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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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1.14.

날개는 늘 네 마음에 있어



《페르세폴리스 1》

 마르잔 사트라피

 김대중 옮김

 새만화책

 2005.10.5.



  《페르세폴리스 1》(마르잔 사트라피/최주현 옮김, 새만화책, 2005)를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한글판이 처음 나온 2005년 우리나라를 떠올리면 바야흐로 낡은 굴레가 하나둘 걷히면서 뭇목소리가 조물조물 터져나올 즈음이라 여길 만합니다. 들불(민주화운동)은 1980∼1990년에 그야말로 온나라를 덮었습니다만, 들불은 일어나더라도 다 다른 목소리를 다 다르게 받아들일 만한 터전은 아니었어요. 들불이 번지고서 열 몇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온갖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은 마당이 깨어났습니다.


  이란에서 순이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길이 얼마나 갑갑한가를 드러내는 《페르세폴리스 1》입니다. 그린이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낡고 고약하고 케케묵은 이란을 새롭게 바꾸어 내려고 온힘을 쏟았지 싶습니다. 두 어버이는 이란을 떠나지 않습니다. 두 어버이는 이란을 사랑하기에, 갖은 굴레하고 몽둥이에도 굽히지 않으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그립니다.


  그린이는 어버이 품에서 걱정없이 자라다가 이웃나라로 떠납니다. 굴레(히잡)를 씌우는 곳에서는 배움길이 없이 그저 굴레만 판치는 터라, 목소리뿐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살림도 없다고 여길 만했어요. 그런데 날갯짓(자유)을 그리며 이웃나라로 떠난 아이는 이웃나라에서 날갯짓이 아닌 엉뚱짓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요. 곰곰이 보면 ‘혼자 빠져나왔다’는 마음에 스스로 멍울을 새긴 셈입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한 이란사람’이 떠올라 날갯짓이 아닌 엉뚱짓으로 ‘늙어가는’ 하루였다고 할 만합니다.


  새롭게 살아가고픈 마음이었으나, 몽둥이 굴레에서 벗어나자 외려 고리타분하게 늙어가고 만 셈이랄까요. 2005년에 처음 읽을 무렵에도 2023년에 되읽는 오늘에도,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작은이웃’을 그닥 안 만나거나 안 눈여겨보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참나(참다운 나)’를 바라보면서 눈을 뜰 노릇인데,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겉나(겉몸을 입은 나)’만 쳐다보느라 참나도 이웃도 아닌 수렁길을 헤맨 나날이었네 싶어요.


  이런 대목은 그린이가 뒤이어 내놓은 《자두 치킨》이나 《바느질 수다》에서 또렷이 느낄 만합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날갯길을 찾아나서고 새롭게 짓는 하루가 아닌, 스스로 굴레에 사로잡혀서 눈도 마음도 닫는 노닥질에 빠져요. 이란이라는 나라를 고리타분한 바보짓으로 억누르는 고약한 웃사내하고 비슷한 매무새라고 여길 만합니다.


  날개는 늘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날개가 있는 줄 스스로 안 쳐다보기에 날개가 없다고 여기고 맙니다. 그린이 할머니가 얼마나 어질고 슬기로웠는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꽁무니를 빼야 할 적에는 뺄 만하되, 옆에 있는 이웃하고 동무를 바라보지 않고서 자꾸 달아나기만 한다면, 함께 태어나고 자라나던 마을 이웃하고 동무를 돌아보지 않고서 ‘프랑스사람처럼’ 살아간다면, 그 길이 나쁠 까닭은 없되, 늘 그린이 스스로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채 헤매는 모습일밖에 없습니다.


  13살이면 달아날 수조차 없는 어린 돌이는 나라(이란 정부)가 시키는 대로 쳇바퀴에 갇혀 싸울아비(군인)가 되어야 하는데, 이 가녀린 돌이한테 날갯길하고 참길을 들려주거나 보여줄 이웃이나 동무가 모두 달아나고 없다면, 이란은 앞으로도 바보스런 굴레에 그저 허덕이리라 봅니다.


