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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5] 나이읽기
― 사람을 보는 눈길, 허울을 보는 눈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를 다니면 둘레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귀엽다고 말하다가도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너 몇 살이니?” 아이 앞에서 적어도 ‘-요’나마 붙여 “몇 살이에요?” 하고 묻는 어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당신이 아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처음부터 말을 놓고 들어옵니다.


  아이와 함께 다니는 다른 어른도, 아이 없이 혼자 다니는 다른 어른도, 으레 우리 아이더러 “몇 살”인가를 물을 뿐, 정작 이름을 묻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어느 모임자리에서 조금 오래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이름을 묻기는 하되, 나이부터 먼저 묻고 나서 이름을 묻습니다.


  아이들 나이 알아맞히는 놀이를 하는 어른일까요. 나이를 알아서 무엇을 할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이들 나이 하나만 궁금하게 여깁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나이를 묻고 나서 잘 되새기지 않아요. 쉽게 묻고 쉽게 잊어요. 다시 쉽게 묻고 또 쉽게 잊어요.

  알고 싶어서 묻지는 않겠지요. 잘 되새기려고 묻지는 않겠지요. 버릇처럼 묻습니다. 서로 ‘높고 낮음(위계)’을 나누려고 묻습니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다니는 어른들은 나이를 묻고 나서 저희 아이랑 ‘숫자 대기’를 합니다. 한쪽이 나이가 더 많으면 누나이니 오빠이니 형이니 동생이니 언니이니 하고 부름말을 틀짓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나 회사나 공공기관을 들여다보면, 이들 조직은 밥그릇이라 하는 나이를 따집니다. 이른바 ‘호봉’이라고 해서, 얼마나 오래 조직에 몸을 담갔느냐를 놓고 ‘나이 매기기’를 합니다. 먼저 들어와서 조금 더 조직살이를 했으면 ‘어른(또는 선배) 노릇’을 하려고 듭니다.


  학교에서는 ‘학년’이라 하는 나이를 따집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중학교 몇 학년, 고등학교 몇 학년, 이렇게 학년 나이에 따라 줄을 세웁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지만 다 같은 나이에 맞추어 똑같은 틀에 가두고는 줄을 세웁니다. 예전에는 일고여덟 살쯤 될 무렵에야 비로소 ‘같은 나이 줄세우기’를 했으나, 요즈음에는 갓난쟁이마저 보육원에 집어넣는 흐름이기에, 이 나라 아이들은 한두 살일 적부터 ‘같은 나이 줄세우기’에 들볶입니다. 키도 마음도 생각도 앎도 다른 아이들이요, 몸도 팔다리도 눈썰미도 다 다른 아이들이지만, 같은 나이에 맞추어 똑같이 생긴 교실에 들어가서 줄을 맞추어 앉아야 할 적에는 ‘번호로 부르는 숫자’를 받고는 똑같은 틀로 다스려집니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관리 대상’이 돼요.


  아이들은 키가 자랍니다. 아이들은 몸집이 커집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키와 몸무게와 가슴둘레와 이것저것 숫자로 꼬치꼬치 따지고 잽니다. 체력을 재고 시험을 치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무섭게 저희 이름을 잊고, ‘아이한테 주어진 번호에 따라 끝없이 따지고 재고 매기고 붙이는 숫자’에 따라 다스려집니다. 이를테면 몇 살에 몇 센티미터 몇 킬로그램, 몇 살에 달리기 몇 초 팔굽혀펴기 몇 차례, 몇 살에 산수 몇 점 국어 몇 점, 몇 살에 던지기 몇 미터 행동발달사항 몇 점, 몇 살에 봉사활동 몇 점 영어능력이나 한자능력 몇 급 …….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저희 이름을 잊고 숫자를 외웁니다. 저 먼 데 있는 푸른숲 잣나무에 앉은 꾀꼬리를 알아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고 시력점수 2.0이라느니 1.0이라느니 0.1이라느니 또 얼마라느니 하는 숫자를 외웁니다. 책을 읽었으면 어떠한 책을 읽으며 가슴속에 어떤 꿈과 사랑이 샘솟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할 때에 아름답겠지만, 몇 권을 읽었는지를 따지고 주인공과 줄거리 외우기에만 휩쓸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푸름이한테 “너 몇 학년이니?” 하고 묻기보다는 “너 몇 살이니?” 하고 물을 때에 한결 사람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푸름이는 ‘중3’이나 ‘고2’가 아니라 ‘열여섯 살 푸름이’나 ‘열여덟 살 푸름이’라 할 때에 걸맞을 테니까요. 버스를 타거나 어느 시설을 쓸 적에 ‘학생 삯’ 아닌 ‘청소년 삯’을 따져야 알맞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대목도 차근차근 더 헤아린다면, ‘어린이 삯’과 ‘푸름이 삯’과 ‘어른 삯’과 ‘어르신 삯’ 이렇게 나눌 수 있겠지요. 다시금 더 헤아리면, 이런저런 나이나 모습으로 가르지 말고 누구나 똑같은 삯으로 나눈다든지 아예 삯을 없애면 훨씬 나아요.


