앉아 딱딱딱 노래합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제비집에 지푸라기를 물어 날라 엉성하게 둥지를 손질하는 듯했는데, 지푸라기 물어 나르기는 그만두었는지, 빈 제비집에 곧잘 찾아들기만 합니다.


  설마 빈 제비집에 알을 깠을까 궁금하지만, 부러 들여다보지는 않습니다. 사람 사는 집에 가까이 찾아든다는 딱새라 하더라도 물끄러미 지켜보기로만 합니다.


  딱새를 비롯해 참새도 박새도 스스럼없이 마당으로 날아오고, 마당 나무에 내려앉습니다. 우리 집 나무에 있을 애벌레나 풀벌레를 노리는구나 싶고, 초피나무 열매라든지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보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새들이 찾아오면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와 맑게 울리는 노랫소리를 함께 베풉니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 고운 이야기빛을 흩뿌립니다. 날마다 새들 노래를 들으며, 이 맑으며 고운 소리가 없이 하루를 열 수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싱그럽고 푸른 소리를 듣지 못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 마음에 푸른 사랑이 싹트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자동차 소리와 기차나 전철 소리와 버스 소리만 들으며 새벽과 아침을 맞이한다면, 하루는 어떤 빛이 될까요. 손전화 터지는 소리와 텔레비전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어야 한다면, 하루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아침을 여는 소리와 낮을 흐르는 소리와 밤을 감도는 소리는 아주 대수롭습니다. 집 둘레와 마을 언저리에서 샘솟는 소리는 참으로 대수롭습니다. 노래가 없는 삶이란 빛이 없는 삶이라 할 텐데, 고운 소리가 없는 삶이란 사랑이 없는 삶이 되겠구나 싶어요.


.. 아이들이 한꺼번에 고함치는 바람에 방울나무 잎들 속에 숨어 있던 참새들이 깜짝 놀라 호두나무 쪽으로 날아갔지만, 아침 해님은 키다리 미루나무 어깨 너머로 여전히 벙글벙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목요일이지요. 김충실 선생님은 벚나무 밑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고, 쉬는 시간마다 거기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도 거기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수업을 다 마친 뒤에도 숲속에서 사무를 보았습니다. 푸른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니 하도 시원해서 글씨도 잘 씌어지고, 사무 일이 참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학력 검사의 점수를 계산하는데, 전 같으면 자꾸 틀려서 몇 번이나 되풀이하던 것이, 이날은 단 한 번씩 주판을 놓기만 하면 척척 맞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없는 저녁때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자리를 두고 답답한 사무실에 갇혀 일을 하다니, 왜 진작 여기에 나올 줄 몰랐던가? 김충실 선생님은 볼펜을 던져 두고, 새소리가 자꾸 나는 머리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이 거의 안 보이도록 나뭇잎과 가지들이 꽉 덮었습니다 …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도, 열매가 없는 나무도, 키가 작은 나무도 모두가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풀빛 합창을 하는 듯했습니다 ..  (10∼11, 15∼16쪽)


  아침마다 노랗게 환한 해를 마주합니다. 처음 동이 틀 무렵에는 불그스름한 빛인데, 어느새 노랗게 달라지고, 이내 하얀 빛살 퍼뜨립니다. 해는 스스로 같은 얼굴일 테지만, 사람들이 철과 날과 때에 따라 바라보는 빛은 조금씩 바뀌지 싶어요. 해는 빨갛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며 하얗기도 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아마 해는 세 가지 빛깔을 함께 머금으면서 지구별을 따사롭게 보듬을 테지요. 지구에 무지개빛이 드리우도록 해 줄 테고, 지구에 포근한 바람이 불도록 해 줄 테며, 지구에 맑고 밝은 기운이 넘실거리도록 해 줄 테지요.


  해를 먹는 풀과 나무가 씩씩하게 자랍니다. 해를 먹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해를 먹는 새와 벌레와 짐승이 튼튼하게 자랍니다. 해를 먹는 어른들이 힘차게 일합니다.


  해가 없는 데에서도 어찌저찌 살아간다고 하는데, 해가 아예 없다면 어떠한 목숨도 어찌저찌 살아남지 못해요. 지구별 아주 깊은 데에 있어 해 기운이 퍼지지 못하는 데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예 해 기운이 안 퍼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땅 위보다는 땅 깊숙한 데는 덜 퍼지겠지만, 땅을 덥히는 기운이 천천히 조금씩 스며들어 지구가 이루어지지 싶어요.


  그러니까, 해를 보며 살결 까무잡잡하게 타는 아이들이 야무지게 놀고 뛰며 노래해요. 해와 나란히 새까맣게 타는 어른들이 당차게 일하고 어깨동무하며 사랑해요. 해님을 바라보며 스스로 해님 마음이 됩니다. 해님을 마주하며 스스로 해님 손길이 됩니다. 해님을 쳐다보며 스스로 해님 사랑이 돼요.


  전기로 밝힌 등불에서는 해님과 같은 기운이 샘솟지 않습니다. 밤을 낮처럼 밝히는 전깃불빛으로는 해님과 같은 손길과 마음길이 되지 못합니다. 전깃불빛은 흙을 살찌우지 않습니다. 전깃불빛은 풀과 나무를 쉬게 하지 못합니다. 전깃불빛은 사람들 몸과 마음에 고운 사랑 싹트도록 북돋우지 못합니다.


.. 아무도 없는 숲속에 혼자 앉아 있던 교장 선생님은, 어느새 자기가 벚나무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참새들이 아침 햇빛을 받고 머리 위에 와서 마구 재재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교장 선생님은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 이윽고 나무에서 내려온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빙 둘러싸였습니다. 아이들의 입술도, 교장 선생님의 입술도, 늦게 달려온 선생님들의 입술도 모두 자줏빛으로 얼룩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벙글벙글 웃는 얼굴입니다 … “이거 참 재미있는데! 올가을 학예회 때는 ‘나무의 춤’이란 것을 추어 볼까? 나무가 하늘을 바라보고 우줄우줄 추는 춤. 그리고 비바람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손에 가지를 꺾이고, 잎을 쥐어뜯기고, 가슴에 못이 박히고 하면서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나무의 춤! 꼭 한 번 그것을 추고 싶구나!” ..  (18, 21, 37쪽)


  오늘날 새로 짓는 학교를 보면 햇빛이 들어올 틈이 얼마 없습니다. 오늘날 새로 짓는 건물에도 햇빛이 스며들 틈이 얼마 없습니다. 커다란 건물 안쪽은 한낮에도 전기로 불을 밝힙니다. 높다란 건물 위쪽이나 아래쪽은 전기로 움직이는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햇빛을 거의 못 쬡니다. 학교에서 어른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햇빛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지냅니다. 햇빛이 없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모르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가로막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내팽개치는 학교교육입니다.


  똑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시멘트 교실에 전깃불빛 밝히면서 할 적이랑, 나무그늘에서 할 적은 사뭇 다릅니다. 두꺼운 천으로 창문을 가린 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서 화면 들여다보도록 하는 수업이랑, 운동장이나 풀밭이나 숲속에서 해를 안고 하는 수업은 크게 다릅니다.


  해와 함께 바람을 마시는 교실과 바람을 못 마시는 교실 또한 사뭇 달라요. 바람이 흐르는 운동장과 바람을 가로막은 교실 또한 크게 달라요. 철마다 달리 부는 바람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한 채 교과서만 들여다본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른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봄바람을 가르치지 못하고 겨울바람을 노래하지 못한다면, 아이와 어른은 봄과 겨울에 어떤 삶을 헤아리면서 스스로 삷빛 일굴 만할까요.


  해와 바람과 함께 비와 풀과 흙을 누릴 수 있는 교실과 이를 못 누리는 교실은 또 다릅니다. 여름비와 가을비를 아이도 어른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봄풀과 가을풀을 아이도 어른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름흙과 겨울흙을 아이도 어른도 모르는 채 지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과서는 학교에 다닐 적에만 씁니다. 해와 바람과 비와 풀과 흙은 학교에 다닐 적뿐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덮여 꽁꽁 막혀 안 보이는 듯하다 하더라도, 해와 바람과 비와 풀과 흙은 늘 우리 둘레에 있어요. 대학교에 들어간 뒤 교과서를 쓸 일 있나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교과서를 펼칠 일 있나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교과서를 들여다볼 일 있나요? 밥을 짓고 옷을 빨면서 교과서를 살필 일 있나요?


  누구나 언제라도 해를 마주해야 합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바람을 마시고 빗물을 누리며 풀과 흙을 벗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삶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삶하고 동떨어진 채 교과서만 말하고 교과서만 가르치며 교과서만 보여줍니다.


.. 수길이는 다른 아이들이야 어찌하든 나만은 내일 학교를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병간호를 해 드리고, 밥도 내가 지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 “오늘부터 나도 내 자유로 학교에 가야지. 줄 지어 발 맞춰 가는 것은 안 할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슴을 확 펴고 골목을 빠져나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파란 하늘에는 조그만 것이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 강아지 한 마리를 우리 속에 가두어 놔도 낑낑거리고 몸부림을 치는데, 말을 하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아이들을 한곳에 수십 명씩 온종일 가둬 놓았으니 조용할 리 있나요? 아이들 있는 교실이 언제나 쥐 죽은 듯 잠잠하다면 그것은 죽은 교실이고 죽은 아이들이지요.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 풀을 토끼장에 넣어 주고 거기 가 보니 서넛씩 둘러앉아 하는 것이 모두 땅뺏기 놀이입니다. 이 아이들도 모두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구나! 나처럼 고구마를 가져왔거나, 아예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31, 58∼59, 101쪽)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는 아이를 바라보며 돌봅니다. 육아책이나 교육책을 바라보며 아이를 돌보지 못합니다. 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다른 빛이 흐르고 다 다른 이야기가 솟아요. 그러니, 육아책이나 교육책으로는 우리 아이 돌보는 사랑스러운 빛이나 결을 찾을 수 없어요.


  해를 바라보며 노래할 적에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가을날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며 노래할 적에도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며 노래해요. 이리하여, 먼먼 옛날부터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다 다른 들노래가 태어났어요. 가을마다 가을걷이를 하며 노래를 불렀지요. 봄에 모내기를 하며 노래를 불렀어요. 피를 뽑으며 노래를 부르고, 나물을 하며 노래를 불러요. 밥을 짓으며, 아이를 어르고 돌보며, 나무를 하고 불을 지피면서 노래를 불러요. 우리 옛노래(한자말로는 ‘민요’)를 살피면, 하루 내내 노래를 불렀어요.


  다만, 우리 옛노래는 흙에서 일하고 놀며 살아가는 사람들 노래예요. 흙과 동떨어진 채 권력과 돈을 거머쥐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아무런 노래를 짓지 못했어요. 권력과 돈을 거머쥐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권력과 돈으로 사람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게 했지요. 이를테면 궁중음악이 이러한 노래입니다.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남을 시켜서 노래를 짓고 부르도록 했어요. 삶이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놀고 즐기려는 뜻에서 노래 전문가를 두어 가락을 짓고 악기를 켜도록 했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럼없이 노래를 짓습니다. 즐거우면 즐거운 가락으로 노래를 짓습니다. 슬프면 슬픈 가락으로 노래를 짓습니다. 일하며 고되면 고된 마음을 풀려고 노래를 지어요. 일하며 웃음이 터질 적에는 웃는 마음으로 노래를 지어요.


  시집살이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노래를 불러요.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부르고, 방아를 찧으며 노래를 불러요.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예요. 시골 흙지기는 흙에서 샘솟는 노래를 불러요. 시골 흙지기는 흙을 살찌우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요. 살결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고맙게 여기며 노래를 불러요. 온 들판 적시는 비를 마주하며 즐거워 노래를 불러요.


  집을 지으려고 굵은 나무를 골라 베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멧골에서 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가 삶이고 삶이 노래입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숲으로 스며들고, 숲은 숲대로 풀내음에 온갖 새와 풀벌레와 짐승 목청을 담은 숲노래를 불러 줍니다.


.. 아, 나도 이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나는 내 곁에 온 아이들을 따스한 햇볕으로 안아 주고 강물같이 파란 하늘과 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여주고, 운동장 가의 버드나무 잎들이 팔랑팔랑 떨어지는 모습이며, 포르륵포르륵 참새들이 날아가는 날갯짓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잿빛 하늘에서 송이송이 하얀 눈송이들도 쏟아져 내리겠지요 … 내 소원은 어린이들의 가슴마다 깨끗한 마음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고향 산천, 고향 하늘을 그들의 가슴마다 깊이깊이 안겨 주는 일입니다 … 하루의 일과가 다 끝나서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설 때는 아이들의 얼굴이 그럴 수 없이 즐거워 보입니다. 그 재미없는 책과 선생님의 말과 외우고 쓰고 하는 공부라는 괴물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활짝 피어난 꽃 같은 얼굴이지요 … 마른 잔디 풀들이 노란 속눈을 틔우고 있는 산기슭 양지쪽에는 해님의 마음같이 진한 빛깔의 할미꽃들이 피어나고, 그 위에서 종달새는 이른 아침부터 울고 있었습니다 ..  (65∼66, 76, 156쪽)


  이오덕 님이 쓴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굴렁쇠,2007)을 읽습니다. 깊디깊은 멧골마을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잔뜩 나오는 동화책입니다. 너무 고단하고 고달파서 숨이 막힐 듯 울음이 쏟아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고단하고 고달프지만 노래를 불러요. 종달새를 바라보며 꿩을 마주하며 가슴속에서 저절로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윽박거릴 뿐 아니라 몽둥이나 손찌검으로 들볶는 어른(교사)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버찌를 땁니다. 보랏빛으로 무르익은 버찌를 보며 군침을 흘립니다. 그도 그럴밖에 없는 까닭이, 멧골마을 아이들은 먼 멧자락 타고 넘으면서 힘겹게 학교를 다녀요. 교사들은 멧자락 타고 넘을 일 없습니다. 교사들은 사택에서 지내며 ‘아이들 학교길이 얼마나 멀고 고된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나, 아이들은 고되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숲을 가로지르고 나무와 벗삼으며 숲짐승하고 동무가 되어요. 새벽바람으로 학교길 나서며 숲노래 듣지요. 저녁바람으로 멧골집으로 돌아가며 숲노래 다시 들어요. 게다가 멧골마을 아이들은 집에서 늘 일손을 거들어요. 집 바깥에서 풀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일하는 동안 숲노래를 노상 들어요. 이러하니, 아이들은 벚나무 달달한 열매 굵게 맺힐 적에 군침을 흘리며 바라봅니다. 교장과 교사가 아무리 윽박지르거나 때리더라도 버찌를 먹으려 합니다.


.. 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현수는 나팔을 두 손으로 받고는 어쩔 줄 모르고 엎드려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현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시더니 현수가 머리를 들었을 때는 어디로 가 버리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수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바람같이 문틈으로 빠져나가신 것이 아니라, 어쩐지 제 마음속에 들어와 계신 것 같았습니다 … 써 놓고 읽어 보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건 내 마음이다, 이건 거짓이 아니다,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학교에서 글을 쓰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용배는 자랑스러웠습니다 … 날개를 쫙 펴고 꽁지를 쭉 뻗고 아침 햇빛에 눈부신 모습으로 산을 넘어가는 꿩을 쳐다보는 용이의 온몸에 갑자기 어떤 힘이 마구 솟구쳤습니다. 용이는 그 자리에서 한 번 훌쩍 뛰어올라 보았습니다 ..  (89, 115, 128쪽)


  아이들은 깊디깊은 멧골을 타고 넘으며 날마다 학교를 오가요. 그런데 왜 어른들은 이 깊디깊은 멧골을 타지도 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했을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얘들아, 오늘은 학교 오면서 무슨 노래를 들었니?’ 하고 묻지 못할까요.

  이제는 깊디깊은 시골마을이라 하더라도 십 리 이십 리 멧길을 타고 넘으면서 학교 다니는 아이가 없습니다. 이제는 노란버스로 시골 아이들 태워 학교까지 실어 나르고 집까지 데려다 줍니다. 오늘날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요. 오늘날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아침노래도 저녁노래도 못 듣습니다. 자동차 붕붕거리는 소림나 듣습니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학교길에 자동차 걱정스럽다며 ‘아버지 어머니가 자가용으로 아이들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 주지요. 학교버스도 있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지요.


  시골이든 도시이든, 아이들은 집과 학교 사이에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이웃이 있는지 느낄 틈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햇볕도 바람도 빗물도 흙땅도 풀밭도 누리지 못합니다. 오직 교과서 수업만 받습니다. 오직 시멘트 교실에 갇힌 채 하루를 온통 지새웁니다. 더군다나, 도시락이 사라지고 급식이 되면서, 도시락 싸는 마음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 못해요. 스스로 도시락을 싸려고 밥짓기에 마음 기울이는 일도 사라져요. 돈 몇 푼으로 과자나 빵을 사먹을 줄 아는 요즈음 아이들이지만, 손수 밥을 지어 동생한테 차려주거나 바쁘거나 고단한 어버이한테 차려주는 삶은 생각하지 못하는 요즈음 아이들입니다.


.. “난 시가 뭔지 모르지만 내 맘속에서도 시가 나올 것 같은데……. 나도 그런 거 좀 써 봤으면 좋겠다.” “그래, 한번 써 봐. 글자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지. 난 슬플 때나 답답할 때나 외로울 때 이렇게 시를 쓰면 기뻐지더라. 시를 쓰면서 살아갈라고 해.” … 짐이 무거워 쉬고 또 쉬었습니다. 20리쯤 걸으니 해가 져 아주 져 버렸고, 분교장 앞에 왔을 때는 밤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각달이 등 뒤에서 비춰 주어서 길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장터에서 사 먹은 빵 몇 개로는 허기가 나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엎드려 도랑물을 자꾸 마시고 땀을 닦으며 걸었습니다 … 새까맣게 익을 대로 익은 머루알은 정말 달고 향긋한 산의 맛이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산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값없이 주는 산의 선물, 하늘의 선물이었습니다 ..  (152, 181쪽)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은 아침을 종달새 노랫소리와 함께 맞이하고, 저녁을 종달새 노랫소리와 함께 마무리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종달새와 같이 맑고 밝게 노래하는 넋이 되어 하루를 빛내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종달새는 이 땅에서 거의 모두 사람한테 쫓겨 죽거나 사라졌지만, 종달새 노래를 되새기고, 종달새가 없으면 참새이든 딱새이든 박새이든, 또 제비이든 까치이든 직박구리이든, 또 왜가리이든 해오라기이든 물총새이든, 우리 둘레 곱고 착한 새들이 들려주는 곱고 착한 노래를 되새기는 넋을 보여줍니다.


  노래를 품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노래를 빚는 삶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노래를 부르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가요.


  노래에 꿈을 실어요. 노래에 빛을 담아요. 노래에 사랑을 품어요. 아이도 어른도 손을 맞잡고 노래를 하지요. 어른도 아이도 어깨를 겯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노래잔치 벌이지요.


.. 우선, 아침에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놀란 것이지만, 아이들이 왜 그렇게도 욕설을 예사로 지껄이는 것일까 … 학교라는 곳은 즐겁게 뛰놀고, 노래하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온갖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서로 욕설하고 미워하고 해치는 것을 배우는 곳같이 느껴졌습니다 … 얼었던 땅을 뚫고 해님을 보고 솟아오르는 눈부신 싹들! 그것들은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강한 생명들입니까? 복현이는 훌쩍 일어나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  (162, 166, 169쪽)


  아이들이 나무와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나무 한 그루 해마다 심으면서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손수 심은 나무에 멧새 찾아들어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씩씩하게 심은 나무에 꽃이 피면 나비가 찾아올 테지요. 나비가 춤을 추고 잠자리가 날개를 쉬다가 멧새들 깃을 들이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 이 나무를 타고 신나게 놀 수 있을 테지요.


  나무와 노래하던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기를 빌어요. 나무를 심고 아끼던 아이가 커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빌어요. 나무를 사랑하는 넋으로 어른다운 어른으로 튼튼히 두 팔 펴고 일하기를 빌어요.


  나무와 우리들은 한몸이에요. 나무와 우리들은 같은 숨을 마셔요. 나무와 우리들은 고운 햇볕을 먹으며 맑은 바람을 들이켜요. 나무가 있어 삶이 빛나고, 나무와 이웃하며 삶이 포근합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에서 '산머루' 따먹는 아이들 이야기 있는데, 오빠가 동생한테 머루를 따서 던질 적에, 누이는 치마로 머루를 받는다고 나오나, 그림에서는 바지 차림이다. 아름다운 글을 그림에서 살짝살짝 엉뚱하게 받치는 대목이 나온다. 이밖에도 그림이 잘못된 곳이 여럿 보인다. 책에 그림을 붙일 적에는 원글을 찬찬히 읽고 나서 제대로 그려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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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종로서적에서 처음 나왔던 이오덕 선생님의 동화책이군요!
종로서적을 기쁨으로 드나들던 추억과 이오덕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화책 느낌글로
날씨가 흐리지만..퍽 마음이 피어나는 아침입니다~
딱새가 딱딱딱, 노래하는군요~~
빈제비집에 드나드는 딱새도 참새도 박새도 다 보고 싶고 즐겁네요~
오늘도 아름다운 느낌글 감사드리며,
<종달새 우는 아침> 또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11-02 12:27   좋아요 0 | URL
이오덕 님 동화책도 참 아름다운데
그리 널리 읽히지는 못해요.

