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마리코 10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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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만화책

옛날을 오늘로 바꾸는 책



《80세 마리코 10》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12.31.



“부활한 뒤에 깨달았어. 독자는 작가의 가장 큰 힘의 근원이야! 내가 독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독자가 그걸 받아들여 준다면, 난 백만 마력이라고!” (65쪽)


“옛날 책이 재미있니?” “옛날 아니야. 책을 읽으면 거기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이야. 아빠 책장은 모르는 지금이 가득 있어.” “아빠가 갔던 곳에 너도 가는 거구나.” ‘책은 속도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장소에서 천천히 시간을 뛰어넘는 거야.’ (74∼75쪽)


“있습니다. 미래는 저도 신도 선생님도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103쪽)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처지겠지만 친해지려는 마음도 안 든다. 자신과 비슷한 영감을 보고 질색할 뿐이야. 책을 찾아볼 마음도 안 들어. 새로운 지식 따윈 내게 필요없으니까. 모든 게 다 귀찮다.’ (133쪽)


“여자들은 상대가 부자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하던데, 코다 씨도 신데렐라가 되고 싶진 않나요?” “돈이요? 음, 하지만 전 제가 벌어 부자가 되는 게 더 좋아요.” (163쪽)



  만화책을 같잖게 보는 눈길이 꽤 있습니다. 왜 만화책을 같잖게 볼까요? 만화책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지 않거나, 아름만화를 만난 일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만화책이라면 그저 안 좋다고만 여기면서 스스로 생각을 닫고 마음을 잠근 탓은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만화를 모르기에 같잖게 보는구나 싶어요.


  적잖은 사람들은 이웃을 옷차림이나 주머니나 생김새로 따지곤 합니다. 허름한 옷차림이면 마치 사람도 허름하다고 여기고, 자동차가 허름하면 그이도 허름하다고 여기며, 자동차가 없이 걸어다니면 어떻게 요즈음에 자동차도 못 굴리는 허름한 살림이냐 하고 여기기도 해요. 그런데 주머니가 돈으로 가득해야 안 허름할까요? 잘생기거나 예쁜 몸매이면 안 허름한 사람일까요? 겉훑기로 따지는 눈길이란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맞을까요?


  만화책 《80세 마리코 10》(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으며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책은 틀림없이 만화책이지만 소설 같구나 싶고, 소설을 넘어 고스란히 우리 삶인데다가, 인문책 백 자락이나 오백 자락을 한몫에 담았구나 싶은 이야기꾸러미이네 싶어요.


  열걸음째에 이른 《80세 마리코》에서는 여든 살이란 나이가 되도록 미처 제대로 헤아리지 않던, 또는 미처 몰랐던, 또는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마리코 할머니는 어느 날 ‘마리코 할머니가 예전에 쓴 소설책을 읽는 아이’를 만나요. 아이는 마리코 할머니 예전 소설이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여기에 있는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때로 나아가’고, ‘언제나 새롭게 생각을 키우는 꿈나라로 가는 징검다리’로 느낀다고 수수하게 말합니다.


  여든 살 소설쟁이 할머니는 가슴이 확 트이지요. 문득문득 마음으로 느꼈을 수 있지만 정작 말로 또렷하게 그려 본 적이 없던 ‘책이 맡은 일’을 깨달아요. ‘모든 책에는 아직 모르는 오늘이 가득하다’고, ‘모든 책은 앞으로 새로 나아갈 그야말로 새롭고 눈부신 오늘을 만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된다’고 하는, 책읽기가 우리 삶에서 어떤 몫을 하는가를 가만히 되짚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외려 어리석은 몸이 되기도 하고, 한결 슬기로운 눈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기에 늙은 몸뿐 아니라 늙은 마음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반짝반짝 아름다이 빛나는 손길이 되어 이웃한테 어진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주기도 합니다. 자, 생각해 보기로 해요. 어느 길로 갈 적에 즐겁나요? 어느 갈래에 깃들면서 스스로 빛나면 신날까요? 어느 마음이 되고 어떤 몸이 되고 싶은가요?


