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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은 책꽃



  책겉을 이루는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들여다보면 꼭 꽃과 같구나 싶다. 더할 나위 없이 고운 꽃이 모여서 책빛을 이루는구나 싶다. 이 꽃 저 꽃 그 꽃이 모여서 아름드리 책꽃이 되는구나 싶다. 다 다른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태어난 다 다른 책들은 다 같은 자리에 모여 책방도 되고 도서관도 되고 서재도 되면서 다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 어여쁜 책씨가 되리라 느낀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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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읽는 어른으로 살기



  많은 어른들이 어릴 적부터 만화를 ‘재미있고 즐거운 노래가 흐르는 이야기빛’인 줄 느끼지 못한 채 자랐다고 느껴요. 입시지옥과 대학천국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만화는 마치 불온도서인 양 여긴 교사와 학부모 등쌀에 시달리면서, 만화에 깃든 넋을 제대로 못 받아먹으며 살아왔다고 느껴요.


  우리가 즐겁게 보는 웬만한 일본 만화영화는 한국사람이 밑그림과 채색까지 다 해요.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창작만화가 꽃피우지 못합니다. 값싼 노예나 기계처럼 ‘일본 만화영화 그리기’만 하는 한국이에요. 이런 모습을 읽는다면, 이번 세월호 사고도 괜히 터진 일이 아닌 줄 알아채리라 생각해요.


  한국 만화에서는 요즘 들어 더더욱 물빛 이야기가 흐르는 작품이 매우 드물어요. 일본에서는 이런 만화가 참 많아서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쓸쓸합니다. ‘일본 만화영화 그리기’를 벗어나서 ‘우리 이야기 그리기’로 나아가지 못하니까요. 그릴 이야기가 많고, 나눌 사랑이 많으며, 어깨동무할 꿈이 많을 텐데, 이 길을 걷지 못하니까요.


  지구별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일본 만화책을 읽습니다. 예쁜 이웃이 바다 건너에 있거니 여기면서 일본 만화책을 읽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예쁜 이웃 이야기를 만화책으로도 그림책으로도 사진책으로도 만나고 싶습니다. 학습만화나 지식그림책이 아닌, 예술이나 문화가 아닌, 삶을 사랑하는 꿈을 꽃피우는 만화와 그림과 사진과 글을 만나고 싶습니다. 4347.4.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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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에는 나무가 있다



  나무가 한 그루 천천히 자라 이윽고 우람하게 선 곳에 있는 책방에 마실을 가면 즐겁다. 나무를 보면서 즐겁고, 이렇게 굵는 나무를 베어 종이책을 묶는구나 하고 느끼니 고마우면서 즐겁다. 책을 어루만지는 손으로 나무를 어루만진다. 나무를 쓰다듬는 손으로 책을 쓰다듬는다.


  은행나무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잣나무나 소나무로 책을 빚을 수 있을까. 감나무도 탱자나무나 복숭아나무로 책을 엮을 수 있을까. 모를 노릇이다. 아무튼, 나무가 있기에 우리들이 숨을 쉰다. 나무가 있기에 집을 짓는다. 나무가 있기에 책걸상과 옷장을 짠다. 나무가 있기에 불을 때어 밥을 짓는다. 나무가 있기에 연필을 깎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나무가 제 대접을 못 받는다. 나무가 자랄 숲을 함부로 밀거나 없앤다. 나무가 드리울 숲에 골프장이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관광단지를 자꾸 때려짓는 사람들이다. 책을 안 읽으니 나무를 아낄 줄 모를까. 책을 읽으면서도 나무를 사랑할 줄 모를까. 대학생이 늘어나지만 숲은 늘어나지 못한다. 배운 이는 늘지만 숲내음을 맡는 이는 늘지 않는다. 책은 새로 태어나지만 숲은 새로 빛나지 못한다.


  책방 앞에는 나무가 있어 밝고 환하다. 살림집 앞에는 나무가 있어 시원하고 싱그럽다. 마을 앞에는 나무가 있어 푸르고 아름답다. 나무가 있으면서 따사로운 빛이 흐른다. 나무가 자랄 때에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으로 어깨동무를 한다. 나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책을 읽는다. 나무를 가꾸는 손길로 글을 쓴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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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에 책을 읽어요



  아픈 일 때문에 그림책도 동화책도 동시집도 못 읽을 분들이 많구나 하고 느끼지만, 아픈 마음을 달래는 벗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그림책과 동화책과 동시집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과 누리는 어린이책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보듬으면서 어루만진다고 느껴요.


