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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리고 죽어 2
토요다 미노루 지음, 이은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5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6.26.
모르면서 안 배운다면
《이거 그리고 죽어 2》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5.31.
그림꽃을 읽는 사람도 많지만, 그림꽃을 안 읽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림꽃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지만, 그림꽃으로 마음을 나누면서 새롭게 사랑이라는 길을 열려는 눈빛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림꽃이라면 그저 얕보거나 꺼리거나 내치는 사람도 많은데, 그림꽃이건 아니건 우리 삶을 어떻게 그려내는 길인지 헤아리면서 천천히 다가서는 사람도 꾸준히 있습니다.
그림꽃을 얕보는 사람이라면 그림꽃을 영 모른다고 할 만합니다.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을 낮보는 사람이라면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을 하나도 모른다고 할 만하지요. 시골을 멀리하거나 등돌리는 사람이라면 시골을 도무지 모른다고 할 테고요.
두 가지 매무새인 ‘알다’하고 ‘모르다’를 돌아봅니다. ‘알다 =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을 일으키다’입니다. 그래서 ‘알다 = 내가 모르는 줄 알다’부터 첫 발짝을 뗍니다. 모르는 줄 알아야 비로소 배우는 길을 갈 수 있고, 모르는 대목을 차근차근 짚고 살피면서 천천히 알아가게 마련입니다. ‘모르다 =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 없다’입니다. 그래서 ‘모르다 = 내가 안다고 여기다 + 알지 않으면서도 아는 척하다’입니다. 그러니 ‘모르다 = 꿈쩍조차 않으면서 딱딱하게 말라죽거나 굳어버리다’로 기울더군요.
《이거 그리고 죽어 2》(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은 그림꽃이라는 살림길로 다가서려는 여러 푸름이가 어떻게 하루하루 새롭게 피어나는지를 짚고 들려줍니다. 그림꽃은 여느 그림이나 글보다 뛰어나지 않습니다. 여느 그림이나 글은 그림꽃보다 뛰어나지 않습니다. 글도 그림도 그림꽃도 그저 다른 길입니다. 저마다 다른 길이기에 저마다 새롭게 이 삶을 담아냅니다. 서로 다른 길인 만큼 이 길을 걷는 우리는 언제나 새록새록 배우고 익혀서 하루를 노래하는 꿈을 옮길 수 있습니다.
글·그림·그림꽃은 붓끝만으로 빚지 않습니다. 붓솜씨만으로 안 태어납니다. 붓놀림이 뛰어나다고 해서 글이나 그림이나 그림꽃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재주가 있는 사람이야 수두룩합니다만, 사랑이라는 마음을 싣지 않으면 재주부리기에서 그쳐요. 이러다가 재주를 앞세워 돈벌이·이름얻기·힘자랑에 갇힙니다.
우리나라 글밭이 아름다운가요? 우리나라 꽃밭(예술계)이 사랑스럽나요? 벼슬밭(정치계)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나는가요? 배움밭(교육계·학교)은 어떤지요? 곰곰이 보면 이 나라 어느 곳에서도 영 안 아름다운 말이 끝없이 불거지고, 그저 얄궂거나 안타까운 짓이 자꾸자꾸 나타납니다.
모르면서 안 배우니까 얄궂습니다. 모르기에 배우니까 아름답습니다. 모르는데 감추니까 잘못과 말썽을 자꾸 일삼습니다. 모르기에 환히 드러내면서 배우려고 묻고 여쭈는 사람은 천천히 깨어나고 피어납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버릇대로 하더군요. 배우는 사람한테는 버릇이 없더군요. 배우려 하지 않으니 틀에 박힌 몸짓과 말짓이 가득하여 막짓을 서슴지 않더군요. 배우는 사람은 누구한테서나 기꺼이 배우는 동안 몸도 마음도 말도 나날이 새롭게 눈뜨면서 싱그럽더군요.
우리나라는 아직 책숲(도서관)에 ‘만화책’이 못 꽂힙니다. 길잡이(교사·사서)부터 ‘만화책’을 안 읽을 뿐 아니라, 어떤 만화책을 어린이랑 푸름이랑 어른하고 나누거나 함께 읽고 새길 적에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가를 여태 살핀 일이 없다시피 합니다. ‘만화’를 모르면서 ‘웹툰’이나 ‘그래픽노블’ 같은 말만 앞세우는 분이 늘어납니다. 왜 ‘웹툰’이나 ‘그래픽노블’ 같은 말만 앞세울까요? ‘만화’를 제대로 본 적부터 드물고, ‘배우면서 알아가고 살아가려는 마음씨앗’부터 건사하지 않은 탓입니다.
