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 사이코 100 : 11
One (원)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 힘이 있으면 어디에 쓰게?



《모브사이코 100 11》

 ONE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6.5.25.



  우리한테 이름이 있다면 이 이름을 어디에 쓸 생각인가요. 우리한테 돈이 있으면 이 돈을 어디에 쓸 마음인가요. 우리한테 힘이 있을 적에는 이 힘을 어디에 쓰려고 하나요.


  이름이며 돈이며 힘은 우리 손에 들어오기 앞서 어디에 어떻게 쓰면서 스스로 어떤 하루를 지으려 하는가를 먼저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찬찬히 짚지 않고서 거머쥐려는 이름이나 돈이나 힘이 될 적에는 둘레에 얄궂은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망가진다고 느껴요.



“나 혼자라도 세계정복을 해내기로 결심했다면 하는 거다. 그 정도로 오만해질 수 있다면 세계는 이미 내 손에 있는 거나 다름없어.” (5쪽)



  우리한테 꿈이 있다면 이 꿈은 어떻게 펼까요. 우리한테 사랑이 있으면 이 사랑은 어떻게 퍼질까요. 우리한테 빛하고 어둠이 있을 적에는 이 빛하고 어둠은 어떻게 갈마들면서 흐를까요.


  즐거이 지어서 이루려는 꿈은 누구보다 스스로 즐거우면서 이웃한테도 즐거운 기운으로 나아갑니다. 기쁘게 길어올려 나누려는 사랑은 누구보다 스스로 기쁘면서 동무한테도 기쁜 눈길로 퍼져요. 그렇다면 빛하고 어둠은 어떠할까요. 환한 빛살하고 고요한 어둠은 우리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공격하는 놈에게, 카케야마를 넘겨줄 수는 없어!” (53쪽)


“그건, 편할지는 몰라도, 즐겁지는 않아.” (86쪽)



  힘은 있되 이 힘을 즐겁거나 기쁘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게 꿈으로 키우는 길은 도무지 헤아리지 못하는 어른이 있다지요. 이런 어른하고 맞붙는 푸름이가 나오는 《모브사이코 100 11》(ONE/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6)를 가만히 읽으며 우리 삶터를 바라봅니다.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일까요. 시장이나 군수는 무슨 일을 하는 데일까요. 국회의원이나 교사는, 청소부나 우체부는 저마다 무슨 일을 하는 벼슬일까요.


  어느 곳에서 어느 일을 맡든 온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적에는 엉망이나 엉터리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하찮은 일이란 없고, 대단한 일도 없습니다. 자그마한 일이 따로 없고, 커다란 일이 딱히 없습니다. 모든 일은 언제나 우리 스스로 온힘을 다하면서 마주할 뿐입니다.



“조직에 의지하던 때와는 달라. 자립하려는 의지의 힘을 가진 우리는 더 강해졌다!” (89쪽)


“아까 깨뜨린 유리문을 네가 수리할 수 있어? 당첨이 나오면 하나를 더 주는 아이디어를 초능력으로 생각해 낼 수 있어?” (111쪽)



  밥 한 그릇을 짓는 손길에 늘 사랑이 흐르도록 다스려야지요. 이 밥을 먹을 사람이 사랑을 받아들이려면 말이지요. 옷 한 벌을 짓는 손짓에 노상 사랑이 어리도록 가누어야지요. 이 옷을 두룰 사람이 사랑으로 춤추려면 말이지요. 집 한 채를 짓는 손놀림에 언제나 사랑이 깃들도록 가다듬어야지요. 이 집에서 살림할 사람이 사랑으로 하루를 누리려면 말예요.


  돈만 벌려고 하기에 돈벌레란 이름이 생깁니다. 벌레가 나쁠 일은 없지만, 벌레는 벌레요 사람은 사람인데, 아름다이 돈을 벌며 아름다이 나누는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름값이나 주먹힘이 아닌, 어깨동무하고 손잡기로 가는 길이 즐거우면서 아름답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을 믿는 수밖에 없어. 그러지 못하면, 모두 그자리에서 끝이야.” “너답구나. 하지만, 상냥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지. 때로는 타인에게 엄격해질 필요도 있어.” (136쪽)



  이제 학교에서 두들겨패거나 막말을 일삼거나 얼차려를 시키는 짓은 거의 사라집니다. 그러나 운동경기를 하는 자리에는 아직 이런 짓이 도사립니다. 더구나 이 삶터에 군대하고 전쟁무기가 고스란히 있어요. 평화로 나아가는 평화가 아닌, 군대와 전쟁무기를 들이밀면서 ‘서로 안 싸우는 척하는 모습’만 있습니다.


