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1 삶책



  삶이 있기에 말이 태어납니다. 삶이 있어 사랑을 짓습니다. 삶을 누리면서 살림을 가꾸는 길을 찾고, 삶이라는 오늘을 보내면서 사람으로서 사람다이 노래하는 빛을 폅니다. 삶이 없으면 말이 태어나지 않고, 말이 태어나지 않는 곳에는 이야기가 없어요. 삶하고 말하고 이야기는 한동아리입니다. ‘산다(살다)’고 할 적에는 “오늘을 간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어제 = 사랑’으로, ‘오늘 = 살다’로, ‘모레 = 생각’이란 얼거리로 만난다고 느껴요. 그저 오늘을 오늘대로 바라보면서 살면 되고, 살아온 어제는 살아온 자국으로 사랑하면 되고, 살아갈 모레는 살아갈 앞길로 생각하면 되지 싶어요. 냇물하고 바람이 흐르듯이 살고, 걸어온 모든 우리 모습을 사랑하고, 앞으로 맞이할 꿈을 그리는 마음이기에 새롭게 바라보는 생각이 샘솟지 싶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깨달으려 애써도 나쁘지 않으나, 오늘을 새롭게 그리면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동안, 늘 다 다른 하루가 우리한테 찾아오는 줄 느낄 만하다고 봅니다. 오늘을 살기에 태어나는 말을 엮으니 이야기로 피어나고, 이 이야기를 갈무리하니 말꾸러미(책)가 나와요. 누구나 삶을 누리니, 누구나 이 삶을 그대로 옮길 적에 다 다르면서 빛나는 삶책 한 자락을 얻어 서로 곱게 나누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2023.3.13.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0 도서정가제



  책나라(출판왕국) 일본에서는 책을 살 적에 ‘책에 찍힌 값’대로 돈을 내지 않습니다. 일본은 ‘책에 찍힌 값 + 낛(세금)’입니다. 일본은 ‘책을 사는 사람’이 ‘책에 붙는 낛(세금)’까지 더 치릅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낛’조차 안 낼 뿐 아니라, ‘적어도 10% 에누리’를 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덤(적립금)까지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책에 붙은 값 + 낛’을 치를 노릇인데, ‘낛’조차 안 내면서 에누리까지 바라는 마음이라면, 책을 왜 읽을까요? 두고두고 읽을 아름다운 이야기를 묶기에 비로소 책입니다. 싸구려로 팔아치워서 떼돈이나 목돈을 벌어들이려는 뭉치에는 ‘책’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책’이 아닌 ‘책 시늉을 하는 종이뭉치’를 싸구려로 사들여 ‘빨리 훑고 얼른 팔아치우는’ 굴레에 스스로 사로잡혔다고 여길 만합니다. 모름지기 ‘책’이란 이름을 붙이려면, 책집에서 1벌 읽고, 사서 집으로 들고 와서 1벌 더 읽고, 틈틈이 다시 들추며 끝없이 되읽으면서 마음을 살찌우는 빛살이어야겠지요. 두어 벌조차 못 읽는다면 불쏘시개나 그릇받침을 산 셈입니다. 마음빛을 살 적에 에누리를 바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면, 아름다운 책을 읽는들, 마음을 가꾸는 길하고 멀 테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2023.3.13.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9 동업자 정신