  여든 살이기에 여든이란 고갯마루에서 새롭게 배우는 길로 가겠습니까? 여든이니 이제 죽을 생각을 해야겠구나 하고 모든 배움길을 스스로 막고서 폭삭 주저앉아 버리겠습니까?


  나이가 어리기에 모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기에 알지 않습니다. 알려고 마음을 먹기에 적은 나이에도 잘 알고, 알려는 마음을 틔우지 않으니 늙은 나이에 도무지 모르곤 합니다.


  솜씨꾼이라서 잘 배우지 않아요.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에 잘 배워요. 재주가 없어서 못 하지 않아요. 눈을 안 뜨고 마음을 안 여니 못 해낼 뿐입니다.


  옛날을 오늘로 여는 책을 폅니다. 오늘 옛날로 나아갔다가 새날로 날아가 봅니다. 옛날을 살던 이웃을 책에서 만납니다. 오늘을 살며 새날을 꿈꾸는 동무를 책뿐 아니라 숲에서, 구름더미에서, 풀밭에서, 나뭇잎 끄트머리에서 만납니다. 싱그러이 웃으며 스스로 꽃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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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솜나물 7 - 아빠와 아들
타가와 미 지음, 김영신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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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 가장 훌륭한 약이 무엇인 줄 아니?



《풀솜나물 7》

 타카와 미

 김영신 옮김

 서울문화사

 2019.7.30.



  “가장 훌륭한 약은 무엇일까요?”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어라 대꾸할 만할까요. 의사나 약사한테 가서 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스스로 찾아내거나 알아낼 만할까요? 가장 훌륭하니까 가장 비쌀는지요, 아니면 가장 훌륭하기에 오히려 우리 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는지요?


  가장 훌륭하기에 쉽게 찾지 못할 만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가장 훌륭하기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똑같이 언제 어디에서라도 지을 수 있지 싶습니다. 어떻게? 바로 우리 온사랑을 모은 손으로, 눈빛으로, 마음으로.



“이 귀여운 아이를 꼭 안아 보게 해주세요. 아, 이만 한 약이 없는걸.” (40쪽)



  만화책 《풀솜나물 7》(타카와 미/김영신 옮김, 서울문화사, 2019)은 아버지하고 아들 두 사람이 새롭게 서는 길을 보여줍니다. 아, 두 사람이라 했습니다만, 막상 둘만은 아닙니다. 먼저 하늘길로 떠난 어머니가 있어요. 두 사람하고 똑같은 몸이 이곳에 있지는 않습니다만, 두 사람은 늘 ‘마음으로 같이 있다’고 느끼면서 살아요.


  언뜻 본다면 다른 사람 눈에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하고 둘이서만 다니네’ 하고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아이한테도 아버지한테도 ‘우리는 둘이 아닌 셋이 늘 함께 다니지요’ 하는 마음이에요.



“학교 때문에 아빠랑 같이 못 있는 거면, 시로는 학교에 안 갈 거야.” (49쪽)



  마음을 읽기에 한집안을 이룹니다. 마음을 안 읽거나 못 읽는다면 같은 지붕을 이고 살아도 남남입니다. 마음을 나누기에 한사랑이 피어납니다. 마음을 안 읽거나 못 읽는다면 같은 말을 주고받더라도 늘 텅 빈 채 하루가 흐릅니다.



‘네놈이 납득하지 못하는 걸, 아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119쪽)



  만화책 한 자락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서로 마음으로 마주하기에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어버이도 아이도 서로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을 줄 알기에, 언제나 따뜻하면서 넉넉한 살림이 됩니다.


  먼저 하늘길을 간 님이 있으나, 하늘길에서 늘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는구나 하고 느낀다면, 이곳 땅길에서 걱정할 일이란 없습니다. 하늘길에 먼저 간 님도 땅길에서 두 사람이 듬직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참으로 흐뭇하면서 믿음직하겠지요.



