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사진 아카이브

 


  도시에 있는 문화재단 지원금으로 꾀하는 ‘사진 아카이브 작업’이 있습니다. 도시가 어떤 모습인가를 사진으로 찍어 남긴다고 하는데, 이 일을 하는 분들은 도시에 있는 골목동네를 ‘작가’로서 ‘예술’을 하며 ‘구경’합니다. 스스로 골목동네 한식구가 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얼른 이 모습 찍은 다음, 저곳에서 빨리 저 모습 찍으려 할 뿐입니다. 이리하여 이들 ‘사진 아카이브 작업’은 도시 재개발 때문에 자꾸 밀리거나 쫓기는 골목사람 터전을 ‘폐허’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합니다.


  동네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본 이야기가 아니니, 작품이 되는 예술만 바라볼까요. ‘폐허’를 찍을 때에 독자들한테 파고드는 무언가 더 크다고 여겼을까요.


  예쁘고 즐겁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폐허’ 바로 옆에 있는데, 예쁘고 즐겁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작품과 전시와 공연은 이어질 테지요.


  ‘구경’하는 사진은 ‘관광사진’입니다. 구경하는 예술가로서 찍는 사진은 예술사진조차 아닌 관광사진입니다. 관광사진은 기록사진도 ‘사진 아카이브 작업’도 될 수 없습니다. 도시 모습을 보여주거나 남길 만한 사진이 되도록 하려면, 동네사람한테 사진기를 쥐어 주어야 해요. 동네사람이 스스로 사진기를 쥐어 이녁 집을 스스로 찍고, 이녁 이웃을 서로서로 찍으며, 이녁 동네 아침과 저녁 흐름을 찬찬히 찍을 수 있도록 할 노릇이에요.


  문화재단 공무원들은 작가를 부르지 마셔요. 작가 아닌 동네사람을 마주하셔요. 공무원이기에 작가 아니고는 모를는지 모르는데, 동네사람을 모르겠다면 ‘사진 아카이브 작업’을 하지 마셔요. 동네와 동네사람을 모르고서 어떤 사진으로 어떤 도시 어떤 골목을 들여다볼 수 있겠습니까. 4346.9.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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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꽃

 


  골목 한켠에 피어나는 꽃은 사람들 눈에 확 뜨이도록 커다란 송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씨앗은 조그마한 뿌리를 내리고 조그마한 줄기를 올린 뒤 조그마한 잎사귀를 벌려 조그마한 꽃송이 틔웁니다. 풀밭은 아주 조그마한 풀포기가 수없이 얽히고 설켜 이루어집니다. 커다란 풀 몇 있는대서 풀밭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조차 잊은 온갖 풀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자라기에 풀밭이 되어요.


  그늘진 골목 한켠에 풀이 돋습니다. 햇볕 한 조각 살짝 비출까 말까 싶은 자리에 꽃이 맺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누군가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그렇지만, 골목꽃은 씩씩하게 피어납니다. 골목꽃은 맑은 빛깔 살그마니 내놓아 커다란 도시 한쪽에 조그맣게 그림을 그립니다. 풀과 벌레와 사람과 흙이 서로 손을 맞잡아 따사로운 보금자리 되는 그림을 조그맣게 그립니다. 4346.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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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밥잔치

 


  도시에는 흙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없지 않았지만, 도시로 커지고 또 커지면서 흙을 밀어냅니다. 흙 있던 자리에 시멘트를 붓고, 흙 있는 길에 아스팔트를 깝니다. 신이 더러워지고 자동차 다니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흙이 더러울까요. 흙 때문에 자동차 다니기 힘들어서 나쁠까요. 흙이 없으니 신에 흙 묻을 일 없을 테고, 흙이 없기에 자동차 싱싱 달리겠지요. 그런 만큼, 도시사람은 풀하고 멀어집니다. 들풀을 잊고 들꽃을 잃어요. 상추도 배추도 무도 쑥갓도 미나리도 시금치도 모두 풀인 줄 잊고 잃어요. 그림책으로 아이들한테 풀과 텃밭을 가르친다지만, 막상 도시사람 스스로 텃밭을 일굴 자리가 없어요. 자동차를 댈 자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언제나 자동차가 맨 앞에 서요. 골목길 거닐 적에도 ‘사람이 저 앞’에 있었어도, 어느새 자동차는 빵빵거리며 ‘사람을 비키라 하면서 새치기’를 하지요.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더라도 어른들은 자동차 들이밀며 아이들 놀이를 헤살 놓아요.


