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



  우리 집 아이들이 책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생각한다. 나도 어릴 적에 이 아이들처럼 책놀이를 즐긴 적 있던가? 없구나. 없어. 없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책놀이를 즐긴 적 없다. 그저 온몸을 굴리면서 논 적은 많다. 굳이 책까지 써서 논 적이 없고, 책이 퍽 드물던 때이기도 해서 책을 함부로 갖고 놀지 않았다. 우리 집에도 책은 그리 안 많았고, 이웃 동무 집에도 책은 얼마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책 있는 집’ 동무를 거의 못 사귀었다.


  글을 써서 책을 지은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헤아린다. 삶을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일까. 어떤 지식을 이웃한테 두루 알리고 싶은 마음일까. 이녁이 오랜 나날 파헤쳐서 깨달은 슬기를 아낌없이 나누고 싶은 마음일까.


  즐겁게 노래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이 놀이로 거듭난다. 즐겁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삶이 고단한 굴레에 갇힌다. 우리가 손에 쥐는 책은 어떤 책인가. 우리가 아이들한테 건네는 책은 어떤 책인가. 어른들부터 책을 즐거운 삶넋으로 맞아들이는가. 아이들한테 학습이나 교양이나 교육이나 보조교재 따위 이름을 떠올리면서 억지로 안기지는 않는가.


  놀이가 될 때에 책이 책다우리라 느낀다. 놀면서 읽고,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읽을 때에 책이 꽃처럼 피어나리라 느낀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책놀이도 하고 온갖 다른 놀이도 실컷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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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급식과 추천도서



  교육과 복지라는 이름으로 단체급식을 한다. 더욱이 단체급식이 ‘무상급식’이 되도록 돈을 대단히 많이 쓴다. 교육과 복지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교육과 복지가 될 만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찜찜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이마다 ‘몸에 맞는 밥’과 ‘몸에 안 맞는 밥’이 다르다. 학교에 학급이 하나씩 있고, 학급 한 곳마다 아이가 스물이 안 된다면, 이럭저럭 ‘다 다른 아이’를 조금은 살필는지 모르나, 한 학교에 백 사람이 넘어가기만 해도 ‘다 다른 아이한테 다 똑같은 밥’을 줄 수밖에 없다. 너무 바쁘고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 학교에서는 ‘거의 강제 우유급식’을 했다. 우유가 몸에 안 받는 아이가 틀림없이 있는데, 학교에서는 ‘강제 우유급식’을 해서 돈을 걷었다. 우유가 몸에 안 받는 아이는 담임교사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억지로 우유를 집어넣어야 했다. ‘마시기’가 아니라 ‘집어넣기’이다. 집어넣고 또 집어넣으면 ‘체질이 바뀐’대나 뭐라나.


  단체급식도 이런 ‘논리’가 되리라 느낀다. 어느 아이는 밀가루를 먹으면 안 될 수 있고, 어느 아이는 달걀을 먹으면 안 될 수 있으며,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몸에서 안 받기 때문이다.


  나는 김치가 몸에 안 받는다. 어쩌다가 한 점 집어먹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어쩌다가 먹어도 뱃속이 더부룩하다. 나는 찬국수(냉면)도 못 먹는다. 찬국수를 한 점 잘못 집어먹다가 여러 날 배앓이를 하기 일쑤이다. 고작 한 점 집어먹고 말이다. 찬국수뿐 아니라 비빔국수도 똑같다.


  그러면, 이렇게 사람마다 다 다른 몸을 ‘단체급식’은 얼마나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나물을 좋아하는 아이한테 나물 반찬을 넉넉히 줄 수 있을까? 누런쌀로 짓는 누런밥을 좋아하는 아이한테 따로 누런밥을 줄 수 있을까? 보리밥을 좋아하는 아이가 보리밥을 먹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도시락을 손수 싸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은 아직 이르다 할 텐데, 열 살 나이가 되면 이때부터 도시락을 손수 싸서 먹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교육’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손수 밥을 짓는 삶을 배워야 한다. 어른들은 손수 밥을 짓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밥짓기’와 ‘도시락 싸기’를 차근차근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아이는 집에서 ‘밥짓기’와 ‘도시락 싸기’를 즐겁게 배워서, 동무들과 학교에서 기쁘게 밥 한 끼니 누리는 사랑을 받아먹을 수 있어야겠지. 왜냐하면, 교육이기 때문이다.