작품집이 이 하나뿐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오래도록 절판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여러모로 아쉬워요.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 소년한길 어린이문학 1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이오덕을 읽는다 1

 


문학 하는 사람, 문학 읽는 사람
―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이오덕 글
 소년한길 펴냄, 2001.5.3. 15000원

 


※ 책풀이 ※
2001년에 나온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는 “권태응 동요 이야기”라는 작은이름이 붙는다. 1918년에 태어나 1951년 전쟁통에 몸이 아파 서른세 살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만 동요시인 권태응 님이 남긴 작품 366 꼭지를 차근차근 살핀다. 권태응이라는 사람이 이룬 문학넋을 헤아리고, 권태응 동요에 나타나는 가락(운율)을 돌아보며, 권태응이라는 사람이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들려주고 싶던 노래가 무엇인가를 짚는다. 권태응 동요는 바로 ‘농사꾼 아이들’이 부른 노래요, 앞으로 이 나라를 씩씩하게 이끌며 일굴 넋은 ‘시골마을 노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가장 좋은 선물은 마음 담은 사랑 어린 말이지 싶어요. 백만 원도 천만 원도 일억 원도 아닌, 마음 담은 사랑 어린 말이 서로를 가장 따사롭게 살찌우지 싶어요. 다만, 가난한 살림일 적에 누군가 백만 원을 보태 준다면 무척 고맙고 즐겁지요. 힘겨운 살림인데 누군가 천만 원 보내 준다면 아주 반갑고 기쁘지요. 돈 만 원에 웃음꽃이 피기도 하고, 돈 십만 원에 눈물이 흐르기도 해요. 왜냐하면, 이러한 돈은 ‘숫자’가 아닌 ‘마음 담은 사랑’으로 주고받기 때문이에요.


  아이들하고 나누는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는 ‘이름난 작가나 화가나 가수’가 베풀어야 즐겁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학교 문턱 밟은 적 없는 할매나 할배가 글 한 줄 적어도 즐겁습니다. 여느 수수한 어머니 아버지가 쓴 쪽글이나 작은 그림이어도 기쁩니다. 자장노래이든 놀이노래이든 어버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노래는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우니 사랑스럽지요. 사랑을 담아 부르기에 사랑스럽고, 이 사랑스러운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이 새로 자랍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이들한테 책을 많이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넉넉히 틈을 마련할 수 있어 책을 많이 읽어 준다면, 많이 읽어 주는 대로 좋아요. 책을 읽어 줄 틈은 없으나, 아이 손을 잡고 사뿐사뿐 들마실이나 숲마실 다녀도 좋아요. 택시를 불러서, 또는 기차나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나들이를 다녀도 좋아요. 함께 삶을 즐기려는 마음일 때에 아이도 어른도 즐겁습니다.


.. 우리 나라는 농사꾼의 나라였습니다. 온 백성의 8할이 농사꾼이었으니까요.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9할도 더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말은 농사꾼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데서 생겨났고, 노래도 이야기도 춤도 농사꾼들의 것이었습니다. 두드리고 치고 불고 하는 악기도, 그림도, 질그릇도, 집도 모조리 농사꾼들의 것이었지요 … 우리 나라가 농사꾼의 나라라 했는데, 그 농사꾼의 삶을, 농사꾼의 마음을 제대로 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땅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과 함께 살아온 농사꾼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시인이나 소설가가 있습니까 … 깨끗한 어린이 마음과 남을 생각하는 따스한 정, 이것이 권태응 동요 문학을 받쳐 주는 두 가지 큼직하고 든든한 주춧돌이요 기둥이다 ..  (5, 6, 421쪽)


  동시작가 한 분이 쓴 아름다운 동시를 아이한테 읽어 주어야 아이가 즐겁지 않습니다. 어머니인 내가 동시를 쓰고, 아버지인 내가 동시를 쓰면 됩니다. 아이로서는 ‘이름난 작가’이거나 ‘훌륭한 작가’이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한테는 아이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을 적에 즐거워요. 동시를 읽어 주는 어버이도 이와 같아요. 누구 작품을 골라서 읽어 주어도 즐거울 텐데, 나 스스로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작은 종이에 글을 짤막히 적어 사랑을 담아 읽어 주면 모두 동시가 되어요.


  시 잡지에 실려야 시가 되지 않습니다. 시집을 척 하니 내놓아야 시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쓸 때에 시가 됩니다. 마음으로 사랑을 속삭이며 이 이야기를 찬찬히 옮길 적에 시가 됩니다.


  저 먼 나라에 있는 문학이 아니에요. 내 곁에 있는 문학이에요. 대학교를 나오거나 어떤 스승한테서 배워야 되는 문학이 아니에요. 내가 손수 일구는 삶에서 비롯하는 문학이에요.


  우리 모두 시를 써요. 시인이 되려는 시 말고, 스스로 삶을 즐기려는 시를 써요. 우리 함께 동시를 써요. 이쁘장한 말잔치 이루려는 동시 말고, 아이들과 우리 삶터 아름답게 일구려는 동시를 써요.


  가을날 가을비 맞으면서 시를 써요. 가을날 들에서 벼를 베는 흙지기 곁에서 일손을 거들면서 시를 써요. 가을볕 쬐면서 가을노래 부르듯이 시를 써요. 가을볕 쬐며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누런 물결 넘실거리는 들길을 달려요.


  눈빛을 반짝이며 시를 써요. 빙그레 웃음지으며 시를 써요. 두근두근 설레는 가슴으로 시를 써요. 맛난 밥 함께 나누는 사랑으로 시를 써요. 더러워진 옷 신나게 복복 비벼 빠는 손길로 시를 써요.


.. 돈에 환장하고 돈에 미쳐 서로 아귀가 되어 싸우는 사람들의 세상에는 정치고 교육이고 종교고 학문이고 예술이고 명예고 죄다 돈이다. 모든 일이 돈벌이가 되고, 모든 것이 돈벌이 대상이 된다. 문학도 돈벌이 수단이 되고, 아이들도 돈벌이 대상이 된 지가 오래다 … 산속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은 내가 알기로 모두가 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나 착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귀가 되어 싸우는 도시에서는 살아갈 도리가 없어, 가진 것을 죄다 빼앗기고 쫓겨나 오직 그들을 포근히 안아 주는 자연을 찾아간 것이다 … 지금은 그 닭들이 모조리 조그만 통 속에 갇혀서 알만 낳는 비참한 기계가 되고, 소리개도 없어지고, 병아리를 세면서 집을 지키던 아이들도 콘크리트 벽 속에 갇혀서 외국말 외국글 배운다고 얼이 다 빠져 버렸다. 그렇다면 이런 (권태응) 동요도 폐기 처분을 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럴수록 이런 동요를 가르쳐야 한다. 가르쳐서 우리들에게 이런 삶이 있었다는 것을, 이런 삶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요, 사람다운 삶이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해야 한다 ..  (21, 46∼47, 55쪽)


  콩을 털면서 콩내음 나는 시를 씁니다. 들깨를 털고 참깨를 털면서 들깨내음과 참깨내음 감도는 시를 씁니다. 나락을 베어 햇볕에 말리면서 나락내음 고소한 시를 씁니다. 감을 따며 감내음 물씬 흘리는 시를 씁니다. 호박을 따서 호박죽 쑤는 동안 호박내음 달달한 시를 씁니다.


  시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스스로 일구는 삶에 따라 시가 태어납니다. 시는 사랑에서 태어납니다. 스스로 길어올리는 사랑에 따라 시가 태어납니다. 시는 꿈에서 태어납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이루고 싶은 꿈에 따라 시가 태어납니다.


  밥을 짓는 손길이 시를 쓰는 손길이에요. 밥을 지어 밥그릇에 푸는 손길이 시를 쓰는 손길이지요. 밥을 지어 밥그릇에 푸고는 밥상에 올려 아이들 부르는 목소리가 시를 쓰는 목소리 되어요. 모두 즐겁게 먹은 밥상을 치우며 설거지를 하는 손길이 다시금 시를 쓰는 손길이 돼요.


  걸레를 쥔 손이 시를 쓰는 손입니다. 풀밭을 밟고 흙땅을 밟는 발이 시를 쓰는 발입니다. 구름을 보고 무지개를 보며 달과 별을 보는 눈이 시를 쓰는 눈이에요. 그러면, 시를 쓰는 귀는 어떤 귀일까요? 풀벌레 노랫소리와 개구리 노랫소리에 멧새 노랫소리를 듣는 귀가 바로 시를 쓰는 귀입니다.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시를 쓸 수도 있어요. 기차나 버스 지나가는 소리를 듣다가 시를 쓸 수도 있어요. 어느 자리에서도 시를 쓸 수 있어요. 마음이 따스하다면 따스한 이야기가 시로 태어나요. 마음이 너그럽다면 넉넉한 이야기가 시로 거듭나요. 마음이 환하다면 환하게 빛나는 이야기가 시로 태어나요.


  자, 내 손으로 내 삶을 써요.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고 곰곰이 돌아보면서 시를 써요. 시를 쓰는 동안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겠지요. 아름답게 일군 삶을 떠올린다면 아름다운 모습에 웃음이 나고, 얄궂게 망가뜨린 삶을 되새긴다면 얄궂은 모습에 눈물이 나요.


  기쁜 일은 기쁘게 씁니다. 슬픈 일은 슬프게 씁니다. 기쁜 일을 이웃과 나눕니다. 슬픈 일을 잔잔히 삭혀 내 이웃이 슬플 적에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합니다.


.. 이 수수한 말로 된 (권태응) 동요는 도리어 그 어떤 재주를 부린 작품보다 더 귀하고 값있는 것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우리 문학에서 이와 같이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정확하게(비뚤어지지 않게) 그려 보인 작품이 동요고 동시고 그밖의 일반시고 거의 없기 때문이다 … 이 동요 역시 농민의 아들딸이면 누구나 가지는 느낌을 평범한 말로 썼다 … 나무만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서울 같은 큰 도시 근처에나 있었다. 동요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한여름에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았던 사람을 생각해서 쓴 것인가? 그렇다면 한여름에 들이나 산에서 땀 흘려 농사일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고 어쩌다가 있는 한여름 산의 나무꾼을 보았단 말인가? 이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농촌과 우리 겨레 전체의 삶을 모르는 사람, 도시의 방안에서만 살면서 세상을 머리로만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시골에서 나뭇짐을 지고 도시에 팔러 온 사람밖에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동요라 할밖에 없다 … 맨발로 다니는 것이 야만스럽고 원시스럽다면, 야만인과 원시인이야말로 가장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24, 26, 27, 75쪽)


  감자꽃을 본 사람은 감자꽃 시를 씁니다. 호박꽃을 본 사람은 호박꽃 시를 씁니다. 장미꽃을 본 사람은 장미꽃 시를 쓰겠지요. 마음이 뭉클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시를 써요. 그러니까, 메밀꽃을 보면서도 메밀꽃 이야기를 시로 못 쓰는 사람이 있어요. 메밀꽃인 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할 테지만, 메밀꽃이 피건 말건 쳐다보지 않으니까요.


  요즈음 벼꽃 들여다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날마다 쌀밥 먹기는 하면서, 쌀겨가 어떻게 생긴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갓 벤 나락을 겨(껍질)째 입에 넣으면 겨도 쌀알도 살살 녹는 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있으려나요.


  무지개가 사라진 지 오래된 이 나라입니다. 무지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몹시 드물다 보니, 이제 이 나라에서 무지개를 노래하는 시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뭉게구름 이야기를 시로 쓰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소나기 이야기를 시로 쓰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마치 폭탄처럼 퍼붓는 무시무시한 비만 보는 오늘날이니, 이런 폭탄 같은 비를 시로 쓰는 사람은 있어요. 자동차 가득한 찻길이나 고속도로 넘치는 이 나라이니, 자동차 이야기를 시로 쓰는 사람은 있어요. 입시지옥과 학원굴레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학교와 학원에서 시키는 숙제와 공부 때문에 머리가 아픈 이야기를 시로 쓰는 사람은 있어요.


  그러고 보면, 골목놀이 이야기를 시로 쓰는 사람이 싹 사라집니다. 연을 날린다든지 자를 친다든지 돌을 깐다든지 물장구를 친다든지 흙땅에 금을 긋고 땅따먹기를 한다든지 고무줄을 넘는다든지 제기를 찬다든지 하는, 더없이 수수한 놀이 이야기를 시로 쓰는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없습니다. 어른도 이렇게 안 놀고 어린이도 이렇게 안 노니까, 이런 놀이 이야기가 시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이제는 컴퓨터게임 이야기가 시로 태어납니다. 어른도 아이도 컴퓨터에 빠지니까요. 이제는 비바람이나 안개구름이나 골짜기 이야기가 시로 태어나지 못합니다. 멧골이나 두메에서 비바람이나 안개구름이나 골짜기를 누리는 아이도 어른도 거의 찾아볼 길 없으니까요.


  시는 삶을 좇습니다. 삶은 시로 나타납니다. 시는 삶을 그립니다. 삶은 시로 드러납니다.


..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아무래도 어머니다. 그런데 농촌 어머니들은 너무나 바쁘고, 일을 너무 많이 한다. 방아를 찧고, 물을 길어 와서는 밥을 짓는다. 실을 자아 길쌈을 하고, 빨래며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논밭에 나가 농사일까지 하게 된다.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는가를 바로 보고 깨닫게 하는 것도 문학이 잘 할 수 있다 … 일하는 삶을 노래하여 그 삶을 더욱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시, 그것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 아이들에게는 막대기 하나가 온갖 연장이 되고 온갖 장난감이 되고 놀잇감이 된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잘 아는 시인의 눈에는 막대기 하나가 또 재미있는 노랫감이 되는 것이다 … 아이들이 노는 자리가 바로 어른들이 일하는 자리이고, 아이들의 놀잇감은 일하는 자리에서 얻게 된다 … 맑은 물이 흘러가는 마을 앞 개울, 그곳은 엄마가 빨래하는 곳이고, 엄마를 따라간 아이들은 헤엄을 치는 놀이터다 … 가을날 엄마와 아기가 함께 들에 나가면 그 들판은 엄마의 일터가 되고, 아기에게는 다시 더없는 놀이터가 된다 ..  (29, 32, 58, 67, 70, 71쪽)


  우리 집 한켠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가을 고들빼기꽃을 바라봅니다. 모처럼 가을비 내리면서 고들빼기꽃 촉촉히 젖습니다. 고들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봄에는 아주 조그마한 줄기가 올라 줄기째 꺾어서 나물로 먹곤 합니다. 여름부터 줄기 씩씩하게 더 돋으며 입사귀를 쩍쩍 벌립니다. 이때부터는 잎사귀만 바지런히 뜯어서 먹는데, 아무리 날마다 뜯어서 먹어도 새 잎사귀 끝없이 새로 내놓습니다. 이동안 고들빼기는 키가 쑥쑥 자라지요. 가을 맞이하면 잎사귀 줄면서 꽃대가 올라 어른 키를 넘어섭니다. 이제 잎사귀 그만 따먹으라는 듯합니다. 이러고는 줄기 옆으로도 새 꽃대가 돋으며 몽우리가 잔뜩 져요. 고들빼기풀 한 포기에서 꽃망울이 백 송이 안팎 맺힙니다.


  고들빼기풀 한 포기에서 피어나는 흰꽃이나 노란꽃은 달포 즈음 갈마듭니다. 한꺼번에 수십 송이가 피어날 적도 있습니다. 수십 송이 고들빼기꽃 피어나면 나비들은 부산합니다. 이 꽃 저 꽃 팔랑팔랑 날갯짓하면서 꽃가루를 빨아먹습니다.


  맛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나비와 벌이 고들빼기 꽃송이마다 내려앉아 바삐 꽃가루 빨아먹는 모습을 보면, 곁에서 군침이 흐릅니다.


  그러나, 참지요. 봄부터 가을까지 고들빼기잎 즐겁게 누렸으니, 이제 고들빼기씨 맺어 흙으로 뿌려야 이듬해에 새 고들빼기 잎사귀 누릴 수 있습니다. 가을날에는 고들빼기꽃만 실컷 누립니다.


  아이하고 마당에 나와서 가을볕 쬐면서 가을꽃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그래, 시골에서 아이와 살아가며 시골꽃을 늘 바라본다면, 내가 쓸 시란 바로 이렇게 늘 마주하는 시골꽃이 되겠군요. 시골꽃을 노래하고 시골나비를 이야기하며 시골빛을 씁니다. 꽃 한 송이가 어떻게 태어나고, 꽃 한 송이를 나비가 어떻게 누리며, 꽃 한 송이가 다시 흙으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지켜봅니다.


.. 소꿉 양식이란 말도 재미있지만, 소꿉 양식을 얻기 위해 호박 배를 쪼개는 엄마 옆에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앉아 있는 아기들을 찾아낸 시인의 그 맑은 마음이 부럽기만 하다 …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은 무엇이든지 우리 말로 그 이름을 지어서 말하던 그 옛날 우리들의 깨끗한 마음과 삶이 갈수록 그리워진다 … 나무의 참모습을 알고 깨닫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 아마도 천 년도 넘게 이어져 왔을 이 박 농사 호박 농사는, 우리 겨레가 초가집을 짓고 흙담을 둘러 쌓아 거기서 먹고 자고 일하고 노래하면서 살아가는 데 가장 가까이 자리잡아 우리 겨레의 삶과 정서를 이어주면서 하얀 꽃 노란 꽃을 피워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이 되게, 겨레 마음의 빛깔이 되게 하였으리라 … 어린이가 된 마음은 이와 같이 보는 것이 모두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  (80, 119, 124, 125∼126, 172쪽)


  이불을 텁니다. 날마다, 또는 이틀이나 사흘마다 이불을 텁니다. 이불을 털고는 해바라기 시킵니다. 빨래를 합니다. 날마다 빨래를 합니다. 기계한테 빨래를 맡길 수 있으나, 두 손으로 척척 기운차게 비벼 빨래를 합니다. 손으로 빨래를 비비고 헹구노라면, 마음속으로 고운 노래가 흐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오늘 하루 얼마나 씩씩하게 놀며 옷을 이렇게 더럽히며 땀을 잔뜩 묻혔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옷 새로 빨고 말려 정갈하게 개면, 또 즐겁게 갈아입으면서 옷이 더러워지도록 뒹굴며 놀 테고 온통 땀투성이를 이룰 테지요.


  아이들 자라는 결을 손빨래 하면서 느낍니다. 이제 이 옷은 큰아이한테 작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이 옷은 작은아이한테까지 작네 하고 깨닫습니다. 큰아이는 이웃한테서 물려입은 옷을 많이 입었고, 작은아이는 이웃과 큰아이를 거쳐 물려받는 옷을 많이 입습니다. 작은아이까지 입는 옷은 많이 해지거나 닳습니다. 옷 한 벌이 여러 아이 거치면서 오래도록 애썼구나 하고 느낍니다. 옷아, 너 조금 더 아이들한테 보송보송한 기운 나누어 주렴, 그러고는 푹 쉬려무나.


  빨래를 하는 삶을 혼자서 흥얼흥얼 노래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를 하고, 빨래를 널며 노래를 합니다. 빨래를 개며 노래를 하고, 새 옷 입히며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닐 적에도 노래를 해요. 언덕길에서 땀 비질비질 쏟는 동안에도 노래를 합니다. 숨을 고르며 노래를 합니다. 기쁘게 바람을 쐬고, 기쁘게 땀을 흘립니다. 나락 익는 깨고소한 냄새 나지, 아이들아? 나락 벤 들판에는 또 나락을 베고 남은 살풋한 냄새 나지, 아이들아?


  후박나무 밑에 서 보자. 후박나무가 우리한테 말을 건단다. 동백나무 잎사귀를 쓰다듬어 보자. 동백나무가 우리한테 이야기를 건단다. 귀를 기울이자. 마음을 기울이자. 생각을 기울이자. 사랑을 기울이자. 우리가 귀와 마음과 생각과 사랑을 기울이면, 풀과 꽃과 나무는 한껏 웃으면서 푸른 숨결을 베풀어 주지.


.. 문학 작품이 아무리 개인의 창작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 말을 잘못되게 할 때에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비판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오늘날에는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방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에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져 다만 책 속에, 글 속에 빠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쓰는 글은 병들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말도 따라서 병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 ‘오랫동안의 관찰 끝에 발견한 진리’라고 하는 말은 도무지 맞지 않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놀거나 일하면서 저절로 보게 되고 의문을 가지게 되고 행동하게 되고 알게 되는 사실이다 … 한 가지 동요가 어느 지방에도 공통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까닭은, 같은 자연이고 같은 아이들이지만 지방마다 그 자연과 사람의 삶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 정말 여름날 소나기는 하늘이 내려주는 축복이요, 무지개는 자연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겨 주는 선물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  (86, 97, 111, 162쪽)


  권태응 님 싯노래를 읽습니다. 책으로도 읽고 노래로도 읽습니다. 싯말 한 자락에 서린 이야기를 가만히 읽습니다. 오늘 내 삶에 비추어서도 읽고, 지난날 권태응 님이 살던 나날을 돌이키면서도 읽습니다.


