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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수수께끼

숲노래 수수께끼 71


말끔히 씻고서 키우려고

한꺼번에 치우고서 돌보려고

모두 처음부터 가꾸려고

내가 찾아가


누구나 속에 품지

무엇이나 가슴에 안고

스스로 지어서 살고

어디서나 일어나며 움직여


사랑할 적에는 무지개로 피고

미워할 때에는 활활 타올라

아름다울 적에는 해님으로 되고

슬퍼할 때에는 끝없이 태워


속에 다 있으니 따뜻해

어느 곳에나 살기에 숨결

스스로 지으니 엿보지 마

아무 곳에나 퍼뜨리지 마


+ + +


숲이나 들이나 마을에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숲은 스스로 불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벼락을 불러서 불을 일으킵니다. 불은 땅 위쪽에 있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녹여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입니다. 그래서 불이 아무리 드세게 일어나도 땅 밑쪽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땅 밑쪽은 고요하지요.


땅 위쪽에 지저분한 것이 많아서 잔뜩 씻어내거나 걷어내야 한다면, 비가 세차게 잇달아 내리더라도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숲이나 들이 스스로 일으킨 불이거든요. 그런데 숲이나 들이 때때로 그만 드센 불길을 일으키면서 이 불길에 잡아먹히기도 해요. 이때에는 사람이 나서서 불길을 잠재워 주어야 합니다.


불길은 어떻게 잠재울 만할까요? 비를 부르면 잠재울까요? 어느 때에는 빗물로 잠재울 만하지만, 어느 때에는 빗물로 안 됩니다. 기름밭을 건드린 불길은 빗물로는 안 되어요. 그렇다면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람을 부르면 되어요. 불길이 사나운 곳에 바람이 한 줄기도 흐르지 못하도록 닫으면 되지요. 아무리 드센 불길이어도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더 타지 못하고 바로 죽어요. 기름불도 그렇답니다.


그리고 모든 풀하고 나무는 속에 물을 듬뿍 머금었어요. 그래서 굳이 빗물을 부르지 않더라도 풀하고 나무가 스스로 저희 몸에 머금은 물을 한꺼번에 내놓으라고 시키면, 이러면서 풀하고 나무가 모든 바람길을 막도록 이끌면, 비바람이 하나가 되어 불길을 훨씬 빠르게 잠재울 만해요.


모든 숨결은 속에 물하고 불을 같이 품습니다. 물만 품으면 그만 녹아버리고, 불만 품으면 그만 타버려요. 우리 몸뿐 아니라 돌이나 바위나 풀이나 나무는 물하고 불을 알맞게 다스리면서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무지개이지만, 미워할 적에는 활활 타올라서 무시무시하고 스스로 목숨을 갉아먹어요.


+ +


(아마존 불길한테, 마음으로 물어봤습니다. "너 왜 일어났니?" "그 뜻을 너희가 스스로 찾아야 해. 그리고 수수께끼 하나는 알려주지." 하고 알려준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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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4. 돼지



  ‘고기돼지’가 아닌, 우리에 갇힌 돼지가 아닌, 들이며 숲을 가로지르면서 아름다이 노래하는 돼지를 만나거나 사귀면서 함께 하루를 짓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렇게 믿던 사람이 무시무시한 칼이나 도끼를 들고서 저한테 다가와 마구 휘두르니, 돼지는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요. 누가 사람 목을 무서운 칼이나 도끼로 내리치려고 하면, 사람도 “사람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숨을 거둘 테지요. 우리는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아닌 “돼지가 풀숲에서 고르릉고르릉 기쁘게 노래하는 소리”를 나눌 수 있는 살림길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더 많이 먹으려고 더 모질게 좁고 어둡고 답답한 우리에 가두어서 착하고 상냥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고기돼지라는 길이 아닌, 느긋하며 아늑할 뿐 아니라 착하고 참하면서 곱게 숲을 같이 누리는 따사로운 길을 나아가야지 싶어요. 사람을 사람답게 보려면 나무를 나무답게 볼 줄 알아야 하고, 개미를 개미답게 마주할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돼지를 돼지답게 끌어안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돼지는 노래하고 싶습니다. 돼지는 멱을 따이고 싶지 않습니다. 돼지는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돼지는 좁은 시멘트 바닥에 갇힌 채 흙도 풀도 나무도 꽃도 없는 곳에서 찌꺼기로 배를 채울 생각이 없습니다. 돼지는 풀잎을 사랑해요. 돼지는 풀벌레하고 동무하면서 놀고 싶어요. ㅅㄴㄹ