  이제 대학생이 퍽 많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어른들 사이에서는 “몇 학번이셔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어 보려면 차라리 ‘나이’를 물을 노릇이건만, 나이 아닌 ‘학력 신분’을 물어요. 스스로 학력 신분을 누리는 계급이기에 이처럼 물을 텐데, 삶을 즐거이 누리지 못하는 모습은 더없이 슬프구나 싶어요.


  한겨레 옛말에 ‘개밥에 도토리’가 있고, ‘따돌리다’나 ‘돌림뱅이’가 있습니다. 우리 겨레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들볶던 발자국이 있구나 싶은데, 양반과 양반 아닌 사람, 임금과 임금 아닌 사람, 권력자와 권력자 아닌 사람, 땅임자와 땅임자 아닌 사람, 이렇게 틀이 갈린 나머지 ‘개밥에 도토리’ 같은 말마디가 생겼구나 싶어요. 임금과 임금 아닌 사람이 갈리지 않고 서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아끼거나 사랑했다면 ‘따돌리다’나 ‘괴롭히다’라는 낱말조차 안 태어났겠지요. 그러니까, 한겨레가 서로를 믿고 아끼는 삶을 누렸으면 ‘싸움’이나 ‘미움’ 같은 낱말은 안 태어나요. 자꾸자꾸 슬픈 수렁으로 빠지니까 ‘전쟁’이나 ‘(전쟁)무기’ 같은 한자말을 끌어들입니다.


  해마다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철이 드는 일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저마다 한 살 나이가 들며 생각을 깊이 다스리고 꿈을 넓게 펼치는 일은 아리땁다고 느낍니다. 나이란, 밥그릇 숫자에 따라 금을 죽 긋고는 높고낮은 지위나 신분이나 계급을 나누라는 데에 쓰라고 생기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삶을 누리면서 사랑을 빛내는 한 살 두 살이 모여 ‘철’이 되고 ‘슬기’가 되기에, 먼먼 옛날부터 나이값을 말하면서 나잇살을 헤아렸으리라 느낍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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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4] 사람읽기
―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가는가

 


  어릴 적부터 내 둘레 어른들은 으레 ‘사람은 어디에서도 살 수 있다. 남극에서도 북극에서도 사막에서도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땅속에서 햇볕을 안 쬐고도 살 수 있고, 사람은 물과 소금과 밥이 있으면 어디에서든 산다.’고 말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이 말이 틀리지는 않구나 싶으면서도, 어딘가 영 내키지 않았어요. 어린 나는 이 말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딱히 어른들 말에 무어라 대꾸하지 못했어요.