ㅅㄴㄹ


부모님은 날마다 데모에 나갔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빠진다. 군인들은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들은 군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하루 종일 행진과 돌 던지기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면, 부모님은 온몸이 쑤신다고 했고, 머리까지 아파했다. (24쪽)


“너네 아빠는 살인자지만, 그게 네 잘못은 아니지. 그래서 널 용서하기로 했어.” “아빠는 살인자가 아니야! 아빤 공산주의자를 죽인 거야. 공산주의자들은 악마라구.” (52쪽)


대학은 사라졌다. 난 화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마리 퀴리처럼 되고 싶었다. 난 교육받은 자유로운 여성이 되고 싶었다. 만약 지식을 추구하는 게 암을 유발한대도, 차라리 그게 나아 보였다. (79쪽)


“두 놈이, 그 수염 난 두 놈이! 그 근본주의자 개자식들이, 개자식들, 개자식들, 놈들이.” “진정해, 엽.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놈들이 날 욕했어. 나 같은 여자는 벽에 대 놓고 강간하고 쓰레기장에 던져 버려야 한다고. 그리고 싶지 않으면, 베일을 써야 한다고.” (80쪽)


엄청나게 긴 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있었다. 특히 어린 남자애들이. 미래의 군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자는 13살 이후엔 외국에 나갈 수 없었다. (157쪽)


#Persepolis #MarjaneSatrapi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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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애장판 6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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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1.14.

덧살이와 함께살기 사이



《기생수 6》

 이와아키 히토시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10.25.



  《기생수 6》(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누구나 매한가지인데, 잘 하는 일이나 못 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어요. ‘하는’ 일만 있습니다.


  우리말 ‘하다’를 알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이 삶을 모르는 굴레에 갇혀서 헤맬 뿐입니다. 밥을 하고 말을 합니다.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노래를 하고 살림을 합니다. 사랑을 하고 절을 합니다. 같이 하거나 혼자 해요.


  하기에 살아요. 무엇이든 하기에 삶이 있어요. 무엇이든 안 하면 삶이 없습니다. 잘 했구나 싶어도 못 했구나 싶어도 고스란히 배우는 자취입니다. 좋아할 까닭도 싫어할 까닭도 없습니다. 반길 까닭이나 꺼릴 까닭이 없어요. 그저 하면서 보면 되고, 오롯이 하면서 언제나 하나로 다스리면 넉넉합니다.


  한자말 ‘기생’은 흔히 ‘기생충’처럼 쓰곤 하는데, ‘거머리’나 ‘붙어먹다’를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덧살이·더부살이’나 ‘묻어살다·들러붙다’이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스며들어 더부살이를 하는 작은 짐승이니 ‘덧짐승(기생수)’일 텐데, 사람하고 별(지구)을 나란히 놓고서 헤아려 봐요. 별이 없이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사람이 있기에 별이 별다울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참말로 사람빛이나 사람됨이 있는가요? 서로 치고박거나 죽이거나 괴롭히는 끔찍한 총칼질(전쟁)이 참말로 푸른별에 이바지하거나 사람다운 길일까요?


  사람끼리 서로 죽이는 바보짓인 총칼(전쟁무기)을 목돈을 들여 만든 다음에, 목돈을 받고서 팔아치울 수 있으면 나라살림에 이바지하는 셈인지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더 세고 더 놀라온 총칼을 만드는 데에 언제까지 목돈을 들여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이 나라에도 ‘국방과학연구소’란 데가 있어 돈을 펑펑 써대는데, 참말로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짓’에 ‘과학’이란 이름을 붙여도 어울릴까요?


  이제는 저마다 마음을 열고서 스스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나라에서 뒷배를 하는 곳에서 목돈을 받고서 일하는 숱한 사람들은 살림길이 아닌 죽음길에 온힘을 쏟는 판입니다. 나라일(정치)을 한다는 숱한 벼슬아치는 참말로 나라일을 하는 듯싶지 않지만, 우리는 때가 되면 뽑기(선거)를 자꾸 하며, 이런 뽑기에 허벌난 돈을 펑펑 써댑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라면, ‘돈벌이’가 아닌 ‘살림’을 배우고 나누며 어깨동무할 노릇입니다. 바느질을 배우고, 길쌈을 배우고, 아기돌봄을 배우고, 손빨래를 배우고, 밥짓기를 배우고, 풀꽃나무랑 마음으로 속삭이는 눈빛을 배우고, 해바람비를 읽는 눈썰미를 배우고, 별빛을 품고 이슬처럼 맑은 숨결로 살아가는 하루를 배울 노릇입니다.