  나는 여러모로 힘들 적에도 한결같이 책을 들여다봅니다. 기쁠 때에만 마음에 와닿는 책일는지, 슬플 때에도 마음에 와닿을 책일는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이제 우리 집 두 아이가 제법 컸는데,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책을 손에 쥘 겨를이라곤 없이 잠조차 거의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일을 하고 아이들 건사하면서 전화 한 통 받거나 걸 틈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에 여러모로 크게 느꼈어요. 이렇게 힘든 몸으로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책인가, 이렇게 힘든 몸이니 다 집어치우자는 마음이 드는 책인가, 힘들고 졸린 몸을 일으켜세울 만하지 않다면 굳이 안 읽어도 되는 책이 아닌가, 하고 여러모로 생각했어요.


  어제 동시집 하나를 놓고 느낌글을 쓰면서 이 동시집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힘들거나 졸립거나 바쁘거나 괴로울 때’에는 애써 손을 뻗어 읽을 만하지는 않네 하고 느꼈어요. 마음을 달래 주지 못했다고 할까요. 예쁘장한 낱말로 엮으면서 무언가 이야기가 있을 법한 동시이지만 마음 한켠을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을 재우며 부르는 이원수 동시나 이문구 동시나 권태응 동시처럼 가슴을 촉촉히 건드리는 사랑을 담지 못하면, 동시가 동시로서 제몫을 못하는 셈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시이든 동시이든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모두 같다고 느껴요. 인문책이건 명상책이건 모두 같겠지요. 가슴을 건드리면서 새 기운이 나도록 이끄는 책일는지, 가슴을 건드리지 못하고 지식만 쌓는 책일는지, 심심풀이와 같은 책일는지, 한갓진 사람만 들여다볼 책일는지 곱씹습니다. 아프거나 바쁘거나 힘들거나 슬플 적에 손에 쥐면 책빛을 아주 또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4347.4.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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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려고 만드는 책



  모든 책은 읽히려고 만든다.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알뜰살뜰 담아서 널리 읽히려고 만든다. 삼백 권을 찍는 책은 삼백 사람한테 읽히려는 뜻으로 만든다. 그러나 삼백 사람한테만 읽히고 싶지 않다. 삼백 사람을 비롯하여 삼천 사람과 삼만 사람한테 아름다운 넋을 나누어 주면서 함께 즐기고 싶다. 삼천 권을 찍는 책은 삼천 사람한테 읽히려는 뜻으로 만든다. 그러나 삼천 사람한테만 읽히고 싶지 않다. 삼천 사람을 비롯하여 삼만 사람과 삼십만 사람한테 아름다운 숨결을 베풀면서 같이 누리고 싶다.


  삼백 사람한테 읽히려고 찍은 삼백 권이 때로는 삼백 사람은커녕 서른 사람한테 가까스로 읽힐 수 있다. 삼천 사람한테 읽히려고 찍은 책이 삼천 사람은커녕 삼백 사람한테 겨우 읽힐 수 있다. 그렇지만, 서른 사람이 알아보았고 삼백 사람이 사랑했다. 서른 사람 손길을 타며 즐겁게 피어나고, 삼백 사람 눈길을 받으며 살가이 노래한다.


  오늘 읽히는 책이 있다. 모레 읽히는 책이 있다. 어제 읽힌 책이 있다. 먼 앞날에 읽히는 책이 있다.

  누가 알아보는가. 누가 사랑하는가. 어떻게 알아보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책을 읽히려는 손길에는 얼마나 넓고 깊은 사랑이 깃드는가. 책을 읽으며 즐겁게 웃는 손길에는 얼마나 기쁘며 반가운 꿈이 자라는가.


  오랫동안 읽히지 못한 채 먼지만 곱게 내려앉은 책을 바라본다. 살살 쓰다듬는다. 책에 내려앉은 먼지가 내 손가락과 손바닥에 까맣게 묻는다. 이 먼지는 무엇일까. 이 고운 책먼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오늘 치운 책먼지는 며칠 뒤 다시 내려앉을까. 오늘은 누군가 책먼지를 닦아 주었으나 몇 해 지나도록 다시 책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을까.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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