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에게 고한다 1 세미콜론 코믹스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2.12.13.

허수아비 죽음터



《아돌프에게 고한다 1》

 테즈카 오사무

 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09.9.28.



  《아돌프에게 고한다 1》(테즈카 오사무/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09)를 읽습니다. 이름이 ‘아돌프’인 세 사람이 어떻게 맞물리는가를 바탕으로 ‘삶·싸움’이 얽히는 자리를 짚고, ‘사람·허수아비’ 사이는 어떻게 다른가를 들려줍니다.


  싸움(전쟁)을 겪지 않고서는 싸움을 알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봐요. 사랑을 겪지 않았는데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숲에 고즈넉히 안겨서 숲내음을 맡지 않고서 숲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닷속에 들어가서 고래를 만나서 눈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고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싸움터(전쟁터 또는 군대)에 끌려간 사람이기에 싸움터를 압니다. 다만, 싸움터라 해도 다 똑같지 않습니다. 우두머리란 자리는 늘 뒤에 아늑히 앉아서 손가락만 까닥입니다. 총알받이란 자리는 늘 꼭두에 아슬아슬 서서 목숨이 달아납니다. 총을 쥐지도 않고 무거운 등짐을 지지도 않고 멧골이며 논밭을 가로질러야 하지 않는 우두머리가 겪은 싸움터란 무엇일까요?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는 소리를 질러도 서로 못 듣습니다. 총소리에 귀가 멍하거든요. 굴길(참호)을 파느라 지친 몸에 무거운 짐을 메고서 총알받이로 달려나가다가 폭 고꾸라지는 허수아비가 ‘싸울아비(군인)’입니다.


  우두머리는 늘 사람들을 길들여서 총알받이로 내몹니다. 무시무시한 총칼을 잔뜩 만들고 벼려서 옆나라로 쳐들어가면 큰돈을 가로채서 넉넉히 살 수 있다고 꼬드기려 듭니다. 그런데 곰곰이 짚어 봐요. 미국에서 새로 선보인 ‘숨은날개(스텔스 전투기)’ 하나 값이 1조 원이라고 합니다. 하나 값이 1조 원일 뿐, 이 하나를 만들기까지 들인 돈은 더욱 크게 마련입니다.


  총칼을 만들거나 사들일 돈으로 나라살림을 가꾸면 배고플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싸울아비(군인)를 거느릴 돈을 그냥 사람들한테 밑살림돈(기본소득)으로 나누어 주어도 모든 사람이 넉넉히 누릴 만합니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사람들이 느긋하고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길’보다는 ‘사람들이 서로 미운놈(적·적군)을 과녁으로 삼아서 싸우려 들도록 내모는 길’을 좋아하더군요.


  너랑 내가 ‘태어난 나라’가 다르니까 미운놈이 되어 싸워야 할까요? 너랑 내가 ‘태어난 고장’이 다르니까 서로 미워하며 다퉈야 할까요? 나라에서는 ‘국민기본교육’이란 이름을 붙이지만, 정작 우리는 배움터(학교)를 다니면 더 다닐수록 오히려 ‘슬기로운 살림·포근한 사랑·아름다운 삶’하고 등진 채, 서로 미워하거나 시샘하거나 갈라치면서 아웅다웅하는 쳇바퀴에 스스로 갇히지는 않는가요? 잘 봐요. 슬기로운 살림을 배움터에서 가르치나요? 포근한 사랑을 배움터에서 들려주나요? 아름다운 삶을 배움터에서 보여주나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그리면서 ‘세 아돌프’가 저마다 다르지만 안쓰럽게도 똑같은 수렁길로 치닫는 슬픔꽃을 밝힙니다. 시키거나 가르치는 대로 따라가는 끝이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요. 살림·사랑·삶하고 등지면 언제나 쳇바퀴에 허덕이는 줄 밝히지요. 이제는 우리 모두 스스로 눈을 뜨고 깨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종살이(노예생활)가 아닌 참살이를 바라보기를 빕니다.