  그림꽃 《기생수》에 나오는 덧짐승(기생수)은 사람한테 깃들며 두 갈래 길을 갑니다. 첫째는 스스로 생각하며 함께살기를 배우려 합니다. 둘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몸에 끄달려’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길을 갑니다. 우리는 첫째처럼 함께살기라는 길을 가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둘째처럼 사람끼리 물어뜯고 잡아먹는 굴레에 갇힌 살덩이인가요?


ㅅㄴㄹ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한 짓이야. 알겠어? 너와 나는 협력관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종이 다른 생명체다. 각각의 종이 갖는 성질을 되도록 존경하고, 자기 측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후, 우리의 공동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 그건 우선 ‘살아남는’ 거야, 안 그래?” “그래.” (13쪽)


‘타무라 레이코. 어찌됐건 순간적으로 느꼈다. 달라. 다른 ‘동족’들과 다르다! 위험해. 위험하다! 우리 ‘동족’들에게!’ (56쪽)


‘신비해. 이 아이는 너무 신비스럽다. 이 세계는 불가사의한 것이 너무 많아. 어째서 우리는, 기생생물은 왜 태어났을까?’ (57∼58쪽)


“설마, 거기까지 계산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인간답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124쪽)


“인간의 감정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지. 하지만 우리는 극히 약한 존재.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포체일 뿐이야. 그러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 (183쪽)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나는 뭣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한 가지 의문이 풀리면 또 다음 의문이 솟아올랐지. 기원을 찾아, 꿈을 찾아, 생각하면서 그저, 계속 걸어왔어.” (219쪽)


“지난번에 인간의 흉내를 내며, 거울 앞에서 큰소리로 웃어 봤어. 기분이 무척이나 좋더군.” (2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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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2부 : 책을 위해서라면 무녀가 되겠어 6
스즈카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문기업 옮김, 카즈키 미야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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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만화책 2023.1.6.

꿈과 삶 사이에는



《책벌레의 하극상 2-6》

 카즈키 미야 글

 스즈카 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2.4.30.



  《책벌레의 하극상 2부 6》(카즈키 미야·스즈카·시이나 유우/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2)에 이르러 비로소 책을 손에 쥡니다. 아무나 책을 만질 수 없고, 읽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글이나 셈도 익힐 수 없는 어느 나라에 똑 떨어지듯 태어난 작은 사람은 ‘예전에 책벌레로 살던 나날’을 고스란히 떠올리며 살아왔습니다. 새몸을 입고 태어났기에, 새삶을 누릴 노릇인데, 새터에는 책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으니 죽을맛이었다지요. ‘예전에 책벌레로 살던 나날’을 몽땅 잊었다면 새삶을 고분고분 받아들였을 테지만,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보내던 하루를 잊을 수 없기에, 밑바닥부터 새로 나서기로 했습니다.


  흙판부터 생각했고, 새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쓰는 글하고 셈을 익힙니다. 새터에는 없는 여러 살림을 ‘옛터에서 쓰던 살림을 떠올려서 하나씩 새로짓’고, 이렇게 새로지은 ‘옛터 살림’을 목돈을 받고서 팔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몸을 입고 살아가도 하루를 지을 노릇입니다. 밥살림이며 옷살림이며 집살림이 없이는 삶이 없습니다. 모든 살림은 두 갈래예요. 하나는 손수 짓는 살림이요, 다른 하나는 돈으로 사는 살림입니다.


  우리가 읽는 글이나 책도 매한가지입니다. 손수 이야기를 엮고 짓는 글하고 책이 있다면, 이웃이 엮고 지어서 선보인 글하고 책이 있어요. 한집사람이 주고받는 말이나, 동무랑 이웃하고 나누는 말은 ‘손수 짓는 살림’이 바탕인 이야기입니다.


  손수 지은 옷하고 돈으로 산 옷을 헤아려 봐요. 돈으로 산 옷이기에 나쁠 수 없습니다만, 돈으로 산 옷에는 스스로 품을 들인 삶은 없습니다. 손수 지은 옷이기에 더 좋을 수 없습니다만, 손수 지은 옷에는 스스로 품을 들인 삶이 있어요.


  멋지게 짓기에 아름다운 집이 아닙니다. 손수 품을 들여 가꾸고 돌보기에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집입니다. 멋지게 쓰기에 아름다운 글이 아닙니다. 손수 짓는 하루를 고스란히 담기에 사랑이 피어올라 저절로 옮기는 글입니다.