  권태응 님이 살던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하루를 누렸을까요. 권태응 님이 가고 없는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살림살이를 누리면서 하루를 누릴까요.


  송전탑은커녕 전봇대조차 드물던 지난날입니다. 전봇대뿐 아니라 갖가지 전깃줄과 전홧줄에다가 우람한 송전탑마저 논 한복판과 숲 한복판에 떡하니 들어서는 오늘날입니다. 큰길 하나 겨우 있던 지난날인데, 요즈음은 고속도로가 마을 한복판을 꿰뚫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자동차 얻어 타며 노래를 부를 수 있던 지난날이라면, 요사이는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이웃마을에 누가 사는지’를 생각조차 않습니다.


.. 자연을 잃은 아이들은 방안에만 갇혀 겨울을 보낸다. 자연이 없는 방안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 아이들은 달력이 필요하지 않다. 자연을 보면 어느 철인가 저절로 안다 … 풀밭에 가면 풀을 가지고, 모래밭에 가면 모래 위에서, 돌밭에 가면 온갖 돌을 찾아 재미있게 놀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냇물에 들어가면 고기와 같이 놀고, 산에 가면 온갖 열매를 따 먹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논다. 자연은 이와 같이 어디를 가도 즐거운 놀이터로 되어 있다. 자연보다 더 좋은 동무, 자연보다 더 훌륭한 학교가 어디 있는가? 자연보다 더 정다운 품이 어디 있는가? 그 자연을 다 빼앗기고, 자연을 다 잃어버리고, 방안에 갇혀 잘못된 글만 읽고 쓰는 비참한 공부로 병들어 가는 요즘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동요다 … 농민의 삶이란 것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이뤄지는 것이고, 나라 사랑이란 것이 이 땅의 산천을 사랑하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제쳐 두고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134, 136, 159, 178쪽)


  문학비평을 하는 사람들은 문학이론을 씁니다. 문학이론에 맞추어 문학을 파헤치고, 문학사조에 따라 문학을 갈래짓습니다. 이오덕 님이 쓴 책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소년한길,2001)는 틀림없이 ‘문학비평’입니다. 문학비평 가운데에서 ‘어린이문학비평’입니다.


  그런데, 이오덕 님은 문학이론이나 문학사조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직 문학으로 남은 작품만 살피면서 문학비평을 합니다. 아니,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라는 책은 문학비평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문학을 이야기합니다. 문학을 노래해요. 문학을 말하고, 문학을 밝힙니다.


  비평하려는 글이 아니라, 노래하려는 글입니다. 평론을 하거나 이론과 사조에 맞추어 자르거나 꿰거나 따지는 글이 아닙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꿈을 노래하려는 글입니다. 아이들 삶을 밝히면서 아이들 삶을 빛내고 싶어 동요를 쓴 권태응 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예나 이제나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아이들 꿈과 빛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하고 길을 살피려 하는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입니다.


.. 곡식 한 알도 소중히 여긴 것은 그 곡식알이 돈이 되기 때문이 아니고 목숨을 가졌기 때문이다 … 돈벌이를 목표로 소를 기르거나 닭을 치거나 개를 먹이는 일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가, 식구들이 먹을 곡식을 가꾸면서 살던 그 옛날 농사꾼들이 소를 비롯한 그밖의 집짐승을 기르는 것과는 얼마나 다른 일로 되어 있는가 … 장님·귀머거리·벙어리, 이것이 깨끗한 우리 말이다. 요즘은 이런 우리 말을 하게 되면 이런 사람을 멸시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청각장애인·장애인, 이와 같은 어려운 한자말이 아니면 적어도 맹인·농아인 정도라도 한자말을 써야 한다. 우리 말, 우리 것이 천대받고, 우리 말 우리 것을 천대하면서 남의 말, 남의 글, 남의 것을 높이 받드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이런 데서도 잘 나타난다. 어려운 말로 말한다고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되겠는가? 오히려 더욱더 따돌리고 멸시하는 심리가 그 어려운 말 속에서 굳어질 것이다 … 한문 글자로 된 말이면 ‘수확한다’고만 하면 되지만, 우리 말로 한다면 벼나 보리나 수수는 베고, 콩은 꺾고, 깨는 찌고, 목화는 따고, 율무는 떨고, 고구마는 캐고, 대추는 줍고, 밤은 까고, 무 배추는 뽑고, 감자는 후비기도 하고, 이렇게 우리 말은 눈물이 날 만큼 재미있고 넉넉하다 ..  (208, 218, 364, 365쪽)


  노래를 들어요. 우리 가을노래 함께 들어요. 겨울노래도 봄노래도 여름노래도, 서로서로 손을 마주잡고 들어요. 노래를 불러요. 우리 가을노래 같이 불러요. 겨울노래도 봄노래도 여름노래도, 다 같이 어깨를 겯고 불러요.


  비를 마셔요. 비오는 날 우산을 끄고 비를 마셔요. 비오는 날 머리를 하늘로 들어올리고는 비를 마셔요. 입으로, 혀로, 눈으로, 코로, 입술로, 눈썹으로, 이마로, 귓바퀴로, 턱으로, 온몸으로 비를 마셔요. 빗방울이 내 살갗으로 어떻게 스며드는지 천천히 헤아려요.


  햇볕을 쬐어요. 쨍쨍 후끈후끈 땡볕 내리쬐는 날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햇볕을 쬐어요. 온몸 구석구석 감겨드는 볕살이 내 살갗을 어떻게 간질이는지 찬찬히 느껴요.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요. 풀벌레가 노래하면 발걸음 멈추고 노래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요. 제비가 날거나 참새가 날거나 아무튼 어느 새가 되든 날아가 지나가면 그쪽을 바라봐요. 구름이 흐르면 구름이 어디로 가는지 오래도록 지켜봐요.


  노래는 우리 삶 모든 곳에 있어요. 노래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요. 노래는 우리 둘레에 늘 맴돌아요. 노래는 바로 내 가슴속에서 태어나요.


.. 일본말은 이렇게 이름씨를 여러 개 늘어놓고 그것을 ‘の’로 이어서 말(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시 문장(하이쿠)이다. 말을 가장 바르고 깨끗하게 다듬어 써야 하는 시에서 이러하니 일본말에서 이 ‘の’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가를 짐작할 만하다 … 새로운 형태의 시를 창조한다고 하더라도 글을 쓰는 이들이 우리 말을 바로 알고 우리 말을 살려쓰는 피나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서 저절로 어떤 형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글은 산문이고 시고 여전히 남의 글자 남의 말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쓰면서 시의 운율만을 새롭게 지어낸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고,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한갓 웃음거리밖에 안 될 것이다 … 문제는, 들어온 것을 어느 정도로 우리가 주체성을 가지고 그것을 잘 삭혀서 우리 것으로 삼는가, 남의 것을 참고하여 얼마만큼 우리 것을 더 넉넉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하는 데 있다 … 말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우리가 우리 말을 살리고 싶어하는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겠다 … ‘넝큼’과 ‘냉큼’은 다르다. 더구나 등으로 짐을 질 때는 ‘뭣이든지 냉큼’ 진다는 것은 아무리 등심 좋은 사람도 결코 있을 수 없다. 등짐을 지거나 지게질을 해 보지 않은 사람만이 ‘뭣이든지 냉큼’ 진다고 할 것이다..  (256, 258, 259, 281, 371쪽)


  이오덕 님은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라는 책을 빌어, 시가 문학이 노래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고 밝힙니다. 이 작은 책을 발판으로, 시와 문학과 노래를 어디에서 어떻게 즐기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시는 시답게 써야지요. 노래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노래는 노래답게 불러야지요. 시다운 시를 생각하고, 노래다운 노래를 살필 노릇입니다. 삶다운 삶을 가꾸고, 사랑다운 사랑을 살찌울 노릇입니다.


  곧, 스스로 삶다운 삶을 가꾸면, 저절로 시다운 시가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사랑다운 사랑을 살찌우면, 시나브로 노래다운 노래가 태어나요.


  시를 쓰려고 애쓸 까닭이 없어요. 삶을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누리도록 힘을 쏟고 마음을 들이면 돼요. 노래를 부르려고 용쓸 까닭이 없어요. 사랑을 맑고 밝게 빛내도록 기운을 쏟고 마음을 들이면 돼요.


  삶이 없이는 시가 태어나지 못해요. 삶이 없이는 시를 쓰지 못해요. 사랑이 없이는 노래가 태어나지 못해요. 사랑이 없이는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권태응 님이 일군 싯노래란, 삶과 사랑을 바탕으로 지어서 부른 싯노래입니다. 권태응 님이 아이들한테 들려준 싯노래란, 아이들 스스로 삶과 사랑을 즐겁고 아름답게 빛낼 수 있기를 바라는 꿈입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삶을 힘차게 가꾸려는 사람입니다. 문학을 읽는 사람은 삶을 한창 가꾸는 사람입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문학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사람이 아닌, 이웃이랑 동무랑 즐겁게 삶을 나누고 싶은 사람입니다. 문학을 읽는 사람은 이름난 작품을 읽는 사람이 아닌, 이웃과 동무하고 즐겁게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 시골 농사꾼은 이와 같이 말에 대한 감각이 아주 깨끗하고 날카롭다. 조금이라도 혼란을 일으키는 말은 안 한다. 그런데 서울 양반들은 말에 대한 감각이 무디다. 일은 안 하고 책만 들여다보는 양반들은 그 머릿속에 꽉 박혀 있는 한문 글자 때문에, 그 한문 글자를 억지로 쓰려고 하기 때문에 그만 우리 말에 대한 감각이 마비가 되었다. 이런 서울 양반들의 말을 우리 말의 표준으로 삼았으니 우리 말이 어수선할밖에 없다 … 표준말이라 하여 꼭 한 가지 말만 써야 할까? 그것은 우리 말을 죽이는 짓 아닌가? 왜 우리 말은 표준말의 굴레를 씌워 수많은 말을 다 죽이고, 한문 글자로 된 말은 똑같은 뜻을 나타내는 말인데도 아무 제한도 없이 이것저것, 그것도 온갖 어려운 말, 괴상한 말을 제멋대로 쓰도록 해 놓았는가 … 하늘은 파랗다고 했고, 목화밭은 푸르다고 하여, ‘파랗다’와 ‘푸르다’를 올바르게 썼다.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 말로 나타내면 이와 같이 저절로 깨끗하고 바른 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292, 295, 349쪽)


  시골에 빛이 있어요. 왜냐하면, 시골에는 햇빛이 드리울 숲이 있거든요. 시골에 꽃이 피어요. 왜냐하면, 시골에는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릴 흙이, 숲이, 들이 있거든요.


  도시에는 아직 빛이 없고 꽃이 피지 않아요. 왜냐하면, 도시에는 풀도 나무도 뿌리를 내릴 흙이, 숲이, 들이 아직 없어요.


  그러나, 요즈음 시골도 흙이 자꾸 줄어요. 요즈음 시골에서도 흙이며 숲이며 들이며 자꾸 사라지고, 시멘트도랑과 시멘트논둑이 생겨요. 시골 흙고샅은 모두 시멘트고샅이 되었어요. 거꾸로, 요즈음 도시에는 조그맣게나마 텃밭이 늘고 공원도 생기지요. 안타깝다면, 텃밭이나 공원이 늘어나는 빠르기보다 새로운 아파트마을 늘어나는 빠르기가 훨씬 빠릅니다만.


  빛을 찾으며 시를 읽어요. 꽃을 피우며 시를 써요. 빛을 사랑하며 시를 읽어요. 꽃을 노래하며 시를 써요. 빛과 꽃은 하나이고, 시와 노래는 한몸입니다. 4346.10.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이오덕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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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5 : 나는 땅이 될 것이다 이오덕 일기 5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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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가는 길
[이오덕 선생님 책읽기 5] 《이오덕 일기》 5권

 


- 책이름 : 이오덕 일기 5 나는 땅이 될 것이다
- 글 : 이오덕
- 펴낸곳 : 양철북 (2013.6.24.)
- 책값 : 14000원

 


  보름달 밝은 빛이 마당으로 가득 내려앉습니다. 달빛이 곱고, 밤하늘에 낀 구름은 달빛을 받아 낮에는 느낄 수 없는 어여쁜 빛깔을 보여줍니다. 밤에도 구름은 많이 끼어 별은 군데군데 조금 보입니다. 이 구름 걷히고 나면 아주 쏟아지는 별빛을 누리는 시골 밤하늘 될 테지요.


  밤개구리 노래를 들으며 마당에 서다가, 대청마루에 앉다가, 방에서 아이들 토닥입니다. 개구리 몇 마리 우리 집 마당에까지 찾아와서 커다란 소리로 울어댑니다. 참 조그마한 개구리인데 목청이 아주 좋습니다. 한참 밤노래를 듣는데, 개구리는 줄기차게 울지 않습니다. 숫자가 많이 줄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을을 비롯해 둘레 여러 마을에서 항공방제를 했고, 낮에는 곳곳에서 농약을 치느라 바쁩니다. 이렇게 밤노래 들려주는 개구리는 온갖 농약벼락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입니다.


  개구리가 농약을 먹고 해롱거릴 적에 해오라기 같은 새들이 개구리를 덥석 잡아먹으면, 해오라기도 농약 때문에 배앓이를 합니다. 배앓이를 하다가 그만 죽기도 합니다. 논마다 농약을 치니, 논에서 살던 미꾸라지나 물방개나 게아재비나 거미 모두 꼬르륵 숨을 거둡니다. 사람들은 농약을 쳐야 벼포기 갉아먹는 벌레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논벌레 잡느라 이 농약이 벼포기로 찬찬히 스며들어 정작 사람들 먹는 밥에까지 이어지는 줄 헤아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동차를 몰면서 자동차 배기가스가 바로 바람결에 떠돌며 우리가 마시는 숨으로 돌아오는 줄 헤아리지 않는 모습과 같습니다. 자동차는 틀림없이 사람들 발길을 멀리 이어 주는 몫 맡는데, 사람들이 멀리까지 다닐 수 있게 하는 만큼, 숲과 들과 멧골을 밀어내어 아스팔트 찻길을 깔아요. 자동차 다니며 배기가스 내뿜어요. 자동차를 만들고 석유를 기름으로 바꾸느라 매연이 쏟아지지요.


  도시 문명이란 돈으로 움직이고 돈으로 구르며 돈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도시 문명은 돈을 벌려고 숲을 망가뜨리고는, 다시 돈을 들여 숲을 살리겠다고 나서는 셈입니다.


  왜 처음부터 숲을 안 망가뜨리는 길을 걷지 않을까요. 왜 처음부터 숲을 돌보거나 지키면서도 도시 문명을 북돋우는 길을 걷지 않을까요.


- 백범 선생을 기리는 일에는 찬성이지만, 이렇게 새까맣게 한문 글자로 취지문을 쓰고 승낙서를 쓴 사람들이 하는 짓을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요즘 한문 글자 쓰는 문제로 의견 대립이 되어 시끄러운 때에 이런 글을 보내는 속뜻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4월 7일)
- 오후에는 좀 누웠다가, 출판사 차리는 계획과 출판사 이름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호롱불, 참새, 아리랑말, 논둑길, 시골 같은 이름이 떠올랐다. 꿈을 갖는 일은 이래서 역시 즐겁구나 싶다. (2000년 3월 11일)
- 투표장에 갈 때 정우 내외와 내가 타고 있는 차에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탔는데, 국회의원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한테 마을 사람들이 대접받은 얘기를 하는 것이 참 기가 막혔다. 누구는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몇 만 원씩 주더라. 누구는 음식을 대접해 주고, 목욕을 모두 시켜 주더라……. 이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접을 잘 받았으니 고맙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 소리 듣고, 용원학교 운동장에서 줄을 서 기다리며, 투표하러 온 사람들, 하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얼이 다 빠져 있는 듯 느껴졌다. 차라리 옛날처럼 절대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억누르고 걷어 내고 하던 절대 군왕 시대가 되어 버려라. 그래서 이놈의 백성들이 피눈물 흘리면서 굶주리는 꼴이 되어야 마땅하구나 싶었다. 도무지 이 백성들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부산이고 대구고 하는 곳이 참 기가 막힌다.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고 하는 인간들을 국회의원에 내세우는 부산 사람들이란 그 민도가 얼마나 한심한가. 박정희란 사람을 신주 모시듯 하는 대구 사람들도 한심하기 말할 수 없다. (2000년 4월 13일)

 


  어린 아이들은 어버이 옷자락을 붙잡으며 돌아다닙니다. 여섯 살 세 살 어린 우리 집 두 아이는 아버지 바짓가랑이 언저리에서 맴돕니다. 혼자서 꽤 멀리까지 돌아다니며 놀 줄 아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이 혼자서 꽤 멀리까지 돌아다닐 수 있는 까닭은, 집에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 있는 줄 알기에 씩씩하게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살짝 안 보여도 퍼뜩 놀랍니다. 우체국 아저씨 지나가는 소리 듣고는 대문 앞 우체통까지 다녀온다 하더라도, 밥찌꺼기 뒷밭에 부으려고 집 뒤로 가더라도, 아이들 오줌그릇 비우면서 바깥 물꼭지에서 오줌그릇 닦더라도, 아버지가 안 보이니 헐레벌떡 아버지 찾아 마당으로 내려옵니다.

  나 스스로 못 떠올릴 텐데, 두 아이 아버지인 내가 갓난쟁이였거나 아주 어릴 적에도 우리 아이들과 같았으리라 생각해요. 바로 코앞에서 안 보여도 사라진 줄 알겠지요. 옆방에 슬쩍 숨어도 없는 줄 여겨 엉엉 울겠지요.


  잠자리에서 늘 아이들 사이에 눕습니다.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 누우면, 한 아이가 뒤척거리다가 발을 쿵 내 배에 올리니 깜짝 놀라 잠이 깹니다. 발을 내려놓고 다시 잠들라치면 어느새 다른 아이가 뒹굴 굴러 박치기를 합니다. 화들짝 놀라 잠이 깨어 아이를 옆으로 밀어놓습니다. 큰아이가 쉬 마렵다면서 아버지를 깨웁니다. 작은아이도 쉬 마렵다며 낑낑거리곤 하지만, 그냥 바지에 쉬를 누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쉬 마렵다 하면 쉬를 누이느라 일어나고, 바지에 쉬를 싸면 바지 갈아입히느라 일어납니다.


  자는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 이불깃 여밉니다. 한여름에 땀 흠씬 흘리며 자는 모습 느끼면, 자다가 일어나 부채질을 합니다. 요 며칠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서로 갈마들며 몸앓이를 했기에, 하루는 큰아이 이마에 물로 적신 수건을 대며 밤을 지새우고, 다른 하루는 작은아이 흐르는 콧물 닦아내고, 온몸으로 흠뻑 흘리는 땀을 닦아 주느라 밤을 보냅니다. 작은아이는 아프니 밤에 자꾸 쉬를 지리느라, 아침마다 잠자리 깔개를 마당에 내놓아 말리느라 바쁘고, 아이 이불을 날마다 새로 빨아서 말리느라 부산합니다.


  그래도 날 맑고 따스해 깔개도 이불도 잘 마르니 고맙습니다. 시골바람 마시고 시골물 마시면서 아이들이 천천히 몸이 낫는구나 싶으니 반갑습니다. 두 아이 모두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시금 한여름 시골숲과 시골바다 누리기를 기다립니다.


- 오늘 저녁 처음으로 소쩍새 소리 들었다. 뜰 앞에 살구꽃, 앵두꽃이 만발했다 … 저녁때 우체통에도 가야 해서 나갔더니, 앞뜰에 살구꽃이 활짝 피었다. 앵두꽃도 활짝 피었다. 옆집 살구꽃도 피고, 앞밭의 살구꽃도 피었다. 아, 나는 아직도 살아서 이 봄에 살구꽃을 보게 되는구나 싶었다. (1999년 4월 16일)
- 어제 뒷간에서 들었던 꾀꼬리 소리를 글감으로 글을 한 편 썼다 … 김 대통령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인가 하는 모임에 가서 그 사업을 나랏돈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가 많은 비난이 터져 나온 모양이다. 김대중 씨도 참 너무 눈앞의 정치 사정에만 매달려 계산만 한다. 역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다. 지역주의를 해결한다는 핑계지만 아무래도 두고두고 말썽이 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지역주의가 근본부터 풀릴 수도 없다. (1999년 5월 18일)
- 감나무 밑에서 책을 보는데, 온갖 새들이 머리 위에서 울어댔다. 그 새소리가 시끄러워 책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새소리가 너무 재미있고 듣기 좋아서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새소리에 대면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이 말들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시들한 소리들인가! 감나무 밑에 앉아 온갖 풀들의 향기에, 온갖 새들의 노래에 내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고 새로 태어나는 듯했다. (1999년 6월 14일)
- 그러고 보니 쥐약 먹고 죽은 새가 한두 마리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 새들이 죽으면서 자기를 죽인 원수인 사람들 집 앞에 가서 항의를 한 것이 분명하다. (1999년 10월 21일)

 


  바람이 드세게 부는 날은 바람소리 빼고는 다른 소리를 거의 못 듣습니다. 바람이 드세게 부는데 빗방울까지 들으면 마을 어귀 큰길에 군내버스 지나가더라도 차소리까지 안 들려요.