돼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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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3. 더듬다



  둘레를 보면 ‘더듬는’ 몸짓을 썩 반기지 않습니다. 공놀이를 하는데 자꾸 더듬는다든지, 길을 가는데 헤매면서 이리 더듬 저리 더듬한다든지, 말을 하다가 이내 더듬더듬하면, 제대로가 아니라고 여겨요. ‘제대로가 아니다’란 ‘비정상’인 셈입니다. 우리는 공을 던지거나 받을 적에 잘 받을 수 있으나 놓칠 수 있어요. 우리는 할 말을 잃고서 멍하니 있기도 합니다. 틀림없이 길찾기가 알려주는 대로 갔는데 엉뚱한 데가 나올 수 있어요. 빈틈이 없이 해내니 대단하겠지요. 그러나 빈틈이 있으면서 좀 허술하거나 엉성하거나 모자란 탓에, 더 다스리고 애쓰고 힘내고 일어서고 배우고 가다듬고 익히고 기운을 내기도 합니다. 빈틈없이 태어난 나머지 무엇을 새롭게 하려는 생각을 못 하기도 한다면, 빈틈있이 태어난 뒤로 무엇이든 처음부터 스스로 지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껴서 씩씩하게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맞서는 길을 가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엄청난 말더듬이였습니다. 말더듬이를 놓고 놀림이나 따돌림이나 지청구를 숱하게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 말더듬질을 고쳐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제대로가 아닌 몸을 제대로’가 되도록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굳이 이러지 않습니다. ‘제대로’라는 자는 몇몇 사람 눈길로 따질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알몸이 되어 풀밭에 납작 엎드려 풀벌레를 지켜보면, 또 벌나비를 바라보면, 모두 ‘더듬이’를 살살 흔들며 더듬더듬 바람물결을 살피고 빛물결을 실컷 누리더군요. ㅅㄴㄹ



더듬다


혀가 짧아 더듬을 수 있어

더 천천히 말해 봐

느릿느릿 말해도 좋아

글로 적어 읽어도 돼


어두우니 더듬더듬할 만해

바닥에 손을 짚어 봐

차근차근 헤아리면 나와

촛불 켜면 잘 보이겠지


아직 낯설어 더듬었겠지

나도 예전엔 더듬었어

말도 더듬고 길도 더듬지

뭐, 요새도 으레 더듬고


그런데, 이거 알아?

나비랑 벌레한테 더듬이 있어

나비도 벌레도 더듬이 흔들며

마음으로 얘기하고 별빛을 듣는대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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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2. 가을