  작은아이 ‘마인’은 고삭부리로 태어났는데, 《책벌레의 하극상 2부 6》은 이 아이가 이태에 걸쳐 땀흘려 일군 ‘그림책 하나’를 보여줍니다. 그림꽃책으로 치면 13걸음 만에야 책을 얻습니다. 손수 책을 짓고 싶어서 종이에 붓에 글물(잉크)까지 손수 마련했고, 고삭부리라서 스스로 해낼 수 없는 일이 맡기에 둘레 뭇사람을 차근차근 이끌고 가르쳐서 저마다 솜씨꾼으로 빛나는 하루를 지으면서 함께 ‘책 한 자락 짓기’에 온마음을 기울일 수 있도록 보듬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책도 이와 같아요. 글님 한 사람만으로는 책이 없습니다. 펴냄터만으로도 책이 없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저마다 거들거나 함께하면서 책 한 자락을 짓고 펴고 나눕니다. ‘몇몇만 누리던 살림’을 넘어 ‘누구나 누리는 살림’을 이루기까지 숱하게 흘리는 땀방울에 사랑에 마음이 흐릅니다.


ㅅㄴㄹ


“여기가 아닌, 다시는 갈 수 없는 꿈속 같은 곳에서 알게 됐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신관장님은 믿어 주시겠나요?” (12쪽)


‘내가 종이 만들기에 처음 도전했을 때는 루츠와 단둘뿐이었지만, 그림은 빌마에게, 종이와 잉크는 고아원 사람들에게, 나무 테두리는 루츠의 형들에게, 롤러와 커터는 요한에게, 재료는 벤노 씨에게, 지금은 규모가 커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다같이 완성을 기대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62∼63쪽)


“완성했어.” “마인, 해냈구나!” “루츠랑 루리 덕분이야. 너무 기뻐. 오래 걸렸어. 직접 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지 약 2년.” (84∼85쪽)


“실패한 경험을 앞으로 잘 살리면 되잖아? 다음에 인쇄할 때는 미리 종이를 많이 준비해 두자.” (93쪽)


“무릎을 꿇어서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있다면 뭐 어떤가요.” “하지만.” “프랑. 분노의 방향이 고아원을 향해선 곤란하잖아요?” (109쪽)


“책은 예술품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의 결정이에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값싼 책을 양산하고 싶어요.” “값싼 책을 양산해? 많은 사람이 책을 필사하게 한다는 말인가?” “아니요, 인쇄로 양산할 거예요.” (158쪽)


#鈴華 #香月美夜 #椎名優 #本好きの下剋上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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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 전4권 - 바다어린이만화
이진주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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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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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느낌글을 비로소 썼고

2022년에 느낌글을 손질해서

새로 걸쳐 놓습니다.

《하니》도 다시 나와서

오늘날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새롭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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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만화책

살아갈 힘을 북돋우는 한 가지



《달려라 하니 1》

이진주 글·그림

드림필드

1996.10.27.



  1985년에 〈보물섬〉에 실리고, 1989년에 만화영화로 나온 《달려라 하니》(드림필드, 1996) 첫자락을 새삼스레 다시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느덧 스무 살도 먹고 서른 살도 먹는, 차츰 마흔 살까지 먹는 《달려라 하니》는 ‘오래된’ 이야기로구나 싶으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깃든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마음을 요즈음에는 둘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를 예쁘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하니나 하니를 둘러싼 사람들은 예쁜 모습이나 예쁜 얼굴이라기보다 따스한 모습이나 얼굴이라 할 만하고, 조금 더 찬찬히 보면, 하나같이 동글동글한 모습에 수수하거나 투박한 모습입니다. 하니하고 맞잡이로 서면서 불꽃이 튀는 몇몇 푸름이나 어른은 좀 뾰족하거나 모가 났다고 느끼지만, 이들도 나중에는 동글동글하면서 투박한 매무새로 거듭납니다. 도드라질 대목이 없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며, 남다른 빛깔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도드라질 대목이 없으면서 재미나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면서 아름다우며, 남다른 빛깔이 없이 착합니다.


  오늘날 숱한 그림꽃에서는 한결같이 ‘도드라져 보이려는 줄거리’에 ‘눈부시게 보이려는 모습’에 ‘남달리 보이려는 그림’이 가득합니다만, 썩 재미나거나 아름답거나 착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겉보기로는 대단할는지 모르나, 두고두고 되읽거나 다시 보면서 즐길 만한 맛과 멋을 헤아리지 못하는 오늘날이라고 느끼요.


