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내가 갈 길 (2014.9.9.)



  내가 앞으로 갈 길이 무엇인지 다시 헤아려 본다. 책상맡에 놓고 늘 돌아볼 그림을 새로 그리기로 한다. 먼저 숨을 고르고 종이를 바라본다. 빛연필을 하나씩 집어 하나씩 그림을 넣는다. 우리 보금자리와 도서관과 배움터가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푸른 숲을 그린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호미를 쥐고 연필을 들면서 노래하고 춤출 수 있기를 꿈꾼다. 나무가 우리를 감싸고, 풀과 꽃이 우리를 살찌운다. 별과 새가 하늘을 누비고, 풀벌레가 노래잔치를 베푼다. 아름다운 사랑이 푸릇푸릇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노란 해와 달과 미리내를 살그마니 찍으면서 그림을 마무리짓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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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자투리종이로 인형 (2014.8.25.)



  큰아이가 쓰고 남은 자투리종이를 그러모으다가 이 자투리에 그림을 그려서 인형으로 만들어도 되리라 생각한다. 자투리종이가 아주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금만 둘러보아도 요즈음은 종이가 아주 넘친다. 곳곳에 안 쓰고 버리는 종이가 넘실거린다. 이 종이는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이 종이는 모두 어디로 갈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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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불타오른다 (2014.8.23.)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내 마음을 어느 만큼 헤아리면서 지내는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생각하면서 파란 거미줄을 그린다. 불타오르는 온갖 생각을 그린다. 차분한 넋과 흔들리는 생각은 서로 얼마나 다를까. 나뭇잎을 닮은 작은 촛불 하나가 어떻게 크게 타오르는 불길이 될까. 내가 걸어가려는 길을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글씨로 적어 본다. 나는 내가 걸어가려는 길을 씩씩하게 걷되, 즐겁고 아늑하면서 사랑스레 돌볼 수 있어야겠다. 튼튼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내 길을 걸어야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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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2 (2014.8.17.)



  이틀째에 ‘한국말사전’ 그림을 마무리짓는다. 이 그림은 부엌에서 밥을 지을 적에 도마질을 하는 눈높이에 붙이기로 한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면서 늘 ‘한국말사전’이라는 이름을 바라볼 생각이다.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즐겁게 되새기려는 뜻이다. 내 마음속에 이야기가 곱게 드리우기를 바라는 뜻이다. 이틀째 그리는 그림은 생각보다 일찍 끝난다. 옆에서 지켜보는 네 살 산들보라가 “나 이거 좋아. 나 나뭇잎 좋아.” 하고 말한다. 그래서, 그림 위쪽에 나뭇잎을 잔뜩 그려 넣었다. 온갖 빛깔로.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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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1 (2014.8.16.)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한창 쓴다. 출판사에서 새 원고를 받아들일는지 손사래를 칠는지 모르지만,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글꾸러미를 마무리지어서 보냈다. 모든 길이 사랑스레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널찍한 나무판을 평상에 깐다. 늦여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등줄기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림을 그린다. ‘한국말사전’이 곱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을 그림에 담기로 한다. 다섯 글자를 쓰고 난 뒤, 글자마다 별꽃으로 둘러싼다. 사마귀, 제비, 나비, 잠자리를 하늘빛으로 그린다. 이 다음으로 무엇을 그릴까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후박나무 가랑잎이 그림종이에 톡 떨어진다. 그렇구나. 끄트머리가 벌레를 먹은 후박잎을 그린다. 후박잎 안쪽을 채우고 나서 사랑(하트)을 그린다. 사랑 곁에는 숲(별)을 그린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여는 첫 밑돌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나(1)’를 그린다. 두 글자에 노란 꽃과 빨간 꽃을 그린다. 무지개 물결이 치고 별비가 내리는 데까지 그리는데, 뒤꼍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뭔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는데 아무래도 사람 소리이다. 누가 우리 집에 함부로 들어왔나 싶어 가 보니, 우리 집과 돌울타리 사이로 고추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아저씨가 우리 집 돌울타리를 따라 돋은 무화과나무를 낫으로 벤다. 뭐 하는 짓인가? “뭐하세요?” 한 마디 여쭌다. 우리 집 돌울타리가 무화과나무 때문에 아래쪽으로 무너져 떨어졌단다. 무화과나무 때문이 아니거든요? 예전부터 다 바닥에 있던 돌이거든요? 짜증을 내지 말자고 생각하며, 울타리에서 그 아저씨네 밭으로 고개를 내민 무화과나무를 모조리 손으로 꺾는다. 무화과나무는 벤들 자른들 죽지 않는다. 외려 더 줄기가 힘차게 뻗는다. 저희 집 나무도 아니면서 함부로 낫으로 베는 이런 사람이 우리 집이든 뒤꼍이든 함부로 못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맨손으로 척척 무화과를 꺾는다. 무화과한테 마음속으로 말한다. ‘얘들아, 괜찮아. 그런데 이웃집 밭으로 고개를 내밀지 말고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어야지.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으면 너희는 모두 살 수 있어. 사나운 곳에 가지 말자. 예쁜 곳에서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란다.’ 무화과나무 쉰 그루 남짓 꺾었다. 그러나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은 아이들은 모두 살렸다. 마음이 아파 그림을 마무리짓지 않고 이튿날 마무리짓기로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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