“누나의 삶은 엄마나 나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어. 자유를 얻고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나도 참혹했지. 그래도 그것을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우리는 시작해야만 해.” (147쪽)



  언제나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애써 두 걸음씩 가야 하지 않습니다. 늘 한 발짝씩 걸어갑니다. 때로는 뒷걸음을 칠 수 있고, 제자리걸음이나 옆걸음을 쳐도 됩니다.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되고, 와장창 넘어져서 코가 깨져도 됩니다. 걱정할 일은 없어요. 곁에서 따사로이 쓰다듬어 주는 님이 있는걸요. 곁에서 든든히 손을 내밀며 일으켜세워 주는 님이 있어요.


  내가 넘어질 적에 네가 붙잡아 주듯, 네가 넘어질 적에 내가 붙잡아 줍니다. 우리는 함께 움직입니다. 우리는 같이 웃습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합니다. 키가 다르다면 손을 잡습니다.



“네 마음까지 생각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시 셋이서 다른 길을 찾아보자.” (177쪽)



  가장 훌륭한 약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담기에 모든 앙금도 아픔도 생채기도 멍울도 쓰라림도 허물도 고름도 말끔히 씻어요. 사랑을 펴기에 바로 환하게 웃음지으면서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어요.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은 가장 맛있고 좋습니다. 사랑을 담지 않은 밥은 값지거나 값나가더라도 맛없고 안 좋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담아 쓴 글은 가장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사랑이 없이 쓴 글은 그럴듯하거나 멋져 보이더라도 차갑거나 싫습니다.


  모든 자리에서 오로지 하나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누리려고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려고 이곳에서 따사로이 마주보면서 손을 잡습니다. 사랑을 가르치면서 물려주는 어버이요, 사랑을 배우면서 물려받는 아이입니다. 새롭게 지피는 사랑으로 서로 기쁜 한집안이며 보금자리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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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의 그림자 철학하는 아이 14
크리스티앙 브뤼엘 지음,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 이마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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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또래 아닌 ‘마음동무’를 바라는 아이들



《줄리의 그림자》

 크리스티앙 브뤼엘 글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이마주

 2019.7.15.



“말 좀 해 봐. 도대체 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책을 읽니?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굴 수는 없어?”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요, 엄마. 나는 줄리라고요!” (5쪽)



  장갑이 마음에 들면 안 추운 곳에서도 장갑을 끼고서 책을 읽습니다. 좋아하는 인형이 있으면 곁에 인형을 앉혀서 같이 책을 읽습니다. 바지가 좋으니 바지를 꿰고, 치마가 좋으니 치마를 두릅니다. 꽃이 좋아 꽃을 보며, 자동차가 좋아 자동차를 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같아요.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마음에 드는 길을 가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반가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른 자리에 서면 으레 아이를 쳐다보다가 따지지요. “넌 왜 그렇게 하니?” 하면서.



줄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걸 고양이에게만 살짝 털어놓지요. 둘은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재미난 놀이를 몰래 즐겨요. 그래도 줄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답니다. (7쪽)



  사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났으니 사내스러워야 한다고,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난 만큼 가시내스러워야 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내스러움이나 가시내스러움은 누가 틀을 세울까요. 아이 스스로 세울까요, 아니면 나라나 마을이나 다른 사람들이 세울까요.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크리스티앙 브뤼엘·안 보즐렉/박재연 옮김, 이마주, 2019)는 줄리라는 아이가 맞닥뜨려야 하는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데 모조리 어른 말을 따라서 해야 하느라 마음이 엉키고 힘들며 지친 모습’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언제나 재미나게 노래하고 수다쟁이에 마음껏 뛰놀던 아이가 어느 때부터인가 시커먼 구름을 껴안더니, 이 기운을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때에 아이 둘레에 있는 어른은 ‘아이가 떠안고 만 시커먼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해요. 아이를 돕지 못합니다. 더구나 ‘아이가 이제 얌전해졌다’면서 반기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답지 않게 머리를 빗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보다 더 얌전하게 앉아 있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만큼 떠들지 않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이제 줄리는 자기가 누구를 닮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거울조차도 줄리를 못 알아봐요.  (25쪽)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얌전하거나 조용히 있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는 아기를 억지로 울지 말라 할 수 없습니다. 어른처럼 또박또박 말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닌, 아직 ‘어른처럼 하는 말’을 하나도 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으니, 울거나 웃는 낯빛으로 마음을 드러내요. 게다가 무엇이든 낯설거나 새로우니, 무엇이든 만지고 싶고 해보고 싶어요. 뒤집기도 못하던 몸으로 기다가 서다가 걷는 기쁨에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 재미를 누리려고 신나게 뛰거나 달리는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더러 ‘조용하’라고, ‘얌전하’라고, ‘뛰지 말’라고 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이가 실컷 노래하고 떠들고 뛰놀 자리를 넉넉하면서 느긋이 마련해 주고 나서야, “자, 이제 차분히 뭘 하나 배울까?” 하고 물어야 앞뒤가 맞지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모름지기 마음껏 뛰놀거나 구르거나 까르르거리면서 스스로 배우기 마련입니다.