  저는 어린배움터(국민학교) 4학년 무렵에 《달려라 하니》를 처음 읽으면서 하루에도 서너 벌씩 되읽었습니다. 이튿날에도 서너 벌을 또 되읽었습니다. 다음날에도 새삼스레 서너 벌 되읽었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 이레마다 이틀씩 찾아오는 ‘책 빌려주는 짐차’가 있었는데, 〈보물섬〉을 빌리는 날이면 사흘에 걸쳐 아홉열 벌은 거뜬히 읽었어요. 온마음으로 그림꽃책을 통째로 빨아들였습니다.


  한 벌 보고 다시 안 볼 만한 그림꽃이라면 처음부터 볼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심부름이나 집안일, 또 온갖 짐(공부·숙제)을 안 해도 된다면, 아마 하루에 열 벌이나 스무 벌씩 되읽었겠다고 돌아봅니다.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는 푸른배움터(중학교) 1학년 나이에 홀로 하늘집(옥탑방)을 얻어 밥을 하고 김치를 담급니다. 그렇다고 살림을 잘 해내지는 못하지요. 하니를 맡은 길잡이(담임선생) 홍두깨 씨가 하나하나 도와줍니다만, 열네 살 나이에 꿋꿋하고 씩씩하게 제 길을 걸으려는 하니예요.


  다만, 열네 살에 홀로서기를 하지만 ‘엄마 품’을 늘 그리워합니다. ‘잃어버린 엄마’가 아닌 ‘엄마를 빼앗겼다’고 여기면서 늘 불길처럼 마음을 불태우는데,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며 겨우 이 불길을 잠재우는 나날이지요.


  열네 살에도 ‘엄마 품’을 못 잊는다니 철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철이 덜 들면 철이 덜 든 대로 아름다이 살아가면 돼요. 철이 더 들었으면 철이 더 든 대로 참다이 살아가면 되지요.


  어떤 틀에 박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틀(규율·규칙)이 있다지만, 어떤 틀이든 사람들이 누구나 저마다 다르게 사람다이 살아가기 좋도록, 곧 사람이 사람다운 아름다움을 빛내도록 이끌거나 돕는 틀일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짜맞추어야 할 틀이라면 사납거나 고약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 다른 사람입니다. 달리는 빠르기가 다르고, 밥 먹는 부피가 다르며, 몸으로 쓰는 힘이 달라요.


  어린 하니는 빛처럼 빨리 달린다지만, 하니랑 나란히 서는 짝꿍 창수는 어영부영 느립니다. 어린 하니는 응어리진 생채기로 괴롭지만, 창수는 포근한 집안에서 따스히 사랑을 받으면서 외로운 하니한테 이 따스한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홍두깨 씨는 어릴 적부터 가난과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시달렸지만, 이 모든 아픔이며 응어리를 품고 살지 않아요. 늘 누가 따돌리고 괴롭히며 고단한 가시밭길이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남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데에 마음을 쏟지 않아요. 이 모든 아픔을 이녁 이웃과 동무를 새록새록 따사로이 보듬는 착한 넋으로 북돋우고 가꿉니다.


  달리기 솜씨를 뽐내는 나애리는 ‘솜씨’ 하나를 타고났으나, 이 타고난 솜씨로 마음씨를 곱게 갈고닦는 데에 끌어올리지는 못 합니다. 타고난 솜씨를 끌어올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지요. 아니, 찾지 못 하며 찾을 뜻이 없습니다.


  《달려라 하니》는 이렇게 다 다른 사람들이 한 마을에서 얼크러지며 툭탁툭탁 쌓아올리는 사랑을 들려줍니다. 어설퍼도 기쁘게 사랑을 쌓아올리고, 모자라도 너그러이 사랑을 쌓아올리며, 슬프기에 눈물로 어루만지는 사랑을 쌓아올립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내는 기운은 꿈입니다.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꿈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더 살아냅니다.