  이제 나는 어른이 되어 우리 집 아이를 돌보기도 하고, 이웃 아이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어린이 앞이나 푸름이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나 스스로 어릴 적부터 궁금하게 여기며 스스로 길을 찾아나선 대목을 밝히곤 합니다. “사람은 어디에서라도 살 수 있다고들 말해요. 그런데 참말 사람은 어디에서라도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셔요. 맞는 말일까요. 돼지는 차가운 시멘트바닥 조그마한 우리에서도 ‘목숨을 이을’ 수 있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커다랗게 불어난 몸을 옴쭉달싹 못하며 조그마한 우리에 시멘트 차가운 바닥인 햇볕도 안 드는 곳에서 지내야 하는 돼지한테 ‘삶을 누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닭은 0.1평조차 안 되는 아주 좁은 데에 다닥다닥 붙은 채 밤에도 불빛을 받으며 잠을 못 자며 알을 낳아야 해요. 사료와 항생제를 먹으며 고작 한 달 만에 고기닭이 되기까지 해요. 이 닭한테도 ‘삶을 누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목숨을 이으’니 ‘산다’고 말할 만할까요?” 어린이나 푸름이 앞에서 이렇게 물어 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스스로 삶길을 스스로 찾거나 헤아리기를 바라며 물어 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이란 무엇이겠느냐고 저마다 슬기를 빛내어 깨닫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윽고 한 마디 붙입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생각해 보니, 사람은 숲 아니고서는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다고 느껴요. 그래서 우리 식구는 처음에는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지내다가, 충청북도 멧골로 옮겨서 살았고, 다시 한결 깊은 시골인 전라남도 고흥으로 옮겨서 살아요. 숲을 누리는 데에서 살아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아간다고 느끼거든요. 곧, 사람이 사람답게 목숨을 잇도록 북돋우는 숨결은 숲에서 비로소 푸르고 싱그러이 빛나는구나 싶어요. 어린 여러분이 먹는 모든 것, 어린 여러분이 입는 모든 것, 어린 여러분이 잠을 자거나 쉬는 모든 것, 이 모두는 바로 숲에서 얻어요. 연필 한 자루, 책 한 권, 종이 한 장, 모두 숲에서 자라던 나무한테서 얻어요. 마시는 물은 공장에서 뽑지 않아요. 수도물이건 먹는샘물이건 모두 정갈한 숲이 있는 시골에서 얻어요. 숲이 푸르게 빛날 때에 어린 여러분이 서울에서 살더라도 목숨을 이어요. 숲이 푸르게 빛나지 않으면 어린 여러분이 서울이나 시골에서 살더라도 목숨을 아름다이 잇는다고 할 수 없어요. 시골마을은 언제나 정갈해야 하고, 숲은 늘 푸르게 빛나야 해요. 시골에는 어떠한 위험·위해시설을 지어서는 안 돼요. 그렇지요? 시골에 발전소나 공장이나 골프장이나 고속도로나 공항이나 송전탑이나, 이런저런 시설을 지으면, 시골마을과 시골숲 모두 더러워지고, 시골마을과 시골숲이 더러워지면, 바로 어린 여러분이 먹고 입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것이 더러워진다는 뜻이에요.”


  아이들한테 참거짓을 슬기롭게 밝히는 어른이 늘어나기를 빕니다. 아이들 앞에서 참거짓을 슬기롭게 밝히며 스스로 참답게 살아가는 어른이 늘어나기를 빕니다. 사람은 ‘서울에서도 목숨을 잇는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목숨을 잇는대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느껴요.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거나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닌대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스스로 참삶을 누리며 느껴야 하고, 스스로 거짓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며 바로세울 수 있어야 해요. 4345.1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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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demian 2012-11-2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댓글을 많이 다는 거 같습니다만..느낀 바가 있어서요..
삶을 누리는 게 아니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는 것..와 닿습니다. 나는 그저 삶을 사는 게 아닌 '누리고' 있는가? '누리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숲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비록 몸으론 아직 체험해보진 못했지만..이성적으로는 알 수 있죠. 사람으로서 동물생명 자체가 나무-숲이 내뿜는 산소가 없었다면 생존하지 못했을거예요..숲에 들어가면 평안감..사람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듯 합니다.
도시적 삶에 대해서 완전히 회의적이신건가요? 저도 서울에 대해서..아파트에 대해서..마당도 없고 좁은 주택에 대해서..거리에 대해서 안좋게 생각하고 느낍니다만..좀 더 나은 도시 삶에 대해서는 구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도시의 공기가 주는 자유. 멜팅팟이 주는 관용과 다양함..의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요.

숲노래 2012-11-26 20:04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서
[국어사전 뒤집기] 게시판이 있는데,
그곳에서 다음 글을 한번 읽어 보셔요.
http://blog.aladin.co.kr/hbooks/5945787
'서울(도시)'과 '시골'이라는 말밑을 풀이한 글이에요.

그리고 다음 글도 한번 읽어 보셔요.
http://blog.aladin.co.kr/hbooks/5785494
'숲'과 '자연'이라는 낱말을 다룬 글이에요.
'자연'이라는 한자말이 어떻게 생겨났고,
한국말로는 어떻게 나타내야 알맞는가를 따진 글이에요.

'숲'이란 바로 '자연'이에요.
그러니까,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물을 마시든,
모든 먹을거리는 다 자연(숲)에서 나왔어요.
자연 아닌 데에서 나온 것은 아무도 안 먹어요.
가공식품도 모두 자연에서 나온 것을 가공하거든요.