  평화라는 몸짓으로 마주할 적에는 다칠 사람이 없습니다.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들이밀면서 ‘안 싸우는 척’할 적에는 다치기 쉽고 죽기까지 합니다. 생각해 봐요. 총이나 미사일이나 폭탄이나 지뢰로 뭘 하나요? 더 쉽고 빠르게 많이 죽이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것들 아닌가요. 더 센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갖추려고 그쪽에 마음이며 힘이며 돈이며 품을 쓰는 동안 우리 삶터는 더 망가지거나 무너지거나 흔들리거나 아프거나 괴롭지 않은가요.



“세계정복을 하겠다는 의기는 어디 갔고?” “진심으로 그러는 것은 보스뿐이에요. 나는 즐겁기만 하면 뭐든 상관없거든요. 이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생각 못해서.” “즐거우면 상관없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친 거야? 웃기지 마.” (185∼186쪽)



  꼭두힘을 쓰는 한 사람이 온누리를 거머쥐면 누구한테 무엇이 즐거울까요. 아마 꼭두힘을 쓰는 그이 스스로조차 안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꼭두힘으로 온누리를 짓누르는 이는 머잖아 그이보다 힘센 누구한테 짓밟힐까 걱정하면서 삶을 못 누릴 테니까요.


  꼭두힘이 아닌 나눔힘이 될 적에, 착한 뚝심이 되고 숲을 돌보는 팔심이 될 적에, 또 살림을 알뜰살뜰 여미는 손힘이 될 적에, 이러한 힘은 그야말로 서로서로 힘이 나면서 새롭게 빛나리라 봅니다.


  한쪽만 웃는다면 웃음이 아닙니다. 놀리거나 괴롭히는 비웃음도 웃음이 아닙니다. 웃음이란, 꽃처럼 피어나 모두한테 곱게 퍼지는 향긋하면서 놀라운 사랑빛입니다. 웃음이란,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힘으로도 끌어당기지 못하는, 언제나 즐거운 사랑으로만 스스로 길어올리는 살림빛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수의 아이 5 - 완결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푸른책

- 느끼는 대로 별을 봐



《해수의 아이 5》

 이가라시 다이스케

 김완 옮김

 애니북스

 2013.9.27.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숨을 못 쉽니다. 사람뿐 아니라 푸나무도 곧장 시들어요.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모두 죽음뿐입니다. 사람은 며칠뿐 아니라 백 날 동안 먹지 않아도 안 죽습니다. 몇 해 동안 밥을 안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밥으로만 움직이지 않거든요. 살갗으로 바람이며 햇볕을 먹습니다. 마음으로 사랑이며 기쁨이며 꿈을 먹어요.


  세끼를 꼬박꼬박 먹기에 튼튼하지 않아요. 사랑도 기쁨도 꿈도 없이 밥만 꾸역꾸역 먹는다면 외려 앓거나 아프기 마련입니다. 가시울타리에 갇혀 먹이만 받아들이는 고기짐승이 된다면 튼튼할 수가 없어요.


  차려서 누리는 밥은 적더라도, 고작 밥그릇 하나에 김치 한 조각에 간장 조금 놓은 차림새라 하더라도 웃고 깔깔대면서 즐거운 자리라 한다면 배를 가득 채우지 못하더라도 즐거운 기운이 넘치면서 튼튼하면서 아름답게 하루를 짓습니다.



세계가 막 생겨났을 무렵, 지상의 모든 생물은 메마른 흙덩어리였다. 다만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새만은, 넘쳐나는 물로 몸울 적시고, 유유히 하늘을 춤추었다. (5쪽)



  바닷속에도 바람이 붑니다. 바닷속 바람은 물결이나 물살로 나타나요. 바람을 머금은 물인 바다이기에 이 바닷속에는 숱한 숨결이 저마다 다르게 어우러지면서 빛납니다. 뭍에서는 바람이며 구름이며 들이며 숲이 고루 얼크러지면서 저마다 다른 숨결이 새삼스레 빛나고요.


  이러한 별에서 사람은 무엇을 하나요? 사람은 무엇을 지으려 하나요? 골골샅샅 다 다른 숨결이며 숨빛인데, 다 다른 아름다운 모습에서 다 다른 사랑스러운 삶을 느끼거나 나누거나 누리나요? 아니면, 모든 고장에 똑같이 시멘트하고 아스팔트를 뒤집어씌우고 쳇바퀴 같은 하루가 흐르도록 내몰면서 톱니바퀴 같은 아파트하고 자동차만 잔뜩 뽑아내는가요? 사람이 지은 학교는 얼마나 다른 아름다운 빛을 다 다른 아이들한테 베풀면서 배움길을 들려주는가요?