  책마을을 망가뜨리는 길 가운데 하나는 ‘동업자 정신’입니다. 이른바 ‘암묵적 룰’이라 하면서 ‘좋게좋게 봐주자’고 하는 울타리(카르텔)가 있어요. 아끼려는 마음이 나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책마을은 오래도록 ‘꼰대 술꾼’을 ‘어른으로 모시’면서 ‘술 따르는 젊은 아가씨 붙이기’를 일삼았어요. 예전에 나온 ‘창비시선’을 보면 책끝에 붙은 ‘풀이(해설)’에 글꾼(시인·소설가·평론가·기자)이 모여 질펀하게 술판을 벌인 뒷얘기가 참 자주 나오는데, 하나같이 엉큼하고 다랍습니다. 사람들은 ‘고은’ 하나만 알 테지만, 누가 고은한테 술을 사주고 함께 밤새워 술지랄을 떨었을까요? 요새는 예전처럼 술판은 안 할는지 모르나 ‘서로 치켜세우는 서평·추천’이라는 ‘동업자 정신’이 넘실거립니다. 아니, ‘좋게 서평·추천하기’는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어느덧 ‘서평단’을 대놓고 할 뿐 아니라 ‘서평단 클럽’까지 목돈을 들여 꾸립니다. ‘두레’가 아닌 ‘동업자 정신’입니다. 끼리질(문단 카르텔)을 쌓을수록 사람들은 책하고 등질 텐데, 가만 보면 ‘책다운 책하고 등지는 사람이 늘수록, 엉터리 장사책이 판치는 셈’이지 싶어요. 돈·이름·힘을 쳐다보고 바라면서, 살림·사람·숲을 짓밟는 책판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8 빛날책



  이제 ‘케익’이란 이름인 먹을거리를 살짝 먹을 수 있습니다만, 싸움판(군대)에 끌려간 스물한 살 때까지 아예 못 먹었습니다. 싸움판에 끌려간 첫해 한겨울에 눈밭을 하염없이 걸으며 멧골을 끝없이 넘는데요, “이 눈은 케익이야. 난 이 눈케익을 즐겁게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걸어내고 말 테야.” 하고 생각했어요. 뜨거운물도 그릇에 담자마다 식어버려 이내 얼어붙던 강추위에 눈을 훑어먹고서 여덟 달 뒤에 비로소 말미(휴가)를 얻어 밖에 나왔어요. 동무한테 “나 케익 사 줘.” 하고 얘기했고, 커다란 ‘생크림케익’ 두 판을 혼자 먹어치웠습니다. 다만 그 뒤로 케익을 따로 먹지는 않아요. 제 몸에서 안 받거든요. 아마 아홉열 살 무렵일 텐데, 우리 아버지가 작은아들 태어난날이라며 거나한 채 케익을 사오셨고 어머니는 “에그, 그 아끼는 작은아들이 케익을 먹으면 배앓이를 하고 게우는데, 또 사왔네.” 하며 혀를 차셨어요. 이날도 어김없이 배앓이를 하고 게우며 눈물범벅이었어요. 저한테 ‘태어난날(생일)’은 눈물투성이입니다. 누가 난날을 기리자고 하면 “어느 하루만 아닌, 모든 날이 아침에 새로 눈뜨니 빛날(생일)이에요.” 하고 말해요. 하루를 기리는 빛날책도 좋을 테지만, 저는 ‘온날책’이 한결 마음에 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7 길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길에서 그야말로 한참 보냅니다. 전남 고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 마을책집으로 가려 해도 길에서 두어 시간을 들이고, 서울라면 예닐곱 시간을, 부산·부천·인천·수원이라면 일고여덟 시간을, 대구라면 여덟아홉 시간을, 광주라면 너덧 시간을, 장흥·벌교라면 서너 시간을, 진주·전주라면 대여섯 시간을, 강릉·구미로 갈 적에는 열한 시간을, 영양으로 갈 적에는 열두어 시간을, 포항·음성·원주·청주로 갈 적에는 열 시간을, 넉넉히 길에서 씁니다. 큰고장에서 산다면 길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하루를 쏟지는 않으리라 봅니다만, 시골에서 살기에 여느 때에 느긋하게 풀꽃나무하고 해바람비를 맞이하고 누려요. 예전에는 길에서 책만 읽었으나, 아이들이 곁에 오고 나서는 아이들한테 주고 이웃님한테 건넬 노래꽃(동시)을 쓰고, 요새는 꽃글(동화)을 함께 씁니다. 뭐, 그렇지요. 고흥서 서울을 다녀오자면 길에서 열서너 시간을 보내는데, 이동안 낮잠도 누리고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글도 쓰고 생각에 잠겨요. 여느 때에 하지 못한 손전화 쪽글도 이때에 몰아서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오가며 들꽃 곁에 쪼그려앉거나 나무 곁에 서서 소근소근 말을 걸고, 두 팔을 하늘로 뻗어 바람을 주무르기도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