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넋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9 속



  겉을 슥 보면 ‘훑다’입니다. 속을 제대로 보면 ‘읽다’예요. 이야기하고 줄거리를 알아차리려고 바라보기에 ‘읽다’요, 이야기나 줄거리를 건성으로 스칠 적에는 ‘훑다’입니다. 속·속살·속내하고 알·알맹이·알갱이를 받아들이려는 매무새라면 ‘읽다’이지만, 이런 매무새하고 멀다면 ‘훑다’예요. 책은 속으로 읽습니다. 책은 속을 읽습니다. 책은 마음으로 읽습니다. 책은 마음을 읽습니다. 속으로 읽어 속을 받아들이면서 기쁘게 배우는 길이기에 ‘읽다’예요. 속을 헤아리거나 살피려는 마음이 없으면 ‘훑다’이고요. 겉·껍데기·껍질이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쌀겨로도 밥을 지어서 먹어요. 겨를 벗긴 흰쌀보다는 겨까지 나란히 받아들이는 밥이 우리 몸을 한결 살찌웁니다. 그런데 겨만으로는 밥이 안 돼요. 속알을 감싼 겨에도 숨빛이 가득합니다만, 속알을 즐거우면서 든든히 누리려고 겨를 받아들입니다. 엮음새나 겉그림이란 ‘겨’예요. ‘겨’가 없이 알맹이만 살핀다면 뻑뻑해요. 겨는 겨대로 가꾸면서 속알을 든든히 빚는 길로 살피면서 나누기에 비로소 알뜰하고 알찹니다. 겨훑기를 넘어 밥짓기로 나아가려는 오롯읽기일 적에 지은이(글쓴이·엮은이·꾸민이·펴낸이) 숨결을 고스란히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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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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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8 지기



  어느 책집이든 책집지기가 돌봅니다. 책집을 꾸리는 밑힘은 늘 책집지기입니다. 책집지기는 스스로 사랑하는 책을 건사하면서 책시렁을 추스릅니다. 때로는 ‘손님이 바라는 책’을 갖추지만, ‘책집을 여는 마음’은 ‘그동안 스스로 사랑해 온 책을 두루 나누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느낍니다. 먹고살 길을 찾으면서 종이쓰레기터(폐지처리장)에서 헌책을 줍고, 골목에서 헌책을 건사하면서 길장사부터 연 책집지기는 ‘스스로 사랑할 책’을 쳐다볼 겨를이 없이 ‘손님이 바라는 책’만 살피면서 바쁘게 살아내며 비로소 책집을 차리는 나날을 맞이합니다. 책을 잘 모르는 채 ‘손님이 바라는 책’을 만지던 일꾼에 머물러도 안 나쁘지만, 책집지기라는 이름으로 거듭날 적에는 ‘손님이 함께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책집지기 마음’을 책마다 살포시 얹어요. 스스로 배우며 사랑을 느낀 책을 한켠에 놓고, 손님한테서 배우며 사랑을 느낀 책을 곁에 놓는 얼개입니다. 지은이하고 읽는이 사이에 선 책집지기는 징검다리이자 길목입니다. 그리고 책집지기는 읽는이란 자리에 나란히 있기도 합니다. 스스로 읽기에 가꾸고, 배우며 읽기에 돌보고, 어깨동무로 읽기에 사랑하고, 새롭게 읽기에 빛나는 곳이 책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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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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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7 망가진 세대