“말했잖아? 운석은 기억을 뒤섞는다고. 나는 네가 아는 누군가의 기억이자, 운석 그 자체이고, 너의 일부이기도 해.” (36∼37쪽)


“끝까지 지켜봐. 단, 운석이 네게서 떨어지면 번역자는 사라지는 거야. 이제부터 네가 보는 것의 의미는, 네가 생각해야 해. 너 혼자 찾아야만 해.” (44쪽)



  바다에서 빛나는 삶을 다섯 자락으로 그린 꾸러미 가운데 《해수의 아이 5》(이가라시 다이스케/김완 옮김, 애니북스, 2013)은 마무리이면서 빛잔치입니다. 두툼한 만화책 하나를 통틀어서 ‘바다잔치 + 빛잔치’를 그려냅니다.


  바다잔치에서는 입으로 말하지 않아요. 글로 써서 보여주지 않아요. 책을 엮는다든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도 없습니다. 연예인이나 정치꾼도 없을 뿐더러, 벼슬아치나 먹물이나 이런저런 재주꾼이 따로 없습니다.


  바다잔치에서는 모두 빛님입니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빛님이며, 이 잔치판에 손님으로 찾아온 ‘루카’란 아이도, 이 잔치판 한복판에 서서 ‘어둠빛’으로 녹아드는 ‘우미’란 아이도, 또 루카하고 우미 사이를 빛돌로 잇는 ‘소라’란 아이도, 다같이 빛님이면서 다 다른 빛님입니다.



‘잘 가라고 그랬어?’ (190쪽)



  이 땅에 씨앗을 심어 볼까요? 아주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지만 꽃으로 자라기도 하고, 풀로 돋기도 하고, 나무로 크기도 합니다. 어느 씨앗이건 반짝입니다. 어느 씨앗이건 우리가 손바닥에 얹으면 파르르 떨면서 조마조마 기다립니다. 어느 땅에 고이 묻을는지 설레면서 지켜보아요.


  씨앗은 어두운 땅에 묻히면서 가만히 잠듭니다. 아니, 잠이야 진작 잤는지 몰라요. 처음 푸나무에서 꽃을 지나 열매를 거쳐 씨앗이라는 꼴로 태어날 무렵부터 잤는지 몰라요. 아니, 씨앗은 땅에 묻힐 적부터 잠들고, 땅에 묻히기 앞서는 우리 곁에서 조잘조잘 떠들면서 마음으로 온누리를 두루 돌는지 몰라요.



“파도나 바람이 하는 말은 심플한데, 다들 생각이 너무 많아. 그 아이는? 무언가 얘기하던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야지. 소중한 것은 말로 담지 않는 편이 좋지. 그 아이는 그걸 잘 아는 게야.” “말로 담아야 비로소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결국, 아무도 그것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어요. 다음 기회는 있을까요?” “의외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일지도 모르지. 바다는 넓다는 소리일세. 사람들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모르지.” (263∼265쪽)



  나라에 돌림앓이가 퍼지면서 바야흐로 초·중·고등학교가 멈춥니다. 여러 이웃나라에서는 운동경기까지 멈춥니다. 하늘나루도 하나둘 멈춥니다. 그동안 마땅하다고 여기던 갖은 물질문명이 줄줄이 멈춥니다. 전기하고 인터넷이 안 멈출는지 우리는 얼마나 헤아릴 만할까요? 택배나 우편이 언제 멈출는지 얼마나 내다볼 만할까요?


  몇 억도 아닌 십억이나 이십억이란 값에 이르는 높다란 아파트에 사는 분은 그 시멘트집이 얼마나 뜻있을까요? 전기하고 인터넷하고 택배가 멈춘다면, 하늘나루하고 기름집하고 모든 아스팔트길이 멈춘다면, 이때에도 서울 강아랫마을 값비싼 아파트를 거머쥔 채로 버틸 만할까요?


  그렇다고 시골이 아름다운 이 나라는 아닙니다. 오늘날 어느 시골을 가든 비닐이 춤을 추고, 농약하고 화학비료가 들썩입니다. 비닐도 농약도 화학비료도 닿지 않는, 오직 우리 손길에 흐르는 사랑이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상냥한 숲에서 일렁이는 푸른바람하고 맑은냇물을 누릴 만한 터는 어디쯤일까요?


  예전에 스님 한 분이 ‘고속철도보다 천성산’이 대수롭다고, ‘4대강사업보다 내성천’이 대단하다고 조용히 읊은 적 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어떤 길이며 빛이며 삶이며 숨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지을 적에 스스로 아름다이 피어나는가를 깨닫거나 생각하거나 느끼는 자리에 설 만한지 궁금합니다.