  복지로 헤아린다면, 집집마다 아침에 아이 도시락을 느긋하게 싸서 내줄 수 있을 만한 겨를을 누려야 한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일터(회사)에서 ‘아이 도시락을 싸서 챙긴 뒤 일터로 오는 겨를’을 한 시간쯤 챙겨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복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은 일터에서 아침 한 시간을 ‘늦게 출근하도록’ 법이나 제도를 마련해야 올바르다. 한 시간 늦게 학교에 가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도, 학교 울타리에서만 끝낼 노릇이 아니라, 회사에서 어른들도 똑같이 이에 맞추어야 올바르다. 왜냐하면, ‘복지’이기 때문이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삶과 몸에 맞추어, ‘제 몸에 맞는 밥을 스스로 챙길’ 수 있어야 즐겁고 아름답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쯤 다니면, 아주 마땅히 제 도시락은 손수 싸야 맞다. 열서너 살이나 열예닐곱 살이나 되고서도 밥짓기도 못한다면, 이 아이는 ‘반쪽짜리 삶’조차 아니다. 제 밥을 제가 차려서 못 먹는다면, 이 아이는 그동안 무엇을 배운 셈일까. 삶과 사랑과 살림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저녁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밥을 먹는 즐거움을 아이들도 학교에서 누려야 즐겁고 아름답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급식실에서 ‘스텐 밥판’을 쨍그랑 소리 나게 들면서 허둥지둥 입에 집어넣어야 하지 않다. 단체급식은 군대질서와 똑같다. 단체급식을 교육과 복지라는 이름으로 자꾸 늘리는 짓은 군대질서를 학교와 사회로 자꾸 퍼뜨리는 짓과 같다. 단체급식을 하는 데에 들일 돈은, 집집마다 ‘도시락 쌀 돈’으로 돌려주어야 맞다. 무상급식을 하느라 돈을 쓰지 말고, 이 돈을 집집마다 주어야 옳다. 집집마다 ‘도시락 쌀 돈’과 ‘도시락 쌀 겨를’을 주어서, 집집마다 ‘참다운 교육과 복지’가 즐겁게 피어나도록 이끌어야 올바르다.


  내가 나한테 ‘내 밥을 짓는 겨를’을 내지 못할 만큼 사회 얼거리에 얽매인 채 일을 해야 한다면, 이러한 일이 나를 얼마나 가꾸거나 살찌울 수 있는가 하고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도시락 하나 쌀 겨를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메마른가? 아이들이 손수 도시락을 못 싼다면, 이런 교육은 무슨 보람이 있는가?


  아이들은 밥을 사랑으로 먹어야 한다. 그저 ‘배만 부르게 채우는 밥’이나 ‘사랑을 받아 즐겁게 먹는 밥’을 느끼고 배우고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추천도서가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 똑같은 틀에 맞추어 똑같이 건네는 책이 아니라, 다 다른 아이들이 스스로 제 삶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 즐겁고 아름답게 ‘책’을 ‘사랑’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단체급식도 추천도서도 모두 사라질 수 있기를 빈다. 4347.1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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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북녘 갈린 한국에서 책이란



  한국이라는 나라로 본다면, 남녘과 북녘이 갈립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른 금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안 보입니다. 높이 높이 올라갈수록 금은 흐릿합니다.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바라보면 금은커녕 어떤 것도 안 보입니다.


  이 땅을 밟으면서 나들이를 하더라도 마음은 하늘을 날면서 널리 바라볼 수 있으면, 둘 사이를 가르는 ‘금’이란 그저 금이지, 아무것도 가를 수 없으리라 느껴요.


  남녘과 북녘은 서로 다른 사회 얼거리요 정치 얼거리입니다. 교육 얼거리나 경제 얼거리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같아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다르고, 고장말은 다르지만, 서로 말로 나눌 수 있는 생각은 같습니다. 사회·정치·교육·경제·문화라고 하는 껍데기를 내려놓고 ‘마음·사랑·삶’이라는 넋으로 서로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생각은 아주 넓고 깊습니다.