“나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여기 와서 울어. 이곳에는 나를 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다들 내가 여자아이처럼 운대. 생긴 것도 여자아이 같고. 근데 네 삽 말이야. 땅을 파기에는 좀 작은 거 같은데!” (38쪽)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에 나오는 줄리는 시커먼 기운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다스릴 길이 있을까요?


  갑갑한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집 바깥을 헤맵니다. 이때에 줄리 못지않게 시커먼 기운이 휩싸여서 괴로운 또래를 만납니다. 줄리는 가시내라는 몸 때문에 괴롭다면, 또래는 사내라는 몸 때문에 괴롭습니다. 둘은 마음이 맞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 셈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아이한테 또래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만, 아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아이나 어른한테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지 싶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한곳에 우르르 몰아넣는 자리가 아닌, 서로 아끼거나 돌볼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이 흐르는 사이가 되어서 어우러지고 놀고 일하는 터전이 되어야지 싶어요.


  마음이 맞지 않기에, 아니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기에, 시커먼 기운이 자랍니다. 마음이 맞기에, 아니 마음을 읽으면서 즐거이 어우러지려고 하기에, 우리 곁에 밝으면서 맑은 기운이 샘솟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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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4
정주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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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억누른대서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

 정주진

 철수와영희

 2019.9.4.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싸우다 보니 우리는 항상 전쟁을 생각하고 전쟁을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24쪽)


독재자와 정치인은 오히려 국민의 무관심과 무지에 힘입어 남북 대립과 군사적 대결을 강화했습니다. (54쪽)


그렇지만 증오만 생각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63쪽)


남북관계와 북한에 대해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을 너무 증오해서 북한과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방해합니다. 다른 하나는 가짜뉴스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90쪽)


국방부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국민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강한 국방’이라는 구호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무력 강화가 곧 평화를 보장하고, 국민이 원하는 바이며,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호는 7조 4000억 원을 들여서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108쪽)


(산불 진화용) 250억 원짜리 대형 소방헬기와 (전쟁용) 1150억 원짜리 스텔스 전투기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잘 말해 줍니다. 거의 쓸 일이 없는 스텔스 전투기에는 막대한 돈을 쓰면서 안전을 위해 정말 필요한 소방헬기에는 돈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요. (110쪽)


함께 살아가려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북한은 우리 이웃이라는 점입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우리는 북한과 서로 위협하고 싸우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162쪽)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묻고 이웃나라에도 물어보아야 할 때입니다. ‘서로서로 군대를 이렇게 키우고 해마다 어마어마한 돈을 군대에 쏟아부어서 우리가 여태 평화로웠나요, 아니면 더 다투거나 싸우면서 군대에 돈을 더 쏟아부어야 했고, 더 아슬아슬해야 했으며, 더 미워하는 길을 걸었나요?’ 하고요. 군대가 있었기에 참말로 평화를 지켰을까요, 아니면 군대가 있었기에 참으로 평화하고는 동떨어졌을까요?


  흔히 말하기를, 저쪽이 무기를 안 버리는데 우리부터 먼저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저쪽도 우리하고 똑같이 말하겠지요. 우리가 무기를 안 버리니 저쪽도 먼저 무기를 버릴 수 없다지요.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19)는 이 나라 푸름이가 앞으로 이 나라를 새롭게 가꾸는 든든하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평화와 전쟁이라는 이름에 감추어진 민낯을 드러내고, 남북녘 모두 군대에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느라 정작 무엇을 안 하거나 못 하는가를 낱낱이 비추어서 들려줍니다.