“죽는다는 건,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는 걸까?” (273쪽)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몸으로 바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바다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해요.” (290쪽)



  지난날 새마을운동을 밀어붙인 이는 풀로 이은 지붕은 낡아빠지고 가난해 보인다면서 죄다 끌어내린 다음에 슬레트(석면)를 올리도록 닦달했습니다. 오늘날 시골에 꽤 많이 남은 석면지붕을 나라에서 아주 더디게 치워 주기는 합니다만, 석면지붕을 치워서 어디로 가져갈까요?


  오늘날 시골 논자락마다 흙도랑이던 논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갈아치우면서 ‘농촌개량복지사업’ 같은 이름을 내겁니다만, 흙도랑은 풀이 돋고 미나리가 자라고 개구리에 다슬기에 미꾸라지에 소금쟁이에 게아재비에 뱀에 오리에 제비에 뭇숨결이 어우러지면서 싱그럽게 기나긴 나날을 이어왔고, 바다도 푸지게 살찌웠습니다. 시멘트로 갈아엎은 도랑은 고작 열 몇 해만 지나도 바스라지면서 시멘트 기운이 논에 스미고 바다로도 퍼져요.


  우리는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나락을 먹나요, 비료나 농약이나 시멘트나 비닐을 먹나요? 여름이 아닌 겨울 한복판에 가게에 나오는 딸기는 겨우내 비닐집에서 석유로 불을 때서 수돗물하고 성장촉진제로 키웁니다. 겉보기는 딸기이지만, 정작 우리 몸에는 무엇이 깃드는 셈일까요?



“누구랑 약속했어?” “이 장소와 이곳의 빛, 나무들과 풀, 바위, 벌레들, 모든 소리, 이곳의 모든 것들과.” “무슨 약속을 했어?” “생각나질 않는구나. 우연히 이곳에 흘러들어왔지.” (324쪽)



  바다라는 빛을 다룬 《해수의 아이》는 오롯이 그림으로 말을 겁니다. 그림빛으로 마음에 말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봐요. 돌림앓이에 걸리지 않기만 하면 그만이냐고 묻습니다. 입을 가리고 손을 물로 씻고 집밖으로 안 나가면 다 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 삶을 이루는 바탕을 그대로 둔 채, 우리 생각을 이루는 길을 그냥그냥 등돌린 채, 어서 돌림앓이가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리면 되느냐고 묻습니다.


  돌림앓이가 한창인 나날에는 우리 하루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머잖아 돌림앓이가 걷힌 뒤에는 우리 삶길을 어떻게 돌려세우면 좋을까요? 예전에 어느 돌림앓이가 지나간 뒤에 우리는 삶길을 돌려세우지도 바꾸지도 손질하지도 않았습니다. 새 돌림앓이가 찾아올밖에 없습니다.


  이 돌림앓이 다음에 새 돌림앓이가 와도 좋은지, 아니면 앞으로는 다 다르면서 서로 새롭게 빛나는 기쁜잔치를 이 나라 어디에서나 한껏 펴는 꿈을 사랑으로 키울는지, 이제부터 갈림자리에서 슬기롭게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느끼는 대로 별을 보면 스스로 빛납니다. 느끼면서도 별을 바라보지 않으면 스스로 사라집니다. 느끼지 못하고 별조차 그리지 않으면, 그때에는 아무것도 없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석의 나라 10
이치카와 하루코 지음 / YNK MEDIA(만화)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 네 길은 네가 찾아내지



《보석의 나라 10》

 이치카와 하루코

 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10.25.



  헤매고 또 헤매며 자꾸 헤매던 푸른 날, 이른바 열넷∼열아홉이란 나이를 살면서 ‘누가 손 좀 잡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손을 잡아 줄 만한 이를 또래나 어른한테서 찾지 못했습니다. 열아홉이 저물고서 텃마을을 떠나 서울이란 아주 커다란 고장에서 대학교에 들어가 살짝 머물 즈음에 ‘타고난 집안과 어버이 돈으로 군대를 안 가도 되는 분’이 문득 한 마디를 하더군요. “너희한테 술은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지만, 너희 길은 너희가 찾아야지.”



“정말로 포스포틸라이트를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겠나? 달에 가면 네 체질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끄, 끈질기네.” (13쪽)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릎 꿇고 앉는 눈높이로 손을 잡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에 다섯 학기를 머물고서 스스로 그만둔 다음에는 ‘앞으로 참다이 어른이란 이름이 걸맞는 살림을 꾸릴 때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하고 어깨를 겯고서 스스로 찾아나서는 길에서 스스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을 손질했습니다.


  이러고서 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며 생각을 거듭 손질합니다. ‘우리 집 어린이부터 마음으로 마음을 읽는 눈빛을 스스로 틔우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어버이로 살고, 어른인 나부터 언제나 마음으로 마음을 읽는 손빛으로 하루를 짓는 사랑으로 노래하자’ 하고요.