  바람소리는 새소리도 개구리소리도 벌레소리도 모두 잠재웁니다. 아마, 도시에서도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자동차 다니는 소리가 되게 작게 들리지 싶어요. 태풍이 찾아든다든지 큰비가 퍼붓는다든지 하면 온통 바람소리와 빗소리만 가득하리라 생각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바람이나 비가 드세면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바람을 마주하고 비를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바람 불어 전깃줄 끊어지면 컴퓨터도 냉장고도 물펌프도 못 써요. 큰비 퍼부어 찻길 끊어지거나 물에 잠기면 스포츠카도 대형버스도 옴쭉달싹 못 합니다. 바람이 거칠게 불면 전화를 걸어도 소리가 안 들려요. 큰비 퍼부으면 도시에서는 지하도가 물에 잠길 수 있어요. 바람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잖아요. 비바람 몰아쳐 물결 높으면 배가 못 떠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하나, 바람이 자거나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할 일이란 오로지 하나, 바람도 비가 멎어 해가 방긋 웃으며 고개 내밀기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해가 있어야 도시도 있고 시골도 있어요. 해가 따사롭게 내리쬐어야 도시도 도시대로 돌아가고, 시골은 시골대로 아름답지요. 해가 알맞게 부치며 맑은 빛과 볕을 베풀 적에 이 지구별에 고운 사랑이 감돌아요.


  원자력발전이나 화력발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자력발전소 100 군데를 세운들, 화력발전소 1000 군데를 세운들, 햇살 한 조각처럼 깨끗하면서 아름답지 않아요. 햇볕 한 줌처럼 온누리 골고루 보듬을 수 있는 화석에너지는 없어요.


- 추천해 온 책이 모두 1800몇십 권이란다. 이것을 일주일 동안 다 살펴서 좋은 책을 골라낸다니 도무지 억지로 하는 짓이고 날림 행사다. 들어 보니 출판사들이 될 수 있는 대로 고루 선정되어 나오도록 해 달라는 주문이고, 읽는 사람을 위한 행사가 아닌 것 같아 신문사들의 신문 선전하는 장삿속으로 하는구나 싶어 불쾌했다. (1999년 6월 10일)
- 오늘 우편물 가운데 국가보안법반대국민연대에서 빠른우편으로 온 것이 있어 뜯어보았더니 20일 결성하는데 나를 고문으로 모시고 싶으니 승낙해 달라는 말과 함께 인쇄물이 들어 있었다. 내일 전화로 승낙한다고 알려야지! (1999년 9월 17일)
- 권정생 선생은 내가 읽어 보라고 한 《그림자 정부》를 읽은 모양이다. “리영희고 백낙청이고 그런 사람들 글도 다 엉터리네요. 이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지요?” 했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1999년 11월 18일)
- 오후에 우편물을 꺼내 보았더니 12월 호 《출판저널》이 와 있었다. 1990년대 책 뽑아 놓은 걸 보았더니 내가 추천한 것은 두 권밖에 안 나와 있었다. 내가 다섯 권 추천했는데, 모두 여덟 권 나와 있는 가운데 두 권뿐이고, 내가 추천하지 않은 책 가운데 매우 의심스러운 책들도 들어 있어서 추천한 사람들을 찾아보았더니 아동문학 쪽에 최지훈 씨가 있었다. 내가 꼭두각시 노릇을 했구나 싶어 분한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신현득이 책까지 나와 있는데, 보리출판사의 열 권짜리 〈겨레아동문학선집〉은 빠졌으니 어이가 없다. 이다음에는 이런 부탁받으면 나 말고 또 누가 함께 추천 또는 심사하는가 단단히 물어서 해야겠다. 괴상한 사람과 같이 무엇을 하다가는 공연히 내 시간만 허비하고 남들 오해하도록 만들기 좋게 될 뿐이다. (1999년 12월 9일)

 


  정치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나설까요. 경제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겠다며 외칠까요. 교육이란, 문화란, 예술이란, 군대란, 종교란, 모두 무엇이라 할 만한가요. 사람들이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진보라는 이름을 내걸며 하는 일은 참말 사람들 삶을 얼마나 북돋우거나 살찌운다 할 만하나요.


  과학이 가난과 굶주림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풀 한 포기가 가난과 굶주림을 몰아내요. 기술과 정보가 지구별에 평화를 불러오지 않습니다. 숲 한 자락이 지구별에 평화를 불러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골고루 비추며 따숩게 웃는 해님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침 낮 저녁 늘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풀과 꽃과 나무가 바로 꿈입니다. 사랑을 먹고 사랑을 나누며 사랑을 펼칠 때에 사람다운 삶입니다. 꿈을 이루고 꿈을 펼치며 꿈을 보듬을 적에 사람다운 이야기입니다.


  정치 하겠다고 나설 까닭 없어요.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밭 한 뙈기 마련해서 일구면 정치가 이루어져요. 경제 바로잡겠다고 외칠 까닭 없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나무 한 그루 심든 씨앗 한 톨로 나무 한 그루 자라도록 하면 넉넉해요.


  문화나 예술은 먼 데에 없어요. 집에서 살림을 꾸리고 밥 한 그릇 지어서 도란도란 나누는 삶이 바로 문화요 예술이에요. 바느질 한 땀이 문화입니다. 빨래 한 점이 예술입니다.


  아이들은 시설이나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야 교육이 아니에요. 어버이 스스로 아름답게 사랑하는 꿈을 삶으로 누리면, 이 모습이 아이들한테 교육이 되어요. 따로 무엇을 가르치지 않아도 돼요. 어른들 스스로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가는 모습을 한껏 누리면 시나브로 교육이 이루어져요.


  씨앗 한 톨만 한 과학이 있을까요.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만 한 과학이 있나요. 봄까지꽃이 어쩜 이다지 작으면서 꼭 봄까지만 피어나는지 밝힌 과학자는 없어요. 제비꽃이 어쩜 이렇게 고운 빛깔인지 밝힌 과학자는 없어요. 어떻게 밝히겠어요. 무엇을 밝히겠습니까. 게아재비 꽁지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어떤 과학자가 밝히려나요. 이슬 한 방울이 풀씨 한 톨 어떻게 살리는가를 밝힐 과학자가 있을까요.


- 구름이 온갖 모양으로 바뀌고 흘러가고 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또 보고 싶었다. 아, 내 남은 목숨은 저 하늘의 구름과 함께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로우의 글은 참 좋았다. 저 하늘의 구름 다음으로 좋은 것이 소로우의 글이다. 그런데 강은교란 시인이 번역해 놓은 그 글이 참 잘못된 말이 많아 읽으면서도 자꾸 화가 났다 … 아무리 소로우의 글이 좋아도 저 하늘의 구름, 하늘에 높이 솟아 끊임없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포플러 나무, 바로 뜰 안에 있는 대추나무 눈부신 잎들보다는 못하구나 싶다. 아, 나도 소로우가 말한 것처럼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함께, 대추나무 잎과 미루나무와 함께 숨쉬며 그 속에서 살아야겠다. (1999년 8월 15일)
- 권오삼 선생이 보내온 〈아동문학 사랑방〉을 읽었다. 요새 신인들 얘기는 공감이 갔는데, 옛것을 부정하면서 과학의 앞날을 맹신하는 것이 참 철없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1999년 9월 28일)
- 그런데 시 지도가 왜 안 될까? 모두 자기 나름대로 애쓰고 찾고 고민하고 하는 것이 모자란 때문인 것 같다. 지도 방법을 머리로 배워서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을 안다는 것은 자기가 실제로 하면서 애쓰고 괴로워하고 헤매고 하는 가운데, 그때 누가 가르치는 것이 있으면 비로소 제대로 몸에 들어와서 산 지식이 된다. 그러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가르쳐 주기를 바라서 그것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하는 태도로는 절대로 진리를 잡지 못한다. 우리 선생들 젊은이들이 모두 어릴 때부터 시키는 것만 받아서 하여 온 버릇이 몸에 배어서 어른이 되어 아이들 가르치는 태도가 또 그렇게 되어 무엇이든지 지시하기만 하고, 가르치는 방법도 그렇게 누가 보여주기만 바란다. (1999년 12월 12일)

 


  ‘문학’이라는 낱말 들어오기 앞서까지, 이 나라 모든 시골사람은 언제나 문학을 누렸어요. 요즈막에 들어, 여느 시골사람들 언제나 누리던 문학을 ‘구비문학’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채록을 하느니 보존을 하느니 기록을 하느니 수집을 하느니 하고 법석을 떠는데, 시골사람이 이룬 ‘입말(구비문학)’은 책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으로도 못 담아요. 조선왕조실록이 대단한 기록문학이자 문화유산이라 말하는 학자들 많지만, 막상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 입에서 흘러나올 이야기를 적바림하자면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 수천만 질로 옮겨적어도 다 옮겨적지 못합니다. 어느 시골사람한테서나 구수한 이야기 술술 흘러나오니, 이 이야기를 어찌 다 옮겨적겠어요.


  집집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운 적 없는 시골사람이 일노래를 불러요. 한창 일하다가 막걸리 한 잔 들이켜고는 저마다 덩실덩실 춤을 추어요. 아무한테서도 춤을 배운 적 없는 시골 할매 할배 아재 아지매 누구나 쿵덕쿵덕 춤을 춥니다.


  시골사람은 글을 몰라도 말을 압니다. 아니, 시골사람한테는 굳이 글이 없어도 됩니다. 마음에 담고 몸에 새기는 말이 있어요.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에 걸쳐, 시골사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물려주고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잇습니다.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 벌레이름, 물고기이름 들은 모두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멧자락과 냇물과 마을에 붙이는 이름도 모두 시골사람이 지었지요. ‘집’과 ‘옷’과 ‘밥’ 같은 낱말도, ‘두레’와 ‘길쌈’과 ‘바느질’과 ‘절구’ 같은 낱말도, 바로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키를 누가 엮고 바구니를 누가 짰겠어요. 괭이와 호미와 낫을 누가 갈았겠어요. 임금님이 내려준 시골 연장이란 없어요. 사대부나 학자가 알려준 풀이름이나 꽃이름은 한 가지조차 없어요.


  ‘잎’이라는 낱말을 지은 먼먼 옛날 시골사람 넋을 헤아립니다. ‘쑥’과 ‘마늘’이라는 낱말을 지은 아득한 옛날 시골사람 얼을 돌아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눈’과 ‘코’와 ‘입’ 같은 낱말은 어떤 마음으로 지었을까요. ‘꿈’이라는 낱말이며 ‘이야기’라는 낱말은 또, ‘슬기’와 ‘빛’이라는 낱말은 또, 참말 어떤 생각을 밝히며 지었을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놀라우며 대단한 문학은 어디에도 없어요. 역사책에 이름 몇 글자 남기지 못한 여느 시골사람이지만, 우리들 가슴에 오래오래 이어지는 살내음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빚어서 남겼어요. ‘무지개’라는 낱말 하나가 문학이에요. ‘별’과 ‘개똥벌레’라는 낱말 하나가 문학이에요.


- 더 밝은 불, 더 큰 소리, 더 빠른 교통기관, 더 단 음식……. 감각을 마비시키는 현대의 삶은 결국 사람을 병신으로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 문학도 그렇구나 싶다. 방 안에 앉아 말재주만 부리니, 자꾸 그 정도가 심해져서 괴상한 말장난이 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못 느끼고 더욱더 심한 우스갯말 같은 것을 쓰면서 그것이 훌륭한 문장, 앞선 문학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1999년 9월 5일)
- 이렇게 힘들여 써 놓은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잘못된 글쓰기 버릇을 바로잡게 될까? 내가 하는 일이 좋은 결과가 되어 이 말이 바로잡힌다면 앞으로 다시 또 여러 날이 걸리더라도 이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 잘못된 말 하나 바로잡는 일이 너무나 힘이 든다. (2000년 1월 26일)
- 소쩍새 소리가 자꾸 들려온다. 저 소리 들을 적마다 시를 한 편 써야지, 하면서 아직도 못 쓰고 있다. 긴 세월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잊었던 내 지난날, 잃어버린 내 지난날 모든 것이 살아나 울려오는 소리, 내 모든 슬픔, 내 모든 그리움이 다시 살아나 가슴에 안겨 오는 소리…… 저 소쩍새 소리를 꼭 시로 쓰고 싶다. (2000년 5월 12일)
- 고흐의 농민 그림은 그대로 우리 옛날 농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느낌이고, 따뜻한 정이 넘쳐 있다. 어째서 우리 화가들은 이런 그림 한 장 그릴 줄 몰랐나. (2000년 8월 10일)
- 앞으로 내가 시집을 낸다면 어른 시고 동시고 구별할 필요가 없이, 아이들도 어른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시집을 내고 싶다 …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시의 세계, 말법이 더욱 필요하고 이런 시가 나와야 시도 우리 말도 잘 살아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 보랏빛 칡꽃이 하도 고와 한참 쳐다보다가 왔다. (2001년 8월 25일)

 


  《이오덕 일기》(양철북,2013)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다섯째 권에는 ‘나는 땅이 될 것이다’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오덕 님 마지막 삶 밝히는 이야기 깃듭니다.


  땅이 된다는 말은, 땅으로 돌아가 숲이 된다는 뜻일 테지요. 흙 한 줌이 되어 숲을 살찌우는 밑거름 된다는 뜻일 테지요. 머나먼 옛날부터 사람은 늙어서 빛이 되었어요. 흙빛이 되고 물빛이 되며 풀빛이 되었어요.


  아이들은 새 숨결 받고 태어나고 흙을 누리고 물을 즐기며 풀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푸른 마음 되어 푸른 꿈을 키웁니다. 푸른 사랑은 언제나 흙을 두 발로 디디는 데에서 이룹니다. 푸른 마음은 맑은 물을 마시면서 키우고, 푸른 꿈은 정갈한 풀포기 뜯어서 먹으면서 가꾸어요.


- 서울 시내를 지날 때는 자꾸 차가 막히고, 더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무너미 와서 여기 느티나무 밑으로 들어오자 비로소 살았구나 싶었다. 지옥을 빠져나온 기분이다.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산다. 지옥인데도 천당인 줄 알고 사니 다행인가, 더 불행한 꼴인가 모르겠다. (2000년 7월 6일)
- 아픔을 느낄 것, 조금이라도 지나친 음식이나 잘못된 음식, 행동…… 같은 것을 날카롭게 느끼고 붙잡는 마음, 태도, 능력을 기를 것. 이것이 내 목숨을 지키는 열쇠로 될 수밖에 없구나 싶다. 아픔을 느끼고 잘못된 것을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 것. (2001년 1월 10일)
- 이래서 오늘 아침엔 새 한 마리를 살려서 참 기분이 좋았다. 조롱박 안을 보니 그새 새가 똥을 누었다. (2001년 3월 28일)
- 만약에 그때 농촌 아이들의 삶에서 배울 것을 찾는다면, 그무렵 굶주리고 헐벗었던 그 어두운 면보다 차라리 자연 속에서 깨끗하게 살던 일을 다시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이 더 뜻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2001년 7월 3일)
- 그런데 이 글이 왜 이렇게 어렵게 씌어 있나. 번역한 글인데 번역한 사람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설탕 마구 먹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어려운 말과 말법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그 정신 상태는 같은 것 아닌가. 하나는 병든 육체의 버릇이고, 또 하나는 정신의 버릇이다. 그리고 하나는 육체를 망가뜨리고, 다른 하나는 정신을 망치게 한다. 육체를 병들게 하는 설탕을 먹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병들게 말과 글을 이렇게 오염시키니 참 어이가 없다. 글을 읽다가도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이래 가지고 무슨 녹색운동인가? 그런 녹색운동의 열매를 제대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001년 7월 20일)

 


  죽음을 앞두었구나 하고 깨달은 뒤에조차 시골살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햇살과 바람과 냇물을 받아들이려는 생각을 못 품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죽음이 가까이에 있으니 외려 더 망가지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여느 때에’ 깨닫습니다. 여느 때에 깨닫는 사람은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도 똑같이 깨닫고, 아무것 아니라 하는 때이든 바쁘다 하는 때이든 똑같이 깨달아요.


  늙어서야 깨닫는 법은 없어요. 젊어서 즐겁게 깨달으며 이녁 삶 살찌운 사람들이 늙어서도 즐겁게 깨달으며 이녁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지어요. 젊어서 못 깨닫는 사람은 늙어서도 못 깨달아요. 젊어서 사랑을 나누지 못하던 사람은 늙어서도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젊어서 환하게 웃지 못하던 사람은 늙어서도 환하게 웃지 못합니다.


  덧붙이자면, 젊을 적에 말과 글을 정갈하며 참답게 갈고닦으려고 힘쓰는 사람만, 늙어서도 이녁 말과 글을 정갈하며 참답게 갈고닦아요. 젊을 적부터 착하게 살아야 늙은 뒤에도 착하게 살지요. 젊을 적부터 따사로운 마음일 때에 늙은 뒤에도 따사로운 마음입니다.


- 우리 시가 3·4조와, 일본의 시가 7·5조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깨닫게 된 한 가지다. 우리 민요가 동요나 옛 가사는 3·4조로 나가고 6는 어쩌다가 나오는데, 일본은 5가 자주 나온다. 그 까닭의 하나는 일본 말, 일본 글은 명사를 늘어놓고 그 명사를 잇는 “노(の,의)”를 붙이면 된다. 그러자니 그 명사와 여기에 붙는 “노”가 흔히 다섯 자로 된다 … 일본은 자기네들 말로 하니까 다섯 자가 자주 나오고, 우리는 우리 말이 아닌 한문 글자 음으로 말을 하니까 다섯 자가 드물다. (2001년 1월 5일)
- 김이구 씨 글은 오늘 겨우 다 읽었다. 전체 글의 줄거리가 시원스럽게 되어 있지 않고 공연히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내보이려고 이것저것 남의 작품을 인용해서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해 놓은 데가 몇 군데나 있고, 그러다 보니 앞뒤의 논리가 맞지 않기도 하여 무척 읽기가 거북스러웠지만 전체로 보아서 하고 싶어 하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일하는 아이들”이 이제는 쓸모없는 관념이 되었으니 거기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벗어나는 길이 어디 있나? 결론에서 채인선이란 작가의 “역할 바꾸기”에 있다고 했다. 이런 “일하는 아이들”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란 평론가가 말한 “전도”의 논리에서 발견한 모양이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에 대한 글 한 편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종찬 씨도 김이구 씨와 똑같은 태도로 쓴 것이구나 깨달아진다. 누가 먼저 “전도”를 신봉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두 사람이 같은 창비에서 일하고 책 내고 했으니 같은 생각을 하기도 쉬웠으리라. (2001년 10월 6일)

 


  어떻게 살아갈 때에 즐거운가를 헤아릴 때에 삶이 빛나요. 어떻게 살아가려는 하루인가를 돌아보면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마음을 기울일 적에 삶이 환합니다.


  책을 읽어서 삶이 빛날 수 없습니다. 학문을 오래 닦거나 학교를 오래 다닌대서 삶이 환해지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 한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름값 널리 떨친다 한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 않아요. 사람들이 멋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범은 죽어서 흙이 되고 숲이 되어요. 사람 또한 죽으면 흙이 되고 숲이 되거나 별이 되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힙니다.


  누군가는 흙이 되어 지구별이 따스한 삶터 되도록 북돋는 몫을 맡아요. 누군가는 별이 되어 지구별이 온 우주에서 아름다운 이야기터 되도록 살찌우는 구실을 맡아요.


  이오덕 님은 죽어서 흙이 되어요. 이오덕 님은 흙으로 돌아가고 숲속에 깃들면서 고즈넉한 새소리로 태어납니다. 어느 날은 나비 날갯짓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어느 때는 잠자리 붕붕 날개노래로 사람들 사이를 누빕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 생각해 보셔요. 우리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어떤 빛이 되어 지구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숨결 되면 아름다울는지 헤아려 보셔요. 곧, 무슨 말인가 하면, 아이들에 앞서 우리 어른들부터 어떤 숨결 되어 살아가면 즐겁고 아름다운지 살펴야지요. 어른들부터 스스로 사랑을 찾고 삶을 살찌우며 꿈을 일구어야지요.