  요즈막을 살아가는 어느 또래한테 ‘망가진 세대’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말을 듣고서 이 이름을 자꾸 붙이려 하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저대로 ‘망가진 또래’인 나날을 보냈고, 둘래 언니 또래나 동생 또래는 그들 나름대로 ‘망가진 살림’인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곰곰이 보면 어느 해에 태어난 사람이든 모조리 ‘망가진 터전’을 맞이했어요. 엉터리 벼슬판·바보스러운 싸움·모자란 먹을거리·총칼에 짓밟힌 나라·사람을 위아래로 가른 굴레·어리석은 우두머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다 다르게 흘러넘쳤습니다. 우리 삶길을 ‘망가진 길’이란 이름으로 바라보면 스스로 나뒹굴어요. 우리 삶길을 ‘스스로 새롭게 짓고 가꾸어 나누고 누리는 길’로 바라보면 스스로 기운을 내어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남 탓·나라 탓·돈 탓·자리 탓’을 할수록 스스로 빛을 잃어 빚(굴레)에 갇혀요. ‘내 길·내 사랑·내 삶·내 노래’를 바라볼수록 스스럼없이 깨어나면서 스스로 하늘빛으로 나아가요. 누구나 씨앗이자 나무요 숲이자 푸른별이고 온누리입니다. 다 다른 몸빛이면서 모두 하나인 숨빛이에요. 저들(힘바치·돈바치·글바치)은 우리가 참빛을 잃으면서 나뒹굴기를 바라기에 자꾸 ‘망가진 세대’란 말로 길들이려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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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2023.4.24.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6 책집



  쌀집에서는 쌀을 팔고, 빵집에서는 빵을 팝니다. 꽃집에서는 꽃을 팔고, 이웃에 있어 이웃집입니다. 그런데 좀먹은 쌀을 팔거나, 풀죽임물(농약)을 듬뿍 쓴 쌀을 판다면? 총칼(전쟁무기)로 이웃나라를 짓밟는 나라에서 거둔 밀을 사들여서 구운 빵을 판다면? 풀꽃나무 씨앗을 마구 건드리거나 바꾸어서 겉보기로만 이쁜 꽃을 판다면? 담을 맞댄 옆집이라지만 마당에서 비닐을 태우고 밤낮없이 쿵쾅거리고 쓰레기를 휙휙 던진다면? 책집은 어떠한 책이라도 다루거나 팔아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책마을을 망가뜨리는 짓을 하면서 목돈을 벌어들인 펴냄터 책을 ‘베스트셀러’라거나 ‘손님이 바란다’고 해서 들여놓거나 팔아도 될까요? 책집이란, 뜻있거나 뜻깊거나 값있거나 값진 책을 알리기도 하는 자리이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삶길·살림길·숲길·사람길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밝히는 마음이 흐르도록 징검다리 노릇을 하는 자리를 먼저 헤아릴 일이라고 여겨요. 더 많은 책이나 더 좋은 책이나 더 대단한 책이 아닌, 틀에 굳거나 갇히지 않는, 틀에 가두거나 감추지 않는, 누구나 어린이란 마음으로 살면서, 또 어린이 곁에 서며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북돋울 책을 둘 적에 비로소 책집이나 책숲이라는 이름을 쓸 만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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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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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5 날



  하루가 빛난다면 이틀도 빛나고 사흘도 빛나며, 나흘 닷새 엿새 열흘 스물 모두 빛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모두 빛나요. 하루가 어둡다면 이틀도 어둡고 사흘도 어두우며, 나흘 닷새 엿새 열흘 스물 모두 어두우니, 한 해 내내 어둡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은 한 해 가운데 하루라고 일컫는데, 밤에 잠들어 아침에 깨어나는 삶을 돌아본다면, 모든 날이 빛날(생일)이로구나 싶어요. 첫날을 첫걸음 삼아 두걸음 석걸음 차근차근 딛습니다. 다 다른 하루를 다 다르게 걸어가면서 언제나 스스로 빛나는 눈길로 오늘을 지어요. 둘레에서 치켜세워 줄 빛날 하루가 아닌, 스스로 춤출 한 해 모든 날입니다. 이 얼거리를 문득 깨달은 때부터 빛날잔치(생일파티)를 아예 안 하고, 제가 태어난 하루라는 날마저 잊습니다. 다 다른 한 해 내내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새삼스레 즐길거리에 웃음거리에 이야깃거리에 생각거리에 사랑거리에 살림거리를 찾아내고 가꿉니다. “왜 진작 몰랐을까?” 하고 뉘우칠 일은 없습니다. 오늘 알았다면 오늘부터 빛나면 돼요. 아직 모르면 앞으로 익히고 새겨서 빛나면 되어요. 누구나 알맞구나 싶은 때에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맞아들입니다. 빨리 살아낼 하루가 아니듯, 얼른 읽어치울 책이 아니니, 가볍게 걸어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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