그런데 서울(도시)에서는 이러한 얼거리를
모두 무시하거나 등돌리기만 해요.
이렇게 되면, 서울(도시)에서 살더라도
'나다운 삶'을 못 찾고 말면서 쳇바퀴 톱니바퀴에 허덕이지요.

서울(도시)에서 살더라도, 즐거운 삶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데,
정작 서울(도시) 사는 사람 가운데 즐거운 보람을
누리거나 찾거나 나누는 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해요.

여러 가지를 깊이 헤아릴 만큼 느긋하게 내 하루를 누리면
이 글에서 밝히려는 생각을 받아들이실 수 있으리라 믿어요.
 

[당신은 어른입니까 3] 살림읽기
― 스무 해쯤 밥돌이로 살며

 


  나는 어느새 스무 해쯤 밥돌이로 살아갑니다. 그동안 지은 밥은 얼마나 많을까 어림해 봅니다. 여태껏 밥을 슬기롭게 짓거나 훌륭히 지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 짓는 밥은 내가 먹거나 손님한테 차리거나 아이들한테 내주거나, 참으로 맛있다고 느낍니다. 이제 나는 내 어버이한테 밥을 즐겁게 차려서 올릴 수 있습니다.


  이제껏 기나긴 해를 돌고 돌아 이렇게 밥을 차릴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처음부터 내 어버이가 나한테 밥·옷·집을 스스로 건사하는 삶을 물려주었으면, 스무 해를 빙 에둘러 밥돌이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가 내 어릴 적부터 나한테 밥·옷·집을 알뜰히 보여주며 물려주었으면 나는 열다섯이나 스물 나이부터 즐거이 밥을 차릴 줄 아는 밥돌이 삶을 누렸으리라 생각해요.


  아침저녁으로 두 끼니 차리는 밥삶을 떠올립니다. 나는 세 끼니를 차리지 않습니다. 세 끼니를 먹자면 배가 더부룩해서 힘들다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말에는 ‘낮밥’이라는 낱말이 없습니다. 한자말로 ‘점심’이라는 낱말이 어느 때부터 슬그머니 스며들었지만, 한국사람 한국살이에는 낮에 먹는 밥이 없어요. 곧, 아침에 먹어 아침밥이고 저녁에 먹어 저녁밥일 뿐, 오래도록 한겨레는 두 끼니 밥차림으로 지냈어요.


  사이에 배가 출출하면 샛밥을 먹습니다. 샛밥이란 ‘참’이라고도 했고 ‘새참’이라고도 일컫습니다. 곧, 들에서 일하며 들밥을 샛밥으로 먹는데, 이러한 밥은 낮에 먹는 밥이라 할 만해요. 이렇게 따지자면 세 끼니를 먹은 셈이라 여길 텐데, 한겨레는 샛밥은 끼니로 넣지 않아요. 이름 그대로 ‘샛’밥, 사이에 배를 채워 일할 기운을 북돋우는 주전부리로 여겨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아침-아침밥’과 ‘저녁-저녁밥’이라는 말 얼거리를 배운 적 없습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이 같은 말 얼거리를 배우지 못합니다. 나 혼자 생각하며 느꼈고, 홀살이를 퍽 길게 하면서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이제 두 아이 어버이로 살아가며 더 깊이 느낍니다. 그리고 나 혼자 물어 봅니다. 왜 오늘날 어버이들은 하나같이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모조리 ‘아이들을 시험공부 생체기계가 되도록 들볶거나 등을 떠미’는 짓을 하는가 하고 스스로 물어 봅니다.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아이 낳아 돌보는 어버이 가운데, 어버이 나이가 되도록 ‘어버이다운 삶’을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배운 이는 아주 드뭅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이든, 대학교 네 해이든, 어느 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너희는 앞으로 어버이로 살아갈 테니, 어버이 삶이란 무엇인지 몸소 느끼고 배우렴’ 하고 이야기를 들려준 어른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아이들은 중학교 즈음 비로소 성교육이라고 배우고는, 고등학교 마칠 무렵 살곶이를 즐기고, ‘어른(성인)’이 되었다고 할 때에 시집장가를 가며 아이를 낳아요. 그런데, 막상 아이낳기가 무엇인지 배운 적 없고, 아이를 어떻게 낳고, 낳은 아이는 어떻게 사랑하며, 아이를 사랑하는 삶은 어떻게 일구어야, 나 스스로 즐거운 나날이 되는가를 몰라요.