- 감을 깎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더 재미있고 마음도 편안하다. 전우익 형은 이래서 나무토막으로 늘 무엇을 만들고, 부들로 자리를 매는구나 싶다. 나도 글을 안 쓰고 농사일이나 하고 살았으면 몸도 훨씬 건강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2001년 10월 30일)
- 어제 〈한겨레신문〉에서 김규항이란 사람이 쓴 ‘얼치기 도사들’이란 글을 읽었는데, 그 내용은 김지하, 박노해, 이현주 같은 지식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들을 “얼치기 도사”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좀처럼 이런 사람들의 문제점을 글로 쓰는 이가 없는 터에 내가 보는 견해와 같은 생각을 시원하게 썼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반가웠다. (2001년 11월 7일)
- 삶을 떠나서 예술이 없고, 세계문학에서 훌륭한 명작으로 되어 있는 작품은 모두 인간의 참된 삶의 문제를 풀어 보려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이 훌륭한 문학이 되어 있다고 했다. (2002년 2월 25일)
- 사실은 오늘같이 맑은 하늘도 그 옛날의 그 아름다운 가을 하늘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고운 하늘도 노을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2002년 9월 7일)

 


  숲으로 가는 길입니다. 흙 한 줌 되어 나무 한 그루 튼튼하게 서도록 밑받침이 되는 숲으로 가는 길입니다. 별빛 한 줄기로 드리워 나무마다 살포시 내려앉아 맑고 밝게 노래하도록 이끄는 숲으로 가는 길입니다.


  누구라도 숲이 될 수 있어요. 누구라도 꽃이 되고 나비가 될 수 있어요. 끝끝내 삶을 붙잡지 않고 돈이나 권력이나 이름값 붙잡으려 한다면, 숲도 꽃도 나비도 못 될 테지요. 아름다운 생각을 한손에 올리고, 사랑스러운 꿈을 다른 한손에 올리면, 천천히 숲이 되어요. 꽃이 되고 나비가 되면서 훌훌 하늘을 나는 착하고 참다운 이야기빛으로 다시 태어나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셔요.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이녁 어버이한테 돈이 많든 적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이녁 어버이가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아이가 텔레비전에 길들거나 학교교육에 물들면, 돈을 보고 얼굴을 살피고 말아요. 아이가 제도권에 휩쓸리거나 사회 톱니바퀴에 갇히면, 사랑과 꿈이 아닌 겉치레와 껍데기에 빠지고 말아요.


  아이들은 늘 삶을 생각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장 신나고 즐겁게 놀 삶을 생각해요. 어른들은 무엇을 생각하나요? 어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들여다보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녁 기운을 쓰는가요?


- 라디오 뉴스를 들으니 시간마다 이제 전쟁이 초읽기로 들어갔다면서, 가장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전쟁이 터지면 경제가 어떻게 되는가, 주식값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따위다. 이 더러운 인간들이 모두 전쟁의 공범자구나 싶다. 인간은 이래서 아주 망조가 들 대로 들었다. (2003년 3월 18일)
- 나는 “누님, 죄송합니다.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갑니다. 먼저 가게 되어 참 죄송하지만 즐겁게 가니 조금도 슬퍼 마세요. 장례, 장지도 다 정해 놓았고, 저를 땅에 묻는 날은 모두 즐겁게 찬송가나 부르면서 웃어 주세요. 즐거운 잔치판이 되도록 해 주세요. 이 세상 온갖 얽매인 사슬에서 다 풀려나 즐거운 저세상으로 가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했다. (2003년 8월 21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숲을 꿈꿉니다. 나 스스로 숲이 될 생각이고, 우리 보금자리는 집숲이 되도록 일굴 꿈을 꿉니다. 집숲이 되는 보금자리이니,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보금자리숲’입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나비와 제비가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잠자리가 앉고 온갖 꽃이 피고 집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개구리가 노래하고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열매나무도 꽃나무도 씩씩하게 자라 예쁜 그늘 베풉니다. 앞으로 이렇게 어여쁜 보금자리숲 우리 식구가 즐겁게 누리는 한편, 우리 이웃들도 이녁 보금자리숲을 차근차근 가꿀 수 있으리라 꿈을 꿉니다.


  살아가자면 숲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사람도 뭇목숨도 지구별도 스스로 숲이 될 때에 살아갈 수 있으리라 느껴요. 숲바람 마시면서 숲사람 됩니다. 숲내음 나누면서 숲밥 먹습니다. 숲노래 부르면서 숲사랑 심어요. 숲말을 나누고 숲책을 써서 숲이야기 물려줍니다. 다 함께 숲이 되어 어깨동무를 하면, 이 나라 이 지구에는 한결같이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통일과 아름다운 빛 드리우리라 생각해요. 4346.7.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이오덕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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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 8월 14일 암진단 판정을 받으시고, 8월 16일 아드님과 장례식 절차며 장지며 시비며그리고 거창한 장례식은 아주 싫다시며, 마을 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께만 알리고 장례 지낸 후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시며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하시는 이오덕님의 글을 읽으며, 참..살아계실때도 돌아가실 때도...한결같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분이시구나, 정말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신 분이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노래 2013-07-24 23:13   좋아요 0 | URL
살아갈 때와 돌아갈 때를 잘 헤아리면서 슬기롭게 마음을 빛낸 나날이었으리라 느껴요
 
이오덕 일기 4 :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이오덕 일기 4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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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오덕 선생님 책읽기 4] 《이오덕 일기》 4권

 


- 책이름 : 이오덕 일기 4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 글 : 이오덕
- 펴낸곳 : 양철북 (2013.6.24.)
- 책값 : 14000원

 


  두 아이를 재우면서 한참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서도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좀처럼 잠이 안 들려 합니다. 이십 분 삼십 분 자장노래를 부르니, 작은아이가 먼저 사르르 잠듭니다. 이내 큰아이도 스르르 잠듭니다.


  오늘은 이문구 님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를 펼칩니다. 이문구 님 동시에서 어린이노래가 된 몇 가지를 부릅니다. 이렇게 며칠쯤 부르노라면 내 입과 귀와 마음에 익숙하게 젖어들리라 생각합니다. 따로 아이들한테 자장노래로 불러 주는 노래는 아닙니다. 노상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닐 적에도 부르는 노래입니다. 밥을 지으며 흥얼거리는 노래입니다. 나중에는 큰아이도 아버지 노래를 혼자서 외워 부르고, 작은아이는 누나 노래를 흉내냅니다.


  아이들과 부를 노래란 귀엽거나 이쁘장한 말마디로 이루어진 노래가 아닙니다. 어버이부터 맑은 넋 되어 즐겁게 부를 만한 노래가 아이들이 부를 노래입니다. 아이들한테만 베푸는 어린이노래가 아닙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맑은 마음과 밝은 꿈 키우도록 북돋울 때에 어린이노래입니다. 이 어린이노래는 아이와 어른한테 싱그러운 마음빛이 되어요.


  나는 여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흔히 가르치는 어린이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여느 시설이나 기관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어린이노래는 아이들 삶하고 그닥 맞닿지 않습니다. 말만 이쁘장하게 치레하는 노래이기 일쑤인 한편, 말조차 올바르지 못하거나 아름답지 못한 한국말이곤 합니다.


  이를테면, 맨몸으로 흙땅이나 들판이나 냇물이나 숲에서 실컷 뛰노는 아이들 모습을 담은 노래가 뜻밖에 퍽 적어요. 일하거나 심부름하는 아이들 사랑스러운 모습 드러내는 노래가 참으로 드물어요. 마음속에 사랑을 심고 꿈을 키우면서 이 땅과 마을과 보금자리를 가꾸는 이야기 들려주는 노래도 참 찾아보기 힘들어요.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에 배운 어린이노래는 하나같이 재미없습니다. 틀에 박히기도 하고, 아이들한테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하는 노래가 저로서는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이런 노래를 듣던 예닐곱 살이나 일고여덟 살 무렵에도 ‘어른들은 이런 노래가 재미있어서 우리더러 이런 노래를 듣고 부르라 하나?’ 하고 궁금하게 여겼어요. 노래를 안 부르면 (학교에서) 몽둥이로 두들겨패니까 하는 수 없이 부르지만, 마음이 짠하게 움직이면서 웃음이나 울음 길어올리는 노래란 없었다고 느껴요.


- 사람이 살 집은 없다. ‘우리 집’은 없다. 우리 집에 가고 싶다. 그 옛날 살던 그 집, 하늘이 있고 별이 있고, 살아 숨 쉬는 나무들과 짐승들과 벌레들이 있고, 이웃이 있고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던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 데려다 주세요 …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갇히고 학살되는 도시! (1992년 1월 10일)
- 기차에서 바깥으로 내다보는 가을 들판, 가을 산천, 가을 저녁 하늘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내가 앉은 서쪽 창을 보니 햇볕이 더운 것도 아닌데 모두 창 가리개를 내려 덮어 놓았고,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 나는 이 땅에만 살아도 자연이 너무너무 볼 것이 많고 감동할 것이 한이 없다. 내가 몇 차례 다시 살아나도 나는 이 땅을 더 보고 싶다. 이 땅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시인인가! (1992년 10월 12일)
- “참꽃들이 온 산에 피면 꽃잎을 따 먹을 수도 있고, 벼랑에 살구꽃이 피어나 아침 해에 비쳤을 때는 눈물이 날 만큼 기뻤지요. 그런 봄이 왔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걸 모르고 살지요. 언제 봄이 왔는지, 무슨 꽃이 어떻게 피었는지 관심도 없고 기쁨도 모르고, 이러니 아이들이 어떻게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겠어요.” (1994년 3월 22일)
- 옆에 앉은 신정숙이한테 구름을 보라 했더니 자꾸 딴 얘기를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자연을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6년 7월 26일)

 

 


  나는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오래도록 즐겨 불렀습니다. 이문구 님 동시와 권태응 님 동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도 매우 좋아합니다. 아름답게 쓴 시에 곱게 가락을 붙인 노래는 언제 불러도 즐겁습니다. 잠자리에서는 살짝 느리게 부르기도 하고, 슬픈 이야기 담은 노래는 살짝 밝은 빛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합니다. “나물 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나물 캐다 말고 꽃을 땁니다” 하는 이원수 님 노래는 퍽 느리면서 무거운데, 아이들 앞에서는 조금 빨리, 이러면서 환하게 부르기도 해요. 이러면 노래맛이 사뭇 달라요.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한낮에 들길을 달리며 ‘조금 처지는’ 노래를 불러도 좋아요. 들바람이 포근히 감싸고, 구름과 햇살과 꽃내음이 따사로이 어루만집니다.


  자전거를 달리다가 허리를 곧게 펴고는 한 팔을 쭉 뻗습니다. 저 구름을 좀 보렴, 저 하늘을 좀 보렴, 저 멧등성이를 좀 보렴, 저 해오라기를 보렴, 저 들판에 볏포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치는 푸른 빛을 좀 보렴, 하고 자꾸자꾸 말을 겁니다. 샛자전거에 앉아 바람을 쐬는 큰아이는 아버지 말에 따라 구름을 보고 하늘을 보며 멧자락과 해오라기와 들판을 바라봅니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들내음 맡고, 바닷가를 지나며 바닷바람 마십니다. 바람소리는 바람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풀벌레 소리는 풀벌레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물결소리는 물결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비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노랫가락처럼 듣습니다. 벼락이 치는 소리는 벼락노래라 할 테지요. 제비는 제비노래를 부르고, 까치는 까치노래를 부릅니다. 바람결 따라 나부끼는 나뭇잎과 풀잎은 나무와 풀에 따라 결과 소리와 빛이 달라요. 여름철 숲을 바라보면 온통 짙은 풀빛인데, 나무마다 풀마다 빛깔이 서로 달라요. 다 다른 풀빛이 어우러져 눈부신 풀빛잔치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둘레는 온통 노래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시외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간다든지,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마실한다든지, 이렇게 시가지라는 데로 가면 시끄럽습니다.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고, 가게에서 튼 대중노래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푸름이와 어른 누구나 손에 쥔 전화기로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시가지 사람들 읊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어른들 다투거나 술에 절어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도시에서는 노래라 할 만한 소리가 없습니다. 시골 면내나 읍내에도 노래라 할 만한 소리가 없습니다. 마음을 푸근히 적시거나 생각을 넉넉히 북돋우는 기쁜 소리가 없는 문명 아닌가 싶습니다.


- “우리가 우리 겨레 문학의 전통을 바로 세우는데, 저쪽이고 이쪽이고 권력 잡은 사람들 눈치 보고 해서는 안 됩니다.” … 작가회의도 결국 정계에서 말하면 제도권의 야당 노릇밖에 하지 못하는 문인 단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까짓 남북회담에 참여했다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인가? 결국 이런 단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남북 작가 회담에 참석했다는 것이 역사책에도 남고 하는 것을 가장 높은 목표로 알고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92년 4월 25일)
- 아침 〈한겨레신문〉에, 지난번 인터뷰한 기사가 났다. 쓴 사람이 어지간히 우리 말을 다듬어 쓴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도 몇 군데 잘못 쓴 말이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가 아주 힘들여 한 말은 없다. 그래서 그 기사 내용이 별로 알맹이가 없는 글이 되었다.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은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가짐이 아주 없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내가 힘들여 한 말은 “어린이한테서 배웠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가 미리 생각해서 질문하려고 한 항목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우리 말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이 “교사 정신”, “교사의 반성 정신”이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보다도 아이들에게 배웠다고 했다. 그걸 아주 자세하게 뚜렷한 보기를 들어 말해 주었는데, 그걸 이해 못했던 것이다. 대관절 교사 정신이니 반성 정신이니 하는 게 있는가? (1992년 10월 7일)
- 산하 출판사에는 내가 여러 사람을 소개해서 책을 내게 했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인지부터 안 붙이도록 출판사에서 공작해 버렸다. 인지를 붙이는 책조차 이렇게 인세를 안 주는데, 인지 안 붙이는 책이야 말할 것도 없다 … “우리가 할 일은, 유명 인사들 모여 좌담이나 하고 강연회나 열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닌 줄 압니다. 하나의 운동으로, 주민들 전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방송과 신문부터 바로잡는 일을 해야지요.” (1992년 12월 30일)

 

 


  시골에서는 늘 소리를, 다시 말하자면 노래를 듣습니다. 해질녘부터 온 들판에서 개구리가 노래잔치를 벌입니다. 새벽 두 시를 지나면서 차츰 수그러들어 새벽 세 시에는 거의 잦아들고, 새벽 네 시에는 똑 끊어집니다. 이때부터는 멧새가 노래하는 때입니다. 멧새는 새벽 네 시부터 새벽노래를 부릅니다. 이 사이에 밤새가 개구리하고 나란히 밤노래 들려주곤 해요.


  시골인 만큼 오늘날에는 경운기 구르는 소리가 멧새 노래와 얼크러집니다. 아니, 경운기 구르는 소리는 멧새 노래를 쫓아냅니다. 시골 할배는 경운기를 몰면서 멧새 노래를 온통 잊습니다. 경운기를 끄는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동안 스스로 멧새 노래하고 멀어집니다. 숲이 들려주는 소리가 아닌, 기계가 귀를 찢는 소리에 길듭니다.


  가만히 보면, 시골사람이 자꾸 농약을 쓰고 비료를 치며 항생제까지 뿌리는 까닭은, 기계에 길들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맨 먼저, 마이크로 쩌렁쩌렁 울리는 시끄러운 마을방송 소리에 길듭니다. 아무 때고 터지는 마을방송 소리는 아이들 낮잠을 깨우고 새벽잠을 쫓습니다. 왜 마을방송이 있어야 할까요. 마을방송은 어떤 이야기를 알릴까요. 마이크와 스피커 없던 지난날에는 마을사람이 서로 어떻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요. 엎어지면 코 닿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귀를 찢는 마을방송을 왜 해야 할까요. 다음으로, 시골사람은 경운기와 트랙터 소리에 길듭니다. 석유 먹는 기계를 쓰면 논밭을 후다닥 갈아엎는다지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갈아엎어 더 넓은 땅에 곡식과 푸성귀를 심어서 내다 파니까, 시골살이가 나아졌을까요. 돈을 잘 벌면 시골살이가 좋은 셈일까요. 기계값과 석유값은, 또 기계를 만들고 석유를 쓰며 땅과 바람이 더러워지는 흐름은 얼마나 살필는지요.


  그리고,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자가용을 몰고 시골집으로 곧잘 찾아옵니다. 시골사람은 자가용 소리에 길듭니다. 무엇보다, 텔레비전 소리에 아주 길듭니다. 이제 시골에서 마을잔치 구성지게 누리는 데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북과 꽹과리와 장구와 징을 치는 마을잔치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장구로 장단을 맞추어 일노래 부르는 조촐한 잔치는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도 사교댄스이니 스포츠댄스이니를 배워서 추지, 덩실춤을 추지 않습니다.


  소리가 사라지니, 아니 소리가 바뀌니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며 노래가 바뀝니다. 숲소리를 밀어내고 기계소리 끌어들이니, 마음이 달라지고 사랑이 달라지며 삶이 달라집니다.


  이제 시골에서도 할매와 할배가 아이들한테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일찌감치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옛이야기 들려줄 생각조차 안 하지만, 시골마저 옛이야기가 사라졌습니다. 시골 어른은 고작 텔레비전 켜서 아무 방송이나 보여줄 뿐입니다. 도시에서라면 영어로 된 만화영화를 보여주겠지요.


- 어느 아이 말에 “생일 파티”란 말이 나오자 그 어머니가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니?” 했다.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아주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어머니의 입에서 “텔레파시”란 말이 나오고, 그 말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 어머니는 그런 말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앞서 가는 교육인 줄 여기는 듯했다. 유치원 아이들의 말 교육이 이래서 되겠는가? (1992년 7월 10일)
- “그 어린아이들이 배워야 할 말은 우리 모국어지요. 사람의 한평생에서 쓰는 말을 두 살에서 여섯 살 사이에, 거의 다 익힙니다. 그때가 모국어를 익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1993년 1월 11일)
- 오늘 공청회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끼고 한심하게 생각한 것은, 발제한 내용을 요약해서 인쇄해서 돌린 그 글이 아주 요란스런 중국 글자 말체, 일본 말법으로 되어 있을뿐더러, 말하는 사람들이 말을 너무 유식한 말로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1993년 5월 15일)
- 학자들이 말해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태도가 이래서 문제다. 사전에 있으니까 사전대로 써야 한다, 표준말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써야 한다……. 현장에서 쓰는 말, 실제로 백성들이 쓰고 있는 말은 아주 무시하고, 책에 적어 놓은 것을 표준으로, 옳은 말로 보는, 이것이 아주 잘못된 생각이요, 옳지 못한 태도다 … 실제로 쓰는 백성들의 말을 한사코 안 쓰겠다고 해서 쓰지도 않는 표준말로 우리 말을 묶어 놓고 싶어 하는 학자들, 이런 학자들이 얼마나 자연스런 우리 말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가. 참으로 한심하다. (1994년 9월 15일)

 

 


  우리 식구가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겨, 처음에 충청북도 음성에 깃들던 무렵, 한 해가 지나도록 충청말이나 음성말을 거의 못 들었습니다. 말투는 살짝 충청말이나 음성말 같지만, 시골사람 스스로 ‘텔레비전 표준말’을 씁니다. 시골아이는 ‘학교 표준말’과 ‘교과서 표준말’을 써요. 충청도를 다시 떠나 전라남도 고흥에 깃들어 지내니, 이곳에서는 곧잘 전라말이랑 고흥말을 듣습니다. 시골말을 듣자면 이쯤 되는 시골에 깃들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나 푸름이나 어린이 입에서 전라말이나 고흥말 듣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많이 늙은 할매와 할배가 아니고서는 전라말이나 고흥말을 잘 안 씁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시골말을 교사한테서 배울 수 있을까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시골말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몸가짐을 보여줄까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떠나는 시골아이는 도시에서 이녁 고장말을 잊지 않거나 알뜰히 건사하면서 시골사람다운 넋과 얼을 빛낼 수 있을까요.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잊습니다. 시골사람은 시골말을 잊습니다. 책과 신문과 잡지 모두 한국글로 적혔다고 하지만, 껍데기는 한글이라 하더라도 알맹이는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saranghaeyo’라 적는대서 영어가 되지 않아요. 이런 말은 영어도 한국말도 아니에요. ‘미소’나 ‘시작’이나 ‘필요’나 ‘행복’이나 ‘존재’ 같은 낱말이 한국말이 될 수 있을까요. 껍데기를 한글로 적었으니 한국말로 삼으면 될까요. ‘-의’나 ‘-적’이나 ‘그녀’가 한국말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다 나오는 말투요, 오늘날 어른들 누구나 아주 쉽게 쓰는 말투이니, 이런 말투를 이냥저냥 한국말로 삼으면 될까요.


  일본이 독도를 놓고 무어라 떠들면 막바로 꾸짖는 한국사람이면서, 왜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 말투가 한국말 곳곳에 스며들거나 깃드는 슬픈 굴레는 스스로 걷거나 씻거나 털 생각을 안 할까요. 일본제국주의를 잘 모르는 어떤 사람이 히노마루를 아무 데나 쓰면 온갖 거친 말로 꾸짖을 줄 알면서, 왜 한국말답지 못하게 망가진 얄궂은 말마디를 바로잡거나 일으켜세우는 데에는 땀 한 방울 안 쏟을까요.