  돈이 있기에 살아가지 않습니다. 든든한 일자리가 있대서 살아내지 않습니다. 부릉이(자가용)가 없으면 걷거나 버스·택시를 타면 됩니다. 자전거룰 타도 즐겁습니다. 집이 없으니 다른 사람 집에서 얻어 지내거나 조그맣게 칸 하나 얻어 함께 살아갑니다. 돈이 없으면 돈이 있는 사람한테서 얻습니다. 땅이 없으면 땅이 있는 사람한테서 한 뙈기를 빌려 흙을 일굽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나눌 수 있습니다. 돈이나 땅이나 힘이 더 있으면 돈이나 땅이나 힘을 나눌 수 있고, 마음이며 생각이며 꿈이 있으면 이 마음이랑 생각이랑 꿈을 나눌 수 있어요. 글 한 줄을 써서 나눌 수 있어요. 이야기꽃을 펼 수 있어요. 바람처럼 흐르는 노랫가락을 들려줄 수 있어요. 신명나는 춤사위를 선보일 수 있어요.


  하루가 저물면 어느새 저녁이 찾아들고 별이 돋습니다. 밤이 흘러 어느덧 별은 흐릿하고 머잖아 새벽이 희뿌윰하게 밝겠지요. 온갖 풀벌레는 거침없이 웁니다. 풀벌레들은 저희 삶을 오롯이 누리면서 새벽이고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울음소리를 곱게 나누어 줍니다.


  저는 이 풀벌레 울음소리를 받아먹으면서 가을날을 실컷 누립니다. 결이 고운 노랫소리는 귀로도 살갗으로도 가슴으로도 스밉니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한테도 스미고, 곁에서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는 짝꿍한테도 스밉니다. 작은 살림집에 건사하는 책한테도 스밀 풀벌레 노랫소리이고, 우리 보금자리를 둘러싼 풀꽃나무한테도 스밀 풀벌레 울음소리입니다.


  가을날 풀벌레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우면서 고맙고 즐겁습니다. 가을날 자리맡에 《달려라 하니》를 얌전히 꽂아 놓고서 새삼스레 꺼내어 다시 들춥니다. 따사로이 품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언제가 가장 빛나는 살림살이요 노래입니다.


ㅅㄴㄹ


“이 악바리야! 졌지? 별거 아닌 것이 사나이 앞에서 까불고 있어! 앞으로는 내 앞에서 까불지 마! 알았지? 이 키 작은 못난이 계집애야!” (24쪽)


악바리라 불리워 버린 소녀. 부릅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 키 작은 몸으로 무서운 스피드를 내는 소녀. 그러나 그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한, 그 애 이름은 하니! (26∼27쪽)


아직은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 부릅뜬 두 눈이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펑펑 쏟아져내릴 것 같은 아이. 악바리라 불리는 아이, 하니! (33쪽)


“잔소리 말고 가서 두부나 두 모 사 와!” “칫! 매일 나만 시키고. 명화 누나는 왜 안 시켜요?” “누나는 대학생인데다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피아노 연습하지 않니?” “아빠는요?” “쿨! 드르렁!” (50쪽)


놀림을 받아도 또 한 번 쳐다보게 되는 아이. 그렇게 좋은 감정. 사춘기가 오는 소리. (61쪽)


“하니!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소꿉장난 하냐?” “김치요.” “에라! 이 녀석아! 이리 내놔! 김치란 이렇게 담근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 음식 맛이란 손끝에서 우러나는 정성과 양념 양에 따르는 거란 말야. 마늘과 파, 중요한 거야. 난 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며 자취하기 때문에 죄다 알아. 그래서 나는 어려서 혼자도 살아 보고 고생하며 크는 걸 찬성하는 사람이란다. 물론 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안 되지. 그런 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하니! 너를 보고는 안심했다. 넌 얼마든지 혼자 힘으로 꿋꿋하게 지낼 놈이야. 자! 간이 어떤지 맛 좀 봐라!” (76∼78쪽)


“너 달리기 좋아하니? 그, 뭐냐, 육상이란 거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뛰는 거요? 저도 가끔 한 번씩 힘차게 달려 봤음 하고 생각해요. 숨이 차도록! 특히 엄마 생각이 날 때면 엄마 품까지 내처 달려 보고 싶어요. 하늘 끝까지라도.” (80쪽)


‘엄마는 그저 하니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돼! 난 엄마에게 아무것도 안 바랄 거야.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 가슴의 기억만 있으면 돼.’ (130쪽)