ㅅㄴㄹ


‘그야말로 무대에 서서 박수갈채를 받는 인기배우하고 똑같아. 말하자면, 히틀러는 세기의 스타에 지나지 않아. 팬들이 그 스타에게 열광적으로 환호를 보내는 것뿐. 여긴 그야말로 극장이다. 극장 국가라. 그러고 보니 히틀러는 몸짓도 말투도 하나같이 연극배우 같군.’ (74쪽)


“네가 내 동생을 밀고한 것보다도, 네 아버지가 게슈타포란 사실을 숨기고, 아닌 척한 게 더 참을 수 없어!” “…….” “그래! 내 일거수일투족이 너를 통해 네 아비한테 흘러들어간 거야. 그 마을에서 습격당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 (102쪽)


“싸워야 해, 아돌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단다. 울상 짓고 멈춰 있으면 안 돼. 차별과 탄압에 맞서서 싸워야 해. 비록 지금은 조국 없는 민족이지만, 꿋꿋이 싸워 나가면 틀림없이 이길 거야.” (146쪽)


“유대인을 죽여도 된다고 가르친대요!” “그럴 리가.” “진짜예요. 친구 형이 소년단이거든요. 난, 빵집 아돌프를 싫어하게 될까 봐 무서워요.” “아직도 걔랑 어울린단 말이야?” “우린 친구예요!” (159쪽)


“히틀러 소년단은 유대인을 해충이라고 가르친단 말이에요!” “유대인? 무슨 얘길 하는 거냐?” “저한텐 유대인 친구가 있어요.” “빵집 아돌프 말이지? 그 녀석은 해충이다!” “걘 해충 아니에요!” “잘 들어라, 아돌프. 히틀러 소년단에선 유대인이 세상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 쓰레기인지 낱낱이 가르쳐 준단다.” (204쪽)


“아빠는 너한테 무서운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몰라. 그건, 조국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일했기 때문이다. 충성이란 그런 것이다.” (22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アドルフに告ぐ #手塚治虫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돌프에게 고한다 2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2.12.13.

미움씨앗은 미움나무로


《아돌프에게 고한다 2》

 테즈카 오사무

 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09.9.28.



  《아돌프에게 고한다 2》(테즈카 오사무/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09)이 우리말로 나온 지 제법 됩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은 큰맘먹고 이 그림꽃을 ‘글만 읽는 어른이 읽는 달책(잡지)’에 실었습니다. 더구나 일본이 지난날 어떤 말썽이며 잘못을 일으켰는지 낱낱이 다루면서, 일본이 나치 독일하고 손잡고서 사람들을 얼마나 길들이거나 억눌렀는지를 다루었고, 일본에서 스스로 왼켠(좌파)이라 내세우는 이들조차 총칼나라를 나무라지 않으면서 한통속이 된 대목까지 다루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은 ‘전쟁 반대’를 외치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이녁 그림꽃은 ‘우두머리가 허수아비를 이끌어 일으키는 싸움은 바로 우리 스스로 망가지는 길’을 줄거리로 삼는구나 싶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우두머리라는 자리부터 없애면서, 누구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누구보다 어린이가 사랑을 물려받아서 새롭게 푸른별을 가꾸는 슬기로운 마음을 밝히고 나누자’고 하는 줄거리를 여밉니다.


  그림꽃 《아돌프에게 고한다》도 테즈카 오사무 님이 선보인 다른 그림꽃처럼 ‘싸우려는 마음은 언제나 싸우려는 마음으로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대목을 짚습니다. 이 대목을 잘 읽어야 합니다. 싸우려는 마음을 품으면 ‘착한 싸움’도 ‘나쁜 싸움’도 없이 모두 ‘죽이는 싸움’입니다. 이쪽도 저쪽도 ‘네가 날 때렸잖아!’ 하고 외치면서 끝없이 앙갚음을 하려고 들어요.


  《불새》는 바보스레 쳇바퀴를 도는 사람들 싸움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블랙잭》은 바보스런 쳇바퀴를 먼저 스스로 끊는 새길에서 어떻게 사랑이 피어나는가를 드러낸다면,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미움씨앗이 미움나무로 자란다면, 우리 스스로 어떤 씨앗을 심어서 어떤 나무로 돌보는 숲살림이어야 사람다울까?’ 하고 묻습니다. 나라가 시키니까 ‘애국·충성’이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서 허수아비 총알받이로 미움씨앗을 흩뿌려야 할까요? 나라가 시키고 길들이는 모든 거짓과 눈가림을 찬찬히 걷어내면서 아이들한테 참빛을 들려주고 물려주는 어진 어른으로 고이 서면서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요?