-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야 옛날부터 다 그렇다고 보면, 백성들이 참 답답하다. 어차피 선거를 해 봐야 알겠지만, 지금 봐서는 이 백성들이 돈에 미치고 환장해서 양심을 팔고, 방송이고 신문이고 하는 것 그렇게 오랫동안 속았으면서도 여전히 그런 것을 쳐다보고 읽고 하여 그것을 믿는 꼴을 보면 에라, 이놈의 백성들은 천년을 가도 그 꼬라지로 고생해서 마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국 놈, 일본 놈도 욕만 할 것 없다. 다 지지리도 못난 제 탓이다. (1992년 11월 18일)
- “우리 나라 사회과학이란 것이 너무 외국 사람들 이론만 소개하고 이론에만 끌려가는 것 아닌가요. 내가 보기로 이론이란 것, 관념이란 것이 현실에서 생활에서 나와야 하는데, 삶은 없고 관념만 있어서, 그 속에 모두 빠져 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관념이고 사상이고 삶에서 나와야지요.” 그런데 이 씨는 내 말에 아주 반대가 되는 말을 했다. “우리가 아무래도 외국의 앞선 과학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려면 그렇게 안 할 수 없지요.” “외국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정도 문제지요. 우리 것은 다 버리고 남의 것만 따라가서야 뭣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 “나는 유교 정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유교는 중국서 들어온 것인데, 우리 역사와 전통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그것이 우리 것이고 우리 삶의 알맹이라 보지 않아요. 도자기 같은 것, 그런 골동품을 어떻게 하자는 것 아니지요. 문제는 우리들의 생활입니다. 삶이 없어졌어요. 우리 삶이 다 없어져 가는 것이 문제지요.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서도 삶을 빼앗아 버리고 책만 읽고 쓰고 외우고 하도록 합니다.” … “삶이 무엇이냐구요? 밥 먹고 일하고 이야기하고 하는 것, 이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유치원생이고 국민학생이고 대학생이고 점수 따기로 살아갑니다. 아이들 보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과 학원에 갇혀 살고 끌려다닙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 무엇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반성하고 하는 것이 없어요. 삶이 없는 거지요.” … “아메리카 인디언 있지요. 그 사람들 얼굴 아직도 그대로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 문화, 뭐 남은 것 가지고 있나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얼굴 모양만 그대로 가지면 우리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네요.” (1993년 2월 18일)

 

 


  ‘죽은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이 나라에서 말다운 말을 이야기하는 일은 너무 부질없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죽은 말’이 되기 앞서, ‘죽은 노래’가 되었어요. ‘죽은 노래’가 되기 앞서 ‘죽은 소리’가 되었어요.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인천이든, 길거리를 걸어 보셔요. 어떤 소리를 들을 만한가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소리를 서울이나 부산에서 들을 수 있나요.


  시골 읍내나 면내를 거닐어 보셔요. 시골 읍내나 면내에서는 서울이나 부산과 달리 싱그러이 펄떡펄떡 뛰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어디에서나 온통 자동차 소리입니다. 어디에서나 끝없이 손전화 소리입니다. 어디에서나 자꾸자꾸 대중가요 소리에다가, 장사하는 짐차 다니며 시끄럽게 튼 녹음기 소리입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워 바닷가로 찾아가 한참 물결노래 듣다가도, 자동차 찍찍 끌고 오는 사람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귀가 찢어집니다. 자동차 찍찍 끌고 오는 사람들은 아무 데에서나 담배를 태우고, 쓰레기도 슬쩍 버립니다.


  곰곰이 살피면,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은 ‘자가용을 몰면’서 사람다움을 스스로 내버린 듯합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놀이’를 까맣게 잊습니다. 어른들 사이에서 놀이가 사라집니다.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하며 누리던 놀이가 어른들 사이에서 몽땅 사라졌어요.


  어른들 사이에서 놀이가 사라지며, 어른들은 아이들을 닦달하기만 해요. 아이들이 1분이나 10분이나마 조용히 생각에 잠겨 꿈놀이를 하더라도 꾸짖습니다. 아이들이 빈터나 공원에서도 못 놀게 하려고 학원에 집어넣는데, 학원버스는 학교와 학원과 집 사이를 이어 줍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과 집 사이를 걸어서 다닐 말미마저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파트에 갇힙니다. 아이들 스스로 아파트에 살고 싶다 말한 적 없을 테지만, 어른들은 살림집을 으레 아파트로 얻습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뛰지 못하고 노래부르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공을 던지지 못하고 구르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소리지르며 뛰놀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피아노도 피리도 즐기지 못합니다. 참말,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무얼 할 수 있나요. 아파트 놀이터는 자동차 소리 때문에 시끄럽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숲을 누리지 못하며, 그나마 모래나 흙을 만지기도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 아파트란 너무 끔찍한 시멘트 감옥이에요. 아이들한테 학교 또한 너무 모진 시멘트 감옥이에요. 학원도 감옥이지요. 오락실이건 피시방이건 똑같이 감옥이에요.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어디로 가든 감옥 안마당에서 맴돌이하는 모습이 되고 말아요. 아이들 스스로 할 만한 놀이가 없고, 아이들 스스로 삶을 빛낼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요.


- 아이들을 밖에 데리고 나가 골목을 걸어 다니게도 해 보고, 시장에 데려가 구경도 시키고, 놀이터에서 모래와 흙을 만져 보게도 해야 될 터인데, 그런 공부는 안 시키고 점수 따는 공부만 방 안에서 시키려고 하니, 이런 어머니들이 자식을 다 병신으로 만든다 … 생활은 없고 책만 읽고 외우는 교육, 살아 있는 말은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도록 하고 죽은 글말, 하라고 시키는 글말만을 외우듯이 지껄이는 교육, 사람들이 이런 교육만 받았으니 이제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논리란 것을 문제 삼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은 점점 괴상하기 짝이 없는 동물로 되어 간다.” (1993년 3월 14일)
- 이제 한겨레는 주주들이 바로 〈한겨레신문〉 사장과 기자들과 싸울 단계가 되었다. 백성들은 이래서 언제나 당한다. 이것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피와 땀으로 이뤄 놓은 신문을 지키기 위해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글쟁이들을 상대로 싸우는 단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역사를 우리는 살고 있다. (1993년 3월 15일)
- “일하기를 통한, 일을 해서 그것을 글로 쓰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게 어째서 할 수 없고 못 하는 것인가요? 도시 아이들 일할 것 없으면 놀이라도 시켜야지요. 또 집안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그밖에 할 일 찾으면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런데 윤구병 선생 말이 이랬다. “선생님 혼자 훤히 아시지만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그걸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대구의 임성무란 사람이 자꾸 말했다. “저희들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이호철 선생님 얘기 들어요. 그걸 듣고 그대로 해도 작품은 제대로 안 나옵니다. 좀 이론을 체계를 세워서 얘기해 줘야 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참 답답합니다. 이호철 선생이 회보에 써 놓은 것, 그 숙제 내는 것, 그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무슨 행동을 하게 해서 글을 쓰게 하는 방법, 그것 보고 배울 수 없고, 무슨 원리 원칙이니 이론이니 하는 것 말해 달라니, 이론 가지고는 더 모릅니다. 그런 태도로서는 글쓰기 지도 할 수 없어요 … 삶이 뭡니까? 일이고 놀이고 활동하는 것 아닙니까? 삶을 가꾼다고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 온 것뭣입니까? 헛소리한 겁니까?” (1993년 6월 5일)

 


  어른들부터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아이들도 홀가분하게 감옥을 털어낼 수 있습니다. 어른들부터 돈벌이에서 풀려나야, 아이들도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무를 사귀며 놀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대학 졸업장도, 중·고등학교 졸업장도, 초등학교 졸업장도 덧없습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데 졸업장이 무슨 대수입니까. 어른들한테도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부질없습니다. 모를 심고 풀을 뜯는데,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무슨 대수랍니까.


  진보정당을 좋아해야 모를 잘 심지 않습니다. 보수정당을 좋아하니 풀을 잘 뜯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야 텃밭을 잘 일구지 않습니다. 가난한 살림이니까 나무를 못 돌보지 않습니다.


  대학교까지 마친 가방끈이 있어야 아이를 쑥쑥 낳아 똑똑하게 키울까요? 초등학교를 안 마친 가방끈이기에 아이를 제대로 못 낳고 어설프게 키울까요? 대학교까지 다니는 요즈음 아이들은 열여섯 해에 걸쳐 무엇을 배우는가요? 대학교까지 마치는 요즈음 아이들 마음밭에는 어떤 사랑씨앗이 자랄까요? 밥짓기와 집짓기와 옷짓기를 열여섯 해에 걸쳐 얼마나 배우는지요? 사랑하기와 어깨동무하기와 품앗이를 열여섯 해 동안 얼마나 슬기롭게 익히는가요?


  시골 면소재지나 읍내에 있는 중·고등학교에는 기숙사가 있습니다. 조금 깊은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으레 이런 기숙사에서 지내곤 합니다. 시골아이라 하더라도 밤별을 누리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시골아이라 하더라도 볏모를 모르거나 벼꽃을 못 본 아이가 무척 많습니다. 벼와 보리를 가눌 줄 아는 시골아이도 드물고, 고들빼기나 씀바귀 스스로 뜯거나 캐서 먹을 줄 아는 시골아이도 드뭅니다. 치자꽃이 핀다 한들 치자꽃내음 맡는 시골아이가 드물어요. 딸기꽃을 모르고, 들딸기를 먹지 못하는 시골아이가 몹시 많아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모두 똑같아요. 참외꽃이나 오이꽃을 본 아이가 몇이나 될까요. 콩꽃이나 포도꽃을 본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참깨꽃이 피어야 참깨 열매 맺으며, 참깨를 털어 깨소금을 얻을 수 있는 줄 아는 아이는 있기나 있을까요.


- 오늘 유치원에서 사계절 출판사 책 전시를 한다면서 그 책들을 놓아두었기에 보았더니 유치원 애들이 보는 그림책들이 죄다 번역한 것이었는데, 그 내용이며 문장들이 참 말이 아니었다. 이러다간 우리 아이들이 모조리 서양 아이가 다 되겠구나 싶었다. (1994년 12월 2일)
- 따지면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국민이니까, 결국은 제 손으로 그런 집을 지어서 그 집에 깔려 죽게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사건에서 국민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영원히 존재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국민들이 깨달을 것 같지 않다. (1995년 6월 30일)
- 그래 생각해 보니 이런 말을 선정해 놓은 것이 모두 음식점이나 거리 시장 같은 데서 하는 말을 중심으로 한 것이구나, 지식인들이 잘못 쓰는 말이 중심으로 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국어 순화를 한다는 곳에서 하고 있는 것이 이런 데부터 문제가 있는 것이다. (1995년 8월 25일)
- 모조리 전두환 노태우한테 미루기만 하면 무슨 해결이 날 것인가? 그리고 아이들을 이 모양 이 꼴로 키우는 것이 사실은 모두가 전두환이요 노태우 같은 추악한 심보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전두환 노태우를 그런 꼴로 만든 것은 누구란 말인가? (1996년 7월 17일)

 


  《이오덕 일기》(양철북,2013) 넷째 권을 읽습니다. 《이오덕 일기》 넷째 권에는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와 같은 이름이 조그맣게 붙습니다. 1992년부터 1998년 사이에 쓴 일기를 그러모은 《이오덕 일기》 넷째 권입니다. 이동안 사회 흐름을 살피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 이르는 기나길고 무시무시한 군사독재정권이 문을 닫습니다. 군인들 총칼도 독재자 주먹다짐도 살그마니 꼬리를 내립니다. 그러나, 군인과 독재자를 밀어낸 자리에 들어선 분은 정치권력을 지키려고 군사독재정권에서 한몫 단단히 거든 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참민주와 참평화가 깃들지 않아요. 참평등과 참삶으로 나아갈 길을 오롯이 열지 못해요.


  어찌해야 할까요. 이 슬픈 한겨레는 새삼스럽게 싸우고 버티어야 할까요. 이 나라를 떠나야 할까요. 아무도 못 찾아올 깊은 두멧자락으로 숨어야 할까요.


  길은 여럿일 수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든 씩씩하게 잘 걸어가면 됩니다. 꼭 한 갈래 길만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길은 ‘한 가지’ 마음이 될 때에 갈 수 있습니다. 바로 “나를 찾아 나 스스로 가는 길”이라고 마음을 다져야지요. 내 숨결을 찾고, 내 꿈을 찾으며, 내 사랑을 찾아서 스스로 꿋꿋하게 걸어가는 길이어야지요.


  돈을 바라거나 이름을 꾀하거나 힘을 거머쥐려는 길은 길이 아닙니다. 삶을 찾으려 하는 길일 때에라야 길입니다. 삶을 사랑하고, 삶을 꿈꾸려는 길일 때에 비로소 길입니다.


-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무엇을 보고 듣고 하여 어떤 지식이나 생각을 받아들였으면 반드시 그만큼 또 자기 자신을 표현해서 내보내야 하고,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과 내보내는 것의 수지가 될 수 있는 대로 0의 상태가 될 때 사람은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다. (1996년 3월 11일)
- 박정숙이는 그때, 그러니까 1963년이니 33년 전이다. 그때 이후 한 번도 못 만났다. 이런 얘기를 전화로 해서 웃었다. “선생님, 그때 학교 앞 마을 ○○네 집 방에 계셨잖아요. 한번은 골목을 가는데 제가 골덴 바지를 뒤에 바느질해서 떼운 것을 입고 가니까 선생님이 ‘정숙이 너 궁둥이에 해바라기꽃 핐구나’ 하신 것 생각나셔요?” “그런 일이 있었던가?” 정숙이는 키가 좀 작고 눈이 크고 눈썹이 새까만 아이였던 것 같다. (1996년 5월 9일)
- 《혼불》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이야기한 소설이라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그다지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럴수록 이 소설을 많이 읽도록 해야겠구나 싶었다. (1997년 7월 14일)
- 사실 나는 오늘 새벽, 텔레비전에서 광주 사람들이 밤중에 금남로에 뛰어나와서 기뻐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던 것이다. (1997년 12월 19일)
- 우리는 어떤가? 말 잘하고 책을 많이 읽고, 국제회의에 나가 영어로 연설했다는 김대중 대통령도 일본 사무라이들이나 썼던 ‘진검 승부’란 말을 하는 판이다. 고은 같은 시인도 ‘민초’란 말을 즐겨 쓴다. 서정주 시인도 일본 말법을 시에 쓰고 있다. 이게 바로 식민지 백성들의 꼴 아니고 무엇인가? (1998년 6월 4일)

 

 


  《이오덕 일기》 넷째 권을 읽으면서, 나는 1992년부터 1998년 사이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1992년에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몸이었습니다. 1990년 중학교 3학년 적에는 그만 고등학교는 집어치우고 혼자서 제금을 내어 도시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혼자 머리를 싸매었지만 아무런 수를 찾지 못해 그대로 고등학교에 왔고, 입시생이 되면서 몸과 마음을 많이 다쳤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란 이렇게 학교 구실을 하나도 안 하면서 ‘학교’라는 이름을 버젓이 쓰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아니,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몽둥이가 춤추고 대학입시 시험문제만 풀이하는 데로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러다 1992년 8월 28일에 헌책방이라는 곳을 알았어요. 대학입시 본고사 독일말 시험을 치르려고 혼자 애먹으면서 독일말 참고서를 사려고 헌책방에 갔어요. 학교에서는 독일말 수업을 하지 않았고, 따로 학원을 다녀야 했는데, 학원에도 수강생이 고작 여덟뿐이고 교재가 딱히 없어, 옛날 참고서를 찾아야 했어요. 옛날 참고서를 찾아 인천 배다리 여러 헌책방을 돌다가 참으로 작은 헌책방 한 곳에서 독일말 참고서를 찾았어요.


  이 헌책방에서 ‘참고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눈부신 빛이 서린 책’을 보았어요. 삶을 들려주는 책을 보았어요. 사랑을 밝히는 책을 보았어요. 꿈을 노래하는 책을 보았어요. 교과서에 없고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삶을, 헌책방 책시렁에 가득한 수많은 책에서 배울 수 있었어요.


  빛이 없다고 느낀 중·고등학교 입시생 마음밭에 빛줄기 하나 스몄어요. 이 삶, 나한테 주어진 이 삶, 내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이 삶, 한 번 즐겁게 누릴 만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앞서간 사람들 아름답고 슬기로운 이야기 담은 온갖 책을 헌책방 책시렁에서 살피면서, 내가 걸어갈 앞길을 차근차근 짚었어요. 내게 빛을 준 이 책들을 쓴 사람이 있듯이, 나도 내 뒷사람한테 빛이 될 만한 이야기를 꾸려 책을 남긴다면 아주 기쁘며 보람차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고2와 고3이라는 지옥하고 똑같은 나날이지만, 주마다 두 차례씩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빼먹고는 헌책방으로 찾아가서 너덧 시간 또는 예닐곱 시간씩 홀로 책읽기에 사로잡혔어요. 교과서도 참고서도 대학입시도 아닌, 옹글게 내 삶을 밝히는 이야기를 찾는 책읽기에 흠뻑 젖어들었어요.


- “너 왜 개미를 그렇게 죽이나? 이건 개미들이 사는 집이야. 개미도 집을 짓고, 먹이를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이봐, 네가 밟아서 저렇게 죽고, 또 살라고 몸부림치고 하지. 개미도 사람과 같이 목숨이 있어. 그러면 안 돼.” 그 아이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만하면 알아들었겠지, 하고 왔다. 몇 걸음 걸어오다가 돌아보니 또 그 아이가 발로 개미집을 짓밟고 짓이기고 있었다 … 개미를 짓밟는 그 아이를 내가 어떻게 바로잡겠는가? 뺨을 한 대 후려갈겨 놓고 아프다고 울고불고하면 “그 봐라. 뺨 한번 얻어맞았다고 우는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허리가 부러지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개미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권리가 있는 거야?” 하고 말해 주면 될 것인가? 안 될 것이다. 그 아이는 그다음 어디서 개미를 만나면, 전에 뺨을 얻어맞았으니 그 앙갚음으로 개미들을 더 모질게 밟아 죽일는지 모른다. (1996년 7월 9일)
- “나는 전문용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그런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이 누구나 쓰는 일상의 말입니다. 우리가 쓰는 일상의 말을 우리 것으로 살려야 하는데 그런 것이 얼마나 많이 일본말로 오염이 되어 있는지 몰라요.” (1996년 8월 13일)
- 밤에 우노 치요란 사람이 쓴 글을 아주 재미있게, 감동하면서 읽었는데,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일본 사람들이 쓴 글은 한문 글자를 섞어 쓰지만 어떤 글도 모두 입으로 하는 말 그대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글은 어떤 글도 입으로 하는 말 그대로 아니다. 입말과는 다른 글말이다. (1996년 10월 10일)

 


  1994년에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갔어요. 대학교에 간다면 많은 아이들이 흔히 가는 학과에는 갈 뜻이 없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한구석 밝힐 뜻있는 학과를 오래도록 찾아보았어요. 한국 역사와 문화와 문학이 여러모로 발돋움하지 못하지 않느냐 싶어, 통역과 번역을 하고 싶었어요.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갔어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어요. 이곳에서 네덜란드말을 배우기로 했어요. 네덜란드문학이라면 고작 《안네의 일기》 하나만 알았지만, 틀림없이 무언가 깊으며 너른 숨결이 있을 테고, 내가 조그맣게 징검돌 구실을 맡으면서 아름답게 일할 자리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니, 동무들도 선배들도 공부를 하지 않아요. 대학교 도서관은 영어자격증(토익이나 토플) 따려는 사람들로 우글거려요. 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이나 오래된 신문을 들추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어요. 대학교 교수는 중·고등학교 적에나 내주던 어설픈 숙제를 과제물이나 보고서랍시고 내라 했고, 우리 학과 교수는 국민학교에서나 하던 베껴쓰기 숙제를 잔뜩 내주었어요.


  도서관에서 한풀 꺾이고, 선배와 동무들한테서 두풀 꺾이며, 교수들한테서 석풀째 꺾여요. 이러다가, 외국어대학교 가까운 곳에서 헌책방을 여러 곳 찾았어요. 아침과 낮과 저녁 사이에 도서관에서 알바를 하고, 구내서점에서도 알바를 했어요. 도서관과 구내서점 알바를 마치면, 대학교 옆 헌책방들 찾아다니면서 고등학교에서처럼 ‘마음을 밝히는 책읽기’를 했어요. 이때까지 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말 학과에는 변변한 ‘네-네 사전’이나 ‘네-영 사전’이 없었어요. 서울에 있는 여러 헌책방을 여러 날 샅샅이 뒤져서 ‘네-네 사전’ 한 권과 ‘네-영 사전’ 한 권을 찾았고, 이윽고 ‘네-라틴 사전’까지 찾았어요. 1학년 학생이 갖춘 사전이 교수님한테 있는 사전보다 더 나았어요.