  오늘날 어버이는 스스로 삶을 모르고 못 즐기며 안 사랑합니다. 오늘날 어버이는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슬기가 없습니다. 삶을 모르니 삶을 물려주지 못해요. 돈이 있고 집이 있으며 자가용이 있어, 이런저런 물건이나 물질이나 문명은 물려준다지만, 막상 ‘물건이나 물질이나 문명을 건사하는 넋과 매무새’는 하나도 안 갖추었으니 못 물려줘요. 어마어마한 돈이든 빈털털이 가난이든, 어버이가 아이한테 무엇인가 물려주면서 ‘사랑과 꿈’을 나란히 물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돈을 물려받는 아이는 이 아이대로 망가집니다. 빈털털이 가난을 물려받는 아이는 이 아이대로 흔들립니다. 있는 돈이든 없는 돈이든 어떻게 건사하며 삶을 누리거나 즐길 때에 아름다운가를 모르니, 망가지거나 흔들려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시험성적 잘 나온들 무엇에 쓸까요. ㅅ대 ㄱ대 ㅇ대 같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는들, 이 아이들이 저희 삶을 아름답게 여밀 수 있을까요.


  요즈음 아이들은 손수 도시락 쌀 줄 모릅니다. 손수 차린 밥으로 어버이와 손님한테 내주지 못합니다. 자, 열다섯이나 스물쯤 된 사람으로서, 손수 밥을 차리지 못하고 도시락을 싸지 못한다면, 이 나이란 얼마나 덧없이 흐른 나날이 될까요. 제 옷가지를 제 손으로 빨래할 수는 있을까요. 전기가 끊어지면 빨래기계를 못 쓸 텐데, 손빨래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수도물도 끊어질 텐데, 이때에는 어떻게 밥·옷·집을 건사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안다고 할 만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학교에‘도’ 갈 수 있는 아이입니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삶을 배울’ 아이입니다. 삶을 배우면서 ‘사랑을 누리’고 ‘꿈을 나눌’ 아이입니다.


  삶·사랑·꿈이 없으면 하루가 얼마나 따분하고 뜻이 없을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오늘날 어버이와 어른 누구나 삶·사랑·꿈을 건사하지 않기에, 오늘날 아이는 삶·사랑·꿈을 물려받지 못하기도 하고, 구경하지 못하기도 하며, 이야기를 듣지도 못해요.


  어른들한테 묻습니다. 어버이들한테 여쭙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삽니까. 당신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줍니까. 4345.11.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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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읽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오직 ‘노예 되는 교육’을 시킵니다. 이른바 다람쥐처럼 쳇바퀴 돌도록 길들입니다. 아이들 누구나 톱니바퀴가 되어 틀에 맞추어진 채 꼼짝도 못하도록 꽁꽁 가둡니다. 그래서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학교에 처음 발을 내딛는 때부터 ‘바보’가 돼요. 학교에 가는 아이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바보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는 무엇이냐. 바로 바보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교사는 무엇이냐. 맑은 넋 아이들한테 숫자와 경쟁과 도시 물질문명 지식조각만 잔뜩 집어넣어 노예로 만드는 일꾼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가 ‘노예 되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것을 가르치려 하는가를 돌아보기 바랍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엇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가르치나요. 유치원과 보육원은 아주 어린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치나요.


  삶을 보여주는 학교는 없습니다. 삶을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도 없습니다. 학교에서 삶을 보여준다면 학교가 문을 닫을 수 있겠지요. 교사가 교과서 지식이나 대입시험문제를 안 가르치면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따돌림받기 쉽겠지요.


  얼마 앞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시험날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다 그만둔 사람이고, 내 옆지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우리 집 어린 두 아이는 어떠한 보육원이나 어린이집도 안 다니거든요.


  나부터 스스로 삶을 누리고 싶기에 학교가 덧없을 뿐 아니라 무섭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학교이든 감옥하고 똑같이 생겼습니다. 똑같은 크기로 나눈 교실 칸은 똑같은 크기로 나눈 감옥 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차림새로 길들이고 채찍질하는 학교는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차림새로 지내도록 하는 감옥하고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와 감옥은 ‘사람’을 사람 아닌 ‘숫자’로 부릅니다. 번호로 불러요. 번호로 부르면서 점수를 매겨요. 점수가 좋으면 감옥에서 일찍 나올 수 있고, 점수가 좋으면 학교에서 ‘착한 아이’나 ‘모범생’이라는 이름을 얻어요.