  어릴 적부터 “너나 잘해!” 같은 말을 곧잘 들었습니다. 누구를 가르치려는 뜻이 아니라, 가만히 보니까 느낄 수 있어서 알려주려는 뜻이었으나, 옆에서 귀띔이나 도움말을 듣는 분들은 반기지 않아요.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분들이 먼저 저한테 귀띔이나 도움말을 바라지 않았는데 먼저 불쑥 알려주니까 싫을 수 있겠더군요. 그런데 그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여쭙기에 찬찬히 짚어서 알려줄 적에도 거북한 낯빛인 분이 제법 있습니다. 이런 나날을 누리면서 조용히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제 말씨가 그리 상냥하지 않았겠구나 싶으면서, 누구 누구를 돕거나 이끌 수 없는 노릇이겠네 싶어요.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스로 부딪히고 스스로 깨달으면서 스스로 어깨를 활짝 펼 뿐이네 싶습니다. “너나 잘하셔!”나 “너나 똑바로 해!” 하고 쏘아붙이던 분들은 그분들 말씨가 쏘아붙임인 줄 모르리라 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새삼스레 생각해요. 저는 이 가을을 새로우며 싱그러운 가을로 맞이하고 싶다고, “네, 저는 저부터 잘할게요. 가을이에요!” 하고 대꾸하면서 제가 걸어갈 길을 바라보려 합니다. 한여름에는 한여름대로 불볕을 마음껏 누렸어요. 한가을에는 한가을대로 열매를 실컷 누리면 되겠지요? 한겨울에는 한겨울대로 함박눈을 푸짐히 누리고, 한봄에는 한봄대로 새잎잔치를 골고루 누리려 합니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기에 맨몸으로 이 비를 맞으면서 시원히 걷습니다. ㅅㄴㄹ



가을


우리 집 초피잎은

가을이면 샛노랗지

후박잎 동백잎은

갈겨울 모두 짙푸르고


푸른 모과알 유자알

차츰 노르스름 바뀌면

풀노래 조용조용 사위고

바람소리 조금씩 깊어가


쑥꽃 조롱조롱

억새씨앗 하늘하늘

이제 들숲은 누릇누릇

그러나 별빛은 늘 반짝초롱


고구마를 찔까

감자밥을 할까

갈잎배를 엮어

냇물에 띄우러 갈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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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51. 까맣다



  “까맣게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얗게 안다”고 할까요? 그렇지도 않아요. “하얗게 모른다”도 비슷하게 씁니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처럼 쓰니, 이때에는 하나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까맣게 모른다고 할 적에는 온통 까만 빛깔이라 이 빛이나 저 빛을 가릴 수 없는 나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까맣게 모르다 = 이도 저도 가릴 수 없이 밤빛이 되면서 헤아리기 어렵다”는 소리요, “하얗게 모르다 = 몽땅 사라져서 아무것도 없는 나머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기에 “까맣게 모여든다”고 합니다. 참으로 많은 ‘까망’입니다. 밤하늘을 채우는 별인데, 별을 누리는 밤이란, 어둠이란, 고요하게 모두 그득그득 채우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빛깔을 나타내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어두운 어머니 품’에서 고요하면서 아늑하게 열 달을 살아낼 테고, 어머니 품을 떠날 적에 눈부신 빛(하양)을 찾아서, 아직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데이지만, 이 텅 빈 데를 저 나름대로 새로운 이야기(빛)를 하나씩 채워서, ‘가득 채운 하얀 누리’로 거듭나게 하려는 길을 나서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까만 눈알이란 먹머루 같은 눈알입니다. 까만 글씨란 이제까지 새하얗던, 텅 빈 종이에 새롭게 이야기를 그려서 넣는, 우리 생각을 이루고 싶은 꿈을 밝히는, 흰곳을 밝히는 까만글이란, 둘이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놀이판이지 싶습니다. 흰종이에 까만글이듯, 까만밤에 흰별입니다. ㅅㄴㄹ



까맣다


그만 까맣게 탄 빵

뒤꼍 구덩이에 놓으니

새까맣게 모여드는 파리

배불리 잔치한다


저토록 까맣게 높다란 봉우리

언제 다 오르나 하면서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

이제 내려놓아 봐


걱정이라면 까맣게 잊자

해보면 모두 해내니까

여태까지 새까맣게 몰랐어도

오늘부터 하얗게 배우지


까만 눈이 되어 기다리기도

새까맣게 질려서 고단하기도

그렇지만

까만 머루 먹고서 기운내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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