  도서관이랑 구내서점 알바, 여기에 헌책방 나들이는 꾸준히 이었어요. 대학생들 뜻없이 퍼마시는 술자리는 아주 못마땅했어요. 우격다짐으로 술을 먹이는 선배들 앞에서 ‘주는 대로’ 모조리 퍼마셨어요. 선배들 스스로 해롱거린다 싶으면 슬쩍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헌책방에 갔어요. 오줌 누러 가는 척하면서 헌책방에 가서 한 시간 즈음 책을 보고는 술자리로 돌아왔어요. 술에 전 사람들은 ‘누가 한 시간쯤 자리를 비웠는지’ 깨닫지 못해요.


  도무지 어떤 돈이 솟아나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이렇게 밥과 커피를 사다 마시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술 마실 돈 있으면 책 좀 사 읽으면 좋을 텐데, 같은 학과 가시내들 가운데에는 3000원짜리 커피는 사다 마셔도 1000원짜리 헌책 한 권 사서 읽으려는 아이는 없었어요. 같은 학과 머스마들 가운데에는 점500이나 점700 당구를 치려는 아이는 많아도, 두어 시간 당구 칠 돈과 겨를에 책 한 권 사서 읽으려는 아이는 없었어요.


  대학교라는 데에서 아주 외로웠어요. 배우려는 사람이 없고, 배움을 나누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슬펐어요.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려고 학교 도서관과 헌책방에서 살았어요. 전공 수업이든 교양 수업이든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책 읽는 것’보다 나은 수업이 없다고 느꼈어요.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책 한 권을 갖고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한다는 대학교 얼거리가 참으로 어처구니없었어요. 이래서야 무슨 학문을 하느냐 싶더군요. 그래서 1학년 끝나고 2학년이 되어 ‘막내’에서 벗어난 뒤로 선배들 술자리에서 빠져나오는 한편, 신문배달 일을 했어요. 신문배달 일을 하니 ‘술자리 빠질 핑계’로 좋아요. 이듬날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서 일해야 하는데 어떻게 술을 마시느냐고 했어요. 그래도 여러 차례 붙들렸지만, 나는 내 길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았어요.


- (유종호 교수가) 그 뒤에 윤석중, 박목월 씨의 시를 절찬한 것을 들으니 이분도 역시 시를 삶에서 떼 내어 손으로 만드는 기술로 알고 있구나 싶었다 … 결국 유 교수가 시가 될 만한 농촌의 삶이라고 한 것은 아주 별난 사건이나 거리를 가리킨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농촌에서 겪은 평범한 삶, 그런 삶에서야말로 우리의 정서가 듬뿍 담겨 있고 배어 있는 것을 유 교수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감자꽃’이고 ‘고추잠자리’고 하는 작품의 생활성과 그 생활 정서를 알 수 없는 것이다 … 우리 문학인들이 이렇게 자연이고 농사일이고 곡식이고 하는 것에 무지하다는 것은 놀랄 일이고, 이런 사람들이 우리 전통을 말하고 정서를 말하고 우리 문화를 얘기하고 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1997년 5월 31일)
- “나라 사랑 마음을 갖게 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산천, 고향을 사랑하게 되도록 아이들이 자연 속에 즐겁게 놀고 살아가는 교육을 해야 하고, 이웃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하고, 우리 얼이 담겨 있는 말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1998년 8월 1일)
- 생태가 아주 달라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도 사람이 한 짓이다. 온통 땅에 약을 뿌려 벌레고 뭐고 먹을 것을 다 죽이고 못 먹게 해 놓았으니 땅에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까치도 해로운 새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까치도 벌레가 없으니 다른 것 찾아 먹는 수밖에 없지. 이래서 사람은 모든 벌레와 새와 짐승을 죽인다. 그리고 스스로 죽을 무덤을 파고 있다. 그러면서 조금도 반성할 줄 모르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1998년 11월 12일)

 


  2학년 1학기 마칠 무렵, 이런 곳에서 내 젊은 썩힐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돈과 겨를도 아까울 뿐 아니라, 내 머리가 너무 헝클어져서 바보가 되겠구나 싶었어요. 군입대 신체검사를 보았지요.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그러니까 돈과 연줄과 권력 있는 아이들이 내 둘레에 줄을 선 탓에, 나는 군면제대상(시력이 몹시 나빠서)이었지만 4급 현역을 받았어요. 돈과 연줄과 권력으로 군면제 받은 아이들하고 군의관이 나를 보며 “미안하다.”고 말해요. 어이가 없었지만 허허 하고 웃을밖에 없어요. 그저 한 마디를 할밖에요. 군면제 받은 아이들한테는 “좆까지 마.”라 했고, 군의관한테는 “미친놈. 니가 엉터리인 줄 아니?”라 했어요.


  2학년 2학기는 등록하지 않고 군입대 서류를 냈어요. 되도록 빨리 들어가도록 해 달라 했어요. 1995년 11월 6일 날짜를 받았어요. 논산으로 갔고, 106무반동총(바츄카포) 주특기를 받아, 열여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갔어요. 춘천에서 이틀 밤 지내고 소양강을 배를 타고 가로질러 다시 군대 짐차를 두 차례 갈아타서 한참 달린 끝에 양구에 닿았어요. 지도로 치면 남녘땅 아닌 북녘땅인 데에서 1997년 12월 31일까지 지냈어요. 군대에서 군의문사를 세 차례 지켜보았고, 중대장하고 행정보급관한테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일이 세 차례 있었어요. 1997년 11월에 군대 부재자투표를 했는데, 군대 부재자투표 투표함은 곽티슈상자였어요. 곽티슈상자에 넣은 부재자투표용지가 어떻게 될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그런데 용하게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뽑히더군요. 전역이 며칠 안 남았는데, 이래서야 전역을 할 수 있나 걱정스러웠어요. 아니, 김대중 씨 아닌 다른 이가, 오래된 군사독재자 정권이 대통령을 물려받았으면, 틀림없이 말년휴가 마치고 군대로 돌아간 뒤에 중대장과 행정보급관한테 끔찍하게 얻어맞았을 테고, 어쩌면 네 번째 총알이 비껴가지 않았을는지 몰라요. 곽티슈상자에 부재자투표를 했기 때문에라도 ‘제발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기’를 빌었어요. 군부대에서는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뻔히 드러났을 테니까요.


  스물여섯 달을 강원도 양구땅에서 보낸 하루하루 재빠르게 마음속으로 지나갔어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하루를 보냈고, 어떤 말을 들었고, 어떤 모습을 보았는지 낱낱이 떠올랐어요. 군단·사단·연대·대대를 거쳐 ‘지오피 부식품’을 얼마나 많이 빼돌렸는지 똑똑히 보았어요. 나는 스물여섯 달 동안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은 적 없어요. 군단·사단·연대·대대에서 ‘군부대 지급품 값’을 얼마나 뻥튀기로 부풀려서 뒷주머니에 챙기는지 또렷이 보았어요. 손전화보다 안 터지는 군부대 무전기 값이 자그마치 이백만 원이에요. 청계천에서 5000원이면 사는 겨울장갑(군대에서는 ‘방한수갑’이라고 가리킨다)이 ‘군부대 지급품 명세서 단가’에는 5만 원 넘는 값으로 적혔어요. 삼양라면이 왜 부자가 되는지 군대에서 알았어요. ‘맛스타’라는 엉터리 주스를 만드는 회사도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겠지요. ‘샘터’라는 잡지는 또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을까요.


  하사관들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에서 총을 쏘아 열목어를 잡아서 먹었어요. 사단장과 군단장은 봄마다 ‘지오피 순시’를 하면서 ‘곰취 사역’을 시켰어요. 깊디깊은 두멧자락에서 저절로 돋는 곰취를 봄마다 수십 푸대 뜯어서 바쳐야 했어요. 대대에서는 중대로 오는 소포상자를 몰래 뜯어서, 안에 든 돈이나 비싼 과자를 몰래 빼돌렸어요. 부대에 건빵과 쌀 보급품 들어오면 중대장은 이녁 자가용에 두 상자와 두 푸대를 실었어요. 행정보급관은 다섯 상자와 다섯 푸대를 담았어요. 내가 이등병 적에 옆 소대 내 동기는 어떤 미친 병장이 치약뚜껑에 머리박기를 시키더니 발로 배를 걷어차는 바람에 미끄러져서 이마가 찢어졌어요. 내가 병장을 달 무렵 스물여섯 살 나이로 고시에 실패해 느즈막하게 군대에 끌려온 사람은 날마다 스무 살짜리 일병 고참한테 화장실에서 얻어맞아 울었어요. 그렇다고 일병 녀석을 꾸짖거나 똑같이 두들겨패면, 이 녀석은 다시금 불쌍한 스물여섯 살짜리 ‘중대장하고 나이가 같은’ 이등병 막내를 또 밤에 화장실에서 두들겨패며 괴롭힐 테니, 무어라 할 수 없었어요.


  말년휴가를 마치고 군부대로 돌아가면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생각했어요. 1996년에 강원도 강릉이었나, 북녘에서 잠수함이 내려와 북녘 특수요원이 퍽 여럿 강원도를 밟았어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사람은 우리 부대 사이로도 지나갔어요. 지오피에서 내려와 도솔대대 천지오피(‘펀치볼’이라는 곳이 있는 옆 멧꼭대기 부대)에 있을 무렵인데, 다시 지오피로 끌려가서 밤샘매복을 해야 했어요. 북녘 특수요원은 우리들이 밤샘매복을 하던 자리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더군요.


  말년휴가 끝나서 멀고먼 길 거쳐 군부대로 돌아가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어요. 학자들이 입을 모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한 ‘대암산 용늪’은 우리 부대 간부들이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며 노는 자리였어요. 강원도 양구 겨울은 남녘에서 가장 춥거든요. 나는 밤근무 설 적에 온도계로 -47도까지 떨어지는 숫자를 보았어요. 그래도 용하게 전역날을 맞이했고, 전역날에도 어김없이 눈이 펑펑 쏟아졌어요. 대대장신고를 하자니, 대대장께서는 ‘눈도 오는데 하루 쉬었다가 가지?’ 하고 웃으며 말해요. 눈은 그동안 실컷 지겹도록 봤는데 그 눈 때문에 하루를 더 머물 마음이란 없어요. 눈밭에 파묻혀 얼어죽더라도 기어서라도 이 멧꼭대기에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나중에 혼인을 해서 사내를 낳으면 어떤 학교에도 안 보내고 군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학교라는 데도 미친 한국이고, 군대라는 데도 미친 한국인데, 우리 아이가 푸르며 싱그러운 나이에 미친 사람들 사이에서 바보가 되도록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 맞춤법, 띄어쓰기 부호 따위가 말이 달라지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외국 말, 외국 말법으로 말이 엉망으로 되어 가고 있는데, 그런 것 안 고친다고 말이 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회의에 참석했다는 학자들 자신이 우리 말을 어느 정도 쓰고 있는지 조금도 믿기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통일을 한다고 하는가. (1996년 8월 8일)
- 모르니까 쉬운 말로 하자고 쓰는 것이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썼다. (1996년 12월 29일)
- 어제 〈중앙일보〉 1면 광고란에 한자교육추진회에서 정치, 경제, 교육, 학문, 종교, 군사 각계 사람 수백 명 이름으로 한문 글자를 쓰도록 하자는 성명서를 냈다. 거의 모두 보수 우익 쪽에서 돈과 권력을 잡은 사람들인데 더러 민주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의 이름도 끼어 있었다. 신경림, 구중서 같은 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어 드디어 이런 사람들의 본색이 드러났구나 싶다. 나는 영어나 한자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믿을 수 없다. (1998년 11월 15일)

 


  사회로 돌아오고 나서 대학교를 두 학기 더 다녔어요. 대학교를 두 학기 더 다니면서 전공수업은 하나도 안 들었어요. 부전공 과목으로 신문방송학과를 골라, 두 학기 동안 신문방송학과 모든 강의를 학점이 넘치는 채 신청해서 들었어요. 이렇게 하고 나서 아무 아쉬움 없이 대학교에 휴학계를 내고는 자퇴를 했어요. 자퇴하는 뜻을 손글씨로 대자보로 써서 도서관 앞에 붙였고, 학교신문에도 자퇴한 이야기를 실었어요. 1998년 12월부터 나는 더는 대학생이 아닐 수 있었어요. 이제부터 ‘고졸자’가 되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혼자 살림을 꾸려요. 앞으로 맞이할 내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는지 흐릿흐릿했지만, 졸업장 권력을 내려놓았다는 기쁨에 하루하루 웃음이 넘쳤어요. 새벽 두 시마다 신나게 일어나 자전거로 골목골목 누볐어요. 아침에는 신문을 읽고 낮부터 저녁까지 서울 시내 헌책방으로 신문배달 자전거를 이끌고 찾아가서 책을 읽었어요. 돈을 많이 벌 수도 없는 삶이지만, 돈을 쓸 일도 없는 삶이니, 날마다 노래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어요.


  사회를 보거나 정치를 보거나 교육을 보거나 문화를 보면, 어느 곳에서도 빛이 없구나 싶었는데, 나 스스로 내 삶을 찾아 내 길을 걸어가려 하니, 빛이란 바로 늘 내 가슴속에 있었더군요.


  내 빛은 잘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내 빛은 못나지 않아요. 내 빛은 언제나 내 빛이에요. 내가 꿈꾸는 대로 환하고, 내가 사랑하는 대로 따사로운 빛이 바로 내 빛이에요. 이 나라가 온통 ‘죽은 말’이 떠도는 까닭을 시나브로 깨달았어요. 사람들 스스로 ‘내 길’이 아닌 ‘톱니바퀴 되는 굴레에 갇히는 길’에 매달리니까,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슬기롭게 쓸 줄 모르는 셈이었어요. ‘내 길’을 걷는 사람일 때에 내 마음속에서 빛을 찾아 ‘내 말’을 찾아요. ‘내 말’일 때에 ‘산 말’이에요.


  이오덕 님은 이녁 스스로 ‘산 말’을 찾으려고 하셨어요. 이오덕 님 스스로 이녁 마음속에 있는 빛을 보려고 하셨어요. 이오덕 님 마음속 빛줄기를 깨달은 뒤에는, 이 즐겁고 어여쁜 빛을 이웃사람들도 깨우치기를 바라면서 글을 쓰셨고 책을 내셨어요. 책을 손에 쥐어야 책을 읽지 않고, 마음속에서 잠자는 빛을 깨워야 바야흐로 삶을 읽을 수 있어요.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이오덕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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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스스로 내 삶을 찾아 내 길을 걸어가려 하니, 빛이란 바로 늘 내 가슴속에 있었더군요.-

- 이오덕 일기 4 :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 귀한 느낌글,
온 마음으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3-07-10 14:21   좋아요 0 | URL
읽어 주는 분들이 고운 마음이 되기에
즐거우며 알뜰살뜰 마음밥 얻으리라 생각해요.
 
이오덕 일기 1 :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오덕 일기 1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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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빛
[이오덕 선생님 책읽기 1] 《이오덕 일기》 1권

 


  겨울에는 별이 빛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을 누립니다. 아이들도 어버이도 밤별 환하게 빛나는 하늘 가만히 바라보면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봄을 맞이하면 멧새들 둥지에 깃들면서 봄꽃 돋는 소리를 들으며 밤을 누립니다. 아이들도 어버이도 새와 꽃이 어우러지는 들판 찬찬히 느끼면서 고단히 잠듭니다. 여름에는 무논에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로 마음이 아늑합니다. 도시에서는 낮에도 밤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온통 자동차투성이입니다. 도시에서는 한갓지게 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밤이 너무 시끄럽고, 지나치게 밝으며, 몹시 어수선합니다. 자동차뿐 아니라 오토바이조차 들어설 수 없는 비알진 골목동네 안쪽에 살림집 있지 않고서야 조용하며 맑은 밤을 누리지 못해요.


  시골마을 가을밤은 개구리 노랫소리 살며시 수그러들면서 온통 풀벌레 노래잔치입니다. 풀벌레는 나뭇잎과 풀잎 사이사이 깃들어 노래를 베풉니다. 나무와 풀은 저마다 밤바람에 나부끼면서 물결이 치는 듯한 가락을 사이사이 곁들입니다. 곡식 익는 냄새에 풀잎과 나뭇잎 물드는 내음 휘감기면서 아름다운 사랑 어디에서 피어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선생질 하고 싶은 아이는 없는 모양이다. “너희들 생각이 좋다. 농사짓는 것도 좋고, 국수 빼는 일도 좋다. 부디 모두 착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되어라. 다른 것 다 좋은데, 너희들 제발 선생질은 하지 마라. 참 선생질 못할 짓이다. 이렇게 돈 없는 아이들 졸라서 울리고, 날마다 성내고 고함치고 해야 하니 말이다. 난 이제라도 이런 선생 노릇 치우고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그 돈으로 너희들같이 돈 없는 아이들에게 공책도 사 주고, 연필도 사 주고, 크레용도 사 주고, 과자도 사 주고 싶다.” (1962년 9월 19일)
- 공부를 못해서 시간마다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은 학교생활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1962년 9월 21일)
- 그렇다. 나는 통일이나 되면 교감이든지 교장이든지 하겠다. 아니, 통일이 되면, 그때야말로 아이들 앞에서 참선생 노릇을 하겠다.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밑바닥에 깔려서 신음하는 사람들과 숨 쉬며 살아갈 것이다. (1967년 3월 9일)

 

 


  내 어릴 적 동네를 떠올립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곱 살 밑이었던 때는 어떻게 지냈는지 하나도 못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1학년 적에도 일곱 살에 어떻게 뛰놀았는지를 못 떠올리고, 국민학교 3학년 적에도 여섯 살이나 일곱 살 적에 누구랑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를 못 떠올립니다. 생각을 기울이고 기울여도 내 일곱 살 밑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덟 살 적부터 또렷하게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요 인천부두 곁에 있는 5층짜리 열다섯 동 아파트마을에서 어린 날을 누렸습니다. 아파트마을에서 벗어나면 고속도로 어귀에 커다란 짐차 우글거리며 시끄럽습니다. 아파트마을 앞은 왕복 십이차선이었는지 찻길이 대단히 넓습니다. 건널목 건너자면 한참 걸립니다. 건널목 빨간불일 때에는 부두와 고속도로 사이로 커다란 짐차 우글거리며 귀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고, 건널목 푸른불 들어오면 비로소 모든 시끄러운 소리 멎으면서 ‘자동차가 이렇게 귀를 찢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런데, 열다섯 동 아파트 모인 조그마한 마을로 한 걸음 두 걸음 들어서면 차소리가 사그라듭니다. 세 걸음 네 걸음 접어들면 내 또래와 동생과 언니 들 목소리가 울려퍼집니다. 퍽 넓게 펼쳐진 모래밭 놀이터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가득했고, 웃고 울며 뒹구는 소리 넘쳤습니다. 자가용 가진 이는 매우 드물어 주차장은 언제나 또다른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칠판 지우는 주번 일을 하다가 주머니에 슬쩍슬쩍 감춘 몽당분필로 주차장 바닥에 금을 긋습니다. 어느 동에나 아이들이 많으니 놀이터를 차지하며 공을 차거나 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날 잦습니다. 저마다 이곳저곳에서 길바닥에 금을 긋고 놉니다. 금을 안 그어도 재미난 놀이 많고, 금을 그으며 새로운 놀이를 빚습니다. 주차장만큼 넓은 꽃밭에 경비 아저씨 몰래 들어가서 돌을 줍습니다. 돌치기 놀이를 하고 딱지치기를 합니다. 제기를 차고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을 합니다. 얼음땡을 하고, 어느 날은 ‘동 대항 달리기’를 합니다. 열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마을에서 아이들 우루루 모여 아파트를 빙빙 도는 달리기대회를 거의 날마다 엽니다. 아파트마을 통틀어 자가용 가진 이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은 터라 길바닥이며 주차장은 모두 우리 차지가 되어 어떤 놀이이든 실컷 합니다.


  겨울이 되면 곳곳에 온갖 눈사람이 수도 없이 섭니다. 이곳저곳에서 눈싸움이 벌어집니다. 아이도 어른도 ‘아이들 눈싸움 놀이’를 하는 결에 날아오는 눈덩이 맞지 않도록 살피며 걸어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집집마다 아이들 밖으로 뛰쳐나와 연을 날립니다. 한두 연 아닌 수십 개 연, 때로는 백 개쯤 될 만한 연이 아파트마을 하늘을 뒤덮습니다. 연줄에 풀을 먹입니다. 유리가루 먹이면 더 단단하며 연싸움에서 이긴다 하지만, 나는 유리가루까지 먹이지는 못했습니다. 유리가루 먹이면 연줄을 어찌 잡나 싶었어요. 아이들 누구나 손수 연을 만들 줄 알고, 실을 감을 줄 압니다. 집에서는 언제나 어머니 거들며 바느질도 하고 갖은 집일을 다 하지요. 웬만큼 찢어진 옷은 사내도 가시내도 스스로 기웁니다. 아이들 누구나 바느질 못한다 하면 놀림을 받았어요.