  따지고 보면 남북녘뿐 아니라 미국도 매한가지입니다. 미국도 그토록 군대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붓느라 정작 여느 미국사람 살림살이는 엉망이라고 하지요. 미국에서는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군인이 되는 길을 가야 비로소 살림을 펼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다지요.


  평화를 지킨다고 하는 군대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지 싶습니다. 모든 군대는 ‘쳐들어오는 저쪽을 막으’려고 있지 않습니다. ‘먼저 쳐서 끝장을 내’려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핵폭탄이든 미사일이든 먼저 퍼부어대면 모든 전쟁은 바로 끝납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그렇게 폭탄이며 미사일을 퍼부어대면, 이쪽도 똑같이 ‘나만 못 죽는다. 너도 죽어라’ 하면서 똑같이 폭탄하고 미사일을 퍼붓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평화를 지키는 듯 보이’는 모든 모습은 허울입니다. 어느 한쪽이든 먼저 치면 저쪽을 무너뜨리기 쉬우나, 그렇게 나섰다가는 다같이 죽음수렁으로 갈밖에 없으니, 그렇게 군대하고 무기를 잔뜩 갖추었어도 쳐들어가지 않고, 더 센 군대하고 무기를 거느리려고 치달을 뿐입니다.


  오늘날 어른은 앞으로 어른이 될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군대하고 전쟁무기로 가득한 이 나라를 물려주어야 평화로울까요?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거느리느라 나라살림이 얼마나 휘청이는데, 이런 휘청살림을 물려주어야 평화일까요? 아니면 남북녘이며 일본이며 미국이며 중국이며 러시아이며, 모두 평화로 나아가자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아나서면서 ‘새로운 무기 개발을 끝장내’고서, 이런 데에 쏟아부은 돈을 온나라에 푸른 숲을 이루는 아름다운 살림길로 바꾸어내야 평화일까요?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에서 여러모로 짚기도 하지만, 소방헬기는 갖추지 못하지만 무시무시한 갖가지 전쟁무기는 잔뜩 갖추려는 나라살림입니다. 굳이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을 거두지 않고도 의료 도움이나 밑살림을 누구나 느긋이 꾸릴 만한 돈이 어엿이 있습니다. 다만 이 돈은 언제나 새로운 무기(요새는 무인 군사드론 개발)를 뚝딱거리는 데에 다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먹여살리는 데에 다 쓸 뿐이고요.


  ‘전쟁 억제력’은 평화가 아닌 전쟁길입니다. 전쟁이 안 터지게 군사힘을 키워서 억누르는 길은 낡았습니다. 이 낡은 길이 아닌, 사람들 살림살이를 남녘도 북녘도 제대로 바라보면서 돌보는 길을 가야지 싶습니다. 그 길이 바로 평화일 테니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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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HaHa)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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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하하 HaHa》

 오시키리 렌스케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8.5.31.



“부모의 의견과 가지꽃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하잖니?” “어차피 나 같은 가지는 꽃도 안 피워.” …… “나는 아직 18세 꽃다운 소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서 술판을 벌이지. 그거야말로 나다운 인생이야. 벌써부터 어른이 될 걸 걱정하면서 살면 반대로 손해잖아. 어떤 것도 나를 묶어놓을 수는 없어!” (10쪽)



  오늘 이곳에서 바라보는 살림이 매우 팍팍하다 싶은데 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요? 궁금한 아이는 어머니한테 여쭙니다. 어머니는 새롭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럼, 웃을 일이 있는데 웃지, 우니?”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이한테 어머니는 몇 마디를 보탭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즐거운 일은 웃으면서 살아야지. 아무리 힘들더라도 스스로 웃어야 즐겁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웃음으로 풀어서 넘겨야지.”


  아이는 어머니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아이는 어머니 말을 언제쯤 알아듣고서 찬찬히 철이 들 만할까요?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어릴 적에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요?