“신샤가 진심으로 날 공격했어. 유크와 대화하던 중에 케언곰이 날 부쉈어. 월인은 나를 보석으로 여기고, 모두는 나를 월인으로 여겨.” (26쪽)


‘그야말로 막다른 곳에 다다랐는데, 머리가 생각을 멈추지 않아.’ (58쪽)



  자라지 않는 숨결은 없습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랍니다. 자람결이 달리 보일 뿐입니다. 풀하고 나무도 자라며, 돌하고 바위도 자라요. 흙하고 냇물도 자라며, 바다하고 하늘도 자랍니다. 다만, 꽤 많은 분들은 돌이나 흙이 자란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할 뿐더러, 바다하고 하늘이 자란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여기지요. 이런저런 모습을 늘 지켜보면서 《보석의 나라 10》(이치카와 하루코/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을 읽었습니다.



“무기를 안 가지고 갈 거야.” “뭐?” “선생님이 나오지 않은 건, 아직 우리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72쪽)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빛돌(보석)’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냥 돌입니다. 빛이 나지 않는 돌은 없기에 ‘빛돌’이란 이름은 억지스럽습니다만, 오늘날 숱한 사람들은 ‘여느 돌’하고 ‘빛돌(보석)’을 갈라서 돈으로 셈합니다. 다이아몬드라든지 금쯤 되는 돌이라면 아주 비싸게 값을 매기지요.


  자, 생각할 노릇입니다. 다이아몬드나 금붙이는 생각이나 마음이 있을까요? 다이아몬드나 금은 사람이 깎거나 다듬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까요?


  여느 조약돌이나 바위한테는 생각이나 마음이 있다고 느끼나요? 길에 있는 돌을 우리가 발로 뻥 차면 돌은 아프다고 느낄까요, 안 느낄까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숲이며 들을 파헤쳐서 흙이며 땅이며 나무를 이리저리 부수거나 깨뜨리거나 죽이면, 이들 돌이며 흙이며 땅이며 나무는 어떻게 느낄까요?



‘아무것도 생각하면 안 돼. 거짓은 유크가 알아챌 테니까. 기도해 달라는 일념 하나만으로 선생님한테 부탁해야 해.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왜나면, 선생님은 항상 나한테 다정했으니까.’ (128∼129쪽)



  어른이란 자리에 선 분들이 아이들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안다면, 오늘날처럼 정치나 행정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경제나 교육이나 종교나 과학이나 스포츠 따위를 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참말로 모든 짓을 멈추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오늘날 어른이 지은 삶터는 어린이가 좋아하거나 즐기거나 사랑할 만할까요? 너무 어른 멋대로 지은 틀은 아닌지요? 게다가 어른 스스로도 썩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고단하거나 지치거나 괴롭거나 짜증스러운 틀은 아닌지요?


  어린이를 제대로 생각하는 어른이라면 ‘전기를 써야 하는 길’에서 아무 발전소나 섣불리 아무 데나 때려짓지 않겠지요. 핵발전소를 꼭 지어서 이곳에서 전기를 얻어야 한다면, 핵폐기물은 어떻게 건사할는지 빈틈없이 살펴야 할 테고, 목숨을 다한 발전소를 치울 적에 그 ‘시멘트나 방사능 쓰레기’를 어떻게 깨끗하게 갈무리할는지까지 꼼꼼하게 생각할 노릇입니다만, 얼마나 생각한 어른일까요?


  2020년에는 ‘코로나19’라는 이름이지만, 몇 해 앞서는 다른 이름이었고, 앞으로 몇 해 뒤에는 또 새로운 이름으로 돌림앓이가 퍼질 만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신나게 뛰놀면서 아름답게 자랄 만한 터전으로 이 나라를 가꾸는 데에는 마음도 몸도 돈도 힘도 안 쓰니까요.



“월인의 기원이 인간의 영혼이라면, 우리한테서 영혼을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기억을 남겨 놓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179쪽)



  만화책 《보석의 나라》에 나오는 아이들(빛돌)은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백 해에 이백 해에 기나긴 해를 사는 ‘아이들’로 그대로 몸을 이으면서 어느덧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찾아냅니다.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길은 무엇일까 하고 헤매고 갈팡질팡합니다.


  다들 왜 헤맬까요? 길을 못 찾아서 헤맬까요? 언뜻 보면 그렇지요. 아직 길을 찾지 못하니 헤맨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쁜 모든 일을 내려놓고서 다시 바라보면 좋겠어요. 아이나 어른이 헤매는 까닭은 매우 쉽게 알아낼 만해요. ‘스스로 나아가고 싶은 길이 아직 없’거든요. 길을 가고 싶은데 길이 없으니 헤맵니다.