  왼뺨을 때리는 놈한테 오른뺨도 때리라고 하는 까닭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고운님이 아닌 미운놈한테 떡 하나 더 주는 뜻을 새길 수 있기를 바라요.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곳에서만 펴는 맞장구입니다. 맞주먹이기에 싸움입니다. 바보짓에 눈을 감아도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바보짓을 녹여낼 사랑길을 바라보고 가꾸는 하루를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꾸 ‘저놈이 미운데 어떡해?’ 하면서 밉놈(분노할 대상)을 만들려고 들면, 바로 여기에서 미움씨앗이 싹트면서 미움나무로 자랍니다.


  나쁜놈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요. 나쁜놈을 죽여야 한다는 마음씨앗을 섣불리 심으려 하지 마요. 나쁜놈도 착한님도 아닌, 삶과 살림과 사랑을 함께할 아이어른으로 오늘 이곳에 서는 길 하나를 오롯이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중일전쟁에) 민간인 수천 수만 명이 도륙당했으며, 본보기로 참살당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여성과 아이들까지도 편의대(간첩)나 게릴라로 몰려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 대본영의 간부들이 감쪽같이 숨긴 탓에 일본 대중은 이러한 진상을 까맣게 몰랐다 … 거짓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감춰진 실태가 얼마나 비참하고 잔학한지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마땅히 반대 입장에 섰어야 할 사회대중당조차도 똘똘 뭉쳐 정부에 협력하는 꼴이었다. (9, 11, 12쪽)


“이거 참 애먹이는 상대구먼. 고문도 안 통하지. 이마에 돌대가리라고 적혀서는 15만 엔을 준대도 끄떡 안 하지. 하지만 자네 처지를 생각해 봐. 자네한텐 이미 꼬리표가 붙었어. 이제 곧 일본 땅에 발도 못 붙이게 될 거야. 돈을 챙겨서 미국이든 어디든 이민을 가. 협력만 하면 도와줄 테니까 말이야.” (77쪽)


“호리타, 나 회사 그만두게 됐어.” “그, 그래. 몸조심해.” “젠장. 특고한테 찍혔다고 다들 슬슬 피하는 건가.” (84쪽)


“군인 아저씨♩ 감사합니다♪ 군인 아저씨♩ 덕분에♪ 오늘도 형과 함께 나란히♪ 학교에♩ 갑니다♪ 조국을♩ 위하여♪” (93쪽)


“사람을 버러지 취급하다니. 용서 못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용서 못해!” “나, 날 죽일 작정이냐? 어디 해봐라, 그럼 넌 살인범이야! 아, 아니야! 하지 마!” “먹어! 네 놈도 쓰레기를 먹으란 말이다! 당장 안 먹으면 이 못을 먹여줄 거다! 입에 처넣어! 그래, 그렇지. 꼭꼭 씹어야지. 다 삼켰으면 한 입 더 먹어라!” (126쪽)


#アドルフに告ぐ #手塚治虫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망소녀 히나타짱 3
쿠와요시 아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2.12.4.

생각하며 짓는 삶


《할망소녀 히나타짱 3》

 쿠와요시 아사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8.5.15.



  《할망소녀 히나타짱 3》(쿠와요시 아사/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8)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그림꽃책은 날마다 쏟아지는데, 이 가운데 스스로 읽을 책이며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책을 가리면 몇 안 남습니다. 숱하게 쏟아지는 책을 살피다가 생각합니다. 숲노래 씨로서는 아예 쳐다볼 마음이 터럭만큼도 안 들지만 참으로 숱한 사람들이 읽는 책이 꽤 많구나 싶어요.


  거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읽는 책인데 숲노래 씨 그대는 왜 거들떠보지 않느냐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올 뿐더러, 겉그림이나 책이름을 보기만 해도 줄거리가 훤히 보이면서 따분한 틀에 갇히는 책을 손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첫째, 사랑 아닌 짝짓기타령(애정행각)을 다루는 책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죽느니 사느니 티격태격 주먹다짐이 춤추는 책은 들추지 않습니다. 이켠이건 저켠이건 저희 무리에 끼어야 옳다는 목소리가 가득한 책은 등돌립니다. 들숲바다하고 풀꽃나무를 잊은 책은 만지지 않습니다. 사람으로서 슬기롭고 참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아름길을 펴는 줄거리가 아니라면 아이들한테 건넬 마음이 아예 없습니다.