- 교사들이 말하는 지극히 당연한 교육적인 견해가 여지없이 짓밟혀 버리는 곳에 아이들의 인권을 키워 가는 참교육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환하다. (1963년 1월 6일)
- 두 아이가 다 산문이라고 쓴 것이 절실한 감정을 호소하여 글줄도 감정의 파동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끊어 썼기에 훌륭한 생활 시, 또는 생활 서사시로 되어 있었다. (1963년 5월 13일)
- 어른들은 그림을 그리든지 글을 쓰든지 관념적으로 개념적인 것을 그리고 쓰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구체적인 것, 현재 살아 있는 것을 보여준다. (1963년 6월 8일)
- 백일장 행사가 글짓기 교육을 망치고 있다. 작품의 심사도 제대로 되기를 바랄 수 없다. 출제도 옳게 못 하는 사람들이 작품인들 어찌 바로 보겠는가 … 잔디밭에 가서는 씨름을 하고, 또 그밖에 아이들은 온갖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 내었다. 글짓기고 시 짓기고 그까짓 것이 다 뭘까? 천진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어디 있는가? 저녁때가 되어도 아이들은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1964년 6월 6일)

 

 


  커서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할는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이 한 살 먹기도 되게 힘든데, 언제 어른이 되는 줄 알 턱이 없습니다. 생일떡 한 번 먹자고 한 해를 기다리는 나날이 몹시 길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기 아닌 놀기로 보내다 보니, 하루가 참 길었겠지요. 아침부터 밤까지 즐기던 놀이 가짓수를 헤아리자면, 아마 백 가지가 넘을 테고, 이백 가지쯤 될 수 있어요.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길에서도, 또 동무네 집에서도, 언제나 새롭게 놀이가 떠오릅니다. 아이들마다 새로운 놀이를 몇 가지씩 생각해서, 저마다 생각한 놀이를 모두 다 합니다.


  놀이를 할 적에는 사내나 가시내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저 똑같이 합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사내보다 키와 덩치가 큰 가시내 많았고, 사내보다 힘센 가시내도 많았습니다. 구태여 서로를 가르지 않아요. 때로는 사내와 가시내가 따로 무리를 지어 겨루기도 하는데, 사내 쪽이 밀릴 때가 많습니다.


  놀고 싶으면 혼자 놀아도 되고, 동무를 불러도 됩니다. 동무를 부르고 싶으면 동무네 집 앞에 가서 섭니다. 동무 이름을 큰소리로 외칩니다. 한 번 척 부르면 창문 쾅 소리 나게 열고는 “알았어! 나간다!”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두 번이나 세 번 불러도 맞받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거의 어김없이 이 아이가 집에서 꾸중을 듣습니다. 숙제도 공부도 않고 놀기만 한다고 집에서 꾸지람 듣겠지요. 동무 얼굴 아닌 동무 어머님 얼굴 쏙 나오면서 잔뜩 찌푸린 낯으로 빽 소리 지르시면 엉덩이에 불이 난듯 내뺍니다.


  그러나, 혼쭐이 난대서 놀기를 그칠 아이들이 아니지요. 부르고 또 부릅니다. 내빼고 또 내뺍니다. 동무네 어머님은 지친 나머지 아이를 풀어 줍니다. 어느 때에는 “얘들아, 숙제는 하고 놀게 하자.” 하고 우리를 부릅니다. 그러면 “네.” 하고 말씀드리고는 동무네 집으로 들어갑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숙제를 하지요. 이십 분쯤 숙제를 하노라면 동무네 어머님이 무언가 주전부리를 내어줍니다. 내 국민학교 적에는 웬 숙제를 날마다 멧더미처럼 안기는지, 하루에 두어 시간 들여도 다 못할 적 많아요. 숙제더미를 해내느라 골을 썩이다가 겨우 마치면, 두 팔 번쩍 치켜들고는 “야, 이제 놀자!” 하고 외칩니다. 동무도 나도 숙제 사슬에서 풀려 홀가분하게 뛰쳐나갑니다.


- 꽃을 꺾지 말라, 나무를 꺾지 말라고 하는 것은 꽃과 나무를 보고 즐겨야 한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생명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길러 주는 일, 이것이 교육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1964년 4월 22일)
- 어디 아늑한 마을 한쪽에서 아무도 몰래 살아가고 싶은 마음, 구수한 마을 사람들의 얘기나 들으며, 마을 아이들의 귀여운 웃음과 뛰노는 모습이나 바라보면서, 채소를 가꾸고 염소라도 먹이면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앞으로도 이 고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할 것 같다. (1967년 3월 7일)
- 선생들은 손해를 안 보려고 한사코 아이들을 조르는 것이고, 이렇게 다른 직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도 예사로 잔인한 체벌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나서 교사와 학교와 교육,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해 증오와 복수심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 내 머리는 지금 너무나 어지럽다. 학교 돈을 걷어 먹으려고 눈이 뒤집힌 교장, 술, 아이들이 수라 장판이 되어도 방치해 두는 교사, 기성회비를 안 낸다고, 아니, 안 낼 것이라고 미리 예방 삼아 혹독한 체벌을 주는 ‘모범 교사’,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1967년 3월 23일)

 

 


  학교에서 우리들은 벌을 서면서도 놉니다. 두 팔을 들며 벌을 서지만 서로 키득키득 웃으며 놀다가 걸려, 교실 밖으로 쫓겨납니다. 교실 밖 골마루에 서서 또 서로 키득키득 웃으며 놀다가 걸려 흠씬 얻어맞고는 운동장을 빙빙 돕니다. 그러면, 운동장을 헉헉거리며 달리더라도, 또 서로 키득키득 웃으며 놀아요.


  그런데, 국민학교 적에도 교사들은 몽둥이로 두들겨팰 뿐 아니라 손바닥으로 따귀를 때렸고, 주먹으로 머리와 가슴과 배를 후려쳤습니다. 구두 신은 발로 정강이를 차거나 배와 옆구리를 걷어차기도 하고, 쇠자로 팔뚝과 손가락과 손등과 허벅지를 벌겋게 때렸습니다. 당구채로 손톱 끝을 때려 피멍 들게 한 교사가 있고, 출석부 찢어지도록 머리통 후려갈긴 교사가 있습니다. 힘이 그닥 안 센 아줌마 교사나 할머니 교사(할머니 아닌 그저 나이가 쉰 줄 넘거나 예순 줄 가까운 교사였겠지요)는 플라스틱자를 세워 톡톡 내리쳐요. 그러면 손가락이며 손등이며 허벅지이며 빨간 줄이 죽죽 생길 뿐 아니라, 아픔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머리카락 휘어잡아 교단으로 끌어당기는 교사가 있고, 분필을 던져 눈자위에 푸른 멍 들게 하는 교사가 있습니다. 분필지우개를 던져 머리에 분필가루 하얗게 묻도록 하면서 분필가루 못 털게 하는 교사가 있어요. 밀걸레자루로 엉덩이에 피멍 들게 때리는 교사가 있는 한편, 밀걸레를 얼굴에 비비며 ‘걸레만도 못한’ 같은 막말을 아이들한테 퍼붓는 교사가 있었어요.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좀 많이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모인 데였습니다. 학교도 가난하고 아이들도 가난합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대놓고 돈봉투를 바랐고, 아침모임이나 저녁모임 자리에서 우리더러 돈봉투 가져오라고 밝히는 날이 퍽 많았습니다. 아이들 집살림 어떠한 줄 뻔히 알면서 돈을 바랍니다. 아이들 집살림 걱정하지 않으면서 돈을 내놓으라 윽박지릅니다.


  무엇이 그토록 교사들을 ‘악마’로 만들었을까요. 왜 그토록 교사들이 ‘악마’가 되어야 했고, 무엇이 이들을 손찌검과 주먹질과 막말을 일삼도록 이끌었을까요.


  나와 동무들은 교사로 오랜 나날 일한 사람이 새해에 담임이 되면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 말 못합니다. 누구라도 ‘갓 대학교 마쳐 새로 교사가 된 젊은 여 선생님’이 우리 담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대학교를 갓 마쳤더라도 남 선생님은 주먹다짐이 드셀 뿐 아니라, 기운이 넘쳐서 신나게 매타작을 합니다. 게다가 군대까지 다녀온 남 선생님이라면 아찔합니다. 이와 달리 스물 조금 넘기고 교사살이 처음 하는 여 선생님은 우리들을 막말이나 주먹다짐으로 다스리려 하지 않아요. 개구쟁이들과 복닥이며 두 해 세 해 네 해 지나고서야 비로소 막말과 주먹다짐이 몸에 붙지요. 당신들 생각하기로는 이 개구쟁이들은 때리고 나무라고 마구 퍼부어야 ‘말을 듣는다’고 여겼을 테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걷어야 하는 돈과 폐품과 숙제 따위가 어마어마하게 많았어요.


- “남을 욕하는 것은 어째서 나쁜가?” 대답이 없다. 한참 있다가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김일겸이다. “그 아이 마음이 나빠집니다.” 옳다. 뜻밖의 대답이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참 좋은 대답이다. 남을 욕하거나 놀리거나 때리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이 나빠지니 좋지 못한 것이다. (1970년 4월 23일)
- 여름마다 아이들은 곤충채집이란 이름으로 생명을 학살하는 훈련을 강요받는다.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심성을 가질 수 있으며, 자라나 어른이 되었을 때 평화로운 통일 민주 국가를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 (1970년 4월 28일)
- 나라의 행정 전체가 도시 중심, 있는 사람 중심인데, 말단 월급쟁이들이 이런 산골짜기까지 가난한 사람들 위해 찾아오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1970년 6월 23일)

 

 


  1962년부터 2003년까지 교사 한 사람이 쓴 일기를 그러모은 책을 읽습니다. 이 가운데 1962년부터 1977년 사이에 쓴 일기를 먼저 읽습니다. 《이오덕 일기》(양철북 펴냄)입니다. 《이오덕 일기》는 모두 다섯 권으로 갈무리해서 나왔고, 1권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네, 삶을 가르쳐야지요. 어떤 삶을 가르쳐야 할까요? 네, 아름답게 누릴 삶을 가르쳐야지요. 아름답게 누릴 삶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네, 사랑으로 가르쳐야지요. 아름답게 누릴 삶을 사랑으로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요? 네, 아이들 모두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겠지요.


  1975년에 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나서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내 지난날을 더듬으면서 《이오덕 일기》 1권에 나오는 시골마을 아이들 삶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시골마을 아이들 삶에다가, 시골마을 아이들을 만나며 삶을 가르치려 하는 이오덕 선생님 모습을 떠올립니다.


  나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여섯 해에 걸쳐 국민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교사들이 왜 이다지도 ‘악마’와 같이 모질고 짓궂으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나한테 작은아버지뻘이거나 사촌형이거나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 사람들은, 또 나한테 작은어머니뻘이거나 사촌누나이거나 이웃집 아줌마 같은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얼굴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를 들볶으며 괴롭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우리한테 숙제 지옥을 날마다 선물했을까요. 왜 우리한테 시험 지옥을 다달이 여러 차례 베풀었을까요. 왜 우리한테 체벌과 폭력과 따돌림과 편애와 인권침해와 인격모독을 언제나 끊임없이 쏟아부었을까요. 왜 우리한테 그토록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면서 당신들은 날마다 숙직실에서 술잔치를 벌였을까요.


  남 선생님이 담임이 되면, 이들은 으레 아침 수업을 안 합니다. 남 선생님들은 아침 한두 시간쯤 으레 자습(자율학습)을 시킵니다. 지난밤에 술을 잔뜩 먹은 나머지, 교실에 있는 ‘교사 책상’에 엎디어 자기 일쑤요, 때로는 양호실 침대에 누워서 자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숙직실에서 못 일어나 곯아떨어진 채 있기도 해요. 주번이 되면 숙직실이나 양호실이나 어디 빈 교실 돌아다니면서 ‘우리 담임’이 어디에서 술에 절어 뻗는 바람에 수업에 안 들어오는지를 찾기 일쑤였습니다.


- 이 벙어리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런데, 이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골목이나 운동장에서 놀 때나 싸울 때는 조금도 거침없이 내뱉는 말이 있다. 개새끼! 씨팔년! 하는 말이다. 이런 욕설밖에 배운 말이 없다는 것인가 …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군대식 훈련, 통제와 강압적인 명령으로 이뤄지는 교육, 여기에 무슨 민주적인 대화가 있으며, 협의와 토론과 참된 의견의 교환과 삶의 창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 명령만의 질서와 체제에서는 아이들이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고, 노예처럼 길들여지는 동물이 될 수밖에 없다. (1971년 10월 23일)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현실 속에 서민성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 싶다. 귀족과 서민은 이조 시대나 그 이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다. (1973년 10월 14일)
- 동화책 하나 변변히 읽지 못하는 아이들, 책이라고는 교과서밖에, 그것도 그냥 겉읽고 지나갔을 이 아이들, 노래 하나 배우지 못하고, 배웠더라도 그런 것은 다 잊어버리고 유행가와 욕설과 도시 동경 병에 걸려 있는 이 아이들, 이 아이들을 어찌하겠는가! (1974년 2월 11일)

 


  내 이학년 일학기 때에 담임을 맡은 분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안 때렸습니다. 우리들을 주먹으로도 손바닥으로도 몽둥이로도 출석부로도 밀걸레자루로도 안 때린 이학년 일학기 때 담임 여 선생님은 그만 일학기 마치고 학교를 떠나셨습니다. 학교를 떠나는 날에는, 한 반 예순 아이들 모두한테 다 다른 선물과 편지를 마련해서 하나씩 안겨 주며 울었습니다. 그때에는 하나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분은 교무실에서 다른 교사들한테서 어떤 말을 들었을까요. 교무주임과 교감과 교장한테서 어떤 말을 들었을까요. 왜 아이들을 안 때려서 당신 수업 때에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느냐는 핀잔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내 육학년 이학기 때에 갑자기 새로 와서 담임이 된 분은 남 선생님인데에도 으레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남 선생님은 누구나 차갑고 매서운 얼굴로 우리를 쏘아보기만 했습니다. 여 선생님조차 우리를 바라보며 안 웃기 일쑤였어요. 아이들한테 웃음을 보이면 얕잡힌다고 생각했을까요. 아이들한테 웃어 보이면 헤벌레 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싱글벙글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산수 깜지 쉰 장’을 숙제로 내주는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다른 남 선생님들과 달리 공도 같이 차고, 웬만한 놀이를 함께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졸업사진첩 사진을 찍을 때에 내가 이분 곁에서 옆구리를 간지럽히고 코딱지 파는 모습을 보여주어도 나를 꾸짖지 않고 ‘사진 찍는데 웃기지 마라’ 하면서 웃음을 참으며 모두를 귀엽게 바라보았습니다. 육학년 일학기까지 ‘남 선생님들 술에 절어 아침마다 숙직실에서 해롱거리는 모습’ 지켜보기 일쑤였지만, 이분을 찾으러 숙직실에 간 적은 떠오르지 않아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리를 모질게 때리고 우리한테 거친 말 일삼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리한테 상냥한 눈빛과 웃음으로 나긋나긋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교육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요. 교과서는 우리한테 어떤 어른으로 크라는 이야기를 담았을까요. 동시는 왜 이쁘장한 말재주 놀이만 가득하고, 우리가 학교에서 보내는 삶은 왜 한 줄로도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학교에서는 왜 뻔질나게 돈을 걷고, 걷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방위 성금, 불우이웃돕기 성금, 평화의댐 성금, 때때로 전투기 성금과 구축함 성금 같은 돈은 모두 어느 주머니로 들어갔을까요. 학교에 왜 어린이은행이 있었고, 이 어린이은행은 왜 육학년 졸업을 해야만 돈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학교에서는 왜 다달이 쌀을 걷었으며, 학교에서는 왜 빈병과 신문종이를 잔뜩 모으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을까요. 교육대학은 이런 짓 하라고 교사를 길렀나요. 교육대학에서는 이런 짓 시키는 교육을 하고, 아이들 때리고 윽박지르며 얕잡아보는 교육이론을 가르쳤을까요.


- 그까짓 교육장들 비위 맞춰 동네사람들 등지는 것보다 교육장 꾸중 들어도 지방사람들이 나를 믿어 주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다. 학교는 교육장이 주인이 아니다.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주인이어야 하니까. (1975년 11월 25일)
-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길러 보겠다는 교사의 사랑이다. 이것만 있으면 그 다음의 방법은 모두 각자가 창조해서 할 일이다. 여러분들이 이론을 만들고 교육을 할 것이지 무슨 유명한 문학가들의 말을 너무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 (1976년 8월 19일)
- 국민학교 아이들은 선으로 어떤 모양을 그린다는 것이 아주 서툴고, 한편 색채로 감정을 나타내는 일에서는 색의 선택에서나 색의 조화에 있어서 선천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색채로 그리는 일에만 주로 의존하고 있었고, 따라서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이웃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흉내내고부터 그만 그림이 아주 엉망이 되어 버리고 전혀 창의성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 오늘날같이 아이들이 억압된 상태에 있어서는 감정의 해방이 지극히 중요하며, 이것은 사물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일에 어쩌면 앞서야 할지 모른다. (1977년 11월 22일)

 


  《이오덕 일기》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국민학교 담임으로 이오덕 선생님이 한 해, 아니 한 학기, 아니 하루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 교사들은 구타와 폭력과 체벌과 인권침해와 인격모독과 편애와 돈걷기와 점수매기기와 차별과 따돌림을 일삼아야 했을까요.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면 아름다운 삶 될 텐데요. 즐겁게 웃고 즐겁게 사랑하면 저절로 교육 이루어질 텐데요. 채찍질을 한대서 말이 잘 달리지 않아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노예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기계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장난감이 아니에요. 아이들은 아이들이에요.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아요. 교사로 일하는 어른들 모두 아이들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아요. 어버이가 된 어른들 모두 아이들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아요. 아이들과 두 눈 똑바로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해 봐요. 아이들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주먹질을 하든 막말을 퍼붓든 해 봐요. 할 수 있나요? 할 수 있겠습니까? 할 만한가요?


  어른도 아이도 사랑받을 때에 즐겁게 웃어요. 어른도 아이도 사랑받을 때에 즐거워요. 교육이란 사랑이에요. 사랑을 하지 않으면 교육을 이루지 못해요.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려고 학교를 다녀요. 교사들은 사랑을 가르치려고 학교를 다녀요. 교과서를 배우려고 학교 다니는 아이란 가여워요. 교과서를 가르치려고 학교 다니는 어른이란 불쌍해요. 교과서를 배우러 학교에 간다면, 처음부터 학교에 갈 까닭 없어요. 집에서 며칠 달달 외우면 그만인 교과서예요. 교과서 달달 외우도록 시키려는 교사라면, 처음부터 교사가 될 까닭 없어요. 교사가 없어도 아이들은 교과서 얼마든지 달달 외울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바로 어른들 스스로 배우고 싶으며 누리고 싶고 즐기고 싶은 사랑을 가르쳐야지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바로 어른들 스스로 이녁 삶 사랑하는 아름다운 눈빛과 손길과 마음밭을 보여주어야지요.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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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의 느낌글과, 사진으로 올리신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함께 천천히 오래오래 읽습니다. 그리고 또 제 어린 날의 시간과 교육과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또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오래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는다고 읽었긴 하나, 그저 아이들을 참교육으로 가르치고자 하시는 분의 글,이라 생각하고 눈으로만 읽었지 실상 진정 마음으로 하나하나 그 빛을 헤아리며 읽지는 못했던 듯 싶었지요. 참 귀한 글과 귀한 책을 지금에야 마음에 새기며 읽습니다.
참 선생질 못할 짓이다...그러니 학생들도 학생 노릇이 얼마나 고달픈가 생각 듭니다. 정말 어른들도 자기가 사랑받을 때 기쁘고 살맛이 날텐데 그 살맛나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마음으로 보듬으며 함께 누리는 삶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될까 하네요.
마음빛 비추며, 온 마음으로 쓰신 아름다운 글 감사히 받아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오늘 저도 또 새로운 빛으로 새 하루를 예쁘고 아름답게 시작합니다.~

숲노래 2013-06-23 11:49   좋아요 0 | URL
이오덕 선생님 책을 새롭게 다시 읽으면 언제나 새로운 빛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고 느껴요. 이오덕 선생님하고 오랜 벗님으로 지낸 권정생 님 책도, 또 전우익 님 책도 늘 새로운 이야기빛을 우리한테 베풀어요.

마음속에서 빛이 샘솟도록 이끄는 힘이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되고, 사랑이 될 때에 시나브로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구나 싶어요.

<이오덕 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2013년 오늘 돌아볼 때에도 그닥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못했다고 느껴요. 더 고단한 입시지옥으로 바뀌었고, 시골은 아주 망가져 버려 도시바라기에서 허덕이며, 도시는 도시대로 월급기계처럼 뒹구는 흐름이 짙어요.

사랑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 나라에 사랑이 언제쯤 싹틀 수 있을까요...

잎싹 2013-07-2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마음에 드는 서재를 찾은 느낌입니다.
저도 이 책 사보고 싶어요.
좋은 글도 잘 읽고 갑니다. 자주 들릴게요.~~^^

숲노래 2013-07-20 00: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마실해 주셔요.

다섯 권 장만하는 데에 목돈이 들지만,
찬찬히 목돈 모으는 즐거움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삶을 누리는 빛 늘 곱게 여미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