  남녘에서는 온갖 책이 쏟아집니다. 남녘에서는 아름다운 책도 나오지만, 돈벌이를 다루는 책도 엄청나게 나옵니다. 남녘에서는 사랑스러운 책도 나오지만, 돈만 끌어모으려고 하는 책도 나옵니다. 북녘은 어떠할까요? 북녘에서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이 곧잘 나올 테지만, 사회나 정치나 교육이나 경제나 문화라는 울타리에 가로막히는 일도 잦습니다. 다만, 북녘에서는 남녘과 달리 돈벌이를 다루는 책이나 돈만 끌어모으려고 하는 책은 안 나옵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책도 북녘에서는 안 나와요.


  남녘 책마을을 살펴보셔요. 동네책방뿐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책방에서도 ‘대학입시 교재’가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남녘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대학입시 교재’로 온통 짓눌려야 해요. 이런 남녘에서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은 어떤 몫을 맡을 만할까요. 이런 남녘에서 겨우 입시지옥을 벗어난 젊은 넋은 어떤 ‘어른문학’이나 ‘어른인문학’을 누릴 만할까요.


  삶은 오롯이 책입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삶이든, 사랑으로 못 가꾼 삶이든, 모두 오롯이 책입니다. 삶을 읽을 수 있으면 삶을 바꿉니다. 삶을 읽는다면 삶을 슬기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남녘에 있는 이웃은 ‘대학입시 교재’를 손에서 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녘에 있는 이웃은 ‘대학입시 교재가 되기 앞서, 숲에 있던 나무’인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녘에 있는 이웃은 ‘삶에서 태어나는 책’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과 땅과 바람과 비와 숲과 풀을 읽는 밝고 또렷한 눈썰미를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북녘이 한자리에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손길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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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낳는 사진책



  사진책을 하나 읽다가 문득 그림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다 그리고 보니,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그림으로 빚었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다. 사진이란 노래이다. 곱게 흐르는 결이 온누리를 따사로이 감돌면서 우리한테 찾아오는 노래가, 곧 사진이다.


  그러면 글과 그림은 무엇일까? 글과 그림도 노래일 테지. 영화나 책은 무엇일까? 영화나 책도 노래일 테지. 우리 삶은 무엇일까? 우리 삶도 노래일 테지.


  학교와 마을도 노래이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예술도 노래이다. 무엇이든 다 노래이다. 노래가 아니라면 어느 것이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노래일 때에 모든 것이 되고, 노래일 때에 싱그러운 숨결로 거듭난다.


  사진책을 가만히 되읽으면서 생각한다. 노래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한테 어떤 책이 될는지 생각한다. 노래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나 책이라 한다면, 이러한 책이 여러모로 이름이 높거나 잘 팔린다고 할 적에 얼마나 뜻이 있을까 생각한다.


  예부터 어느 겨레 어느 나라에서든, 말은 늘 노래였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은 언제나 노래처럼 흘렀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언제나 노래이듯, 사람이 주고받는 말도 언제나 노래였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은 노래가 아니기 일쑤이다.


  노래가 아니라면 읊지 말아야 한다. 노래가 아니라면 노래가 되도록 가다듬어야 한다. 노래가 아닌 사진이나 책이라면 그예 덮으면 된다. 노래가 흐르는 사진이나 책일 때에 활짝 웃으면서 기쁘게 펼치면 된다. 4347.10.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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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면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면, 왜 아름다울까 헤아려 본다. 책을 많이 읽기에 아름다울까? 책을 두루 읽거나 깊이 읽었기에 아름다울까? 언제나 책을 읽기에 아름다울까? 아이와 함께 책을 읽기에 아름다울까?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면, 책을 읽는 몸짓이나 모습이나 매무새 때문은 아니라고 느낀다. 스스로 삶을 즐겁게 가꾸면서 책을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스스로 사랑을 곱게 여미면서 책을 손에 쥘 수 있으니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스스로 꿈을 밝게 지으면서 책을 손에 쥘 수 있어서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삶을 가꾸면서 책을 길동무로 삼는다. 사랑을 여미면서 책을 마음벗으로 여긴다. 꿈을 지으면서 책을 이야기지기로 둔다. 삶을 누리면서 책이 있고, 사랑을 돌보면서 책이 있으며, 꿈을 키우면서 책이 있다. 4347.10.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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