  아이를 걱정하다가 그만 숨을 거둔 할머니가 꼬마로 다시 태어나는 줄거리를 다룬 《할망소녀 히나타짱》입니다. 책이름으로도 왜 ‘할망소녀’인지 어림할 만해요. 그런데 이 그림꽃에 나오는 ‘히나타’만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시 태어납니다. 그저 다시 태어나는 줄 잊어요. 다시 태어나서 이 삶을 부여잡는 까닭을 자꾸 잊습니다.


  어떤 일을 자꾸 겪는 까닭을 돌아보아야 해요. 왜 자꾸 똑같거나 비슷한 일이 불거지는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수수께끼하고 실마리를 스스로 풀어서 매듭을 지을 때까지 ‘지겹거나 싫은 일’이 끝없이 또아리를 틀어요. ‘지겹거나 싫다는 마음’을 씻어내지 않으면, 아무리 수수께끼하고 실마리를 풀어도 똑같거나 비슷한 일은 고스란히 잇습니다.


  마음은 늘 마음으로 이어가서 만납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으로 마주보면서 빛납니다. 짝짓기는 노상 짝짓기 노닥질로 헤맵니다. 끊어야 하거나 잘라야 하지 않아요. 따사로운 햇볕으로 녹일 노릇입니다. 싱그러운 바람으로 어루만져서 꽃이 피어나도록 북돋울 일입니다. 작은 그림꽃이 들려줄 ‘다시 태어난 할망아이 새걸음’은 앞으로 어떤 발걸음으로 수수께끼하고 실마리를 스스로 풀고 맺을까 지켜보기로 합니다.


ㅅㄴㄹ


‘1교시는 국어인가? 교과서가 뻣뻣하니 좋구나. 새 걸 쓸 땐 그걸 쓰는 사람까지 새로운 마음이 들지. 게다가 오래 써서 조금 낡은 학교 책상과 의자. 전엔 어떤 애가 썼으려나?’ (5쪽)


“젓가락은 한 개만 들고 움직이는 연습을 하면 된단다.” “헤. 어, 잘 된다.” “갑자기 좋아지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먹을 땐 맛있고 즐겁게 먹는 게 최고니까, 연습은 나중에 하렴.” (26쪽)


“자자, 얘들아. 배고프지 않니? 눈앞에 있는 음식에 집중하자꾸나.” (28쪽)


“툇마루에서 보이는 정원을 손질하며 사다오가 오기만 기다렸고, 그게 거의 내 일상이었어. 지금 난 그저 사다오 걱정뿐이야. 그러니 항상은 아니더라도 사다오가 굶을 때 급식을 나눠줄 정도면 난 족해.” (63쪽)


“미련을 끊어야 태어나기 전의 일을 다 잊을 수 있어. 미련이 있기 때문에 기억하는 거라고. 할 일을 다 하면 분명 태어나기 전 일도 잊을 수 있을 거야.” “뭐?” (77쪽)


“괜찮은지 아닌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난 네 힘이 되어 주고 싶단다.” (126쪽)


#桑佳あさ #老女的少女ひなたちゃん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의 그녀 2
하루나 레몬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만화책/숲노래 그림꽃 2022.10.16.

혼자 쓰지 말고 같이 쓰렴



《보통의 그녀 2》

 하루나 레몬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2.3.25.



  《보통의 그녀 2》(하루나 레몬/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2)을 읽고 다시 읽고 천천히 되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그림꽃에 나오는 아가씨는 “같이 있을 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24쪽).” 하고 말하지만, 정작 ‘같이 있기’만으로는 넉넉하지 않기에 글을 쓰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쓰는 글은 ‘같이 있으면서 즐거운 짝꿍’ 이야기입니다.


  짝꿍하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썼다면 누구보다 짝꿍한테 먼저 보여줄 노릇이에요. 그런데 아가씨는 짝꿍이 아닌 남한테 먼저 보여주었고, 남이 말하는 대로 ‘시 공모전’에 냈으며, ‘시 공모전에 붙어 짝꿍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제(짝꿍인 사내) 이야기를 갑자기 누리판(인터넷)에서 만날 뿐 아니라, 이 이야기를 쑥덕거리는 일터 젊은 아가씨들 입방아에 올라서 몹시 버거워’ 합니다.


  그저 같이 있기에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는데, 그저 같이 있기로 하지 않고 ‘같이 있는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했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찬찬히 생각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남(동무라 하더라도)보다 짝꿍한테 먼저 말할 노릇입니다. 짝꿍은 ‘절름발이로 살아온 나날로 너무 고단한 나머지 이녁 삶을 고스란히 글로 담을 엄두를 못 내는 마음’입니다. 아가씨도 아가씨 삶길을 고스란히 글로 담기까지 오래도록 마음앓이를 해온 만큼, 짝꿍더러 왜 갑자기 같이 나아가지 못 하느냐고 다그친다면, 짝꿍은 몹시 힘겹겠지요.