다만, 그림꽃이라고 해서 모두 아름답거나 알차지 않습니다. 글·그림·그림꽃 모두 쭉정이나 허수아비가 있습니다. 쭉정이 마음으로 쓰면 ‘쭉정이 글’입니다. 쭉정이 손길로 그리면 ‘쭉정이 그림꽃’입니다. 숱한 그림꽃을 두루 읽고 살피면서 어린이 곁에 놓을 그림꽃을 헤아릴 줄 알아야 어른스럽습니다.
ㅅㄴㄹ
“저 십자가는 뭐야?” “응? 글쎄. 뭘까.” “흐음. 오, 타, 줄, 리, 아.” (25쪽)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 코코로의 마음은 코코로 자신의 것이잖아.” (67쪽)
“그러고 보니, 수업 시간에도 늘 만화만 그리고, 스터디 할 때도 만화만 그렸어!” “응. 만화만 그리다 보니까 유급을 해버렸지, 뭐야.” (80쪽)
“밤의 정적과 천천히 아침이 밝아오는 느낌. 행복하고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참 사랑스러운 시간이었어요.” “우와∼ 선생님의 만화 이야기를 듣다니. 기뻐요∼.” (97쪽)
“난 잘 그리기만 한 만화는 싫어. 생각이 담기지 않은 메소드에 마음이 움직이는 게 분하거든. 만화에서 사랑을 느끼고 싶어.” (110쪽)
‘뭘로 죽이지? 물론 만화로 죽여야지.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야. 죽이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거지.’ (188쪽)
#これ描いて死ね #とよ田みのる
교복도 하복으로 바뀌었으니, 심기일전 합시다
→ 배움옷도 여름옷으로 바꿨으니, 새로섭시다
→ 배움옷도 여름옷이니, 추슬러 봅시다
→ 배움옷도 여름옷이니, 다잡아 봅시다
12쪽
야스미 글씨는 가독성이 좋으니까
→ 야스미는 글씨가 깔끔하니까
→ 야스미는 글씨가 고우니까
→ 야스미는 글씨가 반듯하니까
→ 야스미는 또박또박 쓰니까
→ 야스미는 정갈하게 쓰니까
12쪽
오리지널 창작 온리라고, 2차 창작도, 코스튬 플레이도 금지야
→ 새로 그려야만 하고, 따오기도, 꽃빔도 안 돼
→ 손수 지어야만 하고, 옮기기도, 나래옷도 안 돼
→ 스스로 빚어야만 하고, 배워짓기도, 꾸밈놀이도 안 돼
45쪽
도쿄에 가려면 숙박 여행이 되겠지요
→ 도쿄에 가려면 자고 오겠지요
49쪽
야스미가 했던 귀납법으로 가자
→ 야스미처럼 헤아리자
→ 야스미처럼 돌아보자
→ 야스미처럼 살펴보자
70쪽
유급을 했으니까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죠
→ 떨어졌으니까 넋차리고 배워야죠
→ 꿇었으니까 얼차리고 익혀야죠
79쪽
우와∼ 선생님의 만화 이야기를 듣다니. 기뻐요∼
→ 우와! 샘님 그림꽃 이야기를 듣다니. 기뻐요!
97쪽
선내에서 뛰지 마
→ 배에서 뛰지 마
→ 뱃칸에서 뛰지 마
102쪽
생각이 담기지 않은 메소드에 마음이 움직이는 게 분하거든
→ 생각이 담기지 않는 얼개에 마음이 움직이면 싫거든
→ 생각이 담기지 않는 틀에 마음이 움직이면 보기싫거든
110쪽
집 방향도 모두 같지 않으니까 소실점도 각각 잡아 줘야 하는구나
→ 집도 모두 같지 않으니까 모둠길도 따로 잡아 줘야 하는구나
→ 집도 모두 같지 않게 뻗으니까 금도 따로 잡아야 하는구나
1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