  감옥에서도 학교에서도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직업교육은 하지요. 게다가, 직업교육이라 해 봤자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직업교육인데, 이마저도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 일자리인 직업교육이에요.


  감옥도 학교도 아이들 스스로 삶을 짓도록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를 초·중·고·대 열여섯 해를 다닌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밥하기·빨래하기·아이돌보기·사랑하기·살림하기’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배우지 않아요. 교사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가르치지 못해요. 씨앗을 건사해서 흙에 심고 돌보는 길을 스스로 익히거나 배워서 아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들 앞에서 사랑을 말할 줄 알고 꿈을 노래할 줄 교사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들한테 빨래하고 밥하며 아이들 보살피는 따순 손길을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알려줄 만한 교사가 몇이나 될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를 몽땅 도시로 올려보내는 교사만 가득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 숲과 바다와 멧골과 들판을 이야기하면서 시골로 보낼 줄 아는 교사는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사범대학을 다녔든 교육대학을 마쳤든, 교사자격증을 손에 쥐고 한국 사회에서 교사 구실을 한다고 밝히는 월급쟁이 공무원 가운데 그야말로 ‘교사’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할 만한 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교사라는 삶길을 느낀 이라면 거의 모두 한국 사회 제도권 울타리를 뜯어고치려 힘쓰거나 제도권 울타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으리라 느낍니다.


  고3 아이들을 대학교에 하나라도 더 보내면 무엇 할까요. 아이들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요. 아이들은 ‘고1’이나 ‘고3’이나 ‘중2’나 ‘초4’라는 숫자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아이예요. 아이들은 ‘어린이’요 ‘푸름이’예요. 푸름이한테 푸른 삶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고는 ‘수능성적 숫자에 맞추어 등급 나누어진 대학교 이름표’에 목을 매달도록 등을 떠민다면, 이런 사람을 두고 교사라고 할 수 없어요. 숫자와 등급에 맞추어 대학교에 들어온 아이들한테 ‘알파벳으로 된 성적’을 붙이는 사람을 두고 교수라고 할 수 없어요. 연구를 하는 사람은 연구자이지 교수가 아니에요. 그런데, 대학교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은 무얼 연구해서 어떤 삶을 빛내려고 할까요. 스스로 어떤 삶을 밝히면서 어떤 사랑을 누릴까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내 아버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둘레에 많이 있는 ‘교사 벗’이나 ‘교수 선후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사로 일하거나 교수로 지낸대서 바보스럽거나 멍청한 삶으로 나뒹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사이건 교수이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몫을 맡으면서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대목을 똑바로 읽고 슬기롭게 바라보며 아름답게 맺거나 풀 줄 알아야지 싶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제도권 학교교육’을 읽지 못한다면, 교사로서도 교수로서도, 무엇보다 어른으로서도, 어버이로서도, 그리고 사람으로서도, 아무런 빛과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4345.11.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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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2-11-2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와 감옥의 비유가 어쩜 그리도 딱딱 들어 맞는지 신기하군요!ㅎㅎ

특반 학생들은 화장실 청소도 시키지 않는다는 걸 아세요?
특특반 학생들의 야자 마치는 시간은 밤 12시, 특반 학생들은 11시,
일반반 학생들은 10시... ㅋㅋ 참 우습죠?
분노로 일렁이는 마음을 이제는 지켜볼 줄 아는 연륜이 쌓여가고 있어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 나쁘지만 않더군요.ㅎㅎ

종규님은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계신 듯 보여요.
댁의 아이들 또한 바로 제가 키우고 싶었던 아이들의 모습이어서 볼때마다
무척 흐뭇하고 뿌듯해지기까지 하더라구요.
용기로 보여 제 눈엔 더없이 훌륭해 보이는군요!^^


숲노래 2012-11-21 15:12   좋아요 0 | URL
헉... 특반이나 특특반이라는 게 있나요?
참...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에서조차
신분과 계급으로 나뉘어 시험공부만 하면
이 아이들이 나중에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면
ㅇㅁㅂ 같은 사람이나 ㅂㄱㅎ 같은 분들보다
훨씬 무섭거나 끔찍한 일을 할밖에 없는 줄
다들 모르거나 못 느낄까 싶기도 하네요...