“타에 언니, 그렇게 심하게 혼내도 괜찮은 거야?” “어머, 노부. 야단 좀 맞았다고 그만둘 것 같으면 이 일 못하지.” “그건 그래.”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거야. 그걸 생각하면 야단 좀 맞는 건 별것 아니지.” (30쪽)



  만화책 《하하 HaHa》(오시키리 렌스케/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8)는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흐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늘은 어머니였으나 어제는 아이였던 삶을, 그리고 어제 아이였던 사람한테 어머니나 아버지였던 분이 더 옛날에는 어떤 아이로 살았으려나 하고 어림해 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짚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이로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우리 어머니는 왜 저 따위야?’라든지 ‘우리 어머니는 늘 저래서 못 이긴다니까!’ 같은 생각이 왜 불거지고 어떻게 풀리는가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엄마의 뇌리에는 지금까지 홀대받은 애견들의 원통한 얼굴이 떠올랐고, 그 원한이 쌓이고 쌓여 할아버지에게 대들기 충분한 용기가 갖춰져 있었다. “그만두렴, 노부. 아버지는 딸의 기분도, 개의 기분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66쪽)



  ‘하하’라는 말소리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똑같이 웃음소리를 나타냅니다. 무척 재미난 말이에요. 어쩌면 세 나라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나라에서 ‘하하’는 웃음을 가리키는 말소리이지 않을까요? 사람한테뿐 아니라 새한테도 나무한테도 별한테도 ‘하하’는 즐거운 웃음이요 슬픔을 씻는 웃음이며 아픔을 달래는 웃음이지 않을까요?


  일본에서는 ‘하하(はは)’에 다른 뜻도 깃듭니다. 바로 ‘어머니’예요. 웃음소리이자 어머니를 가리키는 ‘하하’입니다.


  재미나지요. 다른 말소리도 아닌 웃음소리를 가리키는 말하고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 같아요. 어머니라고 하는 자리는, 어머니라고 하는 숨결은, 어머니로 나아가는 길은, 몸뚱이만 크고 나이만 먹는 삶이 아닌, 슬기로우면서 따뜻하고 즐거운 살림이겠구나 싶습니다.



“그거야, 그 감정. 남을 탓하는 감정을 억누르질 못하잖니. ‘개똥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새들까지 똥을 날리는 거야. 이상한 사람들이 금방 시비를 거는 것도 네가 비슷해 보이니까, 시비 걸고 싶도록 하고 다니기 때문이지. 정신을 맑게 유지해야 해.” (106쪽)



  말 한 마디로 가르칩니다. 몸짓 하나로 보여줍니다. 웃음 하나로 일깨웁니다. 말 두 마디로 같이 배웁니다. 새로운 몸짓으로 나란히 지켜봅니다. 웃음 두 판째로 깨우칩니다.


  낯을 찡그리고 다닌들 나아질 일이 없습니다.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로는 달라질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는 낯이 되면? 글쎄요. 엇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웃는 낯일 적에는? 글쎄요, 아마 다르지 않을까요?


  누가 우리를 괴롭혔다고 한들,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으면서 웃음으로 흘려보낼 수 있거나 살짝 튕겨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누가 우리를 못살게 굴거나 들볶거나 힘들게 하더라도, 이를 가볍게 여기면서 웃음으로 휙 넘기거나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갈 수 있으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 네가 다가가기만 하면, 분명 그쪽도 그렇게 할 거야.” (191쪽)


“싫은 일도 상관없어. 괴로운 일도 덤비라고 해.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전부 통틀어서 즐기는 거야. 살아가면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니까.” (216쪽)



  다시 돌아봅니다.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어떻게 웃음으로 하루하루 살아내고서 오늘 이곳에서 아이한테 웃음 띤 낯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아이로 자라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어버이(어머니나 아버지)가 되어 활짝활짝 웃음꽃으로 웃음어른이 될 만할까요?


  모두 웃음으로 품을 줄 알기에 웃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모두 웃음으로 안는 몸짓이기에 우스우면서 즐겁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비웃을 수 있어요. 남들이 우리를 손가락질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일 뿐, 우리는 그들도 저들도 아니랍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오늘 이곳을 누려요. 우리는 우리답게 오늘 여기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고 살림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즐겁게 일어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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