  흙 없는 도시인데, 골목사람은 골목집 담벼락에 바싹 붙여 헌 꽃그릇(알고 보면 고무대야) 놓고는 흙을 져 나릅니다. 벽돌 몇 주워서 텃밭을 마련합니다. 여러 날 흙을 어디에선가 퍼 날라서 텃밭과 꽃밭을 보듬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꽃을 봅니다. 풀내음 맡으며 손에 흙을 묻힙니다.


  골목사람은 스스로 풀밥잔치를 벌입니다. 골목이웃은 골목길 거닐다가 텃밭과 꽃밭을 만나면서 새롭게 풀바람 쐬고 풀내음 맡습니다. 4346.6.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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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전봇대와 꽃그릇과

 


  엊그제 인천 형님 댁에 식구들과 다 함께 찾아갔다. 여러 날 머물면서 느긋하게 놀다가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형님 댁에 머물면서 인천 골목동네 여러 곳 가볍게 큰아이와 거닐다가 ‘옛 나무전봇대 모습 고스란히 간직한’ 곳을 마음속으로 어림했다. 왜냐하면, 이 나무전봇대는 아무런 자취 안 남기고 사라졌으니까. 나무로 가로지른 받침대가 꼭대기에 둘 있던 송현동 나무전봇대는 동인천역 뒤쪽, 이른바 북광장이라 일컫는 데에 있었다. 나무전봇대 하나는 씩씩하게 서고, 이 나무전봇대 둥치에 다른 나무전봇대 하나 받치는 모습으로 있었다. 동인천역 북광장 개발하기 앞서 인천에서 이런 행정 저런 문화 그런 예술 하는 이들한테 ‘원형이 그대로 남은 나무전봇대’ 하나 인천에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그예 사라지고 만다.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여기는 전동 호젓한 안쪽 골목에도 나무전봇대 하나 있다. 이곳 나무전봇대는 인천 골목동네 나무전봇대 가운데 가장 사랑받으면서 가장 예쁘게 빛난다. 골목집 아지매는 나무전봇대 곁에 수세미씨앗 심어 여름날 수세미가 노랗게 꽃을 피우다가 가을날 큼지막하게 열매를 맺곤 한다. 올해에도 수세미씨앗 심으셨을까? 올해에는 어떤 씨앗 나무전봇대 곁 꽃그릇에 심으셨을까? 햇볕 받아 따끈따끈 보드라운 나무전봇대 나무결을 만진다. 나무전봇대 곁에서 자라는 풀포기와 꽃송이를 살살 쓰다듬는다. 푸른 숨결 깃든 바람이 안골을 감돈다.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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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6-08 15:46   좋아요 0 | URL
전봇대에 문패를 달아놓으셨나봐요.
씨앗도 뿌리시나보네요. 아유, 예쁘겠어요.

숲노래 2013-06-09 01:04   좋아요 0 | URL
저건 전봇대 이름표랍니다.
예전에는 '한전' 아닌 '우체국'에서 전봇대 관리했어요.
전봇대 이름표이지요.

그리고, 골목동네 할매와 아지매는
동네 한쪽에 예쁜 텃밭 일구며
아름다운 씨앗 건사해서 뿌리고 돌보신답니다~
 

골목마실

 


  봄날 골목마실에는 겨우내 말라죽은 풀포기 사이에 비죽비죽 산뜻한 빛으로 솟아난 꽃을 구경한다. 여름날 골목마실에는 꽃이 진 봄풀 짙푸른 잎사귀 빛나는 사이사이 드문드문 환한 여름꽃으로 맑은 골목길 누린다. 가을날 골목마실에는 느즈막하게 꽃을 피우기도 하는 꽃이랑, 하나둘 잎사귀 마르면서 누렇게 물드는 포근한 빛 맞아들인다. 겨울날 골목마실에는 쓸쓸한 꽃그릇에 배추포기 얹히거나 눈이불 내려앉은 하얀 이야기 듣는다.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르면서, 날마다 다르고 아침과 낮과 저녁마다 다른 골목마실 누린다. 아이와 함께 골목을 거닐면서 우리 이웃들 삶을 찬찬히 느낀다.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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