  ‘남이 지어 놓은 길’은 고분고분 가더라도 신나지 않습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은 얌전히 따르더라도 재미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이 시키는 대로 살지 못해요. 아무리 남이 밥을 차려 주어도 우리 손으로 떠먹어야 하고, 우리 몸이 삭여야 하며, 우리 몸뚱이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힘을 내어 움직여야 하지요.


  헤매야 합니다. 헤매면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지을 노릇입니다.


  제 길은 제가 헤매면서 찾아냅니다. 그대는 그대 스스로 헤매면서 그대 길을 찾아내겠지요.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해매면서 어른이 나아갈 길을 찾아요. 아이는 아이답게 마음껏 뛰놀고 날고 노래하고 춤추고 어우러지다가 시나브로 아이로서 나아갈 길을 새로 찾아내어 지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종 일기 세미콜론 코믹스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 아픈 사람은 숲에서 낫는다



《실종일기》

 아즈마 히데오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2011.3.11.



  옛날에는 아픈 사람이 있을 적에 얼른 시골이나 숲으로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두지 않았어요. 오늘날에는 아픈 사람이 있으면 으레 병원에 보내거나 외따로 두기 일쑤입니다.

  옛날하고 오늘날은 무엇이 다를까요? 옛날에는 아픈 사람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아플 만하고, 누구나 아프기도 하거든요. 다만,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이이한테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아요. 오직 하나만 바라고 맡기지요. ‘튼튼하게 일어서는 데에만 온마음을 쓰고, 다른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요.



작업실에 돌아오니 편집자의 메시지. 그 뒤로 연재하던 만화를 대부분 접고 휴양에 들어갔다. 일을 쉬는 기간에는 아침에 작업실에 가서 술 마시고 자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술 마시고 잤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자니 점점 우울과 불안과 망상이 덮쳐 와서 죽고 싶어졌다. “어디 인적 없는 산속에 가서 죽자.” 돈도 떨어졌고, 마지막 술도 마셨다. 산비탈을 이용해서 목을 벨 계획이었다. 근데 잠이 왔다. (6∼7쪽)



  오늘날에는 시골에 요양시설이 있곤 합니다. 그러나 이곳도 터만 시골일 뿐 똑같이 병원입니다. 아픈 이가 숲을 누리거나 햇볕을 쬐거나 바람을 마시거나 맨발로 풀밭을 밟도록 이끌지 못해요. 오늘날 병원이나 요양시설은 매한가지입니다. 포근한 손길이 아닌 기계나 의약품에만 내맡겨요. 튼튼하게 일어설 새몸보다는 ‘처방·수술’에 치우칩니다.


  옛날에 아픈 사람을 시골이나 숲에서 지내도록 할 적에는 아픈 몸을 오롯이 돌아보도록 했어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를 되새기도록 했고, 앞으로 어떤 꿈을 그리려 하는가를 매우 느긋하면서 천천히 짚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병원은 무엇을 할까요? 오늘날 건강보험은 무엇을 할 만할까요?



“무만 먹고 다니니 어질어질하네. (쓰레기통에) 비엔나빵 조각이 있네. 은근히 맛있네. 결국 춥다든가 배가 고프다든가 담배를 피우고 싶다든가 술을 마시고 싶다든가 그런 번뇌가 나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로군. 이젠 쓰레기 봉투 뒤지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롱.” (20쪽)



  한창 만화를 그리다가 이도 저도 괴롭고 지치며 어지러워서 그만 모든 만화를 멈추고 달아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이는 곁님이며 아이한테는 부끄럽지만 스스로 너무 죽을 듯해서 달아나고 싶었다 하며, 달아난 곳은 숲이었다지요. 낮부터 밤까지 숲에서 지내다가 이른새벽에 마을로 조용히 내려와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거리를 찾았대요. 이런 이야기를 《실종일기》(아즈마 히데오/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2011)에 고스란히 담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하루 종일 걸었다. 다리가 풀릴 때까지 걸었다. 이렇게 하니 피곤해서 술 없이도 잠이 잘 왔다. (66쪽)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먹을거리를 챙긴 만화쟁이 아저씨는 몸이 아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숲에서 지내면서 늘 때맞추어 움직이고 오래오래 걷다 보니 몸은 외려 한결 튼튼하게 달라졌다지요. 더구나 오랫동안 짓누르던 멍울도 말끔히 가실 만했다고 하지요.


  다만, 마을사람이나 경찰은 이런 한뎃잠이로 숲에서 혼자 지내는 사람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싫어했다뿐입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고약한 냄새란 무엇일까요? 거의 숲사람이 된 몸에서 고약한 냄새일까요, 아니면 화학약품이 가득한 병원이 고약한 냄새일까요? 머리카락에 물을 들이거나 이것저것 하는 화약약품도 냄새가 대단합니다. 샴푸나 염색약이나 화장품이야말로 고약한 냄새일 텐데, 우리는 이런 냄새는 안 고약하다고 여기지 않을까요?