‘그 집은 처음부터 내가 살던 집이야. 자기들 멋대로 팔아버렸지만 내 집이야. 그 집, 거기엔 엄마의 기억이, 그 집 거기엔,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 우리 엄마의 체취가 남아 있는 집을 빼앗은 계집애! 다음에도 까불면 가만 안 놔둘 거야. 조심해! 가만 안 놔둘 테니까!’ (15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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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3 - 애장판
오자와 마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만화책

언제나 포근히 햇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3》

 오자와 마리

 박민아 옮김

 서울문화사

 2005.1.3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3》(오자와 마리/박민아 옮김, 서울문화사, 2005)을 되읽었습니다. 처음 이 그림꽃을 만난 뒤로 곧잘 되읽으면서 마음을 추스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싶은 날, 어른이란 어떤 길일지 돌아보고 싶은 날, 사람이란 어떤 삶인지 헤아리고 싶은 날, 오자와 마리 님 그림꽃을 곁에 놓으면 언제나 포근히 내려앉는 햇볕을 느낄 만합니다.


  사랑이란, 어렵지 않되 쉽지 않습니다. 사랑은 늘 사랑입니다. 어른은, 높지도 않으나 낮지도 않습니다. 어른은 언제나 어른입니다. 사람은, 똑똑할 까닭도 바보일 까닭도 없습니다. 사람은 그저 사람입니다.


  어렵게 꾸미거나 쉽게 내뱉을 적에는 으레 사랑하고 멀어요. 높이거나 낮출 적에는 노상 어른스러움하고 동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자랑을 하건 깎아내리건 모두 삶을 잊은 모습입니다.


  노래하는 하루이기에 사랑이 흐릅니다. 같이 놀고 같이 쉬고 같이 누리는 살림이기에 아이어른이 함께 즐겁습니다. 기꺼이 배우고 스스럼없이 가르치는 사이인 동무요 이웃이에요.


  햇볕이 있기에 푸른별이 살아숨쉽니다. 햇볕이 없으면 몽땅 얼어죽어요. 이름이 드높건 돈이 넘치건 힘이 세건 다 부질없습니다. 햇볕 한 줌하고 바꿀 수 없어요. 무시무시한 총칼(전쟁무기)을 앞세우더라도 하나같이 덧없습니다. 햇볕 한 줌하고 댈 수조차 없습니다.


  무엇을 보는가요? 어디로 가는가요? 스스로 사랑씨앗을 심으면서, 사람답게 풀꽃나무를 품는, 어질며 참한 살림살이일 적에 비로소 오늘 하루가 반짝입니다.


ㅅㄴㄹ


‘확실히 애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10대에 엄마가 됐다든지 편모슬하라든지, 그래서 아이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또 버릇없이 키운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서 강한 척해 보인 거야. 미안. 미안, 농농. 엄만 농농 기분을 생각 못 해줬어.’ (37쪽)


“할아버지한테 부탁받아서도, 일이라서도 그런 거 아냐.” “그럼 왜에?” “농농이랑 농농 엄마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야.” “토요가미 아저씬 농농이랑 엄마 사랑해?” “아…….” …… “아빠랑 엄마는 서로 사랑했어요. 그래서 농농이 태어난 거야. 농농 엄마한테 다 들었어.” (73∼74쪽)


“만약에 나도 일을 하면 엄마가 지금처럼 힘들게 일 안 해도 될 거야. 우리 집도 그렇지만, 만약에 아빠가 있으면, 엄마가 집에 계속 있을 수 있을 거야. 아빠가 없어도 뭐 특별히 슬프지 않지만 우리 엄만 너무 일을 많이 하니까, 이렇게 날씨 좋은 쉬는 날에도 일해야 되고,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진 계속 혼자서 나 키워야 되잖아.” (146쪽)


“그치만, 꼭 돌아올 거야. 게다가 보고 싶어지면 언제든 보러 갈 수 있어.” “비행기로?” “응. 비행기 타고.” ‘조금도 주저하는 마음이 없을 때, 그때는 내가 먼저 만나러 갈 거다.’ (235쪽)


‘어른은 왜 잘난 척할까? 꿈은 어떻게 꾸는 걸까? 귀신은 정말 있을까? 밤은 왜 무서울까?’ (354쪽)


“엄마, 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응. 분명히 농농 마음속에 있어.” “나?” “엄마 마음속에도 있어. 눈을 감고 아빠를 생각하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지?” (380∼381쪽)


#世界でいちばん優しい音樂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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