삶이란 대단하지 않은데
이 대단하지 않으면서
사랑스럽고 좋은 나날을
여느 도시사람과 시골사람
모두 맑고 밝게
깨닫고 느끼며 즐길 수 있기를 빌어요...
 


 신문읽기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나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ㅎ신문 배달노동자로 살았습니다. 1999년에는 ㅎ신문 광고모델을 한 적 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ㅎ신문에 우리 말글 이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고서 2004년에 ㅎ신문을 끊었습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기며 더는 어느 신문도 읽을 까닭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살이를 들려주는 중앙일간지도 시골신문도 없거든요. 지역신문이든 도시신문이든 온통 도시살이만 다루거든요. 게다가 도시살이만 다루는 신문들이 도시 밑바탕을 이루는 여느 사람들 삶자락을 들려주지 않아요. 정치 이야기, 사건·사고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텔레비전 이야기, 자동차와 옷 이야기, 영어 이야기, 입시공부 이야기, 주식투자·부동산·아파트 이야기, 외국여행 이야기, 맛집 이야기, …… 들에 사로잡혀 정작 ‘작은 공장 노동자’ 이야기조차 1줄로나마 제대로 다루는 일이 없어요.


  무엇보다 ‘집에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는 아줌마 이야기’조차 중앙일간지이든 시골신문이든 다루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는 2004년부터 이제껏 어떠한 신문도 읽지 않고 보지 않으며 살피지 않습니다.


  중앙일간지라는 이름부터 허깨비라고 느낍니다. ‘중앙’이란 무엇이지요? ‘서울’이 한복판(중앙)인가요? 도시가 한복판인가요? 중앙에서 내는 신문이 왜 더 눈길을 받고 왜 사람들 목소리를 이끌어야 할까요?


  한미자유무역협정 이야기가 불거질 때에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하룻밤이나마 지내면서 이러한 무역협정이 이 겨레 먹을거리와 땅뙈기에 어떻게 스며들까를 생각한 기자나 작가나 지식인이나 학자는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ㅇㅁㅂ정부가 사대강 삽질을 밀어붙인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사대강 순례를 하는 사람이 제법 많지만, 아직 시골로 삶터를 옮겨 ‘스스로 삶을 즐기는 저항’을 하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진보신문도 없고, 민주신문도 없습니다. 더 까놓고 말하자면, 보수신문도 없으며, 중도신문도 없습니다. 평화신문이나 자유신문조차 없습니다. 통일신문이나 평등신문은 있을까요.


  진보와 민주와 보수와 중도와 평화와 자유와 통일과 평등이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삶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녹이거나 삭혀서 거듭나지 않는다면, 모두 ‘목소리로만 외치는 꼴’입니다.


  삶은 목소리가 아니라 삶입니다. 살아내야 비로소 삶입니다. 외치기만 하는 일이란 외침, 곧 목소리일 뿐입니다. 목소리를 낸대서 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스스로 삶을 움직일 뿐 아니라 삶을 즐기고 누릴 때에 달라집니다. 스스로 달라지지 않고 목소리만 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스스로 진보신문이라고 여긴다면, 도시를 떠나고 서울을 벗어나야 합니다. 진보를 말하려는 매체가 되겠다면 기꺼이 도시를 버리고 서울하고 등지면서 시골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신문을 내야 마땅합니다. 광고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밥을 벌며 신문을 내면 됩니다. 글 써 주고 사진 보내 주는 이한테는 스스로 지은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과 열매’를 글삯과 사진삯으로 주면 됩니다. 보수신문도 이와 같고, 평화신문이나 평등신문도 이와 같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참말 어느 누구도 종이신문을 안 읽습니다. 요사이는 연속극 보느라 텔레비전을 켜기는 하지만, 막상 텔레비전 새소식은 듣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새소식 나올 여덟 시나 아홉 시는 시골사람 모두 코코 자는 때거든요.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저녁 일고여덟 시면 하루를 마감하는 시골살이예요. 시골사람은 흙에서 사회를 읽고, 햇살에서 문화를 읽으며, 바람에서 경제를 읽어요. 멧자락에서 교육을 읽고, 냇물에서 철학을 읽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뛰놀며 삶을 읽습니다. (4345.1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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