  아가씨 스스로 ‘수수한(보통의 그녀)’ 사람으로 살아오려 발버둥을 쳤지만 ‘누구나 다른 줄 깨달았다’면, ‘절름발이가 없는 곳에서 절름발이로 살아가는 짝꿍’한테 들려줄 말을 더 살필 노릇이리라 느낍니다. 아가씨는 ‘짓시늉(의태)’을 하면서 ‘겉으로는 멀쩡한(?), 그러니까 수수한 모습으로 꾸밀’ 수 있습니다만, 짝꿍인 사내는 ‘짓시늉’을 할 수 없기에 ‘겉으로 보기에도 안 멀쩡한(?), 그러니까 겉으로도 속으로도 절름발이가 드물거나 없는 곳에서 혼자 절름발이로 티가 나는 모습을 속으로 견디는’ 삶이에요.


  그러나 누가 옳거나 그르다고 가를 수 없습니다. 아가씨는 동무를 만났고, 한때 짝꿍이던 사내는 아직 동무가 없습니다. 젊은 사내도 동무를 만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동무가 있든 없든 먼저 스스로 ‘누구나 다르며, 모든 사람은 참말로 다르기에 스스로 마음으로 빛나는 길을 신나게 걸어가면 어느새 사랑을 스스로 지어서 펴는구나’ 하고 깨달으리라 봅니다. 이 같은 대목을 그리지 못한 채 서둘로 매듭을 지은 《보통의 그녀》라서 아쉽습니다. 순이도 돌이도 삶을 고스란히 말로 들려주고 글로 옮길 수 있기를 바라요. 바깥(사회)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흐르는 사랑빛을 늘 가만히 마주하면서 스스로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지금 밤이 샌다. 모든 밤에 아침은 온다. 하나의 캄캄하고 캄캄한 밤이 빛을 맞이하며 고요히 끝난다. 고요한 아침에 누워 있는 하나의 몸, 몸, 몸, 그 피가 흐르는 따스한 살덩어리,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그 몸, 몸, 몸! 따뜻한 피부. 맥박 치는 몸.’ (13쪽)


“좀더 철저히, 천천히 솔직해져서 저 자신을 다 벗겨서 드러내고, 그래서 좋은 시를 쓸 수 있겠죠. 그건 정말 무섭지만, 저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그 저편에 있는 것을 보고 싶어요. 세상의 평가는 어떻든 상관없으니까.” (48쪽)


“다루 양. 평범한 사람 같은 건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어 …… 단 한 사람도 없는 거야.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행복의 열쇠라고 생각해선 안 돼.” (78∼79쪽)


“난, 하지만 쓰기로 결심했어. 나는 나를 위해 쓰기로 결심한 거야. 헤어지자.” (89쪽)


‘나는 내 힘으로 나를 따뜻하게 할 수 있다. 내 손으로 나를 끌어안을 수 있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면 무엇인가.’ (97쪽)


#はるなれもん #ダルちゃん #はるな??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고화질세트] 미스터 요리왕 (총41권/완결)
혼죠 케이(만화) / 스에다 유이치로(글) / 김봄(옮김) / S코믹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2.9.30.

숲은 일하지 않는다



《흙 1》

 혼죠 케이

 성지영 옮김

 또래문화

 1997.10.25.



  《흙 1》(혼죠 케이/성지영 옮김, 또래문화, 1997)를 읽으면 씨앗하고 흙이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사람하고 숲은 서로 어떤 사이인가를 짚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이 그림꽃은 일본에서 《SEED》로 나왔습니다. “씨앗”이란 이름이던 책을 왜 “흙”으로 바꾸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처음 나온 이름대로 《씨앗》이라 해야 걸맞을 뿐 아니라, 이 그림꽃에 나오는 사람이 늘 하는 일은 ‘씨앗 한 톨을 새롭게 심고, 씨앗 두 톨을 이웃한테 나누고, 씨앗 석 톨을 들숲바다에서 누구나 누리는 사랑을 삶으로 펴는 하루’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숲사람입니다. 다만, 요새는 스스로 숲빛을 잊다가 서울사람(도시인)으로 바뀝니다. 오늘날 시골사람조차 겉만 시골몸일 뿐, 속은 서울내기로 바뀌었습니다.