  숲에 사는 짐승이나 벌나비나 푸나무는 사람이 몸에 두른 샴푸 냄새 염색약 냄새 화장품 냄새를 매우 꺼립니다. 이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 곁에는 어떤 새도 딱정벌레도 나비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아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노숙자 생활을 했던 시절에 제일 건강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잘 먹고 잘 싸, 맑으면 일하고 비오면 책 읽어.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두 시간 안에 하루 준비를 끝낸다. 그날 먹을 밥, 담배, 디저트, 술값, 마실 물을 확보한다. (69쪽)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힘겹습니다. 비정규직이나 감정노동 때문만이 아닙니다. 너무나 고달프게 겨루거나 싸워야 하는 판에다가,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입시라는 싸움터에 내몰려요. 게다가 이런 싸움터를 갈아엎을 낌새가 잘 안 보입니다. 다들 아무튼 대학교에는 보내야 한다고 여길 뿐, ‘아무튼 대학교는 안 보내고 생각해 보자’는 마음은 찾아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아무튼 중·고등학교도 초등학교도 안 보내고 생각해 보자’는 마음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지요.


  우리는 무엇을 잃거나 잊었을까요? 만화쟁이 아저씨는 스스로 톱니바퀴에서 달아나서 숲 한켠에서 한뎃잠이요 숲사람으로 제법 오래 지냈습니다. 이러다가 ‘붙잡혀’서 다시 만화를 그리는 삶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해 내내 거의 큰고장 일터에 머물며 지내다가 여름이나 겨을에 쪽틈을 얻어 그제서야 숲이 아름다운 곳에 살짝 바람쐬러 다니는, 또는 이레 가운데 닷새를 큰고장 일터에 머물다가 이틀쯤 자가용을 몰아 시골이나 숲에 가볍게 바람쐬러 다니는, 이러한 얼거리로는 우리 몸이며 마음은 그저 지칠 뿐이지 않을까요. 이제는 큰고장이라는 담벼락을 허물고서 작은고장으로 바꾸고, 작은고장은 시골로 바꾸고, 시골은 아주 숲으로 바꾸어서, 누구나 무슨 일을 하건 푸른바람이며 맑은물이며 고운해를 누리는 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무렵(1970년대 첫무렵) 테즈카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뭐야? 콘티를 안 보여준다고? 난 만날 수정 당하는데 말야.” “그런가요?” (129쪽)


편집자가 시키는 대로 그리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130쪽)



  달아날 수 있습니다. 달아나도 됩니다. 아플 적에는 쉴 노릇입니다. 힘드니까 그만둘 만합니다. 그러니까 너도 나도 함께 쉴 만한 터전이자 마을이자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집집마다 마당이 있고, 마을마다 빈터랑 숲정이가 있으며, 고장마다 너른 들이며 냇물이 있도록 가꾸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 타카코 씨 4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 콕콕 콩콩 찾아드는 노랫소리



《행복한 타카코 씨 4》

 신큐 치에

 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8.12.15.



  겨울에 매우 포근한 고장에서 살면 함박눈뿐 아니라 싸락눈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겨울에 더없이 포근한 고장에서 살면 잎눈이나 꽃눈을 수두룩하게 만날 뿐 아니라, 아직 겨울바람이 가시지 않을 무렵에도 꽃내음을 맡기 좋아요.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온누리를 하얗게 덮는 하늘눈도 좋고, 푸나무에서 피어나려는 풀눈·나무눈도 좋거든요.



“자신감을 갖고 언제든지 관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 타카코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었더니 결심이 굳어졌어.” 마음을 달래 주는 건, 언제나 누군가의 숨결. (120쪽)



  지난겨울에는 고흥이란 고장에서 하늘눈을 하루도 만나지 못했는데, 밤새 매우 고요했어요. 왜 이렇게 고요한가 싶어 새벽에 마당을 내다보았더니, 어라 흰눈이 마당을 가볍게 덮었군요. 해가 들면 모두 녹을 듯했고, 참말로 아침이 되자마자 흰눈은 녹습니다. 그러나 낮에도 저녁에도 눈발은 이어가더군요. 비록 고흥이란 고장에서는 저녁에 날리는 눈발도 바로바로 녹습니다만, 아이들은 하루 내내 오랜만에 눈을 구경할 수 있어서 손이며 볼이며 몸이 얼도록 눈놀이를 즐깁니다.