  숲을 숲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 숲에서는 아무도 일을 안 하는 줄 알 수 있습니다. 숲에서는 누구나 노래하고 춤추고 놀며 어우러져요. 서울에서는 모두 일만 합니다. 서울에서는 노래·춤·놀이가 없습니다. 돈을 버는 일하고 돈을 쓰는 노닥질만 있어요.


  씨앗은 일하지 않습니다. 씨앗은 꿈을 그려서 하나씩 이루어 갑니다. 흙은 일하지 않습니다. 흙은 온숨결을 품고서 넉넉하면서 포근하게 삶을 나눕니다. 싱그럽게 살아숨쉬는 흙은 까무잡잡하고, 씩씩하고 튼튼히 뛰노는 아이는 살갗이 까무잡잡합니다. 일만 하다 죽어버린 흙은 허여멀겋고 딱딱합니다. 오늘날 논밭흙은 까무잡잡하던 빛을 잃고서 허여멀겋게 모래밭(사막)입니다. 이러니 오늘날 ‘농업’은 온통 풀죽임물(농약)에 죽음거름(화학비료)으로 마구 뽑아내려고 해요.


  흙짓기를 따로 안 하던 지난날에는 모든 사람이 ‘여름지기(열매지기)’였고, 지난날 모든 여름지기(열매지기)는 “사람 한 알, 새 한 알, 벌레 한 알”이란 얼거리로 나누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놀면서 웃고 이야기했어요.


  오늘날 서울(도시)을 봅시다. “사람만 석 알 몽땅”이란 틀에 갇힐 뿐 아니라, 들꽃이나 나무 한 그루한테 한 뼘조차 안 내줍니다. 사람이 아닌 사납빼기가 된 이들은 사람 사이에서도 부릉이(자동차)한테 몽땅 자리를 내주고, 돈에 따라 더 넓고 커다란 집에 홀로 들어앉으려고 해요.


  입가리개를 스스로 벗고, 부릉이를 스스로 내려놓고, 잿빛집에서 스스로 나올 노릇입니다. 한 손에는 햇볕을 받고, 다른 손에는 바람을 받으며, 온몸으로 빗물을 머금고, 온마음으로 별빛을 담을 노릇입니다. 씨앗을 석 톨 심어서 두 톨은 숲한테 돌려줄 수 있는 눈망울일 적에, 사람은 비로소 사랑을 깨달아 스스로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숲에선 사람손을 빌지 않고도 모두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짐승·새·풀이나 벌레까지도. 자연에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11쪽)


“숲엔 무엇이든 있었다. 그들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으며 느긋이 한 모금의 담배를 피우며 정성껏 화장을 하지. 우리들은 댐을 만들고 보다 편리해지겠다고 경쟁해 왔지만, 과연 행복해졌을까.” (71쪽)


“아마존엔 한 가지 식물만 자라는 곳이 없소. 식물은 종류에 따라 땅속의 양분을 나눠 쓰고 있소.” (81쪽)


“제 밭에 잡초는 없습니다.” (125쪽)


“숲에는 여러 가지 나무나 풀벌레가 살고 있습니다. 밭에서도 작물과 풀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잡초가 비료를 다 먹어버린다구.” “잡초가 있으면 비료가 필요없습니다.” (126쪽)


“그들(인디오)은 화전을 일구지만 지상의 목초를 태우는 것뿐, 생명을 뺏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흙을 갈지 않고 강한 햇빛과 풍우로부터 흙을 지키고 있지요. 갈지 않아도 숲의 흙은 부드러우며 그들은 숲의 풀이나 벌레를 작물과 공존하게 하고 있습니다 … 마침내 숲이었던 토지의 지력이 떨어져 농지의 사막화가 시작되고 증대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게 되자, 15세기 이래 유럽은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를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유럽인들은 숲을 베고 현지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근대농법을 강요해 왔습니다.” (132쪽)


“지력은 숲의 낙엽과 벌레들이 만드는 대지의 생명력입니다. 근대농법은 숲을 베어없애고 대지의 생명력을 끊고 대신 화학비료를 주어 작물을 기르고 있습니다 … 어째서 토지의 생명력을 그대로 이용하지 않는 걸까요? 인간은 짧은 거리를 돌아서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33쪽)


ㅅㄴㄹ


#本庄敬 #seed #혼죠케이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