  그래요,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은 고요합니다. 눈은 온누리를 하얗게 덮을 뿐 아니라, 온갖 소리도 차분히 잠재워요. 새롭게 피어날 철을 그리면서 하얀 이불이 된달까요. 깊이깊이 꿈을 꾸라는 뜻으로 소리를 다독인달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힘든 내색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인 건 멋진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불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더 힘들지 않아?” (115쪽)



  2018년에 세걸음이 나오고 2020년에 드디어 네걸음이 나온 《행복한 타카코 씨 4》(신큐 치에/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0)입니다. 썩 널리 읽히거나 사랑받지는 못하는구나 싶은데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선보인 다른 만화 《와카코와 술》은 퍽 읽히고 사랑받는구나 싶은데요, 저는 ‘혼술놀이’를 즐기는 이야기보다 ‘소리놀이’를 누리는 이야기가 어쩐지 끌립니다.


  숲에서라면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노래로 맞아들이고, 서울에서라면 서울에 퍼지는 소리를 노래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이야기가 감도는 《행복한 타카코 씨》예요. 서울(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살며 갖가지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는 타카코 아가씨인데, ‘다른 사람은 시끌벅적하다’고 여겨도, 타카코 아가씨는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살림자리를 가꾸면서 살아가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 생각하는 소리’라고 여깁니다.


  소리에 깃든 마음을 읽는다고 할 만해요. 소리에 담는 생각을 느낀다고 할 만하지요. 소리로 나누려는 사랑을 헤아린다고 할 만하고요.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온다. 그 정체는 밝은 웃음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똑같은 힘이 있어. 어른은 도저히 불가능한, 있는 힘껏 드러내는 공포나 아픔, 악에 받친 응석.’ (68∼69쪽)



  우리 입에서는 어떤 말소리가 흐르나요. 우리 눈은 어떤 말소리를 알아보는가요. 우리 손으로는 어떤 소리를 짓는가요. 연필을 사각이는 소리인가요. 눈밭을 사그락사그락 밟는 소리인가요. 농약을 피이이 뿌리는 소리인가요, 들풀 곁에 쪼그려앉아 잎줄기를 톡톡 훑는 소리인가요.


  아이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넘기는 소리인가요, 악을 쓰면서 치고받는 소리인가요. 콩콩 폴짝폴짝 사뿐사뿐 날아가듯 걷는 소리인가요, 쿵쿵 씩씩 흥흥 골을 부리는 소리인가요.


  통통 톡톡 도마를 두들기는 칼놀림이 노래가 되는 소리인가요, 쾅쾅 퍽퍽 도마를 내리찍는 칼부림이 짜증스럽거나 지겨운 소리인가요. 우리는 늘 소리를 내지만, 언제나 우리 마음결에 맞추어 다 다른 소리가 되어요.



‘들려오는 소리로는 느낄 수 없었다. 직접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된 서글픔. 분명 그곳에는 나의 상상이 미치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 터. 지레짐작은 하지 말자고 맹세한 아침 풍경이었다.’ (40쪽)



  한국말로 옮긴 이름은 《행복한 타카코 씨》입니다만, 일본책에는 “타카코 상”이란 수수한 이름입니다. 타카코 아가씨는 소리에서 즐거운 빛도 서운한 빛도 느끼고, 반가운 빛도 아쉬운 빛도 느껴요.

  가만 보면 그렇지요. 우리 귀는 ‘소리라고 하는 빛’을 받아들이는 곳이지 싶어요. 살갗이나 눈이나 코는 ‘소리라고 하는 결’을 새삼스레 느끼는 곳이지 싶고요.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란 무엇일까요? 키득키득하는 소리란 즐거운 웃음인가요, 놀리는 웃음인가요. 킬킬대는 소리란 좋아 죽겠다는 웃음인가요, 비웃으려는 몸짓인가요.


  얼핏 듣는 소리는 같을는지 몰라도, 소릿값만 같을 뿐 마음빛은 달라요. 글로 옮기는 소리마디는 같아 보일는지 몰라도, 글씨만 같을 뿐 마음차림은 다르지요.



눈에 보이는 리액션이 똑같으면 왠지 안심이 돼. 이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30쪽)


설령 결과적으로 어지럽힌 것이 될지라도, 평소의 사소한 행동이 이렇게나 그 사람의 인상을 좋게 만든다.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쌓여,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10쪽)



  어버이나 어른 자리에 있는 분들이 그리 살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떻게 마주하면 즐거울까요? ‘즐거울까?’라는 대목을 헤아려 봐요. 똑같이 받아치는 싸움판이 아닌, 누가 더 낫거나 뛰어나다는 다툼판이 아닌,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놀이판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눈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까요? 비오는 소리에 발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어 볼까요? 꽃이 지는 소리에, 또 꽃이 피는 소리에, 잎이 지는 소리에, 또 잎이 돋는 소리에, 하나하나 우리 마음을 바람에 실어서 띄워 볼까요?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수다잔치가 벌어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